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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백문 1(5화)
2장. 시작되는 비극(2)


“포박할까?”
“뭐, 이 조그만 녀석이 무슨 힘이 있다고. 어차피 곧 죽을 놈이니 그때까지 몸이라도 편하게 두지.”
‘죽어? 내가?’
앞서 가는 두 사내의 대화를 듣던 백문은 저절로 다리가 풀리는 것만 같았다.
만약 뒤쪽에서 창극을 세운 채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관병들이 아니었다면 진작 쓰러졌을지도.
“꼬마 귀신아, 아직도 모르겠냐?”
“예! 전혀요.”
말을 걸던 사내의 입이 벌어지며 누런 이가 번들거렸다.
“마교(魔敎).”
두근거리던 백문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다가 이내 차갑게 식어 버렸다.
“네 아비가 수십 년간 황제 폐하의 백성들을 기만(欺瞞)하여 사술에 물들게 했음을 부인하는 게냐?”
아주 예전부터 자신들이 믿고 따르는 진리가 세속으로부터 배척받아 온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백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몇 십 년도 더 이전의 일.
대대적인 탄압은 백문이 태어나기 훨씬 전을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없었다고 들었다.
그럼에도 대놓고 교세를 전파하는 것에 늘 조심스러워했던 것도 사실이다.
포교행(布敎行)은 아버지가 아닌 다른 이들이 행할 일이었고, 아버지는 그저 귀한 학문을 전해 세상을 밝힐 인재들을 양성한 것이 다였다.
“백 처사라고 한다지, 네 아비? 그놈이 키워 세상에 뿌려 놓은 수많은 마종들이 황제 폐하의 은혜를 부정하고 백성들을 현혹시켰다. 자비로우신 황상께서도 더 이상 나라가 사교에 물드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으셨던 게야.”
“그런 적 없습니다.”
차분하게 대꾸하는 백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모두의 발걸음이 멈췄다.
싸늘해진 분위기에 맞추듯 스산한 바람이 주변을 감돌았다.
“다시 지껄여 봐라.”
“그런 적 없다 했습니다.”
“허!”
사내의 얼굴에 짜증이 가득했다.
이 조그만 귀신이 무얼 믿고 저리 당당할까 하는 표정으로.
“확! 그냥 여기서 베어 버릴까?”
“아서라. 백성들에게 본보기가 되게 하려면 내일까지는 살려 둬야 하니.”
말리는 다른 사내의 눈에도 동정이나 연민 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제 아버지는요?”
그러나 무엇보다 아버지의 안위(安危)가 궁금한 백문이다.
“벌써 형옥(刑獄)에 들어간 지 오래다. 숨어 있던 마귀 새끼들 여럿과 함께.”
으득!
작은 입에서 이가 갈리는 소리를 들은 사내가 이맛살을 구겼다.
“저는 왜 형옥으로 압송하지 않습니까? 당신들의 말대로라면 저도 마귀 새끼일 텐데요.”
“넌 다른 고을로 갈 것이야. 아마 그곳에서 처형(處刑)되겠지.”

* * *

죽음이 두려운 것일까.
아니다.
순교(殉敎)는 신의 축복.
누구나 기쁘게 받아들여야 할 신의 부름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몸이 떨려옴과 동시에 눈물이 났다.
짧은 고통 후에 펼쳐질 영원한 은총을 생각한다면 당연히 웃고 있어야 할 텐데.
왜 이리도 서글프고 가슴이 무겁게 느껴지는 것일까.
아버지와 마지막을 함께하지 못한다는 서운함 때문인가.

