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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타나의 경비병 1(19화)
6장 때론 마왕도 스쳐 지나가는 인연일 수 있다 Ⅱ(3)


몬타나 시티 내의 고미술품 취급 상점.
깊은 어둠이 내리깔린 이곳, 유서 깊고 오래된 고미술품을 취급하는 상점으로 유명한 만큼 주변에는 흔히 볼 수 없는 많은 고급 미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보통 부호 혹은 귀족들이 자주 찾기 때문에 이 사치품들은 상당히 고가로 거래가 된다.
솔직히 그들은 예술품이라고 열광을 하며 자신의 부를 과시하지만 아무리 둘러보아도 몇몇을 빼고는 왜 고가의 예술품으로 거래되는지 알 수 없는 것이 많다. 일반인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만의 예술 세계라도 있는 것일까?
혹시 비싸다고 유명하다고 떠들고 다니니깐 예술에 대해 아는 척 폼 잡으며 사는 것이 아닌가 모르겠다. 그러니 예술품 사기가 판을 치는 것 아니겠는가.
그나마 이곳은 상당히 인정을 받는 곳으로 예술에 대해 무지한 사람이라도 최소한의 친절 사기만을 받으며 슬그머니 사치품들을 구입하게 만든다. 어차피 이것도 장사니깐 말이다.
그래도 최소한 물품 사기를 치는 곳은 아니란 말이다.
까닥, 까닥.
그런데 무슨 소리인가? 분명 주변에는 점원도 주인도, 손님도 없는 깊은 밤이다. 상점 안에도 어둠이 깔려 인적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럼 도둑이라도 들었던 것일까? 아니 도둑은 아닌 것 같다.
조심스럽게 소리의 진원지를 따라가 보니 그곳에는 작은 유리관에 들어 있는 은은하게 푸른색을 띤 기하하적인 무늬들이 새겨진 목각 오뚝이 인형이 보인다. 그리고 그 앞에 이런 글귀가 있다.

작품명 : 절대마왕 파멸의 봉인 마법진, 마법 봉인구.
주 의 : 세상의 파멸을 가져올 마왕이 풀려날 수도 있으니 함부로 손대지 마시오.
가 격 : 무기한 세일, 폭탄 가격, 마왕의 봉인구가 단돈 5골드. 이것을 사면 당신도 마왕의 봉인구를 지키는 용자가 될 수 있다. 용자들이여, 오라.

문구가 좀 의심스럽다. 아무리 바보라고 할지라도 이런 글귀를 보고 사 가는 사람이 있을까? 뭐 있으니깐 이렇게 써 놓은 것이겠지.
까딱, 까닥.
귀신의 장난인가? 절대마왕 파멸의 봉인 마법진, 마법 봉인구라는 화려한 이름이 붙어진 목각 오뚝이 인형이 갑자기 심하게 혼자 까딱거리기 시작했다. 급기야 유리관이 심하게 흔들릴 정도로까지 급격한 움직임을 보이더니 팍 하는 소리와 함께 그대로 터져 버린다.
다행히 유리관은 깨지지 않았지만 유리관 안은 흩날리는 목재 가루로 가득했다. 그리고 잠시 뒤 목재 가루가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한다. 조금 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목각 오뚝이의 모습이 드러난다.
이상한 것은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은은한 푸른 모양이 전신에 새겨져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무늬들이 씻은 듯이 사라지고 울퉁불퉁하게 변해 버린 목각 오뚝이 인형과 주변 바닥에 깔린 목재 가루만 남아 있다는 것이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현상이지만 분명 꿈이 아닌 현실이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듯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이다.

병영의 야간 순찰 조원 두 명은 병영의 주변을 밝히기 위해 불을 피워 놓은 거대한 화로 앞에 한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발견한다. 화로 앞에 대놓고 서 있는 이자가 수상한 인물일 리는 없으니 일단은 가까이 가서 누군지 확인한다.
“다스 조장님?”
손에 무언가 들고 있던 다스는 순찰조의 부름에 슬쩍 고개를 돌린다.
“어. 그래 너희들이냐? 밤중에 근무 서느라 수고가 많다.”
“그런데 안 주무시고 뭐하시는 겁니까?”
“그냥 잠도 안 오고 해서 잠시 나와 있어. 여기 화로불 앞에 떡하니 서 있으면 너희들도 수상한 자라고 비상대기조 안 부를 거 아냐.”
역시 짬밥이라고 생각한 순찰 조원들은 문득 다스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을 바라보며 궁금증을 물어본다.
“뭐를 그렇게 들고 계시는 겁니까?”
“별거 아냐. 그냥 길가에서 주운 나무 조각, 불이 조금 약한 것 같아 주워 왔어.”
자세히 보니 무언가에 찍혀 아예 아작 난 목재였다. 다스는 그런 목재를 망설임 없이 불 속으로 집어 던졌다.
“아! 그렇군요. 밤이 늦었습니다. 내일도 근무하시려면 주무셔야죠. 저희들도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래. 수고해.”
그렇게 순찰 조원들이 사라지자 다스는 손을 탁탁 털며 뒤돌아선다.
“에이, 괜히 힘만 뺐네. 보물인 줄 알았는데.”
다스까지 그러게 터벅터벅 걸어 병영으로 사라졌지만 화로의 불길은 잦아들지 않았다. 아니 바람 한 점 없는 날에 마구 휘날리는 것이 아닌가. 마치 무언가가 고통을 받고 있는 듯한 느낌인데 그것을 언어로 살짝 의역을 해 보자면.
[야이 개자식아.]
정도가 아닐까.
그렇게 다스는 세상을 한 번 구한다. 그렇게 되고 싶었던 세상의 깽판자까지는 아니지만 영웅이 되었다. 영웅이 뭐 별거 있나? 세상을 구하면 영웅이지.
다만 안타까운 것은 아무도 그 사실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고 심지어 자신조차 모른다는 것이다.
만약 그를 이곳으로 보낸 그 누군가가 진짜 존재한다면, 이렇게 세상을 한 번 구한 그를 보며 지그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하겠지.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단 말이야. 넌 진정한 이계의 영웅이다.]
그래 영웅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신도 모르는 쓸쓸한 이계의 영웅. 눈물이 앞을 가린다.



