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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타나의 경비병 1(16화)
5장 때론 마왕도 스쳐 지나가는 인연일 수 있다 Ⅰ(3)


“음. 잉크 상태가 좀 이상한데? 여기 인장도 조금 삐뚤어진 것 같은데. 게다가 글자체도 조금…… 야, 한스!”
30분이 지난 뒤에 이상한 지적을 하더니 급기야 한스를 부른다. 물품을 검색하던 한스는 다스의 부름에 얼른 그의 앞으로 달려왔다.
“통행증이 조금 이상하다. 여기 있는 사람들 통행증 모조리 걷어서 최대한 정밀하게 검사해. 최대한, 최대한 정밀하게 말이다.”
이제 어느 정도 눈칫밥을 먹은 한스는 조금 전 통행증 하나를 오랜 시간 동안 검사하는 그의 모습에 그가 말한 의미를 금방 눈치챘다.
“알겠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란 말이오. 통행증에 문제가 있다니. 도대체 당신들 이게 뭐하는 짓이오.”
구타 유발자 놈 이후로 오랜만에 구타를 유발하는 놈을 다시 만났다. 정말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경우가 바른 사람이다. 아무리 만만해도 사람은 봐 가면서 패야지 이런 놈은 패 봐야 깽 값만 물어 줘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건 다스의 법에 어긋나는 취지다.
“통행증도 이상하고 당신들 그러니 더 수상한데? 한 번만 더 공무집행방해를 하면 모든 물품을 압수하겠다.”
그제야 그는 얼른 입을 다문다. 그에 다스는 흉흉한 눈길로 다섯 대의 마차로 다가간다.
“물품을 검사해야겠다. 모두 마차에서 물러서서 저쪽 성문 우측으로 모인다. 거기 용병으로 보이는 자들도 마찬가지다.”
경비병으로서 그의 명령에 모두 우물쭈물하는 기세였지만 문제를 일으킬 마음은 없는지 모두가 어물거리며 마차에서 물러서 한쪽으로 모여들었다.
‘북문 쪽은 조금 수월하게 통과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어?’
‘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어떻게 된 거야?’
다스 모르게 은밀히 들려오는 그들의 대화 소리,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북문은 상황만 된다면 누구든지 아주 수월하게 통과할 수 있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그동안 잠시 뜸했던 환상적인 기회의 날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들은 아직 세상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이치인 수월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대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듯했다.
‘마차 다섯 대라. 평소라면 전부 검사해도 길어 봐야 30분 정도면 끝낼 일이지만, 오늘은 저놈들 때문에 기분도 잡쳤고 시간도 남아도니.’
한스가 통행증을 다스의 엄명대로 하나하나 대조하며 확인하는 사이 다스는 물품들을 마차에서 하나하나 들어내며 검사하기 시작한다. 전시가 아닌 이상 그냥 물품 사이사이에 혹시 무언가 숨긴 것이 없는가와 물품 종류만 확인하지만 오늘은 제대로 마음을 먹었는지 물품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꺼내어 수 분간 지켜보기까지 한다.
똑같은 물품인데도 확인하는 속도는 전혀 빨라지지 않는다.
한 마차를 모조리 꺼내어 확인을 하는 데만 해도 한 시간이 넘게 걸렸으니 나머지 4대의 마차를 다 확인하려면, 아마 다스의 기분에 따라 배 이상이 더 걸릴지도 몰랐다.
다스에게도 상당히 귀찮은 일이기는 하지만 건방진 상인 놈들에게 이 정도 귀찮음 정도는 충분히 감수해 줄 수 있었다.
그렇게 상인 일행은 다스의 행동에 화가 나기는 하지만 딱히 문제를 꼬집을 수도 없는 일이었기에 매우 악의적인 검수를 이를 갈며 노려만 본다.
다스가 그런 눈빛을 느끼지 못할 리가 없다. 저렇게 노려보는데 누가 모르랴. 다만 저 눈빛은 다스에게 위협이 되기는커녕 더욱 자극만 할 뿐이다.
“더 수상한데. 안 되겠다. 거기 있는 사람들 모두 앞으로 나와라.”
두 대째 물품을 검수하던 다스는 상인 일행 모두를 마차 앞으로 불렀다.
“수상한 물품을 몸에 숨기고 있을 수도 있으니 지금부터 들고 있는 모든 물건을 마차 옆에 내려놓는다.”
충분히 성문 경비병으로 낼 수 있는 권한이지만 보통 이런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오늘은 매우 특별한 날이다. 아니 눈치 없는 상인들이 스스로 특별한 날로 만들었다고 해야 하나?
