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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백문 1(9화)
3장. 순교(殉敎)(3)
둥! 둥!
진짜 북 치는 소리가 울렸다.
웅성거리던 인파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두껍게 늘어선 사람들.
그 끝에서 백문의 손을 잡고 서 있던 악요의 몸에서 차가운 냉기가 피어올랐다.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낀 것일까.
냉기를 흘리며 걸어가는 악요와 백문을 피해 사람들이 길을 비켜 주었다.
콩닥거리던 백문의 심장이 세차게 떨어지는 빗물처럼 걷잡을 수 없이 고동쳤다.
마침내 맨 앞에 선 이들을 헤집고 나간 자리.
백문은 충격적인 광경에 놀라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꺽! 소리를 내고 말았다.
고을 사람들이 넓게 둘러선 시장 한복판에는 수십의 관병들과 허리에 칼을 찬 사내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다.
그리고 익히 아는 얼굴들이 무릎을 꿇은 채 묶여 있었다.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고 신을 영접한 이들.
백문이 처했던 것과 같이 다른 고을들로 보내진 이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모두가 저곳에 있었다.
퉁퉁 부어오른 얼굴과 피 묻은 옷이 저들에게 가해진 고문이 얼마나 잔인했는지 보여 주고 있었다.
그들 앞으로 넓게 비워 둔 공간에는 펄펄 끓고 있는 큰 솥이 보였다.
왜 저런 것이…….
그 앞으로 뭔가를 덮어 놓은 거적과 옆으로는 말이 끄는 수레 두 개.
둥!
그 순간, 웃통을 다 벗어젖힌 형리(刑吏)가 강하게 북을 내려쳤다.
“다들 빠짐없이 모였다 치고, 지금부터 나라의 본을 세울 것이니 두 눈 똑바로 뜨고 자리를 지키시오!”
길쭉한 관모를 쓴 관리 하나가 앞으로 나서며 큰소리로 외쳤다.
“태초에 하늘께서 천하를 굽어보시고 인세의 무도함을 가엽게 여기시어 초인들을 내려 주심으로 만물의 도로 삼으셨고, 우리는 그들을 삼황(三皇)과 오제(五帝)라 칭했느니라! 삼황오제께서 백성을 풍족케 하시니 그것 또한 하늘의 덕이 아니겠느냐!”
그럴듯하게 도(道)를 지껄이며 장포를 털어대는 관리의 모습에는 당당함만이 넘쳐 났다.
“하늘이 주신 도는 대대로 천자(天子)에게 이어져 만백성들의 귀감이 되었느니라! 그리고 오늘에 이르러 대송(大宋)을 천하의 근본으로 정하신바, 하늘이 내리셨고 땅이 인정하셨도다! 하나 이 어이할꼬. 마땅히 자리에서 진충보국(盡忠報國)의 도를 따라야 할 대송의 백성들이 사도(邪道)에 빠져 하늘의 뜻을 그르치다니! 낳으신 부모와 길러 주신 황상의 은혜가 무색할 지경에 이르렀구나!”
고을 주민들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관리의 말에 수긍했다.
백문이 고개를 강하게 흔들며 부정하려 하자 악요가 어깨를 꽉 잡아 행동을 멈추게 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관리의 외침은 계속 이어졌다.
“아프고 또 아프도다! 사랑하는 자식들이어야 할 백성들이 마의 유혹에 빠져 근본을 잊고 어버이를 슬프게 하였도다!”
관리의 얼굴이 점점 사나워졌다.
자신의 연설에 취한 듯 무릎을 꿇은 신교도들을 바라보는 눈에는 악기가 가득했다.
“들으라, 백성들이여! 이 나라, 이 땅은 모두 황상께 속한 피와 살! 썩은 피는 뽑아내고 썩은 살은 도려내야 함이 옳지 않은가?”
“맞습니다!”
누군가 관리의 말에 호응해 소리를 질렀다.
백문의 눈에 들어온 그자는 처음 보는 이였다.
“그렇다! 지금 이 순간 누구보다 아프고 슬퍼하시는 분은 바로 황상이시니라! 썩은 살도 그분의 살이요, 썩은 피도 그분의 피니라. 그 고통을 우리 같은 미천한 이들이 어찌 짐작이라도 하겠느냐!”
주민들의 동요가 심해지며 그들 각각의 눈에 독기가 어렸다.
그 틈을 타 여기저기서 알 수 없는 인물들의 선동이 시작되었다.
그에 휘말린 주민들 몇몇은 눈물마저 흘리며 황제의 슬픔에 동조해 버렸다.
