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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백문 1(10화)
3장. 순교(殉敎)(4)


둥! 둥! 두둥!
북치는 소리와 함께 인파가 갈라졌다.
그리고 크게 소리치려던 백문은 악요가 자신의 입을 강하게 틀어막는 것을 느꼈다.
아버지!
인근 여러 고을에서 뛰어난 학자로, 자비로운 성인군자로 추앙받던 사람이 머리를 풀어헤친 채 오라에 묶여 끌려 나오고 있었다.
“으읍! 으으윽!”
백문의 입을 꽉 틀어막은 악요의 손가락 사이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늘 곱게 빗어 묶은 아버지의 머리칼이 아니었다.
가슴까지 내려오던 미염(美髥)은 불에 그슬린 듯 다 사라졌고, 옥색으로 푸르스름하게 빛나던 학창의(鶴?衣)는 걸레처럼 찢어져 피가 잔뜩 밴 속살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백문은 처참하기 그지없는 아버지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고, 아버지를 향한 주민들의 적대적인 모습에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다.
평소 그 입으로 아버지를 칭송하던 인간들이 침을 튕겨 가며 아버지를 해하라 소리치고 있었다.
광기를 넘어 마귀가 되어 버린 듯 평소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주는 인간들.

마(魔)를 추종하는 것은 우리들이 아니라 당신들이오!

터져 나오지 못한 백문의 절규는 그렇게 입속에서 메아리치듯 맴돌 뿐이었다.
윽윽거리며 눈물을 쏟아 내는 백문을 붙잡고 있는 악요의 손에도 힘이 들어갔다.
철담을 지닌 그로서도 의형의 처참한 모습을 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으리라.

투둥!
최후의 북소리인가.
짧게 끊어 쳐 기이한 박자로 울려 퍼진 북소리가 고을 전체를 침묵시켰다.
“마귀의 괴수(魁首), 백무!”
그런 가운데 관리의 엄한 목소리만이 공기의 결을 타고 백문의 귀에 전해졌다.
“황실의 관리였음에도 나라와 황상의 은혜를 저버리고 사교를 따른 대역죄인! 맞는가!”
아버지를 향해 관리가 호통을 쳤다.
백문의 눈에 비친 아버지는 겉모습만 처참하게 변한 것이 아니었다.
태산을 누를 듯 근엄하고, 바다를 포용할 듯 자비롭던 아버지의 눈이었다.
한데 지금은 그 총기를 완전히 잃고 멍하니 하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 아버지의 능력이라면 어떠한 고문도 버티어 내셨을 텐데.
“마비산.”
백문의 의문에 대답이라도 하듯 악요의 음성이 들려왔다.
“저들이 형님께 마비산을 잔뜩 복용시켰구나.”
악요의 탄식에 백문은 거의 기절하려는 정신을 간신히 붙잡았다.
“……의숙.”
작지만 처절한 백문의 음성.
“아버지를, 아버지를 구해 주실 수 있나요?”
이미 순교를 결심한 아버지이고, 또 그것을 인정하기로 했던 백문이다.
하지만 인세의 연을 어찌 그리 허망하게 놓을 수 있을까.
백문은 이어지지 못할 끈을 잡으려는 듯 악요에게 기대를 걸어 보았다.
“의숙?”
가련한 백문의 눈길에 악요 역시 마음이 흔들리는가.
턱 주변의 근육이 한차례 꿈틀거렸다.
그리고 백문은 알았다.
악요는 결코 저들의 손에서 아버지를 구출하지 않을 것임을.
품어서는 안 될 마음이지만, 악요에게 원망이 싹텄다.
저들 모두를 죽일 능력이 있으면서도 행동하지 않는 나쁜 의숙.
또 그런 악요보다 더 강한 아버지도.
예정된 이별의 고통은 원망이 되었다가 이제 분노로 바뀌었다.
소리 지르며 날뛸 것을 알았는지 악요가 백문의 작은 뒷목을 움켜쥐었다.
순간, 백문은 굳어 버려 어떠한 행동도 하지 못했다.
“형님께서…… 가기를 원하시는 길이란다, 문아. 기뻐하지는 못하더라도 근심을 드리지는 말자꾸나.”
악요의 목소리에는 미약한 울음이 섞여 있었다.
‘왜요! 왜요!’
백문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얼어붙었다.
머릿속에서 수천 마디의 말과 수만 가지의 생각이 어지럽게 교차했다.
‘안 돼요! 제발!’
주민들이 보여 주는 마귀 같은 흥분도, 침을 튀기며 외치는 관리의 고함도 모깃소리만큼 작아지다 종내에는 아예 들리지 않았다.
악요에 의해 굳어 버린 몸 때문에 백문의 시선은 아버지에게 고정되었다.
시야가 점점 어두워지다 아버지가 꿇려진 자리를 제외하고는 완전히 암흑으로 변했다.
여전히 멍한 눈으로 ‘헤’ 웃으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눈이 백문에게 이르자 더 이상 까닥거리던 고개가 움직이지 않았다.

