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몬타나의 경비병 1(11화)
4장 제발 내 앞에서 사라져라(1)


몬타나 제국 중앙기사단은 전통만큼이나 상당한 위세를 떨치고 있다. 이제 직업이라는 인식이 굳어진 기사단은 제국에서도 엘리트 집단으로 알아주는 만큼 누구든지 들어가고 싶어 하는 곳이다.
대부분 귀족들이 학연, 지연이든 혹은 인맥을 동원하든지 간에 자식을 기사단으로 넣으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보통 연수생, 수습을 거쳐 10급에서 1급까지의 정기사 등급을 하위 기사라 칭한다. 그리고 1급 정기사에서 다시 진급을 통해 올라가는, 5등급으로 나누는 고등 기사, 그 위로 3등급으로 나누는 고위 기사가 있고 마지막으로 기사의 정점에 서 있는 단 세 명뿐인 집정기사와 한 명의 고위 집정기사가 있다.
집정기사는 군 계급으로 치자면 최고 사령관 직책으로 제국 내 모든 기사들을 통솔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만큼 대단한 위치라고 볼 수 있다. 그들의 위에 서 있는 고위 집정기사는 말할 것도 없다.
현재에 이르러 기사들은 모두 제국의 중앙기사단 소속이다.
사병제도가 사라진 만큼 사병의 일종인 기사들 또한 국가로 귀속된 지 오래고 초창기 심한 반발의 시기는 이미 오래전에 지나 완벽하게 자리를 잡은 상태다. 현재 귀족들을 호위하는 기사들은 정기사 5급 이상의 파견 기사들로 볼 수 있다.
물론 개인적으로 고용한 일부 사설 기사들도 있다. 이들은 돈이야 국가에서 받는 봉급보다 훨씬 많겠지만 사실 크게 기사 취급을 받지 못한다. 이유는 이미 국가 소속 중앙기사단이 아닌 기사들은 기사가 아니라는 인식이 상당히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으리으리하구만.”
처음 와 보는 제국 내의 중앙기사단, 딱히 올 일도 없었을 뿐더러 기사들과 일반 군 병력, 혹은 지휘관들은 썩 친한 편이 아니다. 특히 각기 분리된 군권을 가진 군 지휘관들과 기사들 간의 보이지 않는 기 싸움은 상당한 편이다.
현대로 치자면 특수 전 사령부와 육군 사령부처럼 명령체계 자체가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여기 수습기사 관리본부장실이 어딘지?”
길 찾기에 애로사항이 많았던 다스는 지나가던 기사 한 명을 붙잡고 물어본다. 그러자 기사는 경비병 복장을 한 다스의 모습을 스윽 보더니 피식 웃으며 턱으로 오른쪽을 가리켰다.
‘이 새끼 턱주가리를 그냥 확 박살을 내 버려?’
순간 울컥하며 주먹을 날릴 뻔했지만 그는 언제나 계산적인 사람이다. 완연한 적지에서 이 기사의 턱주가리를 날렸다가는 자신은 턱주가리 대신 목이 날아갈 것이다.
“알겠습니다.”
길을 가르쳐 주었기 때문에 참는다며 스스로를 위로하며 그 기사를 스쳐 지나간다. 그래도 마지막 자존심으로 절대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기사의 턱주가리가 가리킨 방향으로 5분여를 더 걸었을 때 떡하니 수습기사 관리본부장실이라는 명패가 박힌 커다란 문이 하나 보였다.
‘여기군.’
똑똑.
“들어와.”
다스가 별 망설임 없이 노크를 하자 내부에서 약간 걸걸한 목소리로 들어오라는 말이 들렸다.
끼익.
안으로 들어선 다스가 본 것은 역시 수습기사지만 기사단의 관리본부장답게 매우 넓은 실내에 고급스러운 장식으로 어우러진 실내였다. 그 사이로 기사들의 상징인 저것을 입고 어떻게 싸울지 의문이 들 정도의 무거워 보이는 갑옷과 많은 무기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자네가 그 경비병인가?”