7장 유부녀? 미망인?(1)


세상에는 이 두 가지 종류의 인간이 있다.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과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놈, 바로 이 두 종류의 인간들이 말이다.
도움이 되는 사람은 당연히 가까이해야 할 것이고 도움이 되지 않는 놈은 과감하게 가지치기하듯 잘라 버리는 것이 당연한 세상의 이치가 아니겠는가.
그 도움의 기준이라는 것이 어떻게 되느냐? 별거 없다. 조금이라도 빨아먹을 것이 있다면 그는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다.
반대로 전혀 빨아먹을 것이 없고 오히려 내 것을 빨아먹으려 한다면 이놈은 절대 가까이에 두어서는 안 될 천하의 나쁜 놈이다. 이런 인간은 절대 사람으로 부르지 않는다. 그냥 놈일 뿐이다. 그런 놈은 철저히 배제해야 할 사회의 악이자 인생의 악인 셈이다.
물론 도움이 되는 사람일지라도 다 빨아먹고 나면 당연히 그 사람은 도움이 되지 않는 놈으로 강등된다.
어차피 세상은 혼자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외로운 전장이다. 정직하고 정의롭다는 달콤한 단어로 포장하는 안타까운 부류가 있다. 하지만 정직과 정의라는 단어는 멍청하다는 것을 표현해 주는 가장 이상적인 단어밖에 되지 않는다.
세상은 원래 더티한 놈이 오래 살아남으며 잘 먹고 잘사는 법이다. 나쁜 놈이 오래 살고 욕을 많이 먹은 인간은 잘 죽지도 않는다는 옛말이 결코 빈말이 아니라는 것은 현재와 과거의 사회상만을 봐도 잘 알 수 있다.
아직까지 정직하고 정의로운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사회는 돌아가고 있으며 아직 살 만한 것이다?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다. 세상에 더티한 놈들만 있다면 그것은 진짜 지옥일 것이다.
이런 정직하고 정의로운 사람들이 있어야지만 더티한 놈들이 그 사람들의 진액을 쪽쪽 빨아먹으며 더 잘살 것 아닌가. 빨아먹을 인간들이 없는 세상은 더티한 놈들에게는 정말 지옥일 거다.
세상에 사기꾼 천지인데 어떻게 사기꾼이 사기를 치겠는가.
그래 세상은 정직해야 하다. 사람들은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열심히 매진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이들을 더티한 자들은 봉이라 부른다.
봉이 없으면 더티한 놈들이 잘 먹고 잘살기가 힘들기 때문에 이 세상은 정직한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다스는 따로 집이 없다. 그것이 집을 한 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고 전세든 월세든 간에 자신의 명의로 계약된 집이 없다는 의미다.
그는 경비병이 된 그날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쭉 경비대 병영에서 생활을 해 왔으며 의무적으로 병영을 떠나야 하는 기간이 2년이나 지났는데에도 갈 곳이 없다는 이유로 안 나가고 버티고 있다.
보통은 병영에서 생활을 하지 않으려 하지만 다스는 다르다. 어차피 집도 절도 없는 상황에서 밥 먹여 주지, 재워 주지, 짬밥을 이용해 보급 애들 달달 볶아서 보급품 얻어 쓰지, 모든 것이 공짜인 이곳만큼 좋은 곳에 또 어디에 있겠는가.
물론 간간이 퇴근 후에는 밖에 나가 술도 한잔씩 하고 두어 달에 한 번 정도 가끔씩 거금을 들여 술집에서 여자를 끼고 놀기도 한다. 그도 나름 건장한 청년인데 욕구불만을 풀기 위해 거기라도 가야 할 것 아닌가.
그리고 이제 슬슬 그 욕구를 풀 만한 시기가 다가왔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미스릴로 된 족쇄를 찬 채 꽁꽁 묶여 있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세실리아가 매일같이 찰싹 붙어서 감시 아닌 감시를 해 대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감시뿐이라면 그러려니 할 수도 있다. 하루를 멀다 하고 찾아와서 이거 먹자, 저거 먹자 하질 않나, 심지어 어제는 애인인 양 시장까지 질질 끌고 가더니 대놓고 이거 사 달라, 저거 사 달라 하는 것이 아닌가.
