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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백문 1(8화)
3장. 순교(殉敎)(2)


“헉!”
끔찍한 광경에 신음을 삼키던 관병 하나가 어느새 앞에 나타난 악요의 그림자에 놀라 소리를 내질렀다.
쓰걱!
살이 베이는 소리와 함께 병사의 안면이 아래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가면이 벗겨지듯 평평하게 변해 버린 단면 밑, 입이라 여겨지는 부분에서 마지막 숨이 핏물과 함께 튀었다.
그 순간, 악요와 백문의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백문은 분명히 보았다.
악요의 무서운 눈에 담긴 뜻 모를 비애를.
“끄억!”
다시금 다른 병사 뒤에 나타난 악요가 그의 등을 뚫었다.
등 아랫부분에서 뻗어진 주먹이 명치를 관통해 세상과 만났다.
내장을 움켜쥐고 뒤쪽으로 주욱 잡아 빼는 악요.
순식간에 시체가 되어 버린 관병을 걷어차 날려 버리고, 채찍처럼 꿈틀거리는 창자를 다른 관병들에게 내던졌다.
“히엑!”
그 순간, 백문은 세고 있었다. 자신의 호흡을.
악요의 모든 행위들이 딱 세 번 호흡하는 동안 일어났다.
눈꺼풀이 굳어진 듯 감지 않고 하나하나 그대로 바라보는 백문의 눈에 일렁거리는 열기는 무엇일까.
스물에 이르던 관병이 그렇게 죽어갔다.
어떤 자는 창극과 함께 세 조각으로 동강 나 바닥에 퍼졌고, 어떤 자는 두려움에 떨다 머리가 사라졌다.
개중 정신을 차리고 창을 내지르던 병졸은 뻥 뚫린 자신의 아랫배에서 꾸물꾸물 흘러나오는 내장을 밟고 넘어져 비명을 지르다 숨이 멎었다.
차악!
악요가 손을 털어 내자 붉은 액체가 바닥에 쫘악 깔렸다.
마치 넘어오지 말아야 할 선을 그은 듯.
그에 백문 옆의 두 사내가 합심하여 악요에게 날아갔다.
무공을 익힌 그들의 움직임은 들쥐와도 같이 재빨랐다.
은색으로 빛나는 선이 악요가 있던 자리를 긁었다.
이어 두 개의 검이 허공을 베고 지나가는 순간,
퍽!
악요의 무릎이 한 사내의 척추를 찍었다.
무자비한 고통에 벌어진 입에서는 침방울이 거침없이 튀어나왔다.
백문은 악요가 주먹을 뒤로 길게 당기는 것을 보았다.
느리게, 아주 느리게.
퍼걱!
동그랗게 뜬 사내의 눈이 주체할 수 없이 떨렸다.
무언가를 확인하려는 듯 눈알이 천천히 아래쪽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자신이 본 것에 놀라 고함을 치고자 했으나 그는 그럴 수가 없었다.
뒤통수를 뚫고 입으로 튀어 나온 악요의 주먹.
혀뿌리가 밀려나 목울대까지 내려와 있고, 부러진 치아가 피범벅된 주먹에 붙어 있다가 툭 떨어졌다.
기회라고 생각했는가.
나머지 사내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두서없이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사내의 머리통에 주먹을 꽂아 넣은 채 여전히 미동조차 없는 악요.
상대의 검이 몸에 닿을 때 즈음에야 그 형체가 살짝 흐려졌다.
쉬익, 하는 소리와 함께 죽은 사내의 머리가 잘려 하늘로 떠올랐다.
검을 휘두른 사내가 크게 당황해 뒷걸음질을 치려는 찰나,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악요가 팔로 그의 목을 휘감았다.
“케엑!”
순식간에 숨구멍을 잡힌 사내가 격한 신음을 흘렸다.
우드득!
이어 목뼈가 조금씩 어긋나는 으스스한 소리가 울렸다.
입을 벌리고 켁켁거리는 사내는 벌겋게, 다시 퍼렇게, 그리고 하얗게 질려 가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무척이나 고통스러워했다.
악귀처럼 찌그러진 사내의 표정 뒤로 악요의 얼굴이 반쯤 보였다.
태양을 등져 어둡기만 한 얼굴.
그 속에서 하얀빛이 조금씩 열렸다.
