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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타나의 경비병 1(23화)
7장 유부녀? 미망인?(5)
세실리아가 말한 그 남자, 누군지 짐작이 간다.
그래 바로 다스다. 그런데 정말 그가 세실리아가 인정한 남자일까? 지금 그녀의 표정만 봐도 절대 아니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솔직히 어느 면에서는 인정을 한 것도 사실이긴 하다. 자기 계산이 정말 빠른 자로 말이다.
그런데 왜?
당연히 그냥 홧김에 내뱉은 말이고 남자를 만나고 다니는 것도 아닌 그녀가 딱히 떠오르는 남자는 다스밖에 없었다. 물론 호기심에, 친구가 없는 그녀가 함께 있으면 재미있기 때문에 항상 다스를 찾아간 것이지 아직까지는 크게 별다른 감정은 없었다.
굳이 표현을 하자면 친구 정도일까? 다스는 절대 인정하지 않을 테지만.
그 순간에 떠올랐다고 그에게 깊은 수준의 관심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 최근 들어 가장 많이 보았고 심심치 않은 방학을 보내게 해 주었으니 머릿속에서 떡하니 그가 생각나는 것은 당연했다.
‘아! 어쩌지? 남자라고는 그놈밖에 없는데. 정말 그놈을 보여 줘야 하나?’
고민이 되는 것도 당연하다. 겨우 성문 경비에 가진 것 하나 없는 가난뱅이인 다스를 어떻게 소개를 시켜 준단 말인가. 최소 정기사라도 된다면 체면이 살지도 모르나, 결국 그녀가 기사라고 했던 것도 거짓말이 아닌가. 이건 좀 심각했다.
‘에이씨, 몰라. 이왕 이렇게 된 거 끝까지 강하게 밀어붙이는 거야. 분명 피를 토하고 차라리 죽이라고 드러누울 게 뻔한데. 어떻게 설득을 해야 되지?’
그녀도 알고 있다. 지금까지 다스가 꾹꾹 참고 있다는 것을, 그래도 여자 입장에서 억지로 나오는 그의 모습에 살짝 자존심이 상하긴 한다.
그러니 분명 이 부분 대해 말을 하면 차라리 혀를 깨물고 죽겠다고 할 것이 뻔하다. 물론 세 가지의 약속 중 하나를 쓰는 방법도 있겠지만 이건 경우가 다르다.
이럴 경우 필시 세 가지고 지랄이고 간에 차라리 죽어 버리겠다고 칼을 물지도 모른다.
‘이런 경우 강공법은 안 통할 것 같고. 흠, 그래 분명 방법이 있을 거야.’
세실리아의 입장, 어떻게 해서든지 그녀는 다스를 이번 일에 끌어들여야 한다. 그리고 이번 방학이 끝날 때까지만 이 상황을 어떻게든 모면해야만 했다.
그리고 학교로 돌아가서 어느 정도 짱 박혀 나오지 않으면 그만큼 시간을 더 벌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절대 그 변태 같은 교르제 가 놈이랑 결혼을 할 수 없어.’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지금까지 쌓인 게 많은 그가 도와줄 것 같지가 않았다. 솔직히 조금 심했다는 것은 인정을 했다.
남들과 너무 비교되는 자신으로 인해 친구가 없는 그녀가 어린 마음에 함께 있으면 심심하지 않고 행동 하나하나가 그렇게 재미있는 다스를 쉽게 놓아 줄 수는 없는 일이다.
‘아씨, 그런데 도무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이미 맺힌 게 많은 다스를 끌어들일 방법이 보이질 않는다.
처음 보는 세실리아의 안절부절못하는 모습, 그녀는 차라리 다스가 낫다는 생각까지 한다. 교르제 가의 남자가 싫기는 정말 미치도록 싫었나 보다.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다스와의 입장 차이가 살짝 바뀔 것만 같은 다스에게는 희소식이 될 수도 있는 좋은 예감이 든다.
자, 이 희소식을 얼른 전해 주러 가자. 그런데 어떻게 전해 주지?
“에이취.”
오랜만에 식충이가 일찍 집으로 돌아가 병영 식당에서 느긋하게 저녁을 먹던 다스는 갑작스럽게 기침을 한다. 게다가 귀까지 간지럽다.
“아씨, 누가 내 얘기 하나?”
계속 기침이 나오고 귀가 간질거리자 대충 식사를 마친 다스는 식당을 나왔다. 그런데 그가 식당을 나오자마자 지금까지 쏟아져 내리는 빗줄기가 갑자기 떡하니 멈추어 선다.
“엥, 비가 오더니 갑자기 비가 그치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엄청난 빗줄기와 함께 천둥번개까지 동원이 되었다. 그런데 식당에서 한 걸음을 떼는 순간 비가 거짓말처럼 뚝하니 그치는 것이 아닌가?
