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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타나의 경비병 1(20화)
7장 유부녀? 미망인?(2)
“다스 조장님, 그 아이가 찾아왔는데요.”
오늘은 주말이다. 고로 오늘은 좀 편히 쉬는 날이다. 하지만 역시 오늘도 편히 쉬지 못한다. 한 주 동안 안 보인다 해서 혹시 방학이 드디어 끝났나 싶어 좋아했더니 주말인 오늘은 찾아왔다.
그가 지정한, 세상에서 가장 나쁜 인간인 자신의 것을 빨아먹으려 드는 이 흡혈귀 같은 세실리아는 도무지 쉬는 날도 없는 모양이다. 살인보다 나쁜 짓이 바로 자신의 돈을 갈취하는 행위임은 말할 것도 없다.
“씁.”
병영에 누워 있던 다스는 한 병사의 말에 인상을 찌푸린다. 그러고는 자신을 부른 그 병사에게 다가간다.
“야! 너 밖에서 여자 좀 꼬셔 봤냐?”
그러자 나름 조금 생긴 병사는 씨익 웃는다.
“제가 이렇게 보여도 밖에서는 한 인기 합니다. 보통 여자들 꼬시는 거야 별거 아니죠.”
“그럼 말이지.”
“네.”
제발 밖에 있는 저 꼬맹이도 나름 여자니 좀 꼬셔서 데리고 가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뒤탈이 두려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아무리 세상을 각박하게 그리고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살아왔다고 해도 이놈에게 저 꼬맹이를 맡으라고 하는 것은 살인이나 다름이 없다. 아무리 자기 살자고 살인을 저지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물론 자신과 크게 관계가 없는 저놈이 어떻게 되던지 상관은 없었지만 잘못되어서 자신에게 불똥이 튀는 것은 두렵다.
“아니다.”
“……?”
다스가 힘없이 그를 지나쳐 가자 몇몇 병사들이 그 주위로 모여든다.
“야, 근데 그 작은 아가씨 정말 예쁘게 생기지 않았던?”
“말도 마라. 정말 다스 조장님과 아는 사이만 아니면 미리미리 내가 점을 찍어 두고 싶을 정도더라. 저 정도에서 조금만 더 크면 엄청난 미인이 될 게 뻔하잖냐.”
“게다가 얼마나 나긋나긋하게 우리를 대해 주는지. 부끄러운 듯 살포시 웃는 그 모습을 보면. 으흐흐.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아무래도 다스가 세실리아를 보는 시각과 이들이 보는 시각이 다른가 보다. 게다가 세실리아가 부끄러운 듯 살포시 웃는단다. 만약 다스가 이 이야기를 들었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입에 개거품을 물고 이 미친 새끼들 오늘 눈알을 죄다 뽑아 버릴 것이라며 달려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다스 조장님과 무슨 사이래?”
“몰라. 저저번 주말에도 찾아온 것을 보니 보통 사이는 아닌가 본데. 조장님에게 가족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고 게다가 아가씨가 조금 어려 보이기는 하지만 곧 성인이 될 나이인 듯싶은데. 혹시 약혼자?”
그 누구라도 자신의 입장에서 귀엽고 예쁜 세실리아를 바라보지, 다스 입장에서 바라보지는 않을 것이다.
“이야. 조장님 벌써 어린 신부를 노리고 사고 치신 거 아냐? 하긴 그 아가씨 정도면 나라도 일단 사고부터 치고 보겠다.”
“그러게. 그렇게 안 보였는데 조장님도 은근히 대단하단 말이야.”
그렇게 병사들이 다스와 세실리아의 사이에 대한 추측이 난무하는 사이, 다스는 간질거리는 귀를 후벼 파며 힘없는 발걸음으로 병영을 나섰다.
병영을 나서자 병사들의 말대로 매우 귀여운, 아니 솔직히 어리지만 예쁘다고도 볼 수 있는 꼬마 아가씨가 그 또래가 흔히 입는 평범한 드레스를 입은 채 반색을 지으며 그를 반겨 주고 있었다.
정말 솔직히 생긴 거 하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가자. 내가 오늘 메뉴랑 코스는 이미 정해 놨어. 오늘도 신나게 놀아 보자.”
“끄응. 코……스. 야! 너 때문에 나간 돈이 얼만지 알아?”
코스라는 말에 급기야 다스는 참지 못하고 화를 버럭 낸다.
“응? 얼만데?”
하지만 세실리아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로 동그랗게 눈을 뜨며 그를 바라만 본다. 진짜 눈망울 하나는 정말 말똥말똥하다.
“정확히 20실버야. 알겠어? 20실버. 20실버면 나 한 달 받는 돈의 반이야. 알겠냐구.”
“그래서?”
뭐가 그래서란 말인가. 피 같은 돈 20실버가 아무런 이유 없이 날아갔는데 어느 누가 좋아하겠나.