“얼마나 먼 곳으로 저를 데리고 가시려고요?”
피워 놓은 불의 온기에 몸을 녹이던 관병이 멀뚱하게 백문을 돌아보았다.
다른 이들은 모두 잠든 야심한 밤.
나무에 묶여 있는 백문과 그를 감시하는 병졸 하나만이 별빛을 받으며 깨어 있었다.
“모른다. 꽤 멀리 가야 할 듯하구나. 너 같은 아이들이 많다고 들었다. 하여 중원 각지에 있는 큰 도성으로 보내 거기서 처리한다는구나.”
몰래 교를 믿던 많은 고을 사람과 가족들.
그들 대부분은 그곳에서 순교하겠지만 백문과 같은 어린아이들은 먼 곳에서 보다 더 끔찍하게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몇 살이냐?”
“올해로 열입니다.”
“흠, 내 자식보다 어리구나. 쯧쯧…….”
교대 전의 병졸과는 다르게 이자는 자신에 대해 동정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어쩌다 그런 사교에 빠져서 이런 꼴을 당하누. 하나 누구를 원망하겠느냐. 너나 다른 아이들은 단지 못난 부모를 둔 것뿐일 텐데.”
“전 어떻게 죽습니까?”
순간, 병졸의 말문이 막혔다.
이 아이에게 무슨 고통이 올지 잘 알고 있다는 듯.
“참수(斬首)인가요, 아니면 요참(腰斬)? 거열(車裂)?”
“헐, 어린것이 어찌 그런 것들을 알고 있을꼬.”
그는 한참이나 어두운 표정을 짓다가 곧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나중에 때가 되면 형리(刑吏)가 네 입에 마비산(麻沸散)을 넣어 줄 게야. 그럼 고통은 많이 없을 것이고.”
병졸은 직접적인 부분은 회피했다.
대체 얼마나 두려운 형벌이 예정되어 있기에…….
주변을 쭉 둘러보던 백문의 눈에 갑자기 생기가 돌았다.
그 머릿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잠시 무언가를 고민하던 백문은 이윽고 입을 열었다.
“저…… 어르신.”
“왜?”
“대변이 보고 싶습니다.”
뜻밖의 말에 백문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병졸이 이내 입을 열었다.
“거, 먹은 것도 없는 것이. 쯧쯧.”
“이 자리에서 실례를 해도 될까요?”
“아니다.”
병졸이 일어나 백문을 묶어 놓은 포승을 풀었다.
혹여나 아파할까 부드럽게 줄을 푸는 그의 손길에 미안한 감정이 생겼다.
“저기 안쪽 숲으로 들어가자. 더 멀리는 못 간다.”
“예.”
병졸은 백문을 앞장세우며 다른 이들이 깰까 봐 조심스레 이동했다.
“그래, 거기. 거기가 적당하겠다.”
“조금 더 들어가면 안 되겠습니까? 비록 이런 처지이지만 학문을 닦은 생으로서 다른 분들께 불쾌감을 주는 것은 예에 어긋난다고 생각합니다.”
차분히 말하는 백문을 보며 안타까움이 담긴 시선을 보내는 병졸이었다.
저렇게 어리고 예의에 밝은 아이가 마교를 섬긴다는 이유로 비참하게 죽어야 한다니.
“휴우…… 그러려무나. 그럼 저쪽 나무 뒤로 가거라. 내 여기서 지켜볼 테니.”
“감사합니다.”
배를 살살 만져 보인 백문이 웬만한 아이보다 큰 둘레의 나무 뒤로 움직였다.
바지를 내리고 쭈그려 앉는 백문을 바라보던 병졸은 어떠한 이상함도 느끼지 못한 채 고개를 살살 흔들며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끙.”
힘을 주는 소리.
그제야 병졸은 더욱더 안심하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살살 풍겨 오는 변의 냄새.
잠시 후, 백문의 말소리가 병졸의 귀에 들려왔다.
“어르신, 죄송하지만 천 조각 하나 얻을 수 있겠습니까?”
“이그, 변 보러 가는 놈이 그런 것 하나 준비 안 했나.”
“처지가 처지인지라…….”
투덜대면서도 병졸은 품속에서 누런 헝겊 조각을 꺼내 백문에게 다가왔다.
“예 있다.”
병졸이 코를 막고 다른 손으로 헝겊을 건네려는 순간, 백문의 눈이 빛났다.
턱!
“커흡!”
작게, 그리고 아주 짧게 터진 병졸의 숨넘어가는 듯한 소리.
부들부들 떨리는 얼굴이 천천히 숙여져 자신의 명치를 향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병졸의 명치에는 끝이 뾰족한 돌멩이가 정확히 꽂혀 있었다.
백문은 죄책감에 연신 중얼거렸다.
털썩 쓰러지는 병졸.
죽지는 않을 테지만 한동안은 쉬이 정신을 차리지 못할 것이다.
혹시나 했던 생각이 맞았다.
상대는 자신에 대해 완전히 방심하고 있었다.
어리다는 것이 이럴 때는 훌륭한 무기가 되었다.
게다가 자신은 꽤 오랫동안 신체 단련을 해 오지 않았던가.
악요의 엄한 교육이 효과를 발휘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은 일단 살아남아야 한다.
얼핏 듣기로 난적(亂賊)의 죄는 평생을 따라간다고 했다.
그만큼 나라에서 집요하게 추적을 할 것이라는 뜻.
언젠가는 잡혀 목숨을 잃게 되더라도 지금은 아니었다.
아버지…… 아버지를 뵈어야 했다.
신께서는 순교라는 축복 어린 죽음을 주셨지만, 그것을 자신의 마음 깊이 받아들이기에는 인세의 추억이 너무나도 깊은 탓이다.
고을로 되돌아간다면 누군가 필히 백문을 알아볼 것이다.
그 누군가가 나쁜 마음을 먹는다면 무조건 죽음이다.
하지만 백문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생각은 그저 아버지의 모습을 한 번이라도 보게 해 달라는 간절함뿐.
아버지의 그 인자한 눈동자와 마주한다면 온몸이 분해되어 흙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백문은 그렇게 정신없이 어두운 산길을 달렸다.
자신이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 상태로.
“헉! 허억!”
목구멍을 넘어 올라오는 위액이 역하기만 했다.
자신의 작은 발놀림으로는 훈련받은 관병들의 발걸음을 능히 뿌리치기 힘들 터.
기절한 병졸이 깨어나기 전까지 최대한 거리를 벌려 두어야 했다.
턱!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어둠 속에서 백문의 발이 튀어나온 돌덩이에 걸렸다.
그 탓에 달려가던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굴러 버렸다.
이마가 깨지고 옷이 찢어져 속살에서 피가 올라왔다.
“으으윽!”
하지만 지금은 눈물을 흘릴 때가 아니었다.
무조건 달려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넘어진 충격이 컸기 때문일까.
한 번 넘어진 몸을 쉬이 추스르기 힘들었다.
“하아…….”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한숨?