“아니 그게 무슨 소리란 말이오. 몸속에 있는 물품까지 모조리 조사하겠다니?”
“어! 그러니 당신 더 수상한데? 뭐 찔리는 거 있어? 야, 한스. 통행증 내려놓고 이리 와. 이 상인들 아무래도 더 수상하다.”
그들 전부는 다스의 의도적이고 매우 악의적인 행동에 부들부들 떤다. 하지만 법적으로도 전혀 문제가 없었기에 다스는 당당하기만 하다. 원래라면 당연시 되는 행위였기에 경비가 이런 행동을 한다고 어디 가서 하소연할 수도 없다.
“한 번만 더 검수에 딴죽 걸면 모조리 공무집행방해 및 물품 검수에 관련된 제국 경비법에 의거해 체포한다.”

마차 옆에 수북하게 쌓인 물품들, 다스는 확인해 보고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돈은 일단 돌려준다. 한번 마음을 먹은 이상 모든 문제의 소지를 없애야 한다.
그는 돈을 제외한 모든 물품을 내려놓게 했으며 혹시나 숨긴 것이 있는지 일일이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상인들이 분노한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았지만 다스는 그저 비웃음만 날릴 뿐이다. 저들은 지금 이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다.
“이봐, 영감. 거기 품에 불룩하게 숨긴 거 뭐야?”
다스는 지금까지 눈여겨보고 있던 상인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노인네가 여행용 망토 옷자락 안에 무언가 숨기고 있다는 것을 대번에 눈치챘다.
“뭐…… 뭘 숨긴단 말인가.”
“오호! 그래? 진짜 아무것도 숨긴 거 없어?”
다스가 노인에게 다가가자 아까의 그 마른 남자가 떡하니 앞을 막아선다.
“대체 이게 무슨 짓이란 말이오.”
그러자 다스는 노인 앞을 막아선 놈팽이를 잠시 바라보다 한스를 부른다.
“야! 한스.”
“넵.”
“저놈 검수 불응에 대한 제국 경비법으로 체포 준비해. 너 지금 당장 옆으로 안 비켜서면 진짜 체포한다.”
한스는 기다렸다는 듯이 창을 치켜들었고 그제야 남자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옆으로 한 발자국 물러섰다. 방해물이 사라진 다스는 불안한 눈을 하고 있는 영감에게 다가가 망토를 획 제쳤다.
그러자 검은 천으로 뒤집어 싼 무언가가 또르르 떨어져 내린다. 그것이 떨어져 내리는 순간 모두의 눈빛이 흙빛으로 변하기 시작하며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모습을 보인다. 얼핏 들어 보니 테라 뭐라고 하는 것 같은데 자세히 들리지는 않았다.
‘이게 뭐야? 갑자기 저놈들이 미쳤나?’
그는 검은 천을 집어 들고 획 던질 시늉을 한번 해 본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이들의 동공이 급격하게 열리며 그 팔을 따라 시선이 따라오는 것이 아닌가.
‘이게 보물이라도 되는 건가?’

결국 그 칙칙한 상인 일행들은 4시간 정도가 지나서야 만신창이가 된 채 성문을 겨우 통과할 수 있었다. 게다가 다스는 마차에서 꺼냈던 모든 물품들과 그들이 꺼낸 물품들을 대충 뒤섞어 마차에 구겨 넣는 만행까지 저질렀다.
그들이 검수를 받는 동안 소규모 상인 팀으로 보이는 팀이 한 부류가 더 왔었는데 그들은 다스와 몇 마디 속닥속닥 하더니 그냥 통과하는 것이 아닌가. 이에 격노하며 항의를 했지만 돌아온 것은 염병을 한다는 눈빛이다.
한 시간 추가라는 그의 중얼거림을 들었던 것은 착각이었을까?
게다가 자신들이 철저하게 검수 받는 모습을 보며 그 소규모 상인 팀이 비웃음을 지으며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결국 계속 검수에 불응하고 항의하면 모든 물품을 압수하고 체포하겠다는 협박에 어쩔 수 없이 꾹 참은 채 검수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도무지 이유를 짐작할 수 없는 악의적인 검수가 끝나자 아주 홀가분하고도 친절한 얼굴로 끝났으니 통과하셔도 된다는 다스의 형식적인 인사 말.
“검수가 끝났으니 통과하셔도 좋습니다. 몬타나 시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몬타나 시티는 모두에게 열려 있는 세계적인 도시입니다. 그럼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악의적인 검수보다 저렇게 생글생글 웃는 모습이 더 싫었다. 상인 일행은 그의 웃는 얼굴을 뭉개 버리고 싶은 마음에 죽일 듯 노려보았지만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덜컹덜컹.