“아놔. 그러니 이 가난한 경비병 좀 그만 등쳐 먹으라고.”
그에 세실리아는 지그시 그를 바라본다.
“내가 등쳐 먹어?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그럼 등쳐 먹지 회 쳐 먹냐?”
음, 이 순간에 이 개그코드는 좀 아닌 듯하다. 세실리아의 재미없다는 얼굴을 보면 딱 알 수 있지 않나.
“이번 합의금으로 받은 5골드에서 20실버를 빼면 480실버가 남겠네. 내 덕분에 쉽게 받을 수 있었던 그 합의금에서 겨우 20실버를 나한테 썼다고 지금 아깝다는 거야?”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자신의 수중에 들어온 이상 자신의 돈이라는 것이다.
5골드도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다스의 월급이 45실버 정도니 100실버가 1골드면 상당히 큰돈이라고도 볼 수 있다. 물론 중요한 것은 5골드가 크고 작음의 문제가 아니다.
“아니. 왜 말이 그렇게 되는데.”
하지만 세실리아는 그의 말을 무시한다.
“게다가 그동안 경비 서면서 받아먹은 뇌물만 해도 내 생각에는 엄청날 것 같은데.”
찔리는 게 많은 다스는 움찔하는 기색이다.
“내…… 내가 언제 뇌물을 받아먹었다구 그래? 본 적 있어?”
“어디 한번 조사 들어가 볼까?”
“몬타나에서 나처럼 청렴한 사람이 어디에 있다고 자꾸 모함을 하는 거야!”
세실리아는 웃기지 말라는 듯 비웃음을 짓는다. 특히 모함이라는 말을 강조하는 다스의 모습은 정말 우습기 그지없었다.
“청렴이라. 아! 그렇구나, 너 정말 청렴하구나. 그래서 만날 상인들한테 뇌물 받아먹고 수습기사들에게 자해공갈을 해서 돈까지 뜯어내는구나. 게다가 쪼잔하게 5골드를 내 덕분에 손쉽게 벌어 놓고 20실버 쓴 게 그렇게 아깝구나. 내가 정말 큰 실수를 했네.”
자신이 한 짓이 정말 일목요연하게 나열된다. 어떻게 이렇게 순식간에 정리를 잘할 수 있는 것일까? 미리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의심스럽다.
그리고 다스는 괜히 말을 꺼냈나 싶어 불안해한다.
“에이, 지금 중앙기사단 가서 내가 잘못 본 거라고 말해야지. 그럼 나 간다. 남은 돈으로 잘 먹고 잘살아.”
“헙!”
다스는 몸을 돌리는 세실리아를 보며 헛바람을 집어삼킨다. 정말 이 꼬맹이가 미친 척하고 가서 잘못 봤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그 앞날은 뻔했다.
“야야! 왜 그래. 사람 농담 한번 한 걸 가지고. 하하. 너 그렇게 속 좁은 사람 아니잖아. 그렇지?”
급한 마음에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다스가 자신의 어깨를 부여잡자 살짝 걸음을 멈추어 선 세실리아는 게슴츠레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겨우 20실버를 나한테 쓴 게 아깝다며?”
그는 급구 아니라는 듯 손을 휘휘 저어 보인다.
“무슨 소리를. 난 결단코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어. 지나가는 사람한테 물어봐.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지나가는 사람이 자기 생각을 어떻게 알겠냐만은 일단 세실리아는 못 믿겠다는 얼굴이다.
“아놔. 진짜라니깐. 우리 아름다운 아가씨한테는 내 전 재산을 써도 아깝지 않아. 그렇지 않으면 남자도 아니지, 암. 그렇고말고.”
일단은 순간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말까지 하는 다스가 안쓰럽기만 하다. 하지만 아름다운 아가씨라는 단어에 세실리아의 표정이 조금 풀린다.
“그렇지?”
“물론 그렇지. 하하하. 그깟 돈이 무슨 대수냐? 내가 명품이라도 다 사 주마.”
이건 폭력을 행하는 힘의 문제가 아니다. 약점이 잡혀 있는 터라 힘없는 자는 그저 피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럼 가자. 나 정말 배고프거든.”
“그래. 가야지. 얼른 가야지. 하하하.”
‘니기미. 괜히 말 꺼냈다가 약점만 잡혔다. 그래 얼마 안 남았으니 조금만 참자.’
어떻게 사람이 순식간에 이렇게 변할 수 있을까? 세실리아도 그렇지만 다스도 변신의 대가인가 보다.
그녀는 그렇게 다스의 팔을 붙잡고 끌고 간다. 모르는 사람이 보았다면 충분히 데이트를 즐기러 간다고 생각을 할 수 있지만 다스의 입장에서는 결코 이건 데이트가 아니었다.
“아! 그런데 오늘은 안 돼. 오늘은 선약이 있어.”
