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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타나의 경비병 1(13화)
4장 제발 내 앞에서 사라져라(3)


화려한 금발에 늘씬한 키, 누구나 한 번쯤 돌아보게 만드는 청순하면서도 매력적인 외모, 평소 즐겨 입는 수수한 옷마저도 그녀의 미모에 더해져 어떠한 비싼 명품 의류보다도 화사해 보인다.
옷이 날개라는 말이 있지만 그딴 날개는 다 필요 없다. 만족할 만한 외모가 있다면 헐렁거리는 추리닝을 입고 있어도 어울리는 법이다. 이에 외모지상주의다 뭐다 말이 많겠지만 자고로 남자라는 동물치고 예쁘고 청순한 여자 싫어 할 남자는 단 한 명도 없다.
외모지상주의는 당연히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리임과 동시에 인간이 가진 초월적인 판타지인 것이다. 어차피 우리는 삼단 변신 인조인간도 예쁘기만 하면 좋아하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지 아니한가.
“세실리아가 어디 갔지?”
남자들이 가진 외모 판타지의 전형적인 모델인 이리아, 천재적인 마법 소질로 인해 현재 마법사의 길을 걷고 있는 이리아는 아직까지 싱글이다. 싱글, 이것이 가장 중요한 대목이다.
좋은 집안에 화사한 외모, 그리고 타고난 능력까지 전형적인 이 엄친딸로 그녀를 접한 귀족 자제들 중 어떻게든 그녀의 마음에 들기 위해 온갖 쇼를 하는 인간들이 수 대 분의 마차를 꽉 채우고도 모자라다.
현재는 24살로 사회적 결혼 적령기를 1년 넘긴 그녀였지만 여전히 수 곳에서 러브콜이 쏟아지고 있을 정도로 인기녀이다. 다만 아직 마음에 드는 남자가 없는지, 아니면 다른 생각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마법사라는 핑계로 모두 거절한 상황이다.
귀족들은 대부분 결혼적령기가 지나기 전에 어떻게든 결혼을 성사시키는 게 관례지만 마법사들은 결혼을 늦게 해야 한다는 속설이 있어 그녀는 그 핑계로 계속 결혼을 미루고 있었다.
아침마다 눈을 떴을 때 그런 이리아가 벌거벗은 몸으로 옆에 누워 있다고 상상을 해 보자. 어떤 복 받은 인간이 될지는 모르지만 그 인간은 분명 전생에 나라를 구한 구국영웅이 틀림이 없으리라.
“요 며칠간 수련하는 연무장에도 안 보이고.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어떤 인간이 채갈지는 알 수 없지만 아직은 아니니 기회가 있다는 것을 명심하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동생을 찾아다니는 마음씨도 착해 보이는 이리아에 주목을 하자.
“도대체 어디 간 거지?”
몇몇 고용 사설 기사들이 드넓은 연무장을 사용하고는 있었지만 항상 이 시간이면 자리를 지키고 훈련을 하는 세실리아의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도 보았지만 그들도 고개만 가로저을 뿐이다.
“이상하다.”
물론 늦은 저녁에는 집으로 돌아오는 듯했기에 문제가 생긴 것 같지는 않았다. 다만 집에 와서는 절대 혼자 있기를 싫어하는 동생이 왜 갑자기 혼자 돌아다니느냐다.
“그러고 보니 달시의 말로는 아침에 도시락까지 싸 들고 나간다고 들었는데. 혹시 친구가 생긴 건가? 그렇다면 잘된 일이긴 한데.”
갑작스럽게 어떻게 친구가 생겼을까 생각을 해 보지만 딱히 결론을 내릴 수는 없었다.
일단 동생이 집 안에는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 더 이상 찾아 나서지는 않았다. 아무리 강해도 동생은 동생이다. 걱정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나 어디를 간 것인지 알 수가 없으니, 일단 저녁에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 * *

“충성, 수고하십니다.”
“어이, 그래. 왔냐?”
1조인 주간조는 최고 고참이자 직업군인인 다스의 고정 조로 굳어진 지 오래고 2조인 저녁조와 3조인 야간조는 간간이 로테이션이 있다. 아무리 의무복역병 고참을 주로 야간조로 돌린다고는 하지만 2년 내내 야간만 세울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이미 굳어진 다스의 주간조는 어떻게 건들 수가 없었는지라 현재는 저녁조와 야간조만 교대로 돌아간다.
어차피 최고 고참인 다스이기도 했지만 그가 간간이 위로주로 술도 한잔씩 거하게 사 주었기에 별 불만을 가지는 이는 없었다.
“별다른 인계사항은 없다. 그럼 수고하고. 난 간다.”
“네. 충성. 퇴근하십시오.”
“그랴. 수고해. 한스, 가자.”