그들도 이 이상은 여기에 있고 싶지 않은지 얼른 어지럽게 물품이 쌓인 마차를 이끌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빠르게 사라진다.
바로 그때.
툭.
또르르르.
마차를 몰고 사라지는 동안 마차에서 무언가가 떨어져 내린다. 하지만 이미 다스를 4시간 이상 상대하느라 심신이 지친 그들은 대충 쌓여 있는 마차에서 무언가가 떨어지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응?”
물론 처음부터 지켜보고 있던 다스는 대번에 떨어진 그것을 확인하고는 이놈들이 주워 가나 안 주워 가나 보고 있다. 그들이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 버리자 이게 웬 재수라는 얼굴로 상인들이 완전히 사라지기만을 기다린다.
상인들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자 빠르게 한스에게 명령을 내린다.
“야, 한스. 너 저기 떨어진 거 보이지? 빨리 가서 주워 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신삥이라 불렸는데 이제 조금 눈치를 볼 줄 아는 그는 한스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는 영광스러운 승급을 한 듯하다.
“넵.”
한스는 군말 없이 쪼르르 달려가 검은 보자기에 싸여 있는 그것을 얼른 주워 온다. 다스는 원래부터 자신의 것이었다는 듯이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 들며 앞에 선 한스를 살며시 바라본다.
“한스, 너 이거 누가 흘린 건지 알고 있냐?”
순간 한스는 다스가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에 대해 바로 떠올릴 수 없어 바짝 긴장을 하며 고민한다. 얼마 안 되지만 경험상 이런 갑작스러운 질문을 할 때는 대답 여하에 따라 앞으로의 군 생활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다스의 표정만 보아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음. 글쎄요. 누가 흘리고 간 모양인데. 잘 모르겠습니다.”
그럴 리가 있겠나. 분명 자신도 상인들이 흘리고 갔다는 것을 보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 답이 다스가 원하는 정답인 듯 그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그렇지? 하하. 그럼 주인 없는 물건을 흘리고 갔는데 이건 누가 주인이 되는 거지?”
한스는 그제야 씨익 웃는다.
“당연히 떨어뜨린 주인도 없는데 주운 사람이 임자가 아닐까요?”
다스 역시 이제야 진정한 쫄따구다운 모습을 보여 주는 한스를 보며 마주 웃어 준다.
“그렇지? 하하하. 한스, 이 녀석 넌 정말 똑똑한 놈이구나.”
대단히 만족하는 듯 다스는 한스의 어깨를 툭툭 쳐 준다.
“오늘 저 괴상한 상인 놈들 상대하느라 고생 많았다. 저기 가서 시원한 물 한잔 하고 그늘에서 좀 기대어 쉬어라. 하하하.”
“넵! 감사합니다.”
다스의 어투로 보아 이건 반어법이 아니다. 말 그대로 물 먹고 그늘에서 쉬어도 좋다는 의미였다. 선임이 진정으로 쉬라고 하면 그냥 쉬면 되는 거다. 그래서 한스는 이것저것 볼 것 없이 쪼르르 달려간다.
교육을 잘 시켰다며 흐뭇하게 바라보던 다스는 검은 보자기를 바라본다.
‘이건?’
그는 이 검은 보자기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바로 그 영감이 신주단지 모시듯 품속에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설마 이거 진짜 귀한 보물 아냐?’
게다가 이것이 움직일 때마다 휙휙 돌아가던 그 눈빛들을 잊을 수가 없었다.
‘흐흐, 그 정도면 최소한 보물급은 된단 말인데. 이거 오늘 정말 횡재했는데.’
다스는 혹시 그 상인들이 찾기 위해 다시 올까 싶어서 얼른 성문 뒤에다 그것을 숨긴다. 어차피 본 사람도 없는데 먼저 주운 자가 임자 아닌가.
물론 본 사람 중 한스는 자신의 쫄따구이니 제외한다.
‘드디어 나도 이제 이 더러운 경비병 생활을 청산할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인가? 엄청난 보물이면 저걸 팔아서 뭐하지? 도시 내에 가게나 하나 차려서 장사나 해 볼까?’
엄청난 기대감에 부푼 다스, 결국 그 기대감은 망상으로까지 치닫기 시작한다.
‘혹시 저거 지금까지 고통을 감내하느라 수고했다며 드디어 하늘이 주는 레어 급 아이템 아냐? 그놈들의 눈빛만 보면 충분히 그럴 가능성도 있어. 아님 드래곤 하트 덩어리? 그럼 나도 이제 진정한 깽판자의 대열에 들어서는 건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엄청난 가치가 있는 보물일 것이라고 그는 확신을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