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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타나의 경비병 1(12화)
4장 제발 내 앞에서 사라져라(2)
“그건 그렇고. 내놔.”
빨리 세실리아가 자신의 곁을 떠나길 고대하던 다스는 갑작스럽게 내밀어진 그녀의 작은 손에 의아해한다.
“응?”
오른손을 내밀고 있는 세실리아는 생글생글 웃는다.
“빨리 내놔.”
“뭘?”
세실리아의 눈이 그의 얼굴에서 서서히 내려가더니 골드가 한 가득 들어 있는 그의 품속으로 향한다. 그제야 다스는 그녀의 속셈을 눈치채고는 인상을 팍 쓴다.
“너 저기서 돈 받은 거 다 알아. 그러니 어서 내놔.”
날강도도 이런 날강도가 있을까? 하지만 다스는 무슨 소리냐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무슨 돈? 돈 같은 거 받은 적 없는데.”
헛소리하지 말라는 듯한 다스의 얼굴을 보며 세실리아는 여전히 웃음을 잃지 않고 작은 목소리로 슬그머니 한마디 던진다.
“죽을래?”
설마 돈 받고 합의한 것을 알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이 피 같은 돈을 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무슨 말인지 모…….”
“내가 보고 있는 거기 뒤져서 나오면 1쿠퍼당 한 대 맞는다.”
“…….”
순간 자신도 모르게 머리가 빠르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1쿠퍼당 한 대면 1실버가 100쿠퍼니 100대에다가 1골드가 100실버이니 10,000대. 그러니깐.’
“뭘 그렇게 계산해? 총 200골드니깐 딱 2백만 대만 맞으면 되는 거지.”
“2백만 대, 아하, 그렇……구나가 아니지. 어떻게?”
다스는 정확히 금액을 알고 있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깜짝 놀란다.
“뭘 그렇게 놀래? 내가 너의 거짓 증언에 손을 들어주고 그 정도 지급하라고 했으니깐 그렇게 쉽게 돈이 지급된 거지. 그럼 저기서 너 같은 경비 말만 듣고 그 정도 돈을 쉽게 주겠어? 아마 사건 조사 핑계로 시간 질질 끌다가 소액만 던져 주고 끝냈겠지. 내가 증인으로 나서니깐 부랴부랴 돈을 지급한 거 아니겠어?”
그의 증언만 대충 듣는 것부터 시작해 미리 준비된 합의서까지, 어쩐지 너무 일이 쉽게 잘 풀린다 했다. 도대체 이 꼬맹이의 정체가 뭐기에 기사단 내에서 이런 파워를 발휘한단 말인가.
“내 덕분에 그 돈 받은 것이니깐 정확히 150골드만 내놔.”
“헉! 150골드. 이런 날강…….”
“날강 뭐?”
그녀가 눈을 가늘게 뜨며 슬그머니 주먹을 쥐자 다스는 울분을 삼킨다. 품에서 돈주머니를 꺼내어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150골드를 넘기자 세실리아는 잽싸게 그것을 가로챘다.
“부자면서 굳이 이 가난한 사람 돈을 강…… 가져갈 필요가.”
다스는 처음엔 강탈이라고 하려다 얼른 단어를 바꾸었다. 반면 세실리아는 룰루랄라 신나는 표정으로 돈을 세어 보더니 별것 아니라는 듯 이유를 말해 주었다.
“응. 원래 그 아저씨가 50골드만 줄려고 했는데, 내가 거기서 협박을 좀 넣었거든, 그래서 200골드나 준 거야. 너 같으면 미쳤다고 200골드나 주겠냐? 그러니 150골드는 내 꺼지. 안 그래? 덕분에 용돈 좀 챙겼다. 그럼 먼저 간다.”
솔직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는 솔직히 20골드 정도 생각하고 있었다. 세실리아의 정체가 무엇인지 몰라도 아마 엄청난 압력을 가했을 것이 틀림이 없다. 하지만 아까운 건 어쩔 수 없다.
게다가 대체 어느 동네 아가씨이기에 150골드라는 꿈만 같은 거금에 용돈이라는 개 같은 단어를 붙인단 말인가. 다스는 순간 입에서 욕이 튀어나올 뻔한 것을 억지로 참았다.
한마디 잘못했다가는 있는 50골드마저도 빼앗길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50골드라는 마지막 소박한 꿈마저 산산이 부서진다.
“아! 그리고 너 때문에 다친 부하에게 45골드를 잊지 말고 지급하도록 해. 넌 나쁜 놈에다 비겁한 놈이지만 특별히 5골드는 가져가. 나중에 내가 확인해 보고 1쿠퍼라도 삥땅쳤으면 나한테 맞는다.”