‘문이냐.’
‘예.’
아버지의 눈에 생기가 돌아왔다.
‘쯧, 왜 여까지 돌아왔누.’
‘아들이잖아요.’
아버지의 눈이 작아지며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맺혔다.
‘부끄러운 꼴을 보이게 되었구나.’
‘절대요!’
아마도 검은 천에 가려진 자신의 얼굴도 아버지의 저 빛나는 미소와 같이 싱긋 웃고 있지 않을까.
‘미안하구나.’
‘밉습니다. 정말로요.’
‘미안하구나…… 아들.’
‘에이, 그러셔도 소용없어요. 평생 미워할 거라니까요.’
흐르고 흐른 눈물이 목을 타고 내려가 가슴을 적셨다.
묘하게도 따뜻해지는 심장.
‘문아, 나를 용서해 다오. 네 어미를 용서해 다오. 세상을 용서해 다오.’
싫습니다.
‘교(敎)를 용서해 다오.’
싫다니까요.
‘신(神)을 용서해 다오…….’
싫어요!

꿈틀!
굳었던 백문의 어깨가 풀렸다.
그리고 그 기미를 눈치챈 악요의 얼굴이 경악에 물들었다.
자신이 막아 놓은 백문의 맥이 풀어졌음에 대단한 충격을 받은 듯했다.
덜덜거리는 백문의 오른손이 천천히 들어 올려졌다.
희미하던 아버지의 미소는 이제 완전히 형태를 갖춰 환한 웃음으로 변해 있고, 백문의 손은 그 미소를 잡기라도 하는 양 허공을 저었다.

눈물로 더러워진 작은 백문의 얼굴에 슬픔도, 기쁨도 아닌 오묘한 빛이 서렸다.
그저 멀리 떠나는 부친에게 잘 다녀오라 배웅하는 자식의 표정.

‘사랑합니다, 아버지. 먼저 가신 어머니도요.’
무언의 목소리를 들었는가.
아버지가 백문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제 가슴 속에 있다던 신은, 결코 용서받지 못할 겁니다.’

* * *

고을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두 사람이 있었다.
길쭉한 사람은 그저 뒷짐을 진 채 앞에 앉아 있는 작은 소년의 뒷모습을 바라만 볼 뿐이다.
뜯어져 누렇게 바랜 풀 위에 아무렇게나 앉아 멍하니 고을을 응시하는 소년.
백문이었다.