다스는 교대근무자에게 손을 휘휘 저어 보이며 휘적휘적 걸어갔다. 한스는 고참인 교대근무자들에게 기합 든 경례를 하며 그의 뒤를 따른다.
물론 이것이 평소의 퇴근 모습이다. 그런데 요 며칠간 좀 다른 풍경이 생겼다.
“야! 끝났어? 그럼 저녁 먹으러 가자.”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있던 세실리아가 어느 사이엔가 작은 도시락 가방을 챙기고는 그들의 뒤를 졸졸 따르고 있었다.
오리 새끼마냥 졸졸 따라다니는 세실리아를 애써 무시한 다스는 경비대로 들어가 철수 신고를 한 뒤 경비대장실을 나왔다. 물론 세실리아는 굳이 병영 안까지 쫓아 들어오지는 않은 채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상태다.
“저기 조장님.”
“응?”
의무복역이라 휴일을 제외하고는 병영에서 나갈 수 없는 한스와는 달리 다스는 이제 퇴근해서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시간이다. 일단 병영을 나가려는 그를 한스가 불러 세운다.
“저희 어머니께서 고맙다고 하시며 다음 주말에 집에 와서 저녁이라도 한 끼 대접한다고 하십니다. 다음 주말에 시간이 있으십니까?”
한스는 요즘 저기압인 그의 비위에 거슬리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크흠. 저녁 말이냐?”
“네. 저희 어머니가 부근에서는 음식 솜씨 하나는 알아주십니다. 조장님 입맛에 맞으실 겁니다.”
기사들로부터 크게 다칠 뻔한 한스를 구해 주고 45골드나 되는 거금의 사례금까지 받아 주었으니 한스의 어머니가 고마워할 만도 했다.
그때 칼로 자신을 벤 것도 그 기사 놈들로부터 구해 주기 위해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 다스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기에 그에 대한 반감은 전혀 없었다. 그로 인해 45골드나 되는 거금을 손에 쥐지 않았던가.
물론 다스는 협박에 어쩔 수 없이 45골드를 줄 수밖에 없었던지라 여전히 속이 쓰라렸다.
“그래. 알겠다. 다음 주말 점심때쯤에나 가도록 하자.”
“알겠습니다.”
“너희 집이 5섹터 12구역의 103번지 2호수였지?”
계획도시인 몬타나 시티는 섹터 구역과 번지, 호수만 알면 집을 찾는 것은 매우 쉬웠다.
“네. 제가 주말에 모시러 올 테니.”
“아니. 굳이 날 데리러 올 필요는 없어. 너희 집 찾는 건 쉬우니깐. 그냥 집에 있어.”
“그래도.”
“됐다. 주말에까지 그럴 필요는 없다. 내가 찾아갈 테니. 기다리고 있어라.”
주말은 자기 시간이다. 평소에도 갈구면서 주말에까지 그 여파를 이어 나가면 심신이 허약한 자는 자살 기도로까지 이어 갈 수가 있기에 하루 정도는 족쇄를 완전히 풀어 줄 필요가 있다. 다년의 경험으로 배운 쫄따구 관리법이 있는 거다.
“네, 알겠습니다.”
한스는 다스에게 경례를 하며 병영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간단히 약속을 한 채 한스를 보낸다. 그리고 떠나가 버린 45골드의 추억을 되새기며 경비대를 나온 후 여전히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세실리아의 모습에 뒷목을 잡는다.
“어? 이제 끝났어? 어서 가자. 나 배고파. 저녁 먹으러 가야지.”
“야! 너 뱃속에 거지가 들었냐? 어떻게 만날 밥 타령이야?”
“배고픈 걸 배고프다고 하지. 그럼 뭐라고 말해?”
“좋은 너희 집 있잖아. 부자인 너희 집 가서 먹지 왜 만날 가난한 나한테 빌붙어 먹는 건데. 사 주는 것도 아니면서.”
처음 근무지로 찾아온 그날부터 시작해 오늘까지, 매일같이 같이 퇴근을 하며 이 식충이에게 공짜로 밥을 먹여 온 다스는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나 돈 없으니깐 니가 사 주는 게 당연하잖아.”
150골드나 강탈해 간 인간이 돈이 없단다. 말이나 될 법한 소린가?
“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150골드 있잖아. 그걸로 사 먹으면 되잖아.”
“돈 집에 두고 왔어. 그러니 지금은 돈 없어.”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하는 세실리아를 보며 다스는 답답한지 가슴을 팍팍 친다. 그래 뭐 솔직히 돈을 두고 왔으니 돈이 없다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이 부잣집 딸내미가 가난한 경비병의 피를 쪽쪽 빨아 먹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 가져오면 될 거 아니야.”
