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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타나의 경비병 1(22화)
7장 유부녀? 미망인?(4)
“엄마, 나 다녀왔어요. 그런데 누나가 나 부른 적 없었다고 하던데. 어떻게 된 일이에요?”
집으로 돌아온 한스가 가장 먼저 본 것은 치마 아래로 드러난 매끈한 한쪽 다리를 떡하니 의자 위에 올린 채 담배를 뻑뻑 피워 대는 엄마인 미라의 모습이었다.
“엄마?”
한스가 다시 부르자 미라는 담배를 문 채로 그에게 시선을 돌린다. 담배 연기에 가린 엄마의 표정을 들여다보자니 매우 기분 나빠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갑자기 왜 이러는지 이유는 알지 못했다.
“아들.”
“네?”
“너 한 번만 더 그딴 자식 집으로 끌고 오면 엄마한테 맞는다.”
도무지 무슨 의미인지도 짐작을 하지 못한 한스는 고개만 갸웃거릴 뿐이다.
“그런데 다스 조장님 안 오셨나요? 이미 오시고도 남을 시간인데.”
다스라는 이름이 튀어나오자 미라의 표정이 확 구겨진다.
“아들, 너 그딴 자식 이름 입에도 꺼내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해야겠니?”
“네?”
그런 말 한 적이 없는데요. 라고 반박을 하려다 한스는 얼른 입을 다문다. 엄마를 비롯해 누나까지 이 집안 여자들이 얼마나 무서운지 이미 한스는 몸으로 체험을 하고 있었기에 본능적으로 입을 다문 것이다.
“그 가난뱅이 자식, 45골드를 줬기에 혹시나 45골드 정도는 돈 같지도 않게 여기는 부잣집 아들내미인 줄 알았더니, 뭐야 이게. 넌 어떻게 되어 먹은 놈이기에 그딴 자식을 집으로 끌고 오는 거니?”
한스는 황당해한다. 자신이 언제 집으로 끌고 왔다는 것인가? 45골드를 받았을 처음부터 흥미를 가지며 꼭 한 번 초대를 하라고 한 것은 엄마가 아니었던가.
“아휴. 재수 없어.”
결국 미라는 담배마저도 집어 던져 버리더니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처음부터 상황을 보지 못한 한스는 엄마가 갑자기 왜 저러나 싶어 한참을 고민해 보지만 아무리 고민을 해 봐야 답은 나오지 않았다.
미라의 석연치 않은 행동, 이 행동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쉽게 짐작할 것이다. 다만 한스의 표정으로 보아 이것이 미라의 평소 행동인 듯한데, 이런 부모 밑에서 한스가 이렇게 순진하게 자랐다는 것 자체가 불가사의한 일이다.
전에 기사를 패면서 잠시 내보였던 눈빛으로 보아 속에 강렬한 파괴적인 본능을 꾹 숨겨 두고 있다는 것만 조심스럽게 짐작할 뿐이다.
* * *
보통 서민들의 저녁 식사 시간은 왁자지껄하다. 그 식사 시간은 화목을 다지는 소중한 자리로 가족들 간의 대화가 이루어지며 오늘 하루 일과를 마무리 짓는 자리이기도 하다.
화목한 가정일수록 특히 저녁 식사 시간이 긴 것은 이미 연구를 통해 밝혀진 바이다. 저녁 식사 시간이 길다는 것은 대화가 많이 이루어진다는 의미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그만큼 가족들 간의 끈끈한 정이 더 깊어지는 것이다.
반면 귀족들은 그런 서민들의 일반적인 풍경을 품위가 없다고 생각한다. 식사란 무릇 예의범절이 매우 중요한 자리로 조신하게 그리고 조용하게 끝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관념이다.
식사 예의범절이라는 교육이 있을 정도로 식사는 규범적이고 규칙적이며 또한 먹는 방식도 상당히 복잡하다. 그런 규율을 따르지 않는 자들은 당연히 스스로들이 천대하는 하층민으로 취급받기 마련이다.