다스는 잠시 잊고 있던 무언가가 생각이 난 듯 갑작스럽게 손길을 살짝 거부하며 멈추어 선다.
“뭐? 선약?”
세실리아의 얼굴이 또 급격하게 굳어진다. 표정인 즉, 감히 내가 올 것을 뻔히 알면서도 선약을 잡았다는 질책의 메시지다. 여자 친구도 아닌데 왜 자신에게 그런 눈빛을 준단 말인가.
하지만 다스는 그냥 포기한 얼굴이다.
“같이 근무 서는 한스라고 알지? 저번에 내가 기사들로부터 도와주고 45골드까지 받아 줬다고 그 어머니가 오늘 식사 대접을 해 준다고 했어. 그래서 거기 가 봐야 돼.”
그제야 세실리아의 얼굴이 다시 환해진다.
“그래? 잘되었네. 나도 같이 가자.”
다스는 네가 거기를 왜 가는데. 날 좀 내버려 두고 그냥 집에 가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것을 억지로 집어 삼킨다. 이 정도 날짜면 방학도 얼마 남지 않았을 건데 괜히 내뱉었다가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키고 싶지는 않았다.
“자자, 집이 어디야, 얼른 가자. 나 배고파.”
‘작작 좀 처먹어라, 이 그지 같은 것아. 니 배 속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었기에 시도 때도 없이 먹을 것 타령이냐.’
시간 끌 것 없이 빨리 가자고 옷을 잡아끄는 세실리아, 겉보기에는 여동생이 오빠에게 놀러 가자고 졸라 대는 보기 좋은 풍경이다. 물론 다스의 심정은 전혀 그렇지 않겠지만.
혹시나 그는 오늘이 방학 마지막 날이 아닐까 싶어 지난 일주일 동안 어디에 갔었는지 은근슬쩍 물어보니.
“어머? 나 없었던 날이 그토록 심심했어? 어떻게 하지. 나 비싼 여잔데.”
순간 ‘나 이대 나온 여자야.’라는 환청이 들렸다.
‘그래 니가 미친년이 아니고 내가 미친놈이다.’
그래 물어본 다스가 미친놈이다.
그래도 스승님이 불러서 일주일간 집을 비웠다고 조금은 친절하게 설명을 곁들어 주긴 하는 것으로 보아 다스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는 건 아닌 듯하다.
그 스승이 학교 선생은 아닌 것 같은데 역시 있는 집안은 달라도 다른 모양이다. 개인 과외스승까지 따로 두다니 말이다.
‘어떤 놈이 스승인지는 몰라도 애 교육 하나 잘 시켰다. 망할 놈.’
“에이취. 누가 내 이야기를 하나?”
나이가 상당히 있어 보이지만 매우 강인한 인상에 삼국지의 관우를 연상케 하는 덩치, 그 분위기와 덩치에 안 맞게 침대에 누워 아랫도리를 벅벅 긁으며 코를 후벼 파고 있는 이 노인네.
“계속 귀가 간지럽군.”
급기야 후빈 코딱지를 떡하니 튕기더니 튕긴 손가락으로 귀를 후벼 판다.
“이건 분명 누군가 내 욕을 하고 있다는 증거인데. 어떤 죽지 못해 안달난 놈인지.”
그런데 이 노인네를 보고 있자니 이상하게도 다스의 앞날에 먹구름이 드리워지는 것이 얼핏 보인다. 이 개도 안 가져갈 더러운 운명의 장난을 어떻게 해야 하나.
“에이, 오랜만에 술이나 한잔하러 가야겠군.”
그래 희망을 잃지 말자. 아직까지 그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반대로 말하면 이것도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반증도 될 수 있지만 아직 미래는 오지 않았다.
5섹터로 북문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한스의 집을 찾는 것은 그러 어렵지 않았다. 각 섹터마다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 구역을 정해 놓기 때문에 몬타나 시티에서 길을 잃을 염려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실례하겠습니다.”
5섹터는 도심지 외곽에 있는지라 대부분 중, 하류층의 서민들이 살아가는 곳이다. 눈앞에 보이는 한스의 집만 하더라도 상당히 오래되고 낡은 건물로 썩 넉넉하지 않다는 것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그래도 이런 집이라도 있는 게 어딘가. 다스는 이런 집조차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도심지의 집값은 거의 몇 천 골드 혹은 수만 골드를 넘어 가기도 하지만 외곽의 허름한 집은 400골드 정도로 만약 옆에서 쫄래쫄래 따라오는 이 꼬맹이만 아니었어도 200골드 포함, 지금까지 모은 돈과 합해서 이런 집을 하나 장만까지는 힘들어도 희망을 가질 수는 있었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세실리아가 아니었으면 200골드라는 돈을 그렇게 쉽게 받고 쉽게 합의를 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니, 그 정도까지는 인정을 안 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