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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타나의 경비병 1(14화)
4장 제발 내 앞에서 사라져라(4)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세실리아는 정말 맛있게 먹는다. 보고 있는 이마저도 입맛이 돌게 만들 정도로 정말 맛있게 먹어 댄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엄청나게 먹어 댄다는 이야기다.
저 작은 몸뚱이에 어떻게 저렇게 많은 음식이 들어가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다.
“맛있냐?”
“응.”
음식을 깨작거리던 다스가 살짝 물어보자 세실리아는 먹던 것을 잠시 멈추고 방긋 웃어 보인다. 이럴 때만은 정말 또래의 소녀 같다.
“근데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야.”
“응. 물어봐.”
“너 원래 그렇게 많이 먹냐?”
이 작은 체구의 소녀가 일반적인 성인 남자가 먹는 양의 2배가량을 먹어 치우는 것을 보고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가 없다.
“너 바보야? 원래 클 나이에는 많이 먹어야 하는 거 몰라?”
다스는 슬그머니 세실리아가 눈치채지 않게 그녀의 가슴으로 시선을 옮긴다.
‘그래 크긴 더 커야겠다. 넌 네 언니 따라가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 그런데 문제는 네가 처먹는 게 전부 내 피 같은 돈이란 게 중요한 거지.’
“너 그러다가 돼지 된다.”
저 몸에 살집이 디룩디룩 불어난 모습을 상상하자 웃음이 나온다. 물론 그녀가 눈치채지 않게 조심스럽게 웃었다.
“걱정할 필요 없어. 난 그만큼 에너지를 소비하니깐. 이렇게 먹어도 살 안 쪄. 그리고 이렇게 보여도.”
먹다 말고 일어선 세실리아는 자신의 몸매를 과시라도 하듯 슬쩍 S라인 포즈를 취해 본다.
“매일매일 수련으로 다져진 몸이라 몸매에는 자신이 있거든. 호호호.”
나름 자신이 있어 하는 눈치다. 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다스의 눈빛은 영 아니올시다이다.
‘에휴. 꼬맹아, 넌 몸매라는 단어를 쓰기에는 아직 5년은 이르단다. 엄마 젖이나 더 먹고 와라.’
그런 다스의 눈빛을 읽기라도 한 것일까? 포즈를 취하고 있던 세실리아의 눈빛이 번뜩인다.
“뭐야? 너 눈빛이 묘하다. 지금 내 말을 못 믿겠다는 거야?”
다스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음식으로 고개를 떨어뜨린다. 그에 세실리아는 여자로서 무시당했다는 생각이 들자 화가 나기 시작했다.
“야. 너 내가 몸매가 드러나는 타이트한 옷을 입고 사교계에 나서면 얼마나 난리가 나는지 몰라서 그러는 거야?”
‘그걸 내가 어찌 아냐?’
“이 몸이 나섰다 하면 그 인기는 말로 표현을 할 수가 없다는 걸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거야?”
‘아씨.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구. 그리고 너 같은 꼬맹이에게 무슨 몸매냐. 더러운 변태 같은 놈들이나 너를 보고 침을 질질 흘리겠지.’
다스는 계속해서 세실리아를 무시한다. 하지만 세실리아는 계속 자신을 입증하려는 듯 그에게 자신을 인증하라고 압박을 보냈다. 꼭 인증을 받아야겠다는 기세다.
더 이상 봐 주기 힘들었던 다스는 급기야 고개를 번쩍 들더니 오랜만에 한마디 강하게 날린다.
“그렇게 자신이 있으면 내 앞에서 벗어 보시던가. 그럼 내가 진짠지 아닌지 확인을 해 줄 테니.”
순간 세실리아의 얼굴이 확 붉어지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흠흠. 그건 안 되지. 나의 몸은 내가 결혼할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보여 줄 소중한 것이라구. 그러니 너 같은 자에게 함부로 보여 줄 수는 없지.”
다스는 그녀의 말에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러시든지.”
세실리아는 자신에 대해 여자로서 매력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그에게 더욱 화가 치밀어 오르긴 했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그것을 표현할 수는 없었다.
“그건 그렇고. 한 가지만 더 물어보자.”
“뭘?”