지금 식사를 하는 한 가족의 풍경만 봐도 그렇다.
귀족 특유의 체신을 고려한 듯 상당히 길고 넓은 깨끗한 식탁 테이블 위에서 식사를 하는 4인의 남녀, 그들은 숨소리조차 내지 않은 채 조심스럽게 고기를 썰고 입에 집어넣는 기계적인 행동만을 하고 있다.
간간이 뒤에서 일을 하는 하녀들이 따라 주는 와인을 곁들이며 와인 맛이 마음에 드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것이 전부다. 그리고 뒤에서 조용히 식사를 지켜보고 있는 하녀라는 직책도 신분제가 무너지면서 이제 직업이 되어 버린 지 오래라 모두 일정의 월급을 받고 일을 하는 일반인 즉 서민들이다.
두 명의 중년 부부와 그들의 딸로 보이는 두 여인, 그들은 단 한 마디도 나누지 않은 채 숨 막히는 식사를 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어떻게 밥이 넘어가는지도 신기할 정도다. 게다가 사람은 겨우 4명인데 식탁은 너무 넓어 도무지 가족 간의 식사라고는 볼 수가 없을 만큼 삭막했다.
“세실리아, 며칠 만에 이렇게 같이 저녁 식사를 하는구나.”
그 적막함을 살짝 깬 이는 가장 상석에 위치한 중년의 남자였다. 세실리아는 조용히 식사를 하다 말고 고개만 살짝 든다.
“이제 곧 방학이 끝나 가는 터라 조금 머리도 식힐 겸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어요. 문제가 있다면 나가지 않겠어요.”
별다른 감정이 담겨져 있지 않은 너무도 무미건조한 목소리에 중년의 남자는 내심 작은 한숨을 쉬지만 표현은 하지 않는다.
“아니다. 이제 곧 돌아갈 때가 되었으니 기분도 풀 겸 그렇게 해도 좋다.”
“감사합니다. 아버님.”
다스가 항상 조막만 한 건방진 깡패 꼬맹이라고 속으로 욕을 하는 소녀 세실리아, 그런데 지금 그녀의 행동은 평소에 보기 힘든 행동인 것만은 분명하다. 게다가 다스와 밥을 먹을 때는 그의 것까지 자주 뺏어 먹기도 했다.
한스네에서 잠시 이런 모습을 보인 적이 있긴 하나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그렇게 다시 식사 시간의 침묵이 흐른다. 정말 바늘 하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정도로 고요하고 적막하다.
“세실리아, 그것은 생각해 보았느냐.”
그녀의 아버지가 다시 세실리아에게 조용히 질문을 던지자 지금껏 무표정하게 있던 세실리아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진다.
“이 애비는 교르제 가의 그가 마음에 상당히 든다만은, 너는 그렇지 않느냐?”
“다시 한 번 말씀드리자면 아직은 시기가 아닙니다. 또한 그동안 만나 본 전부가 솔직히 마음에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교르제 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의 대답에 이번에는 아버지의 표정이 살짝 굳어진다.
“너도 알다시피 네 언니는 마법사로 국가적 보호를 받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네가 가장 먼저 우리 가문을 이을 2세를 낳아야 한다. 그리고 넌 올해 안으로 무조건 약혼을 해야 한다.”
아직 15세밖에 안 된 세실리아에게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지만 귀족들에게 후사는 매우 중요하다. 아직까지 남자들이 가문의 뒤를 잇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딸만 있는 가문에서는 빠르게 데릴사위를 들여 후사를 도모하려 한다.
“아버지, 아직 성인이 되려면 2년이 남았습니다. 조금 더 만나 보고 그 사람에 대해 알아보면서 그 문제를 생각해 봐도 크게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단호했다.