날씨에 크게 신경 쓸 그가 아니기에 그냥 그러려니 하며 비옷을 둘둘 말고 병영으로 터벅터벅 걸어간다. 그리고 다스가 그리 멀지 않은 병영에 도착해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쏴아아아!
그가 의아해하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살짝 발을 밖으로 내밀어 보자 비가 거짓말처럼 그친다. 그리고 다시 안으로 집어넣자 비가 다시 쏟아져 내린다.
절대 누가 일부러 그러지 않는 이상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 그도 황당했는지 하늘을 슬쩍 올려다본다.
“에이씨. 재수 없게. 이놈의 날씨가 미쳤나?”
분명 나름 희소식을 전해 준 것 같지만 그는 인상을 쓰며 욕지거리를 내뱉는다.
그런데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다시 한 번 언급한다. 이곳은 모든 꿈과 환상이 현실이 되는 유라시안 대륙이다. 겨우 이 정도에 황당해할 필요는 없다. 원래 이곳은 이런 일은 일상이니깐 말이다.
8장 기회를 잡았을 때 쪽쪽 빨아먹어야 한다(1)
꿈과 환상의 세계는 결국 지옥일 것이라는 말을 얼핏 들은 적이 있다. 이유는 뭘까?
인간들이 환상에 대해 꿈을 꾼다. 그리고 현실의 압박감을 벗어날 수 있는 통쾌한 또 다른 환상을 갈구한다. 그 환상 속에서 그들은 때론 영웅이 되기도 하고 악당이 되기도 하며 현실 속에서는 나올 수 없는 기묘한 상상의 생물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신나는 꿈과 모험의 판타지 만화를 보고 있으면 정말 꿈만 같지 않나? 저 속에 뛰어들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나?
그런데 막상 뛰어들었다고 치자. 어떤 상황이 펼쳐질까?
주변에서는 살려 달라고 울부짖는 모습이 보이고, 옆에서는 괴물이 튀어나오며, 앞에서는 사람이 갈려 죽어 나간다. 또한 머리 위에서는 폭격기마냥 괴상한 비행물체들이 날아다니고, 침을 질질 흘리는 덩치 큰 육식 몬스터들이 우리를 보며 입맛을 쩝쩝 다시고 있다.
이건 뭐랄까? 진짜 막장이 아닐까?
게다가 배경 속에서는 뭔 놈의 싸움이 그렇게 자주 일어나고 마왕, 혹은 몬스터들이 자주 몰아닥치는지, 정말 저게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인가 싶을 정도다.
우린 간간이 만화, 십 년이 지나도 초등학생인, 시간이 멈춘 명탐정 코난이나 소년 탐정 김전일을 보며 저런 악운을 몰고 다니는 인간의 곁은 가지도 말라고 충고한다. 어떻게 한 사람에게서 강력계 형사가 평생 처리하는 강력 살인 사건보다 더 많은 살인사건이 일어날 수가 있는지, 이해 불가능할 정도로 대단하다.
그런데 판타지의 주인공은 악운을 몰고 다니는 스케일 자체가 다르다. 이건 한 명, 두 명 죽어 나가는 정도가 아니라, 그 주인공이 등장을 했다 하면 초대형 블록버스터를 자랑하듯 떼거지로 죽어 나간다.
역시 판타지 주인공의 스케일이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라면서 말이다.
손에는 무슨 마계의 문을 열어 주는 자동문이 달렸는지 가는 곳마다 마족들이 나타나고 마왕들을 나타나며 혹은 그에 버금가는 나쁜 놈들이 나타난다.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하루도 거르는 날이 없다.
참 피곤한 인생이지만 이것이 이 어리석은 다스가 꿈꾸는 세상이다. 물론 그딴 것들쯤 한 방 거리로 날려 버릴 수 있는 주먹이 있을 경우에 말이다.
지금은 결코 아니겠지?
“안 돼.”
은은한 향기의 크림 수프를 한 스푼 뜨던 다스는 숟가락을 내려놓고는 냉정하게 세실리아의 말을 끊어 버린다.
“그러지 말고, 한 번만 도와주라. 응?”
요것이 평소에는 절대 하지 않을 애교짓거리까지 한다. 이 모습을 보고 있던 몇몇 손님들은 그녀가 귀엽다고 헤하고 있지만 다스를 그런 밥만 먹고 나가는 엑스트라 1, 2, 3번과 비교하면 안 된다.
“절대 안 돼.”
그래 절대 안 된다. 이게 말이 될 법한 소린가?
처음에는 오늘 애가 웬일로 지가 쏜대서 이것이 날이 더우니깐 살짝 돌았나 싶었다. 혹시 더위 먹었나 싶어 이마까지 만질 뻔했다.
그런데 한다는 말이 뭐? 세실리아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다스에게 별다른 거짓 없이 이야기를 했다는 정도만 알면 굳이 무슨 말을 했는지 설명을 안 해도 되리라.