세실리아는 지금 화가 나 있다는 표현을 우회적으로 표시하며 퉁명스럽게 대답을 한다.
“너 이런 집 도대체 몇 군데나 알고 있냐?”
그녀에게 저녁 값을 처음 강탈당하던 그날부터 시작해 그녀에게 이끌려 음식점 이곳, 저곳을 전전했다. 대충 아무 곳이나 가는 그와는 다르게 어떻게 알았는지 도시 곳곳에 숨어 있는 음식점들을 찾아다녔다.
“음. 여기 빼고 대강 50곳 정도? 여기 섹터 내에도 상당히 맛있다고 소문나고 상당히 싼 집이 많은 편이거든.”
“너 설마 그 50곳을 전부 다 나 끌고 다닐 생각은 아니겠지?”
“응. 나 언니랑 가 본 곳 몇 군데 빼고는 가 본 적이 없거든. 다 먹어 보고 싶어. 뭐 문제 있어?”
당연한 것을 왜 물어보냐는 듯한 저 얼굴에 먹고 있는 고기 수프를 그냥 냅다 던져 버리고 싶은 걸 억지로 참았다.
‘이 빌어먹을 웬수 같은 것아, 도대체 나랑 전생에 무슨 원한이 있다고 이렇게 괴롭히는 거냐? 있는 집안 자식이 도대체 뭐가 아쉬워서 나한테 빌붙는 건데.’
중요한 사실은 50군데를 알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50군데를 돌 동안 깨질 밥값이다. 이번 수입인 5골드에 비하면 껌 값에 지나지 않긴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남의 돈이 아닌 자신의 돈이라는 거다.
이거 보아하니 덕분에 5골드를 쉽게 벌었으니 일정 수준의 보상을 하라는 심보 같다. 다스가 가장 싫어하는 심보 중 하나다.
‘니기미 50군데를 다 기억하는 것도 신기하다.’
“나 덕분에 맛있는 거 실컷 먹고 좋지?”
‘좋기도 하것다. 니 친구들이랑 가지 왜 나를 끌고 다니는가 말이다.’
넌 친구도 없냐? 라는 말을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한다. 그 말을 뱉었다가는 오늘 여기서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본능적인 경고음이 들려왔다.
“호호. 그냥 넌 내가 안내하는 곳으로 가서 음식을 즐기면 되는 거야. 즐겁게 말이야.”
‘즐겁기는 개뿔, 너는 즐기고 나는 돈 내는 거겠지. 내가 물주냐?’
50군데라는 말에 차마 말은 못하겠고 입만 삐죽 나온 다스는 본전이라도 뽑으려는 듯 눈앞에 있는 음식을 마구잡이로 입에 쑤셔 넣는다.
‘내 팔자야. 도대체 왜 그날 거기 가서 이런 꼬맹이를 만나 이 고생을 하냐구.’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은 이미 순번 50번까지의 번호표를 들고 바로 코앞에서 대기하고 있었기에 팔자타령 아무리 해 봐야 소용이 없다.
여전히 티격태격거리는 세실리아와 다스, 그런 그들의 모습을 한쪽 구석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는 남자가 있었으니, 얼핏 보면 평범한 손님 같으나 자세히 살펴보면 저 둘을 은밀히 살펴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식당 구석에서 한참을 지켜보던 그 남자는 더 이상 있을 이유가 없다는 듯 조심스럽게 일어난다. 그리고 곧바로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는 과연 누구일까? 잠시 남자의 행적을 쫓아가 보자.
그곳을 벗어난 남자가 도착한 곳은 몬타나 시티의 최고급 호텔이었다. 일반적인 고급 여관 및 대도시에만 있다는 호텔들과도 비교도 안 되는 이곳은 몬타나 시티는 물론이고 대륙에서도 알아주는 호텔로 모든 손님들이 부호 및 귀족일 만큼 호화롭고 비싼 곳이다.
이렇게 평범한 남자가 이런 호텔에 올 이유가 있을까?
입구에서 철저한 신분 확인 절차를 거친 남자가 도착한 곳은 호텔 내에서도 가장 비싼 최고급 룸 중에 하나다. 문 앞에 선 남자는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린다.
“찰스입니다.”
“그래 들어와.”
안에서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찰스라 불린 남자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간다.