“저들은 하늘을 거역하고 대송을 문란케 한 죄를 받을 것이니라! 그렇게 죄를 사함받고 구천 년 만세를 이어 갈 거름이 될 것인즉, 온 천하의 본보기로서 이 자리를 빛낼 것이니라!”
“와아아!”
“죽여! 죽이라고!”
주민들의 고함이 고을 전체를 진동시켰다.
짧은 순간, 기묘한 화술에 넘어가 버린 이들의 눈빛은 악귀의 그것에 다름없었다.
“의, 의숙.”
백문이 덜덜 떨리는 음성을 숨기지 못하고 악요에게 말을 걸었다.
“사람들이 이상해요. 다들 왜, 왜 저러죠?”
악요가 백문을 내려다보았다.
가라앉은 악요의 눈을 마주한 백문.
그 속에 수만 마디의 말이 담겨 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주민들의 소란이 거세어지자 백문이 헛구역질을 하며 주저앉으려 했다.
악요는 그런 백문을 잡아 귀를 막아 주었다.
소란은 한참을 더 이어지다 관리가 손을 들어 올리자 곧 진정되었다.
“행하라!”
둥! 둥둥! 둥둥둥!
형리가 신나게 북을 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관병 두 명이 걸어 나와 신도 하나를 일으켜 세웠다.
“순교.”
드디어 굳게 닫혀 있던 악요의 입에서 짧은 한마디가 새어 나왔다.
“고귀한 순교의 순간이다, 문아.”
고개를 돌려 울음을 참는 백문의 얼굴을 잡아 돌리는 악요였다.
“전, 전 볼 수 없어요.”
“아니, 이 자리는 네 의지. 거부하거나 피하고자 함은 저들의 순교를 욕되게 하는 것. 두 눈에 꼭 담아라.”
엄한 악요의 음성에 백문이 떨리는 눈을 들어 관병에 이끌려 거적을 덮어 놓은 자리로 이동하는 신도를 바라보았다.
다른 관병이 다가와 거적을 치우자 미리 파 놓은 빈 공간이 드러났다.
곧 신도를 그 속에 넣어 흙을 채우는 관병들.
잠시 후, 신도는 머리만 내놓은 채 땅에 묻혔다.
“어째서…… 어째서 저렇게 편안한 얼굴을 하고 계십니까?”
“신을 보았기 때문이지.”
고저 없는 악요의 말.
눈을 감은 신도의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곧 다가올 죽음이 전혀 두렵지 않다는 듯이.
“집행(執行)!”
관리가 근엄하게 외치며 들고 있던 영목(令木) 중 하나를 던졌다.
푸릉!
거칠게 울리는 말의 울음소리.
이어 인파를 헤치며 두 마리의 말이 각기 병사를 태우고 나왔다.
숨이 턱 막혀 버리는 순간, 백문의 눈이 커졌다.
병사들이 강하게 채찍질하자 말은 길게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신도의 머리를 향해 돌진했다.
퍽! 퍼걱!
살이 찢어지고 뼈가 바수어지는 끔찍한 소리.
동시에 말발굽이 흙을 쓸어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먼지 사이로 붉고 누런 덩어리들이 튀었다.
병사들은 너무나도 익숙한 솜씨로 같은 장소를 지속적으로 돌았다.
피를 본 흥분이 지나쳐서인가, 말들이 서로 부딪쳐 중심을 잃기까지 했다.
주민들도 처음 보는 처형 장면에 잔뜩 흥분했다.
군마(軍馬)의 입에서 떨어지는 걸쭉한 침과 흡사한 액체를 그 입 하나하나에서 떨구며 소리를 질러댔다.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끔찍한 광경에 질린 백문이 악요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 악요는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눈을 감고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신이 마련한 영원한 낙원에서 편히 지내기를 기원하는 기도를 올리는 것이리라.
“포목점 방씨 아저씨.”
백문의 말에 악요가 조용히 눈을 떴다.
백문의 떨리는 눈빛.
하지만 그 속에는 방금 순교한 이를 기억하겠다는 굳건한 의지가 들어 있었다.
이윽고 병사들이 말을 몰아 자리에서 벗어났다.
포목점 방씨가 있던 자리를 중심으로 너덜너덜해진 살가죽과 반쯤 뭉개져 터진 눈알, 박살 난 두개골의 조각들과 흐물흐물 널린 뇌의 일부만이 인간이 존재했음을 알렸다.
다음으로 두 명의 신도가 끌려 나왔다.
