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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백문 1(7화)
2장. 시작되는 비극(4)
관병들이 나타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동표에게 꽉 잡힌 백문을 확인하고 안심하는 표정을 보임과 동시에 분노와 짜증이 골고루 섞인 험악한 모습을 드러내는 관병들.
“이 더러운 잡것!”
쩍! 소리를 내며 백문의 얼굴이 휙 돌아갔다.
동표의 손에 잡혀 있는 탓에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강하게 얻어맞은 충격으로 몸이 휘청거렸다.
“썅!”
관병 두 명이 번갈아 가며 백문을 두들겼다.
고작 열 살 먹은 아이를 폭행하는 저들의 손에는 그 흔한 자비심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쯤 해라. 여기서 죽으면 본을 보일 고을 수령께서 섭섭해하신다.”
쉼 없이 별이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백문은 저 음성의 주인이 누구인지 기억해 냈다.
찰장이라 불린 부리부리한 인상의 사내.
자신의 도피로 인해 여러 사람들이 꽤 피곤해했음이 틀림없었다.
주위를 헤치고 찰장이 백문의 앞에 마주 섰다.
그리고 동표를 향해 입을 열었다.
“네 덕분에 윗분들 모르게 일을 처리하게 되었다. 네게만은 따로 보상을 내릴 터이니 기대하고 있어라.”
“아이고, 벌레같이 미천한 놈이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하겠습니까요. 그저 이 나라와 찰장님을 위한 충심일 뿐이었습니다요.”
몸을 굽실거리며 비굴한 웃음을 보이는 동표.
곁눈으로 바라본 그 얼굴에는 어떠한 양심의 가책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불쌍해.”
백문의 입에서 나온 말을 들은 동표의 몸이 살짝 떨렸다.
“불쌍하다, 불쌍해.”
“너! 이!”
발끈하려다 찰장의 눈치를 본 동표가 인상을 구겼다.
“성품을 곧게 세우지 못하고 배움을 포기한 것도 모자라 은혜를 잊고 원수가 되기를 자청하다니. 그것도 두 번이나. 정말 불쌍하다.”
이제 죽음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인 백문에게 더 이상 두려움이나 거침은 없었다.
동표가 내뱉은 ‘사람을 끌어내리는 정도’라는 말.
관에 사교의 죄를 고발한 이가 바로 자신임을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두 번의 원수.
첫 번째는 그 고발이요, 두 번째는 자신을 속여 다시 붙잡히도록 만든 것.
뜻을 파악한 동표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며 날뛰기 직전의 원숭이처럼 변했다.
“여러 생목숨을 본인의 혀로 사라지게 만들었다는 사실이 평생을 따라다닐 겁니다.”
맞아서 터진 입술 끝에서 줄줄 흐르는 피.
그것을 닦지도 않은 채 웃으며 말하는 백문의 얼굴을 본 동표의 안색이 알 수 없는 공포로 하얗게 질렸다.
“그만 되었다, 꼬마야.”
그 모습을 보다 못한 찰장이 백문의 말을 잘랐다.
“네게 동정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나, 나라의 행사이기에 사사로운 정을 따질 수 없구나. 그러니 지금까지 네가 사람 여럿을 고생시킨 것으로 정을 잊자꾸나.”
말을 마친 찰장이 뒤쪽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대기하고 있던 두 사내가 앞으로 나와 백문을 움켜쥐었다.
“오랜만이다, 마귀 새끼야.”
징그럽게 웃는 사내는 어제 자신을 끌고 앞서던 자.
이마에 돋은 힘줄을 보니 그가 얼마나 백문에게 화가 나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흐흐, 본래는 형을 집행하는 이가 따로 있지만 너는 내 특별히 직접 살을 발라 주마.”
오싹할 만한 언사이거늘, 어찌 백문은 눈을 깔은 채 말이 없었다.
‘아버지…… 정녕 이대로 순교에 드실 겁니까?’
문득 원망의 마음이 싹튼다.
힘이 있음에도 신이 내린 교리에 사로잡혀 당신 스스로와 아들, 믿고 따르던 여러 신도들의 죽음을 수긍하려는 아버지임에야.
혹여나 아버지가 탈출해 자신을 구하리라는 믿음은 이제 완전히 사라졌다.
퉁.
아주 멀리서 북치는 소리가 작게 울렸다.
퉁. 퉁.
백문과 동표, 찰장과 두 사내, 그리고 주변에 가득 늘어선 스물의 관병.
모두가 난데없이 울리는 북소리에 행동을 멈추고 서로를 돌아보았다.
퉁! 퉁!
북소리가 강해졌다.
누군가 북을 치며 다가오고 있다면 이 정도의 시간 간격으로는 이르기에 불가능한 거리였다.
퉁!
북소리는 거의 바로 앞에서 터진 듯 강하게 모두의 귀를 강타했다.
휙!
다른 사람들과 달리 낭떠러지 반대편 정면을 응시하고 있던 백문의 눈에는 분명히 보였다.
맨 끝에서 하품을 하며 서 있던 관병 하나가 순식간에 사라졌음을.
휙! 휘익!
바람이 지나는 소리와 함께 두 명의 관병이 또 사라졌다.
관병들이 사라지는 순간, 그 뒤에 잠시 나타났던 칙칙하고 음습한 검은 그림자.
백문의 눈이 주체할 수 없이 커졌다.
“으아아아아아!”
세 사람의 비명이 고루 섞여 오묘한 화음을 만들어 내며 멀어져 갔다.
그리고 그 소리는 까마득히 이어진 낭떠러지 끝에서 멈췄다.
“뭐?”
찰장이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그도 급작스러운 사태에 크게 당황했음이 틀림없다.
