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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타나의 경비병 1(15화)
5장 때론 마왕도 스쳐 지나가는 인연일 수 있다 Ⅰ(2)


“마왕 테라핌 님이시여. 드디어 봉인 마구에서 깨어나 저희들을 이끌고 세상을 파멸시킬 때가 왔나이다.”
그가 이렇게 외치자 갑자기 그 검은 오뚝이가 이번엔 스스로 혼자 까딱거리며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그러자 주변 어둠의 자식들은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검은 오뚝이를 향해 경배를 한다.
“이제 때가 왔다. 수백 년 동안 어둠 속에서 괄시를 받아 온 우리 테라핌 결사단은 다시 양지로 나가 세상을 파멸시킬 것이다.”
마왕을 부활시키려는 악당들은 대부분 이런 행동을 하고 비슷한 말을 한다. 그런데 참 희한한 것은 어느 이야기 속에서도 정말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런 놈들을 처음부터 쫓는 이들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놈들만 해도 그렇다.
테라핌 마왕을 신봉하는 테라핌 결사단.
과거 잠시 유행처럼 반짝이며 대륙에 테라핌 결사단이 나타났을 때가 있었다. 전문용어로 마왕 유행이라는 사회적 현상으로 간혹 한 시대에 유행하는 마왕과 그 마왕을 신봉하는 단체가 아주 가끔 나타난다.
알 수 없는 누군가에 의해 봉인된 테라핌 마왕을 부활시키려 했던 테라핌 결사단, 결과는 지금 보시다시피다. 그들은 봉인도 풀기 전에 신나게 두들겨 맞고 뿔뿔이 흩어진다.
그리고 지금, 테라핌 결사단은 수백 년이 흐른 과거의 유물로 현재에 이르러 아무도 신경조차 쓰는 사람이 없다. 관심을 가져 줄 사람도 관심을 가져 주는 이도 없는데 괄시를 받았으니, 양지로 나가지 못하느니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하는 걸 보니 안쓰럽기까지 하다.
과연 지금 테라핌 결사단이, 아니 마왕 테라핌이 누군지 아는 사람이 있을까? 눈곱만큼이라도 신경 쓰는 이가 있을는지 모르겠다.
“그분의 정신이 우리를 인도하고 있다. 세상의 파멸을 가져오기 위한 시작점인 바로 그곳.”
세상을 파멸시키고 난 뒤에는 뭘 어쩌겠다는 건가? 남은 자들 소수끼리 팅가팅가 하며 살겠다는 건가? 인간의 산업구조가 완전 무너진 소수의 사회 속에서 굶어 죽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이래서 악당들도 무작정적인 주입식 교육이 아닌, 이해력 위주의 참신한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악당들도 창의적인 발상을, 발상의 전환을 할 필요가 있다.
세상은 악당들의 진화도 요구하고 있고 그들도 변해야 역사의 한 부분이나마 찌질하지 않게 나름 멋지게 장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몬타나 시티로 우리를 인도하신다.”
보아하니 수백 년 동안 대를 이어 이 짓을 해 왔다는 건데, 이 사람들 어떻게 보면 참 대단하면서도 불쌍한 중생들이다.
결국 이러다 마왕 부활시키는 거 걸리는 바람에 그때부터 다구리를 전문적으로 교육받은 인간 혹은 종족 연합 영웅들에게 쫓기다 또 쓸쓸히 퇴장하지나 않을까 오히려 걱정이 된다.
아니면 혹시 이놈들 관심 받고 싶어서 그러는 것 아닐까?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다.
“오오! 테라핌 님.”
그리고 또 한 가지, 도대체 무슨 마왕이 이렇게 많은지 참 아이러니하다. 전설 속에 내려오는 마왕만 해도 수십 종이 넘고 괜히 부푼 꿈을 안고 인간 세상에 강림했다가 수십 명의 다구리 전문 마왕사냥꾼인 영웅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쓸쓸히 퇴장한 마왕만 해도 열이 넘는다.
그래도 계속 신종 마왕들이 나타나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마계의 혹은 마의 왕이라는 작자들을 교육시키는 교육기관이 따로 있는 모양이다.
혹시 그들도 교육기관에서 실시하는 마왕인증 실기 시험을 치려고 한 번씩 강림해 주시는 건 아닐까? 마계에서는 개나 소나 다 마왕일 가능성도 없지 않아 있을 수도 있겠다.
뭐 직접 가 본 적은 없으니 그럴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잠시 생각해 본다.

* * *

다스는 이곳으로 넘어와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는 며칠을 보냈다.
그날 성문에서 열이 뻗쳐 세실리아에게 아주 잠깐 덤비다 맞은 이후로 지금도 세실리아에 대한 두려움이 온몸 구석구석 남아 있다. 그는 그날 이후 악기와 오기는 부릴 상대를 봐 가며 부려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인간이 어떻게 저런 주먹질과 발길질을 낼 수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눈이 휙휙 돌아갔다. 만만하게 보고 두들기던 수습기사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건 제대로 맞으면 정말 죽을 수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으니 말 다 했다.