거기다 이 눈치 없는 시장 아줌마들은 백이면 백 이렇게 말한다.
“아이구, 총각, 어린 여자 친구가 정말 예쁘네. 이거 어때? 그럼 이것도 어때? 아이구, 이것도 예쁘네. 남자라면 이 정도는 사 줄 수 있지? 그리고 총각 정말 잘생겼다우.”
이 아줌씨들 어찌나 말빨로 현혹을 잘하는지 어느새 주머니를 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본다. 한순간 현혹되고 나면 정말 내가 이 꼬맹이의 남자 친구인가 하는 착각까지 들게 만드니 대단한 신공이라고 할 수 있다.
간혹 꼬맹이가 꽃뱀 짓을 한다고 고소를 하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런데 이 얼마나 쪽팔리는 일인가. 차라리 다스가 세실리아를 억지로 끌고 다니고 있다는 말이 더 신빙성 있게 들릴 거다.
저번 수습기사 사건만 보아도 이 조막만 한 꼬맹이가 어떤 인물인지는 몰라도 그 입김이 대단하다는 것을 언뜻 알 수 있었다. 한마디로 잘못 건드렸다가는 피 본다는 의미가 아닐까.
그렇다고 도망을 가기도 그렇다. 겨우 이런 꼬맹이 때문에 도망칠 수는 없다. 이건 자존심 문제다. 아니 솔직히 갈 곳이 없다는 게 가슴이 더 아픈 건지도.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그래도 일말의 양심은 있는지 사 달라는 것이 대부분 그리 비싸지 않은 평범한 것이라는 거다. 만약 수십 실버 혹은 수 골드씩 하는 비싼 명품을 사 달라고 했으면 차라리 날 죽이라고 대로변에 드러누웠을 것이다.
먹는 것도 그렇고 사 주는 것도 아무리 불가항력이라고 하지만 이 모든 것에는 한도가 있는 법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것을 이 꼬맹이도 잘 아는지 자신의 정해 놓은 한도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일까?
다스가 ‘니가 그렇게 싸움을 잘해?’라고 외치고 그냥 같이 죽자며 폭발을 할 지경에까지는 결코 가지 않는다.
절대 비싼 곳은 돌아다니지 않는다. 먹는 것도 적당한 가격대의 도시 내 맛집, 사는 것도 시장에서 파는 적당한 가격대의 물건을 구입한다. 그러다 보니 이런 된장녀 같은 년이라면서 뒤집어엎기도 조금 애매하다. 영악해도 너무 영악했다.
그래 평일에는 그렇다 치더라도 주말만은 그러지 않을 줄 알았다. 이 꼬맹이는 쉬는 주말에까지 찾아와서 면회 형식으로 그를 불러냈다. 처음에는 올 사람도 없는데 누가 면회 왔나 싶어 나갔다가 그 꼬맹인 것을 확인하고는 본능적으로 튀려고까지 했다.
아침부터 병영을 찾아왔으니 하루 종일 시달릴 게 뻔했기에 그런 마음이 드는 건 당연하다.
그 주는 혼자만의 달콤한 시간을 풍만한 언니들이 북적거리는 아름다운 신세계에서 즐기려 했다. 하지만 세실리아와 만난 그 첫 주말, 결국 그녀의 마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거의 끌려 다녔다.
달콤한 술로 뱃속을 싸하게 채우고 여인의 향긋한 내음으로 안식을 맞이해야 할 그 주말에 말이다.
“내일 주말인데 할 일 없지? 나랑 데이트나 하자.”
“컥! 데이트 식이나.”
“갈 곳은 이미 정해 놨거든. 거기 정말 맛있는 곳이야. 그러니 대기하고 있어. 우리 내일 봐!”
무슨 대기? 자기가 모셔야 할 고위급 장성의 부인이라도 된단 말인가. 거기다 그날은 정말 헤어지는 연인같이 손까지 살살 흔들더라. 모르는 사람이 보았다면 주말 데이트를 약속하는 연인으로 볼 것이다.
‘그래 일단은 내가 참는다. 내 언젠가 이 주먹에 권강이 쓰이는 날, 네가 지금까지 처먹었던 것의 10배로 토해 내게 만드는 처절한 복수를 해 주리라. 조그만 기다려라.’
하지만 아직까지는 현실이 아니다. 현재로서는 도무지 이 마수에서 벗어날 길이 보이질 않았다. 설마 죽을 때까지 이렇게 사는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라고 생각하다 혹시? 라는 끔찍한 상상까지 한다.
아무래도 이 세계에 넘어와서 가장 최악의 나날을 꼽으라면 바로 이 꼬맹이를 만난 그날부터 그 꼬맹이가 나타나지 않았던 한 주를 제외하고 주말 하루 포함 5일이다. 차라리 그때 그 식당을 가지 말았어야 했다. 왜 하필 주변 식당들도 많은데 거기를 갔을까 후회도 해 보지만 시간은 되돌릴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