“네가 방학이 끝나기 전까지 지금까지 만나 본 여러 곳의 결혼처 중 한 곳을 결정하지 않는다면 나의 결정에 따라 교르제 백작가와 약혼을 추진하겠다. 결혼은 정확히 네가 성인식을 치르는 그날에 올리도록 한다.”
세실리아는 아버지의 강압적인 태도에 화가 나는지 입술을 부르르 떤다. 옆에 앉아 있는 이리아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 보이나 아버지가 너무 확고하신 터라 자신으로서는 어떻게 도와줄 방도가 없었다.
“여보, 이 아이의 마음도 조금 헤아려 줄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아니 당신 그게 무슨 소리란 말이오. 당신도 우리 가문의 후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지 않소.”
다행히도 그녀의 어머니가 중재에 나섰지만 아버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다만 매우 부드러운 성격의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에게 살짝 미소를 지으며 시선을 세실리아에게로 돌린다.
“리아아, 너도 알겠지만 우리에겐 아들이 없단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언니를 대신해 네가 결혼을 먼저 해서 후사를 두는 방법밖에 없다.”
원래라면 이 강요는 언니인 이리아에게 먼저 적용이 되어야 했으나 그녀는 마법사다. 마법사는 중요한 국가적 재산으로 비록 부모라 할지라도 결혼을 포함 그녀의 사생활적 문제를 함부로 강요할 수 없었다.
게다가 마법사라는 존재 자체가 매우 귀하고 재능을 가진 자가 소수이기 때문에 가문에 마법사가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가문의 영광이나 마찬가지다.
또한 마법사는 보통 혼자 살거나 혹은 매우 늦게 결혼을 하는 것이 정설이다. 그래서 이미 마법사로서 가문을 빛내고 있는 이리아에게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따지면 자신도 기사로서 그 누구보다 뛰어난 인재다. 하지만 솔직히 몬타나에서 길에 치이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기사는 상당히 많은 편이다. 모두 국가 소속으로 중앙기사단으로 모이다 보니 엄청난 수가 되는 건 당연하다.
그러한 만큼 기사는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보인다고 할지라도 마법사에 비견되지 못한다.
노력만으로는 결코 아무나 될 수 없고 재능이 매우 중요한 마법사라는 직위 자체는 국가의 보호를 받는 고급 공무원이다.
아무래도 누구나 피나는 노력만 한다면 경쟁을 뚫고 높이까지는 바라보지 못하더라도 기사라는 명함은 건질 수 있는 만큼 마법사와 기사의 대우 차이는 당연하다고 봐도 된다.
다만 세실리아의 경우는 상당히 특이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마법사와 같은 예외는 없었다.
“하지만 너는 내 소중한 딸이란다. 이 어미도 네가 싫은 결혼을 강요하고 싶지는 않구나.”
“아니 당신 그게 무슨 소리요.”
아버지가 버럭 목소리를 높였지만 어머니는 아버지를 지그시 바라보며 잠시만 조용히 있으라는 무언의 신호를 보낸다. 그리자 아버지는 끄응 하는 신음 소리를 냈다.
“혹시 우리가 정해 준 이들 외에도 생각해 둔 남자가 있느냐?”
투정이 심한 아이를 달래듯 어머니의 목소리는 매우 차분했다.
“으음.”
세실리아는 고민을 한다. 보아하니 없는데 억지로 떠올리려는 듯한 표정이다.
“생각해 둔 남자가 없다면 나도 어쩔 수 없단다. 너도 잘 알지만 귀족들의 혼사는 특히 남아가 없는 우리 가문의 경우는 그렇게 시간을 두고 쉽게 생각할 것이 아니란다. 만약 생각해 둔 남자가 있다면 이 어미가 한 번 만나 볼 요량도 있단다.”