들어오는 그를 보자마자 알아본 관리본부장의 목소리는 심기가 매우 불편해 보인다. 그 속에 너 따위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는 것을 다스는 곧바로 짐작한다.
“북문 경비대 소속 경비 조장 다스 베이더입니다.”
그는 고개를 빳빳하게 세운 채 자신을 소개했다. 어차피 기사는 자신의 지휘관이 아니다. 그래서 경례를 할 이유가 없다고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일반 병사들은 직급이 높은 기사들에게 경례를 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자네 내가 누군지 알고 있는가?”
뻣뻣한 그의 고개에 관리본부장은 인상을 찌푸린다. 도대체 이놈은 무엇을 믿고 이렇게 건방지단 말인가.
“수습기사 관리본부장님 아니십니까?”
다스는 여전히 빳빳하게 고개를 세운 채 뭘 그런 것을 묻느냐는 듯 바라본다.
“자네. 참.”
뒷말을 흐리지만 건방진 새끼라는 말을 입에 담고 싶었을 것이리라.
“무슨 문제 있습니까?”
어차피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고운 법, 주도권을 그가 잡고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에 관리본부장이 아니라 집정기사가 오더라도 꿀릴 것이 없었다.
그의 태도에 분노가 치미는지 관리본부장의 손이 슬그머니 검으로 옮겨 가지만 억지로 참는다. 그러면서 슬쩍 옆으로 시선을 돌려 누군가의 눈치를 본다.
눈빛으로 보아 저 누군가가 아니었다면 오늘 이 자리에서 요절을 냈을 수도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관리본부장이 누군가의 눈치를 보자 다스도 그 누군가에게로 슬쩍 시선을 옮긴다. 들어올 때는 발견하지 못했지만 오른편에 마련된 접객용 소파에 금발의 머리만을 빼꼼 내놓은 채 앉아 있는 그 누군가가 보였다.
키가 얼마나 작은지 소파 위로 머리를 딱 반만 내놓고 있는 그 금발의 앞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는 것을 보니 차를 마시고 있는 듯했다.
그 뒤통수를 보는 다스의 표정이 이상했다.
‘저 익숙한 뒤통수? 설마.’
뒤통수의 반만 빼꼼 내놓고 있지만 그는 대번에 저 후려치고 싶은 뒤통수의 주인공이 누군지 빠르게 짐작한다. 어찌 저 뒤통수를 잊을 수 있으랴. 저 뒤통수를 보고 있자니 삭신이 쑤셔 오기 시작했다.
“본인이 온 것 같네요. 제가 할 말은 다 끝났으니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슬며시 일어나는 저 가증스러운 뒤통수, 그러고는 고개를 스르르 돌린다. 폭행죄로 고발한다며 길길이 날뛰는 그에게 주먹을 슬슬 문지르며 목격자가 어디에 있냐며 자신이 했던 것과 똑같은 협박을 하던 모습이 떠오르자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너의 말을 믿을까? 아님 나의 말을 믿을까? 과연 누구의 말이 더 신뢰가 갈까?]
으득.
‘저 꼬맹이.’
또래의 천진난만한 얼굴로 가증스럽게도 위장하고 있는 저 세실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악마가 그를 한 번 보더니 눈빛으로 살짝 웃어 준다. 순간 저 웃는 눈에다가 후춧가루를 뿌리고 싶었다.
“아! 네.”
도대체 얼마나 지휘가 높은지는 모르지만 이 도적같이 생긴 본부장이 그녀가 움직이자 벌떡 일어나 영접을 하려 했다.
“아뇨. 바쁘실 텐데. 굳이 나오실 필요는 없어요. 그럼 수고하세요.”