끝이 솟아 있어 날카롭기만 한 악요의 눈.
뚜둑!
이윽고 사내의 신음이 멎었다.
아직도 푸들거리는 몸.
그리고 아랫도리를 누렇게 물들인 오물.
죽음에 이르면서 대소변을 한꺼번에 쏟아 낸 것이다.
털썩, 쓰러진 사내의 떨림이 멈추고 곧 고요가 찾아왔다.
하지만 그 고요는 예정된 죽음을 뜻하는 것.
적막함 속에서 동표가 훌쩍거리는 소리만이 작게 들렸다.
“당신을 아오.”
찰장이 입을 열었다.
“이제야 누군지 확실해졌소이다.”
아까 그 이상한 표정의 의미가 그것이었던가.
“한데 당신이 어찌 이곳에 있소이까?”
“나를 본 적이 있나?”
짧은 시간 동안 스물이 넘는 인명을 바퀴벌레 밟듯 짓눌러 버린 사람치고는 음성이 너무나 편안했다.
“몇 년 전, 그러니까 이 자리에 오르기 전에 거란과의 접경지로 파견되었던 적이 있소.”
그 말에 악요가 그답지 않게 씨익 웃어 보였다.
“딱 한 번 보았소이다, 당신을. 병사들 사이에서 소문이 자자하더구려. 무정낭장(無情郞將) 악요. 아니오?”
“난 너를 본 기억이 없는데.”
동표의 흐느낌에 신경이 쓰인 백문이 그를 돌아보았다.
눈물에 콧물이 더해져 지저분한 얼굴을 하고 오줌마저 갈긴 채 부들거리는 동표였다.
“다시 묻소이다. 당신이 어찌 이곳에 있소? 그리고 조정의 무관이 왜 마교의 종자들과 함께하오?”
“강등되었어. 지금은 낭장이 아닌 그저 군위일 뿐. 너무 많은 사람을 죽였거든. 적도…… 아군도. 그리고 우린 마교의 종자가 아니다. 섬기는 대상의 차이랄까.”
찰장의 입에서 작은 신음이 나왔다.
죽음을 직감했는가.
그의 표정이 점점 진중해졌다.
“황상 폐하의 하해와 같은 은혜를 저버리고 사교에 빠지다니. 대송의 무장으로서 부끄럽지도 않소?”
“은혜? 은혜라…….”
악요가 한 걸음을 내딛었다.
“저세상에 가서 느껴 봐, 황제의 은혜에 대해.”

자신을 아는 무인에 대한 배려였던가.
악요는 찰장의 생을 빠르고 간결하게 끝내 주었다.
뜨거운 기운을 온몸에 두른 채 악요를 향해 날아들던 찰장.
그는 여덟 방위를 차단하며 공간을 달구었다.
그러나 그의 검이 다양한 변화를 일으키며 악요를 베어 가는 순간, 이미 그의 숨은 끊어진 뒤였다.
찰장은 뒷목을 짧게 내려친 악요의 손길에 눈을 허옇게 뒤집으며 하해와 같은 황제의 은혜를 느끼고자 저세상으로 가 버렸다.
터벅터벅.
힘이 빠져 주저앉아 있는 백문에게 악요가 다가왔다.
“늦어서 미안하구나.”
백문이 악요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데려다 주세요.”
여러 생목숨이 처참하게 끊어지는 광경을 보았음에도 작은 떨림조차 없는 백문의 음성.
악요의 얼굴에 의외라는 표정이 떠올랐다.
“내가 무섭지 않느냐?”
“전혀요. 원래 강한 분이시잖아요.”
힘이 세다는 의미보다는 잔인하고 냉혹하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백문의 말이었다.
“그것만큼은 들어주고 싶지 않구나.”
“아버지를 뵈어야 합니다.”
악요의 눈이 흔들린다.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고 싶으냐?”
고통? 어째서요?
“뵈어야 합니다.”
“이미 말했을 텐데.”
악요의 표정이 엄해졌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백문의 눈에서는 고집이 철철 넘쳤다.
“마지막을…… 지켜 드려야 해요. 제게는 그것이 신의 뜻입니다.”
이제 겨울 열 살이다, 백문은.
이 어린아이가 어찌 이런 의지를 보일 수 있을까.
“늦었다.”
악요의 음성이 풀어졌다.
숨길 수 없는 무언가를 느낀 것일까.