“한 번만 도와줘. 나 진짜 싫단 말이야.”
“그래도 절대 안 돼.”
“야! 우리가 그동안 쌓아 온 정이 있잖아.”
그래 정, 광고에서 자주 말하는 시커먼 덩어리를 건네기만 하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는 그 정, 그런데 다스는 원래 말하지 않으면 그딴 거 모른다. 그딴 시커먼 덩어리를 받고 ‘아! 이것이 정이구나.’라고 외칠 미친놈이 아니다.
이게 돌았냐면서 면상에 시커먼 덩어리를 집어 던지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응? 뭐라고? 정?”
“우리가 함께 보내 온 정을 생각해서 좀 도와줘.”
“난 말하지 않아서 몰라. 아니 말해도 그딴 거 몰라.”
무슨 의미인지 몰라 고민을 하는 세실리아를 내버려 둔 채 다시 숟가락을 들고 수프를 뜬다. 그에 세실리아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더니 열심히 머리를 굴린다. 또르르 하는 머리 굴러가는 소리가 다스에게까지 들릴 정도니 말 다 했다.
“야!”
일단 방법 한 가지를 생각했는지 그를 부른다.
“왜?”
당연히 다스는 별 성의 없이 대답하며 고개를 든다. 그러자 세실리아가 숟가락을 들더니 두 손으로 비틀어 꼬아 버리는 것이 아닌가. 이게 아무리 은이라지만 무슨 엿 가락도 아니고 순식간에 숟가락은 꽈배기가 되어 버린다.
“정말 안 도와줄 거야?”
엄연한 협박이다. 과연 협박이 통할까?
“그 숟가락 니가 힘자랑 한다고 구겼으니 그 돈도 니가 내라.”
다스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
그래 협박을 하더라도 상황을 봐 가며 해야 하는 거다.
“너 내가 중앙기사단 가서.”
“맘대로 하시던지. 그 짓을 할 바에 차라리 감옥에 가는 게 낫지.”
정말 오랜만에 다스가 대차게 나온다. 그도 이번만큼은 정말 죽어도 하기 싫긴 싫었나 보다.
“끄응.”
결국 최후의 협박까지 통하지 않자 세실리아는 작은 신음성을 내며 고개를 푹 숙이고 의기소침한 채 수프를 뜬다. 물론 그런다고 눈길 하나 줄 다스가 아니지만 말이다.
“잘 먹었다. 야! 잘 먹었다. 오늘 저녁까지 먹었으니 그만 헤어지자. 나 간다.”
어차피 얻어먹은 거 더 이상 볼일이 없다는 다스가 벌떡 일어나자 아직 반도 먹지 않은 세실리아 역시 뒤따라 벌떡 일어난다.
“아씨! 야, 그냥 가기야? 정말 우리의 그동안 정이 이것밖에 안 돼?”
“정분난 사이도 아닌데 무슨 정 타령? 너와 나 사이에 무슨 정이 있다구?”
나름 통쾌한 듯 다스는 그녀를 무시한 채 휘파람에 노래까지 부르면서 나간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 네 마음속에 있다는 걸.”
그가 나가는 모습에 세실리아는 안절부절못했다. 그리고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그 변태 같은 교르제 가 놈과 한 침대에서 한 이불을 덮고 자는 모습이다. 생각만 해도 온몸에 벌레가 기어가는 듯 소름이 쫙 돋았다.
급기야 다스가 사라지자 그녀는 고민할 것도 없이 따라 나갔다.
“그거 세 가지 중 하나로 하자.”
“안 해. 세 가지고 지랄이고 간에 어차피 막나가는 인생 니 마음대로 해.”
순간 울상이 되는 것으로 봐서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까지일 줄은 몰랐나 보다.
하지만 입술을 꽉 깨물던 세실리아는 다스조차도 고민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최후의 일격을 가한다.
“그 한 가지 받고 하프로 150골드 추가.”
우뚝.
순간 다스는 자신도 모르게 ‘콜!’을 외칠 뻔한 돈만 밝히는 저주스러운 주둥이를 억지로 부여잡는다. 다만 본능적으로 멈추어 선 발걸음만은 어쩔 수가 없었다.
세실리아는 그가 고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쾌재를 부른다.
“어때? 다이야? 콜이야?”
잠시 다스의 앞모습을 바라보자. 입술을 꽉 깨문 모습, 그리고 무언가 열심히 계산을 하는 듯 고민이 역력한 얼굴.
‘150골드, 150골드, 150골드.’
지금 머릿속은 150골드라는 단어로 가득했다. 저런 건 말이 안 된다는 의식과 하루 잠시 말을 따라 주면 사라져 간 150골드가 내 수중에 들어올 수 있다는 두 가지 의식이 맞서 싸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