어정쩡하게 선 본부장을 뒤로한 채 꼬맹이, 세실리아는 밖으로 나갔고 다스는 불안한 눈길로 그녀가 나간 곳만 바라본다. 1급 통행증을 가지고 있을 때부터 알아봤다. 어린 나이 때문에 믿기 힘들지만 아무래도 보통 지휘가 아닌 듯하다.
저런 인간들은 잘못 건드렸다가는 힘없는 자들은 무조건 피 본다는 것은 당연한 세상의 진리다. 경비병 따위가 수습기사 관리본부장마저 쩔쩔매는 자와 어떻게 대적을 할 텐가.
확실한 증거와 목격자가 없다면 법은 필히 힘 있는 자들의 손을 들어 주기 마련이다. 아니 증거와 목격자가 있다 하더라도 힘과 권력이 있으면 그냥 덮어 버리는 더러운 세상이다.
원래 없는 게 죄인 세상이다.
가진 게 없는 자들은 예비 죄인이나 다름이 없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세상은 아직 정의로우며 법은 공평하고 힘없는 자들을 위해 존재한다고 굳게 믿다가 한번 된통 당해 보면 정신이 번쩍 들지 않을까? 정말 이 말을 외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무전유죄, 유전무죄.”
뭐 일단은 인과응보일까? 어떻게 보면 자신이 수습기사들에게 한 짓과 똑같은 짓을 당했다고 볼 수 있다.
‘저 망할 것이 도대체 뭐 때문에 여기에 있었던 거지? 설마 그때 그 일을 꼰지르려고? 하지만 그때 분명 약속을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당시의 협상은 옳은 선택이었다고 보지만 왜 이곳에 그녀가 있는 것일까?

짧은 시간 안에 세상에 태어난 이래로 사상 최악의 날을 선물해 준 꼬맹이를 다시 본 기분이 좋지 않은 일이 있긴 했지만 예상외로 모든 일이 원활하게 끝나자 이건 이것대로 기분이 좋았다.
‘흐흐. 이게 얼마냐? 큭큭큭.’
합의금이라고 할까나? 관리본부장은 죽일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망설임 없이 턱 하니 돈주머니 하나를 던졌다.
수습기사가 경비병에게 칼질을 한 일을 억지로 덮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에라도 잘못되면 기사의 이미지부터 시작해 위신에 엄청난 타격을 입을 것이 뻔하다.
안 그래도 요즘 들어 군 쪽에서 호시탐탐 중앙기사단을 견제하며 딱 걸릴 건수를 찾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있었기에 관리본부장도 상부에 보고한 뒤 조용히 무마하는 것으로 해결을 보려 했으리라.
물론 아직 그는 잘 모르지만, 이렇게 쉽게 무마 뒷거래를 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서는 더 중요한 포인트가 있었다.
[일종의 합의금이라고 생각해라. 너희들이 모든 것을 눈감아 준다는 전제하에 주는 것이다. 섭섭지는 않을 것이다. 합의할 마음이 있으면 그 서류에 사인하고 냉큼 꺼져라.]
솔직히 합의고 지랄이고 간에 돈주머니를 얼굴에 집어 던지고 싶을 정도로 기분 나쁜 말투였으나 돈주머니 안을 보는 순간 마음이 싹 바뀐다. 이건 예상보다 훨씬 많은 돈이다.
역시 제국 최고의 권력 기관 중 하나라 그런지 통도 컸다.
냉큼 꺼져 주는 것이 뭐 어려울 것이 있겠나?
다스는 대충 합의 서류 내용을 훑어보고 사인한 뒤 관리본부장이 원하는 대로 냉큼 꺼져 주었다. 이 정도 돈이면 더 기분 나쁜 욕을 얼마든지 들어 줄 수 있고 수천 번을 냉큼 꺼져 줄 수 있었다.
든든해진 주머니를 매만지며 한스에게 얼마를 줘서 입을 다물게 만들까 하는 심각한 고민을 하며 중앙기사단 입구를 빠져나온다. 약속한 대로 결코 6대 4로 나눌 마음은 없었다.