그제야 웅성거리며 없어진 세 사람을 찾는 관병들.
그들의 눈에도 알 수 없는 공포가 슬슬 올라왔다.
칭! 치잉!
찰장과 무복의 두 사내가 검을 뽑자 남은 관병들도 창극을 돌려 잡고 자세를 취했다.
백문을 중심으로 둥글게 진을 형성한 모습이 평소 꽤 고된 훈련을 받아 왔음을 여실히 증명해 주는 듯했다.
“누구냐!”
대낮부터 귀신의 소행은 확실히 아닐 터.
찰장은 고함을 질러 무리들의 두려움을 잠재웠다.
퉁!
또다시 터진 북소리.
그와 함께 강한 흙모래를 동반한 바람이 무리를 휩쓸었다.
“큭! 퉤!”
순간적인 사태에 모래를 들이켠 몇몇이 눈을 찌푸리는 사이, 찰장의 얼굴이 어딘가를 향했다.
다른 이들과 달리 침착하게 찰장을 바라보고 있던 백문의 시선도.
그 눈이 이른 곳에는 그가 있었다.
부모님에게 그것은
축복이었고 행복이었으며 하늘의 선물이었다.
늦게 보아 더욱 소중했던 아들.
부족하지 않은 집안에서 사랑과 배려,
그리고 결코 인(仁)에 모자람이 없는 아이로 자라난 나는
언젠가 이 나라에서 큰일을 할 것이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다섯 살 무렵이던가.
고을 어른들이 나를 향해 칭찬을 할 때
이상하게도 그늘지던 아버지의 얼굴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3장. 순교(殉敎)(1)
햇빛을 받아 더욱 선명하게 명암이 갈리는 흑색의 사나이.
큰 키에 마른 몸이라 일견 위태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림자 진 얼굴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매의 눈.
대흉(大凶).
고요히 일렁거리는 하얀 눈빛은 자신의 앞에 선 무리들의 앞날을 말해 주듯 잔인함을 머금고 있었다.
“……의숙.”
반가움에 서러움이 더해진 탓에 백문의 목소리는 떨렸다.
그런 백문을 향해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주는 사내.
악요였다.
흉안(凶眼)의 악요.
난생처음 사람이 죽어 나가는 광경을 접했음에도 백문은 그저 형용하기 힘든 기쁨만을 느꼈다.
악요의 굳게 쥔 두 주먹에 공기가 증발하듯 공간이 불규칙하게 일렁거렸다.
그것을 본 찰장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너는 누구이기에 나라의 행사에 훼방을 놓으려 하는가?”
한층 딱딱해진 찰장의 음성이 그가 지금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지를 대변해 주는 듯했다.
“신을 믿는 자.”
차갑게, 아주 차갑게 갈라지는 악요의 말.
“그럼 너도 마교의 종자란 말이군.”
그 순간, 찰장의 얼굴에 묘한 표정이 떠올랐다.
무언가 잘못되었음이 틀림없다는 모습.
잠시 후, 찰장의 몸에서 불이 일어나듯 뜨거운 열기가 훅 뿜어져 나왔다.
근처에 있던 백문이 얼굴을 찌푸리자마자 동표도 작게 신음을 흘렸다.
“쳐랏!”
공격 명령이 내려지자 관병들은 거의 기계적으로 창극을 눕힌 채 악요를 향해 빠르게 진격했다.
다섯이 동시에 내뻗는 창이 차지하는 공간은 꽤 넓다.
그러나 그것은 보통 사람에게나 해당되는 것.
쉬익, 하며 바람이 갈리는 소리와 함께 어느새 악요는 다섯의 관병을 통과해 서 있었다.
표적이 사라졌음에도 그대로 나아가는 다섯.
찰장 옆의 사내가 버럭 고함을 질렀으나 그들의 발은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멀어져 가는 관병들을 뒤로한 채 악요는 바위처럼 굳건히 서 있었다.
그의 흉맹한 눈을 마주한 관병 몇몇이 꿀꺽 침을 삼켰다.
푸핫!
지휘자의 말을 듣지 않고 나아가던 관병들의 맨 왼쪽에서 나타난 붉은 선이 순식간에 오른쪽 끝까지 그어졌다.
왼쪽 병졸의 상체가 공중으로 솟았다.
그다음 병졸의 쇄골 부분이 가로로 그어지며 혈압에 밀려 허공으로 치솟았다.
다음 병졸은 머리가, 그다음은 인중이, 마지막은 관자놀이 부분에서 뚜껑이 열리듯 세찬 피 분수와 함께 시뻘건 덩어리들을 남기며 공중에서 춤을 췄다.
아름답다.
잘려 나가 허공에 떠오른 인간의 몸.
그리고 그 단면으로 밀려 나오는 허파와 심장.
그 속에서 거품을 일으키는 핏빛 기포.
회전하며 떨어져 내리는 병졸의 모가지와 아직도 제가 살아 있는 줄 아는 양 끔벅거리는 두 눈.
단면에서 튀는 핏물과 하얀 목뼈.
그리고 최후의 숨을 뱉어 내는 구멍의 수축.
뚜껑을 열어 놓은 술독에서 올라오는 연기처럼 피어나는 뜨거운 김.
흘러나오는 뇌와 왕방울같이 커다란 눈알이 늘어져 덜렁거리는 하얀 신경 줄기들.
그 모든 것이 시간을 잡아당겨 수십 배나 느리게 흘러가는 것만 같았다.
보통의 아이라면 바로 구토를 하고도 남으련만, 그 참혹한 아름다움에 넋을 빼앗긴 듯 백문의 눈이 몽롱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