세실리아는 매우 심각한 고민을 하는 빛이 역력했다.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딱히 떠오르는 이가 없는 듯하다. 하지만 여기서 지고 나갔다가는 바로 이 자리에서 그 싫은 놈들 중 한 놈과 혼처가 정해져 버릴 것만 같았다.
정말 그건 죽어도 싫었다.
“없느냐? 그러면 나도 어쩔 수가 없구나.”
어머니가 고개를 돌리자 세실리아는 급한 마음에 이내 결심을 한 듯 입술을 꽉 깨문다.
“아니요. 있어요. 생각해 둔 남자가 있어요.”
그녀의 폭탄 격인 발언에 이리아를 비롯해 아버지 또한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다만 어머니만은 흥미로운 눈길로 주시할 뿐이다.
“그래? 정말이냐?”
“네.”
“능력이 있다는 귀족들의 자제들도 다 싫다고 한, 너처럼 뛰어난 아이가 점찍어 둔 남자라니, 대단한 남자인가 보구나. 학교 학생이나 선생이냐?”
“아니에요.”
세실리아의 학교가 제국 최고의 명문 학교인 만큼 교내에도 선생이든 학생이든 상당히 능력이 있고 잘난 귀족들이 많은 편이다. 또한 그녀에게 다가오는 이도 상당히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이리아와 그녀의 부모님은 당연히 학교 인물일 거라고 생각했다.
아버지 또한 그 정도면 충분히 인정할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아니란다.
“그래? 그건 좀 의외구나.”
세실리아가 순간적으로 막 떠올린 그 대단한 남자. 뭐 어떤 면에서는 대단하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제가 충분히 인정을 한 남자입니다.”
그래 어떤 면에서는 인정을 하긴 했다. 그 어떤 면이라는 게 조금 좋지 않은 쪽이라서 문제긴 하지만 말이다.
“흐음.”
세 명 다 잠시 침묵을 지킨다.
과연 그 남자가 누굴까? 세실리아와 대화를 가장 많이 하는 이리아조차 그 남자가 누구인지 짐작하지 못했다. 학교 내에서도 별 볼일 없는 놈팽이들만 가득하다고 항상 불만이 가득하던 그녀였다.
이리아의 입장에서는 남들에 비해 뛰어난 세실리아가 그런 불만을 가지는 것도 이해를 한다. 자신도 그러한 면이 없지 않아 있기 때문이다.
‘누굴까? 혹시?’
동생이 최근 들어 자주 외출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왜 외출을 하는지 말을 해 주지 않았기에 무엇을 하고 다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다만 그와 관련되지 않았을까 내심 짐작해 본다.
“호오. 네게 인정이라는 말을 들은 그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궁금하구나. 이 어미도 한 번 만나 보고 싶구나. 당신도 그렇지요?”
어머니가 아버지를 바라보자 아버지는 그저 헛기침만 할 뿐이다. 솔직히 가문이라는 굴레 때문에 딸아이에게 강요를 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는데 마음에 두고 있는 남자가 있다고 하니 매우 궁금하기도 했다.
거기다 딸아이가 인정을 했다는 것은 그만큼 뛰어난 사람임을 반증하지 않는가. 가족 모두는 세실리아가 눈이 상당히 높다고 짐작을 했기에 기대감에 부푼다.
“그럼 언제 한번 집으로 초대를 하거라. 일단 네가 마음에 든다고는 했지만 우리도 한 번 만나 봐야 하지 않겠니?”
하지만 세실리아는 망설인다.
‘아! 어쩌지?’
세실리아는 괜히 그 말을 뱉은 자신을 후회한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알겠어요. 조만간 제가 데리고 올게요.”
“그런데 뭐하는 남자니?”
“기…… 기사예요.”
결국 거짓말까지 해 버리고 만다.
“그래? 기사라니 나쁘진 않구나. 호호. 그럼 식사를 마저 하자.”
거짓말까지 해 버린 세실리아의 표정이 점차 굳어 가며 걱정으로 변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