‘일단 조금 미안하기는 하니깐. 까짓것 선심 써서 5골드는 주도록 하지. 진짜 선심 썼다.’
막상 상처를 입은 당사자는 5골드를 주고 자신은 195골드를 챙긴다. 그리고 그것을 선심이라고 한다. 정말 더러움 심보였지만 어쩔 것인가. 원래 그런 인간인 것을.
어차피 한스는 자신이 얼마 받았는지 모를 것이기에 5골드만 던져 주어도 눈이 휘둥그레질 것이다. 그러면 어깨를 툭툭 치며 다쳤으니 조금 더 쉬다 오라는 조장으로서의 한마디만 던져 주면 끝나는 것이다.
“흐흐흐. 더러운 일진 속에 이런 행운이 찾아올 줄이야. 누가 알았겠어?”
생명이라도 되는 듯 품속의 돈을 꼭 움켜쥐며 중앙기사단 입구를 빠져나오던 다스, 기분이 좋은 듯 히죽거리며 보무도 당당하게 걸어가던 그의 발걸음을 묶는 목소리가 있었으니.
“잠깐만.”
순간 다스의 얼굴이 확 구겨진다. 아마 죽을 때까지도 이 목소리를 잊지 못할 것만 같았다.
“어찌 기분이 상당히 좋아 보인다? 안에서 뭐 좋은 일 있었어?”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제발 이 목소리가 그 목소리가 아니길 간절히 빌며 고개를 돌리지만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이 빌어먹을 꼬맹이가 집에도 안 가고 왜 자꾸 따라다녀? 재수없게시리.’
기사단 입구의 오른쪽 벽 옆에 떡하니 팔짱을 낀 채 기대고 있는 작은 키의 세실리아의 모습이 보인다.
그가 돌아보자 팔짱을 푼 세실리아는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다스의 앞으로 다가왔다. 세실리아는 가슴팍 조금 아래 정도밖에 오지 않는 어린 소녀의 모습이었지만 다스 입장에서는 이 작은 소녀가, 그냥 평범한 소녀가 아니라는 것을 이미 몸으로 뼈저리게 경험했다.
“저기 무슨 일?”
그녀가 다가오자 순간 찔끔하며 자신도 모르게 존댓말이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느라 뒤끝을 살짝 흐린다.
“무슨 일이긴. 약속을 잘 지키려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할 겸 해서 기다렸지. 뭐 볼일도 있고.”
사실 그날 다스는 이 악마와 계약을 해 버렸다. 순전 협박에 의한 강제 계약이었기에 그는 결코 빠져나갈 수 없는 계약의 도장을 찍고야 말았다.
“앞으로 내가 시킨 세 가지 일을 무조건 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는 마.”
모든 사건을 모른 척 눈감아 주는 조건, 관리본부장의 태도로 보아하니 눈감아 준 것은 확실한 듯하다.
“끄응.”
“걱정하지 마. 설마 내가 너한테 자살하라고 시키겠어?”
하는 행동을 봐서는 그보다 더 심한 것이라도 시킬 것 같으니깐 그러지.
“그냥 죽어 버리면 재미없잖아. 세상에 얼마나 재미있는 일이 많은데. 그리고 내가 얼마나 착해. 그냥 수십 가지 조건을 내걸 수도 있는데 딱 세 가지잖아. 딱 세 가지. 얼마나 쉬워.”
솔직히 말이 세 가지지, 어떤 조건을 거느냐에 따라 그 세 가지가 수십, 아니 수백 가지로 늘어날 수도 있다.
평생 나의 노예 혹은 몸종으로 살라고 하면 어쩔 것인가. 솔직히 죽으라는 것보다 더 무섭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반항을 할 수가 없다. 반항하다가는 여기 이 자리에서 맞아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