“초 넷째 형, 왕 아저씨.”
으득, 이를 갈며 백문이 혀를 씹듯 말을 뱉었다.
관병이 두 사람의 목에 줄을 이어 매달았다.
그러나 두 사람의 표정 역시 방금 죽은 방씨와 다름없이 편안해 보였다.
곧 두 사람의 다리에 단단히 줄을 묶은 관병들이 그 끝을 반대로 마주하고 있는 수레에 연결했다.
지금 관병들이 집행하고자 하는 처형의 방식을 깨닫고 백문은 안색이 변했다.
하지만 저들의 죽음을 끝까지 지켜봐야 할 의무 때문인지 백문은 눈을 돌리지 않았다.
“시행하라!”
관리의 외침이 있은 후, 두 개의 영목이 땅으로 떨어진다.
뿌드드득!
서로 반대 방향으로 수레가 움직였다.
수레를 끄는 말의 몸 위로 병사들이 내려친 채찍의 자국이 선명하게 새겨졌다.
몸부림치며 힘을 더하는 말과 그럴수록 가해지는 압력에 초씨와 왕씨의 안색도 더욱 불긋해져만 갔다.
두 사람의 목을 묶은 밧줄이 팽팽해져 곧 끊어질 듯 위태한 것이, 저들이 받고 있는 아픔을 대신하는 것만 같았다.
숨이 막히고 목이 뽑힐 듯한 괴로움.
차마 비명을 내지르지 못하고 벌려진 입에서 길게 혀를 빼어 문 왕씨와 초씨의 눈알이 조금씩 튀어나왔다.
그 순간, 백문은 뜨거운 무언가가 입가를 타고 흐르는 것을 느꼈다.
자신도 모르게 씹어 버린 입술에서 피가 터져 나온 것이었다.
하나 그 정도 아픔 따위는 저들이 겪는 고통에 비하면 개미에 물린 것보다 덜하리라.
“끄! 끄억!”
기어이 왕씨가 참았던 비명을 내질렀다.
순간, 백문의 등을 타고 쫘악 오르는 울분이 치솟았다.
트득! 투두둑!
왕씨의 목이 찢어지기 시작했다.
“와아아!!”
생살이 갈라지는 모습에 주민들의 흥분은 도를 더해 갔다.
쫘라라락!
머리통만 한 두께의 책을 줄줄 넘기는 소리와 함께 왕씨의 머리가 뽑혔다.
딸려 나오는 하얀색의 척추와 분홍빛 내장들이 걸리면서 대량의 피를 쏟아 냈다.
초씨도 무사하지는 못했다.
그 역시 반쯤 목이 뽑혀 혀를 늘어뜨린 채 이미 죽어 있었다.
“큭!”
넘어오는 신물을 간신히 삼킨 백문이 이를 악물었다.
꽉 쥔 주먹 사이로는 피가 흘러내렸다.
아무래도 살을 파고든 손톱 때문인 것 같았다.
이후로도 처형은 계속되었다.
인간의 잔인함을 모두 내보이기라도 할 듯이 갖가지 잔인함을 담고서.
백문이 고을로 내려올 때마다 정답게 웃으며 당과를 하나씩 쥐어 주던 용씨는 허리가 썰려 죽었고, 아버지의 학당에서 가르침을 얻어 지방 해시(解試)를 준비하던 고 둘째 형은 솥에서 푹 삶아진 고기가 된 채 죽었다.
어떤 이들은 서로의 머리를 돌 위에 겹쳐 놓고 대못이 박힌 채 같이 순교했고, 다른 이들은 절반 정도 목을 잘라 낸 후 머리를 뒤로 꺾어 단면에 ‘불충불효’라 적힌 나무막대를 꽂은 상태로 죽었다.
끝없이 계속될 것만 같던 순교였지만, 어느새 막바지에 이르렀다.
순박한 농사꾼 차 셋째 형의 죽음을 끝으로 한동안 진정 상태가 된 것이다.
“허억…… 허억…….”
고요한 가운데 작은 숨소리만이 백문의 귀에 가득했다.
광기에 사로잡혔던 주민들은 여전히 달아오른 얼굴을 숨기지 않은 채 다음 희생자를 기다리는 눈치였다.
아버지는?
설마 이미 형옥을 뚫고 탈출하신 것일까?
하지만 악요의 얼굴은 그렇지 않다고 말해 주고 있었다.
“와아아아!”
길 뒤편에서 주민들의 함성이 울렸다.
덜컥 내려앉는 심장과 함께 백문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