역시 최고급 호텔의 가장 비싼 룸다움일까? 황궁 저리 가라 할 정도로 호화로움이다. 그런 호화로운 룸 가운데 한 남자가 다리를 꼬고 의자에 앉아 와인을 즐기고 있다.
짙은 갈색 눈동자에 갈색 빛 머리칼, 우수에 찬 눈빛이 매력적인 남자의 외모도 어딜 가도 주목받을 정도로 상당했다. 굳이 표현을 하자면 미청년 정도라고 할까?
“워조르 님. 다녀왔습니다.”
“그래, 어떤 놈인지 확인을 해 봤나?”
찰스는 공손하게 허리를 숙인다.
“아무리 조사를 해 봐도 그냥 일개 경비병일 뿐입니다. 수년간 오로지 경비 일만을 해 온 하층민 쓰레기일 뿐입니다.”
그에 워조르는 와인 잔을 가만히 든 채 생각에 빠진다.
“이상하단 말이야. 그 깐깐하고 눈 높기로 소문난 아가씨가 왜 그런 경비병 놈을 매일 만나고 다니는 거지?”
“저도 그게 의문입니다. 하지만 있는 정보망을 다 동원해 봐도 아무런 연관 관계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정말 미스터리한 일이군.”
하층민 쓰레기이자 경비병이라면 분명 다스를 지칭하는 것일 테고 지금 다스를 매일 만나고 있는 아가씨라 하면 세실리아를 말하는 것일 터, 이들이 왜 둘을 조사하고 다니는 것일까?
“내가 그런 놈과 비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이거 상당히 자존심이 상하는데.”
와인 잔을 내려놓은 워조르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향한다.
“어떻게 처리할까요? 은밀히 압력을 넣어서 알아서 떨어져 나가도록 협박을 하거나 혹은 돈으로 매수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됩니다.”
나름 정취를 즐기는 듯 창가에 서서 밖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워조르, 역시 생긴 것들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듯 그 모습이 어찌 그렇게 멋지게 보일까? 여자들이 잘생기고 꽃미남 같은 남자들을 보면 환장을 하는 이유가 다 있나 보다.
뭐 남자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음, 이놈이 그동안 내가 공들여 작업해 온 일을 망치게 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그 깐깐한 아가씨가 진짜 좋아서 만난다고 생각하기도 힘들고, 참으로 어렵도다.”
“혹시 모르니 우선 돈으로 매수한 뒤, 안 되면 압력과 협박을 넣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찰스, 그는 정말 탁월한 조언을 워조르에 해 준다. 거금으로 다스를 매수하려 한다면 그가 과연 어떻게 행동할까?
날 어떻게 보는 것이냐. 그런 썩어 빠진 돈 따위는 집어 치우라며 돈을 집어 던질까?
다스가 그런 행동을 하다니, 이거 어쩐지 좀 웃기다.
그는 필시 얼씨구나 이게 웬 재수냐 하면서 혹시나 도로 가져갈까 날름 그 돈을 집어 삼키는 모습이 상상된다. 아마 각서까지 써 줄지도 모른다.
거금을 준다면 워조르의 딸랑이가 되어 그의 계획에 동참해 줄 가능성도 없지 않아 있다. 물론 가능성이지만 어찌 그 가능성이 조금 높아 보인다.
“아니야. 내가 그런 하층민 쓰레기한테 그런 조잡한 술수를 쓸 이유는 없지.”
하지만 아쉽게도 자기 멋에 사는 워조르는 그런 찰스의 충심 어린 조언을 무시한다.
“일단 부모들은 다 구워삶아 놓았으니 어떻게 될지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도록 하지.”
워조르의 선택, 그가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일까? 아니면 다스가 예기치 않은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일까?
참 애매한 상황이긴 하지만 분명한 것은 다스의 눈앞에까지 왔던 거금이 순식간에 휙 날아가 버렸다는 것이다. 아마 그는 영원히 모를 것이겠지만.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든 다스가 그토록 원하는 거금을 만질 기회가 왔다. 하지만 워조르의 잘못된 선택 하나에 그냥 날아가 버린다. 만약 다스가 이것을 알았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결국 안 되는 놈은 죽어라 안 되는 모양이다.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5장 때론 마왕도 스쳐 지나가는 인연일 수 있다 Ⅰ(1)
우리가 생각하는 그 세상 속에는 마왕 혹은 그와 비슷한 부류의 조연들이 필히 등장한다.