“안 돼. 세상이 워낙 험해서 나 같은 여린 소녀가 그런 돈을 가지고 다니면 위험해.”
도대체 누가 누굴 여리다고 말하는 것인가? 수십 명의 용병들을 칼집으로 두들겨 패던 괴물이 스스로 여리다고 말하다니, 그게 말이나 될 법한 소리인가?
다스는 다시 뒷목을 부여잡으며 뭐라 말도 못하고 입만 벙긋거린다.
“그리고 밥값 같은 건 남자가 내는 게 당연한 거 아냐? 어떻게 여린 소녀보고 밥값을 내라고 할 수 있는 거지? 그리고 난 아직 성인도 아냐. 원래 한 살이라도 더 많은 어른이 밥을 사 주는 거 아냐?”
여기 남자 등골이나 빼먹는 사회의 악의 축인 나쁜 년 한 명 추가한다. 데이트할 때 돈 한 푼도 안 쓰고 남자에게 당연하다는 듯이 부담을 시키는 사회의 암적인 여자들, 왜 이렇게 대한민국과 닮은 점이 많단 말인가.
싹수가 훤히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다스는 개탄을 하며 신을 찾지만 존재한다는 빌어먹을 신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너 때문에 나간 밥값이 얼만 줄 알아?”
“그깟 밥값 정도로 어른이 되어 가지고, 아니 남자가 쫀쫀하게 굴 거야?”
최소 임금을 받고 일하는 처지에 유일한 희망이던 부수입 사업까지 말아 먹게 만든 장본인이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건 그의 생존권이 달린 문제나 다름이 없다. 투쟁이 필요했다.
“야! 내가 너처럼 부잣집 자식인 줄 아냐? 나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도 빠듯한 사람이야. 그러니 제발 이 가난하고 힘없는 서민 괜히 괴롭히지 말고 집에 가라. 그게 나를 돕고 세상을 돕는 길이다.”
그가 계속 강경하게 나오자 생글거리던 세실리아의 얼굴이 점차 굳어지기 시작한다.
“뭐 가난해? 한 달에 몇 번만 뇌물 받아 먹어도 월급은 훌쩍 넘길 것 같던데. 게다가 내 덕분에 돈도 쉽게 벌었는데, 많이도 아니고 거기서 조금 떼는 것도 아까워 사 주기 싫다는 거야?”
그녀의 표정에서 성문의 기억이 났는지 본능적으로 움찔한 다스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자신도 모르게 말끝을 흐린다.
“아니. 난 그저…….”
세실리아는 그렇게 슬금슬금 눈치를 보는 다스를 지그시 노려본다.
“세 가지 중 한 가지를 여기서 나한테 맞아 죽는 걸로 할까?”
다스는 만약을 위해 언제라도 도망갈 준비를 하듯 한 발자국 뒤로 내디디며 대답한다.
“그……건 아니지.”
“그럼 밥 사 줄 거지?”
“그럼 그걸 세 가지 중 한 가지로 하면.”
“죽을래?”
“아니.”
“그럼 가자.”
“끄응.”
결국 그는 고개를 푹 숙이며 다시 생글생글 웃으며 먼저 앞서 가는 세실리아 뒤를 따라간다. 어쩔 것인가. 이 더러운 깽판 사회에서 힘이 없으면 그냥 역깽판을 당하는 게 당연한 일상이다.
뭔 놈의 꼬맹이가 이렇게 센 것인가.
원래 이 반대 상황이어야 되는 거 아닌가? 강한 깽판자의 힘으로 소녀를 구해 주고 주인공의 어설픈 로맨스를 이어 가는 스토리로 말이다. 하지만 하늘은 다스에게 그런 행운을 애초부터 줄 생각이 없나 보다.
너희들이 지금까지 이계에 넘어와 더럽게 깽판 친 대죄를 네가 대신 받으라며 오히려 신토불이 깽판 소녀를 옆에 떡하니 붙여 놓는다.
하늘이 이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다. 다스는 정말 눈물이 글썽거리려는 것을 억지로 참는다.
‘나 정말 이렇게 살아야 되는 거야?’
이런 꼬맹이에게까지 생명의 위협을 느끼다니 정말 서러운 인생이다.
판타지 협회의 직접 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특별회원으로 등업이 된 이들 중에 어쩌면 다스가 가장 비참하게 살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아! 신이시여, 왜 저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제발. 이 무식하게 힘만 센 망할 꼬맹이에게서 저를 떼어 놔 주시옵소서.’
하지만 어쩔 것인가. 남들처럼 등업 기념 이벤트로 보너스 능력치를 얻지 못한 그로서는 기회가 올 때까지는 현실에 순응하며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에휴.’
한숨 쉬는 것밖에 할 수 없는 그는 이 현실 속의 무늬만 이계인인 아무런 힘 없는 일개 경비병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