백문은 눈앞에 펼쳐진 모든 광경을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투명하리 만치 예리한 소도(小刀).
그것이 조금씩 조금씩 아버지의 살을 발라내는 것을.
능지처사(凌遲處死).
눈에서 시작된 칼질은 손을 거쳐 가슴으로, 목으로 이어졌다.
극악한 죄를 저지른 자들에게나 내린다는 능지의 형.
극악?
아버지가 그 무슨 극악한 죄를 지었단 말인가.
“의숙.”
“말해라.”
아직도 시장길 한복판에서 축제를 벌이고 있는 인간들의 꾸물거림을 지켜보던 백문이 악요에게 말을 걸었다.
“저를 구하러 오시기 전, 의숙께선 아버지를 뵈셨죠?”
“맞다.”
백문은 안다, 악요의 성격상 아버지의 죽음을 그저 순교라는 이름으로 방관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걸.
“아버진 거절하셨겠죠. 살고자 하셨다면 처음부터 순순히 잡혀 들어가지도 않으셨을 테니까요.”
“그래.”
정말 고집불통인 아버지다.
“왜 포기하셨을까요?”
악요가 백문에게 다가와 옆에 털썩 앉았다.
아까와 달리 너무나도 편안한 백문의 음성에 일말의 불안감이 사라졌기 때문인가.
“포기가 아니야. 신께 더 가까이 가기 위한 마지막 과정이었을 뿐이다.”
아니죠.
“내가 형님께서 계신 형옥으로 숨어들었을 땐 이미 스스로 혈맥을 파괴하셨더구나. 형님의 그 강대한 힘이 남아 있었다면 쉬이 순교할 수 없기에 그리하신 게지.”
그러니까요.
“마비산은 나도 의외였다. 아마도 형님을 존경하던 누군가가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복용시킨 것이 틀림없을 게야.”
그래도 사람 같은 이가 하나 정도는 있었군요.
저 지옥에서도…….
순간, 백문의 피부를 저미는 날카로운 살기가 사방으로 퍼진다.
“문아, 네가 원한다면!”
백문이 악요를 올려다보았다.
항상 표정 없는 얼굴로 인해 감정의 변화가 잘 드러나지 않던 악요였다.
하나 지금 그 철면이 잔뜩 일그러져 불화(佛畵)에서나 볼 수 있던 악귀의 형상으로 변해 있었다.
“저 마을에 숨 쉬는 모든 생명체를 말살할 수도 있다. 아니, 네 아버지를 알던 모든 이들을!”
악요는 진정 분노하고 있는가.
백문 앞에서 수십의 관병들과 무장을 차분하게 학살하던 모습이 아니었다.
백문은 숨이 막혀 옴을 느꼈다.
“순교는 신의 축복이지만 한(恨)이 남는다. 그것을 푸는 것은 인간의 몫.”
복수를 준비하고 있었습니까.
“원하느냐?”
엄하게 다그치는 악요.
그 삼엄한 기운에 백문이 정신을 차렸다.
“아뇨.”
짧은 백문의 한 마디에 악요의 살기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제 몫을 의숙께 양보하고 싶지는 않네요.”
열 살, 어린아이의 입에서 나오리라고는 상상도 하기 힘든 언사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백문에게서 나왔다.
그리고 잠시 백문을 응시하던 악요가 고개를 힘주어 끄덕이며 복수를 양보했다.
“저 추악한 입에서, 뱃속에서 언젠가 제 아버지를 돌려받을 겁니다. 갈아져 사라진 뼛조각 하나하나, 힘줄이며 핏줄, 떨어져 흩어진 핏물 한 방울까지.”
인육의 축제를 벌이고 있는 고을을 내려다보는 백문의 눈에 원한이 가득 차올랐다.

하루에 걸쳐 진행된 처형이 끝나자 마을 주민들은 남녀노소를 따지지 않고 너도나도 아버지를 포함한 여러 구의 시신에 달려들었다.

아귀지옥(餓鬼地獄).

불교육도(佛敎六道) 삼지옥(三地獄) 중 하나가 인세에 펼쳐졌다.
따르는 교리의 근본은 다르나 익히 들어온 부처의 도.
상상 속에서만 그리던 지옥의 모습이 현세에 구현된 것에 백문은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다.
더 이상 인간의 추한 진실을 보이고 싶지 않은 악요는 결국 백문을 끌고 마을을 벗어났다.
그제야 설움이 터졌는가.
마을과 멀리 떨어진 산속에 이르자 참았던 오열이 쏟아져 나왔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부르며 서럽게 울고 또 울며 몸부림을 쳤다.
숨이 넘어갈 정도로 눈물을 뿌리다 기절하기를 몇 번.
결국 보다 못한 악요가 백문의 몸을 주물러 진정시켰다.
몇 시진을 그렇게 울던 백문이 마지막 실신 상태를 벗어나 눈을 떴을 때, 어제의 백문은 없었다.
차갑게 가라앉은 백문의 눈.
그 눈빛을 마주한 악요의 얼굴에 짙은 근심이 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