그래 세상을 한 번 시원하게 휘저어 줄 악당 조연들이 없으면 주연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지만 어떻게 보면 진짜 불쌍한 인생들이기도 하다.
먹을 게 어디에 있다고 인간 세상에 괜히 내려와 그게 깽판자들이건 혹은 신토불이 영웅들이건 간에 그들에게 신나게 두들겨 맞고 사라지는 불행한 영혼들이다.
그런데 그런 마왕 혹은 악마라는 존재들이 세상을 침공하는 것도 조금 의문이 든다. 과연 그들이 인간 세상을 파멸시켜 얻을 만한 이득이 있을까?
파괴 본능이라는 웃기지도 않는 말은 설득 가치가 없어 보인다. 인간보다 뛰어난 지적 생명체가 그딴 본능 하나에 몸을 맡긴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뭐 그래도 계속 그런 일이 벌어지니, 마왕들의 행동에 많은 의문이 생기기는 하지만 피치 못할 이유가 있겠지. 그것은 마왕 혹은 그에 버금가는 존재들의 개인적인 사정이지 더 이상은 우리 알 바가 아니다.
그놈들은 그냥 시나리오대로 강림해 주시고 조금 휘저어 주다가 신나게 두들겨 맞아 주시는 역할에만 충실하면 되는 것이다.
어두운 밀실, 수십 명의 어둠의 자식들이 검은 물결을 이루며 빽빽하게 그곳을 가득 채우고 있다. 안 그래도 더워서 숨이 막힐 지경이다.
땀을 연신 훔치면서도 전신에 검은 천을 빙빙 두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떤 면에서는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드디어 때가 도래했다.”
도대체 이런 어둠의 자식들의 옷 센스는 왜 항상 이런지 모르겠다. 어둠의 자식이라는 것을 티 내는 것도 아니고 전부 검은 로브에 얼굴까지 칭칭 가리고 음산한 말이나 내뱉고, 아무래도 이 음산한 음성은 일부러 그런 분위기를 내기 위해 그러는 것 같기도 하다.
“오오. 드디어 때가 온 것입니까?”
어둠의 자식들의 대장과 마찬가지로 부하들도 개성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현대는 개성시대인데 모두 똑같은 옷에 똑같은 음산한 목소리까지, 아무리 어둠의 자식들이라고는 하지만 굳이 이렇게 개성 없이 살 이유가 있을까?
검은 천 쪼가리가 유니폼이라고 하더라도 조금 더 개성 있게 입을 수는 없을까? 예를 들자면 여자들의 유니폼을 새끈한 검은 비키니로 지정하는 거 말이다. 이 얼마나 좋은 현상인가.
물론 남자 따위야 천을 칭칭 감든 검은 철갑을 두르든 그냥 관심 끄자. 우리 남자들은 그냥 간간이 여자로 보이는 어둠의 자식들만 신경 쓰면 된다.
“그분의 육신이 봉인된 결정체들이 파악되었다.”
굳이 누가 보고 있는 것도 아닌데, 아니 설령 누가 보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런 놈들이 단체로 있으면 백 퍼센트 사이비 집단이라고 의심받지 않을까? 딱 보기만 해도 나쁜 놈이라는 오라가 그냥 풍기는데.
획일적이고 주입식 교육만 받아 온 어둠의 자식들 후세들의 커다란 병폐다. 이러니 나쁜 놈들은 꼭 하는 짓마다 똑같으며 창의성이 없다고 욕먹는 것이다.
“그렇다. 드디어 우리의 숙원을 풀 때가 왔도다.”
상황이야 어찌 되었든 대장은 앞의 제단에 있는 빼곡히 마법진이 새겨진 8자 모양의 성인 팔뚝 정도 크기의 괴상한 물체를 손으로 조심스럽게 쓰다듬는다. 그런데 이 괴상한 물체, 자세히 보니 그냥 오뚝이 같기도 하다.
일례로 대장이 건드리니 살짝살짝 앞뒤로 움직이며 까딱거리기까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