일단 그는 방학이 끝나면 돌아가는 것 같으니 조금만 참으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괜히 긁다가 부스럼이 생겨 사 주는 밥값보다 치료비가 더 나올 수 있다. 그건 경제적으로 타당하지가 않다.
사람은 언제나 경제적이어야 하며 이리 재고 저리 재 봐야지만 짧은 목숨이나마 오래 부지할 수 있는 법이니깐 말이다. 게다가 그는 이곳에 와서 살기 위해 몸을 살짝 더 움츠리고 조금 더 기회주의자가 된 것뿐이다. 아주 조금 더 말이다.
그래 이제 곧 그녀는 사라진다. 방학이기 때문에 얼마 안 있어 사라진다. 조금만 참으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조금만이 오늘이었을까?
무슨 일인지 오늘은 아침부터 세실리아가 보이지 않는다. 보통 이런 경우 어설픈 한 가지의 선택지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 것이다.
“어? 항상 보이던 그녀가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 이럴 수가, 오늘은 왜 안 오는 거지? 무슨 일이 생긴 것 아닌가? 이렇게 그녀의 빈자리가 클 줄은 나도 몰랐다. 내 몸에 남은 주먹이든 발길질이든 그녀의 흔적들, 설마 내가 그녀를.”
그래 바로 일반적인 어설픈 자들의 손발이 오그라들게 만드는 선택이다. 그리고 다스도 생각을 한다.
‘꼬맹이 오늘은 안 나타나네. 문제 생겼나? 혹시 힘 믿고 오지랖 떨다 위험한 상황이 온 거 아냐?’
설마 다스도 그런 어설픈 자들과 똑같은 생각을 한단 말인가? 드디어 이 시나리오도 원래의 양산대로 제대로 흘러갈 기미가 보이는 건가?
‘그런 좋은 상황이 또 어디 있냐. 넌 좀 된통 당해 봐야 해. 그래 오늘뿐만이 아니라 나한테 거치적거리지 않게 제발 앞으로는 영원히 나타나지 마라.’
그래도 차마 콱 죽어 버리라고는 하지 못한다. 아무리 다스가 비겁한 놈에 기회주의자라고 할지라도, 그 꼬맹이가 다스를 미치도록 괴롭힌 깡패라고 할지라도 차마, 그런 어린 소녀에게 죽어 버리라고 하기에는 마음이 아주 조금 아프다. 아주 조금 말이다.
‘난 마음이 너무 여린 게 탈이야.’
다스가 생각하고 있는 그 탈이 쓰는 탈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일진 최상이군.’
그렇게 한참을 근무를 서는데도 오늘은 세실리아가 나타나지 않았다.

다스의 얼굴이 간만에 환해져 있는 것만 봐도 지금의 심정을 알 수 있다.
“조장님, 무슨 좋은 일 있으십니까?”
한스는 그가 기분이 좋아 보이자 은근슬쩍 물어본다.
“뭐 좋은 일이라면 좋은 일이겠지.”
‘고것이 오늘 안 나타나서 돈이 굳었다는 것.’
어제까지만 해도 항상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다스의 얼굴에 편안한 미소가 보이자 한스는 의아해했다. 그 이유가 뭔지 조심스럽게 물어보려는 찰나 다스가 횡재했다는 얼굴로 성문 밖을 향해 손짓을 한다.
“야! 저기 한 무리가 온다.”
한스가 고개를 돌려 보니 마차 다섯 대를 이끌고 분위기 칙칙한 무리가 오는 것이 보였다. 그들이 다가오자 한스가 먼저 나서서 앞을 막는다.
일반적인 옷을 입고 주변에 용병들로 보이는 이들이 포진한 상단이긴 했지만 묘하게 칙칙한 분위기가 풍겼다.
“잠시 검문이 있겠습니다. 통행증을 제시해 주십시오.”
그러자 늙수그레한 노인이 앞으로 나오더니 통행증을 앞으로 내민다.
“여기 통행증 있습니다.”
그러자 당연하게도 다스가 한스를 제치고 나와 통행증을 받아 든다.
‘테라민 상단? 처음 들어 보는 상단이데.’
전부는 아니지만 이곳을 지나는 웬만한 상단 이름 정도는 꿰차고 있는 다스로서도 생소한 상단 이름이었다. 뭐 오늘 처음 온 소규모 상단이겠지 생각을 하며 다스는 조용히 한스에게 눈짓을 보낸다.
그러자 한스는 이미 언질 받은 것이 있는지 슬쩍 고개를 끄덕이며 앞장서 나온 노인과 떨어져 물품을 확인하기 위해 다가갔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이번에 몬타나 시티 내에서 장사를 하기 위해 이렇게 먼 길을 달려오는 길입니다.”
노인은 다스의 동정심을 유발하려는 듯 허리를 툭툭 두드리며 힘겨운 기색으로 땀을 훔친다.
보통 같았으면 노인에 대한 공경으로 어느 정도 양보를 했을 수도 있지만 다스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경우다. 게다가 오늘은 부업을 방해할 방해꾼도 없지 않은가.