“문아, 모든 생명이 살아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음식이요.”
“그것도 맞지만, 제일의 답은 아니구나.”
“그럼 자는 건가요?”
“며칠 숙면하지 못했다 하여 생물의 근간이 위태롭거나 하지는 않다.”
“모르겠습니다.”
“호흡이다.”
“에? 그건…….”
“너무도 당연하여 미처 인식치 못하고 있었느냐?”
“예…….”
“신께서 내리신 만물의 생. 그 기본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숨을 들이켬에 있다. 사물을 볼 때 늘 기원(起源)을 살피라 하였거늘.”
“죄송해요.”
“그렇다면 생을 가능케 하는 호흡이란 무엇이더냐?”

“생물이 자연과 다르지 않다는 증명이라 하셨죠.”
백문은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가 했던 말을 중얼거려 보았다.
“인간은 약하고 또 약하지만 신께서 주신 지혜로 만물의 으뜸이 되었고…….”
백문이 크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조금 전과는 달리 안색이 약간 밝아졌다.
“그 지혜로 근원과 자연이 소통하는 길을 열었다.”
이번에는 더욱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한참을 뱉지 않았다.
그러자 호흡을 통해 들어온 공기가 혈관을 따라 발가락 끝까지 시원하게 몸을 뚫어 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예전에 아버지가 기 체조를 알려 주실 때 가장 먼저 행하라고 했던 호흡법인 것이다.
그저 단순히 크게 한숨을 쉬는 것만을 가르쳤을 뿐이나, 반복할 때마다 정신이 맑아지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한숨의 힘.
담긴 의미는 알 수 없지만 만악(萬惡)을 누르는 신의 섭리 중 하나라는 아버지의 가르침은 백문의 뇌리에 깊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끄응.”
작은 몸이 꿈틀거리며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했다.
몇 번의 깊은 호흡 이후 백문은 한결 나아진 몸을 이끌고 또다시 달렸다.
백문은 달리던 중 문득 하늘을 바라보았다.
누군가가 절반 이상을 잘라 먹은 듯 어둡게 세상을 비추고 있는 달.
기억이 틀림없다면 저 방향으로 가면 이제 고을이 나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