백문은 악요의 말이 거짓임을 바로 눈치챘다.
“악 의숙, 의숙께서 저를 생각하신다면 제 부탁을 들어주셔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무엇. 의숙께서도 하나 정도는 있으시잖아요. 부탁드립니다. 제발요.”
백문의 눈에서 드디어 눈물이 흘렀다.
참았던 서러움이 이제야 터진 것일까.
백문의 눈물을 본 악요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회할 거야.”
“압니다, 알아요. 하지만 이대로 아버지를…… 제게는 이 순간 보이지도 않는 신보다 훨씬 더 소중한 분의 마지막을 챙겨 드리지 못한다는 것이 더 두렵습니다.”
훌쩍이며 말하는 백문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악요가 결국 승낙하고야 말았다.
“가자.”
작은 백문을 들어 가슴에 안은 악요의 시선이 옆으로 돌아갔다.
그곳에는 정신을 놓아 버린 동표가 입에서 침을 흘리며 멍한 눈으로 헤헤거리고 있었다.
“이 쓰레기는 어찌할 테냐?”
미쳐서 정신이 돌아 버린 동표를 슬쩍 본 백문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냥 두고 가자는 뜻인 것이다.
퉁!
공기가 순간적으로 터지는 소리와 함께 악요와 백문의 신형이 사라졌다.

* * *

빠르다.
아니, 빠르다는 말로 표현하기조차 어려웠다.
예의 그 북치는 소리가 터질 때마다 주변의 풍경이 바뀌었다.
조금 어지럽기에 생각이 흐트러지고는 있으나 백문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지금 악요와 자신은 인간의 걸음으로 행하기 불가능한 축지를 하고 있다는 것을.
한 호흡에 얼마나 긴 거리를 이동하는 것일까.
새삼 악요의 가공할 능력을 깨닫는 백문이었다.
어느덧 백문의 눈에 잠깐씩 보이는 풍경들이 익숙해졌다.
지금껏 살아온 고을 주변으로 거의 다가왔음이 분명하다.
“이제부터는 사람들과 섞여야 한다.”
마지막 축지를 마친 악요가 흔들림 없는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예.”
백문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후회.
악요는 자신이 후회할 것이라 말했다.
앞으로 보게 될 것들, 그것은 분명 참기 힘든 고통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고을 입구에 이르렀건만 늘 부산하게 움직여야 할 사람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적막함에 잠시 몸을 부르르 떤 백문이 악요를 바라보았다.
“의숙?”
대답 없이 침울한 표정만을 보이는 악요를 향해 백문이 다시 물었다.
“다들 어디로 간 겁니까? 의숙은 아시죠?”
악요가 말없이 품에서 검은 천을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풀어 백문의 얼굴과 상체를 가려 다른 이들이 알아볼 수 없게 했다.
“마음을 독하게 먹어라. 그리고 신을 용서해 다오.”
신을 용서하라뇨. 마치 꿈결처럼 들었던 아버지의 말씀과 같지 않습니까.
악요가 백문의 작은 손을 잡았다.
그리고 무거운 걸음을 옮겨 마을 한복판에 위치한 시장 쪽으로 이끌었다.
백문은 저도 모르게 다리가 후들거림을 느꼈다.
정말로 자신이 이 길을 가야만 하는 것일까?
왜? 단지 아버지의 마지막을 지키기 위해서?
평생을 고통받으며 후회의 감정 속에 살 수도 있음을 알지만 어째서 자신은 이런 고집을 부리는 것일까?
저 멀리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우글거리는 검은 머리통들을 세어 보니 대충 고을 전체가 모인 듯했다.
심장을 때리는 울림이 점점 강해졌다.
백문은, 자신은 무엇을 보기 위해 이 길을 걷고 있는가.
“다시 말한다. 네가 네 부친의 가는 길을 배웅하고자 하는 것은 효(孝). 그 이후에 네게 자리할 고통은 마(魔). 효를 택하면 마를 얻을 것이고, 불효를 택하면 정(淨)을 얻을 것이다.”
“꿀꺽.”
백문은 자신이 침을 삼키는 소리가 이처럼 큰 것이었음을 처음 알았다.
악요의 말에 답하지 않고 앞만을 바라보는 백문.
잠시 멈춰 섰다가 백문의 말없는 선택을 확인한 악요가 다시 시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