“통행증을 보아하니 산드라 마을에서 오셨군요. 처음 들어 보는 마을인데 이곳이 어디입니까?”
“산드라 마을은…….”
다스의 질문에 노인은 주저리주저리 읊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스는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고 노인은 그가 던진 질문 그대로 대답을 짜증나게 주저리 읊었다.
질문은 그저 시간을 조금 끌며 자신의 의도를 알아차리기를 바라는 행위일 뿐, 그가 원한 것은 이런 쓸모없는 대답 따위가 아니다. 이 상인 왜 이렇게 눈치가 없는 것일까?
그래도 일단은 꾹 참고 계속 눈치를 주며 질문을 던졌다.
“에. 그리고.”
하지만 이 노인은 정말 상인으로서 눈치가 없는 것인지 질문에 즉답만을 한다. 아무래도 상인의 최고 자질이자 스킬인 눈치 스킬이 제로인 모양이다.
‘아놔! 짜증나는 노인일세. 이 노인 시골에서만 장사를 해서 기본적으로 상인의 도를 모르는 거 아냐?’
그래 시골에서 왔으면 단번에 모를 수도 있거니 하며 일단은 조금 더 참는다.
“이곳을 통과하려면 일단…….”
결국 마지막 수단으로 이곳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모든 물품과 통행증을 검수해야 한다. 고로 여기는 두 명밖에 없으니 시간이 엄청 들 것이다. 하지만 융통성을 발휘할 수도 있다는 의미를 살살 내비치며 노인에게 말한다.
“아! 그런가요? 네, 그렇군요.”
하지만 노인은 그저 고개만 끄덕이며 알겠다고만 할 뿐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자 다스의 짜증이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하지만 최대한 참는다. 오늘같이 좋은 날에 이대로 이들을 보낼 수 없다며 시간만 질질 끌던 다스, 그때 뒤에서 한 희멀건 젊은 놈팽이 놈이 다가와 열릴 듯 말 듯한 다스의 머리 뚜껑을 통째로 날려 버린다.
“저희는 일정이 빠듯한 상인들이오. 빨리 검사 및 확인을 해 주시고 통과시켜 주시오.”
아니 이건 그냥 뚜껑째 발로 걷어차 버렸다는 것이 맞을 듯싶다.
‘이런 썩을 놈을 봤나? 감히 상인 주제에 경비병님에게?’
이놈 미친 게 틀림이 없다. 감히 상인이 북문의 절대경비 포스의 다스 베이더 님에게 절대 이런 말을 내뱉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모르는 모양이다.
“어차피 물품이 많은 것도 아니니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오. 빨리빨리 해 주시오.”
노인에게서 말라비틀어진 고목 같은 희멀건 놈에게 시선을 돌린 다스는 그를 지그시 노려보며 입을 뗀다.
“지금 갈 길이 급하다. 그러니 빨리 검사하고 통과를 시켜 달라?”
“그렇소. 어서 당신이 할 일을 하시고 우리 갈 길로 보내 주시오.”
‘이 새끼가 진짜 미쳤나? 오늘 좋았던 기분 확 잡치네.’
지금까지 다스는 참을 인 자 세 개를 외치며 끝까지 화를 억눌렀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 안 그래도 요새 스트레스가 조금 심하던 차인데 다스는 오늘 잘 걸렸다는 표정으로 그들을 노려본다.
이놈들 딱 봐도 시골 촌뜨기 상인들이지 않는가. 언제나 법을 정직하게 지키는 그가 합법적으로 괴롭히기 딱 좋은 부류들이다. 법을 교묘하게 이용한다는 말이 맞는 말이겠지만.
“그래. 갈 길이 급하신 분인데 빨리빨리 확인해 드려야지. 물론이고말고. 우선 당신부터 통행증을 꺼내 봐.”
그 결과 바로 반말이 튀어나온다. 반말은 도덕적인 문제지 죄가 아니다.
“여기 있소.”
통행증을 받아 든 다스는 통행증을 꼼꼼히 한참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겨우 종이쪼가리 한 장을 살펴보는 데 20분이 넘는 시간이 걸렸으니 말 다 했다. 그러자 통행증을 내민 자는 화가 난 목소리로 항의한다.
“아니 무슨 통행증 하나 살펴보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린단 말이오.”
그러자 고개를 스르르 든 다스는 웃음기가 사라진 얼굴로 그를 계속 노려본다.
“당신 제국 경비병 근무수칙을 우습게 아는 거야?”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러면 입 다물고 있어. 난 수칙대로 원칙대로 할 뿐이니깐.”
여기서 또 원칙이 나왔다. 물론 그 원칙은 다스의 개인적인 매우 합법적인 원칙이다.
20분에 10분을 더 꼼꼼히 통행증을 살펴보는 다스, 꼼꼼히 보고 있는 것인지 그냥 들고만 있는 것인지 본인만이 아는 거다. 통행증을 이렇게 오래 살핀다고 법적인 문제는 전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