결국 한스가 아닌 자신이 5골드를 가지게 되는 셈이다. 욕이 안 나올 수가 없다.
그렇게 자기 할 말만 남기고 피 같은 그의 돈을 가지고 미련 없이 떠나는 세실리아. 그의 입술이 부들부들 떨리더니 그녀의 모습이 살짝 흐려지려는 찰나 분노의 가운뎃손가락을 날렸다.
“이 꼬맹아, 가서 엄마 젖이나 더 빨고 와라. 그리고 이거나 처먹어라.”
획!
갑자기 고개를 획 돌리는 그녀. 설마 그의 말을 들었던 것일까? 순간 다스는 죄지은 이마냥 움찔하며 들고 있던 손가락을 얼른 접고는 태양 빛으로부터 얼굴을 가리는 시늉을 한다.
“날씨가 참.”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으로 봐서 다행히도 정확히 들은 것 같지는 않았다.
150골드 강탈 사건이라고 이름 붙인 그날 이후, 당분간은 시련이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의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가며 시련이라는 종자는 그의 옆에 떡하니 자리 잡고 앉아 좌판까지 깐다. 그것도 일과 중 가장 중요한 타임인 부수입 근무 타임에 말이다.
“자자, 오늘도 수고하시네.”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이러시면 안 됩니다.”
“어허. 갑자기 왜 그러는가.”
“야! 한스, 뭐해? 통행증 일일이 대조하고 거기 있는 물품 모조리 조사해.”
다스의 명령을 받은 한스는 용병은 물론 상인들 개개인의 통행증 진위 여부부터 시작해 모든 물품들을 검사하기 시작한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행렬을 이끌고 있는 상인 한 명이 매우 당황해한다. 이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이보게. 우리 사이가 이 정도는 아니지 않은가.”
상당히 물품도 많고 사람도 많은지라 둘이서 이렇게 조사를 실시하면 시간이 제법 걸린다. 이렇게 되면 북문까지 돌아 온 이유가 없었다.
상인이 다스의 팔을 슬쩍 잡아끌자 다스는 그것을 냉정하게 뿌리쳤다.
“아니 우리가 무슨 사랑하는 사이라도 된단 말입니까? 더 이상 방해하면 공무집행방해로 보겠습니다.”
급기야 공무집행방해라는 말까지 들먹이자 상인은 인상을 찌푸리며 할 수 없다는 듯이 뒤로 물러선다.
“자네 정말 이러긴가?”
“더 이상 방해하지 마십시오. 저는 경비병으로서 저의 소행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작은 실랑이 끝에 물품들과 통행증들의 일일이 대조가 끝나고 한참 뒤에나 상인 행렬은 통과를 할 수 있었다. 물론 상인은 갑자기 까다롭게 구는 그를 못마땅한 눈빛으로 노려보며 지나쳤음을 당연했다.
‘내가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아시오?’
다스는 그런 상인의 눈빛을 애써 무시한다.
‘너 도대체 뭔데. 왜 자꾸 날 방해하는 건데.’
한스는 저기압으로 인상을 푹푹 쓰는 다스를 건들까 싶어 조마조마하며 조심스럽게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그러고는 슬쩍 눈을 돌려 성문 안 한쪽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이쪽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작은 소녀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누구지?’
며칠 전부터 갑자기 찾아와 생글거리는 예쁜 얼굴로 다스를 친근하게 대하는 그녀, 하지만 다스는 별로 달갑지 않은 표정이었다. 그녀를 볼 때마다 항상 똥 씹은 표정을 하고 있었기에 한스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항상 다스가 근무하는 시간마다 찾아와 떡하니 저 나무 그늘 아래 자리를 잡고는 이곳을 바라보고 있다. 설마 저렇게 예쁜 소녀가 다스의 애인일까? 라고 생각도 해 보지만 다스의 행동을 보면 그런 것 같지도 않았다.
둘 사이는 정말 묘했다.
지금도 보라, 다스가 인상을 푹푹 쓰며 저 소녀에게로 다가가고 있지 않은가.
“아! 더 이상 못 참겠다. 너 할 일 그렇게 없냐?”
다스는 눈앞의 소녀인 세실리아와 두 번째 만나 약간의 안마를 받은 이후 그녀에게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세실리아를 도무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몸으로 직접 체득을 한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던지 그녀에게 처음으로 고함을 쳤다.
“나 할 일 많은데.”
하지만 그녀는 그의 고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싸 온 도시락까지 우물거리며 그를 올려다본다.
“그럼 가서 할 일 해. 도대체 여기서 뭐하는 건데?”
“응. 지금은 방학에다가 휴식 시간이야. 나도 휴식 시간에는 좀 쉬어야지.”
다스는 황당한 표정을 짓는다. 그가 근무 서는 시간이 대략 8시간이 넘는데 그가 출근하고 퇴근할 때까지 자리를 거의 비우지 않는다. 8시간 동안 휴식을 취한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소린가?
게다가 방학이란다. 방학이라면 학생이라는 말이다. 많이 봐줘 봐야 고삐리, 적당히 봐주면 중삐리인데, 이런 아이한테 맞았다고 생각하니 혈압이 치밀어 오른다.
예전 같았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곳은 꿈과 환상이 현실이 되는 유라시안 대륙이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다스는 세실리아가 어떤 학교를 다니는지 모르지만 도대체 학생들의 방학을 왜 이렇게 길게 지정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회인도 휴가는 아주 길어 봐야 10일 이내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할 학생들은 앞뒤, 공휴일 끼어서 딱 삼 일만 방학을 주면 되는 거다. 평소에도 공휴일에 많이 쉬는데 공부하는 학생들이 방학이 무슨 필요가 있나.
학교에서 그렇게 느슨하게 하니 이런 교육이 덜 된 학생들이 밖으로 나와서 다스 같은 선량한 시민들을 괴롭히는 거 아니겠는가. 물론 자신이 학생이라는 전제하에 방학을 줄인다고 했으면 개거품 물고 학생의 쉴 권한을 뺏는다고 드러누웠을 것이라 조심스럽게 짐작해 본다.
“응. 말이 충분히 된다고 생각하는데.”
왜 말이 안 되느냐는 듯한 표정, 도무지 말이 통하질 않는다. 저 생글거리는 표정이 어찌나 싫은지.
“넌 친구도 없냐? 쉬는 시간이니 친구들이랑 가서 놀아.”
친구라는 단어에 순간 세실리아의 안색이 조금 어두워지는 것이 보이지만 금방 사라져 다스는 보지 못했다.
“네가 있잖아. 네가 친구 해 주면 되겠네.”
당연히 다스는 질겁을 한다.
“내가 미쳤냐? 너랑 친구 하게. 그리고 이 나이에 너랑 친구 먹으리?”
“그래도 너랑 있음 재미있는걸.”
다스는 진짜 짜증이 났다.
다른 짜증이 아니라 세실리아 때문에 함부로 부업을 할 수가 없다는 거다. 왜 남의 부업까지 방해를 한단 말인가. 그냥 무시하며 대놓고 돈을 받아먹기엔 중앙기사단에서 엄청난 입김을 보여 준 그녀가 아무래도 부담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까 보니깐 상인들이 너한테 또 뇌물 주려는 것 같던데. 상인들이 너 볼 때마다 뇌물을 주려고 하네. 아주 상습적으로 받아먹나 본데?”
저 귀여운 얼굴에서 뇌물이라는 저질스러운 말이 튀어나온다. 뇌물이라니, 어떻게 뇌물이라는 저질스러운 단어를 입에 올릴 수 있단 말인가.
다스는 결코 뇌물이라는 명목으로 금품을 받은 적이 없다. 상인들이 지금까지 지불한 것은 빠른 통행을 위한 통행료이자 작은 성의일 뿐이다. 다스는 언제나 당당하고 확고한 입장이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과 내뱉는 말이 같을 수는 없는 법이다.
“무……슨 소리야. 상인들이 좀 더 빨리 여기를 통과하려고 뇌물을 주려는 경우가 있지만 너도 보다시피 난 항상 거절을 하고 원리원칙에 맞게 근무를 서고 있어.”
원리원칙을 지키며 근무를 서고 있긴 했다. 그 원리원칙의 기준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이 조금 문제이지만.
“호홍? 그래?”
세실리아가 지그시 그를 바라본다.
“그런데 너 그거 알아?”
“뭐…… 뭘?”
다스는 이 대책 없는 꼬맹이가 또 무슨 말을 하려는지 불안한 눈길로 바라본다.
“넌 나한테 거짓말할 때마다 눈빛이 심하게 흔들린다는 거.”
“무슨 소리야. 누가 거짓말을 했다고. 에이씨.”
소리를 빽 지른 다스는 더 이상 눈빛을 보여 주지 않기 위해 몸을 돌려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호호. 아니면 말구. 여기 와서 좀 먹고 가지? 오늘 맛있는 거 싸 왔는데.”
“너나 실컷 드셔.”
“맛있는데.”
세실리아는 매우 화가 났다는 것을 걸어가는 폼으로 보여 주는 다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얼굴에 즐거운 미소를 그린다.
‘저 망할 학교는 저런 학생 노무 쉐이들을 언제까지 방임하는 거야? 도대체 방학이 언제까지야?’
제발 빨리 방학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가라고 외치고 싶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 악연이 당분간은 쉽게 끊어질 것 같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