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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백문 1(19화)
6장. 무진도(無眞島)(2)
펑!
공격한 자에 비해 터무니없이 작은 몸이 뒤쪽으로 후욱 밀려 나갔다.
바닥의 모래 위로 두 개의 선이 길게 그어지며 먼지가 사방으로 퍼졌다.
백문은 두 팔을 도(?) 자로 가슴 앞에 들어 올려 폐와 심장에 가해질 타격을 방어해 냈다.
꽉 움켜쥔 두 주먹 위로 드러난 눈을 이리와 같이 번뜩이며 자신을 공격한 목골대를 노려보는 백문.
“와아아아아!”
관중들이 목골대의 어마어마한 공격에 환성을 내질렀다.
“오호, 요리조리 피하기만 잘하는 줄 알았더니, 이 용사님의 회심의 일격을 막아 낼 재주도 있었구나.”
백문은 벌써 일각 정도 목골대의 거침없는 공격을 회피하기만 했다.
자신이 휘두르는 팔과 다리의 궤적에서 용케도 벗어나는 백문에게 짜증이 났는지 목골대는 땅을 거하게 박차고 떨어지는 운석과도 같은 속도로 주먹을 뻗어 냈다.
‘피할 수 없다.’
빠른 판단을 내린 백문은 순간적으로 내장을 보호하며 뒤쪽으로 짧게 몸을 움직인 덕분에 전체 타격치의 절반 정도만 허용했다.
하지만 팔을 타고 들어온 기이한 기운이 빠르게 몸을 타고 내려가 다리의 감각을 일부 차단하고 말았다.
“……내공.”
“바로 보았다.”
저 초원의 야인에게 어찌 중원의 무공이.
“궁금하겠지. 이 덩치만 큰 돼지 같은 야만인 따위에게 어떻게 너희 한족(漢族)의 기예가 자리하고 있는가 말이야.”
자만하고 있는 건가.
만약 그대로 공격을 해 왔다면 꽤 심각한 피해를 입었을 텐데.
“너희 중원에 무림이라는 요상한 세상이 있다지? 그곳에서 난을 피해 도망쳐 온 분이 계셨다. 그분께 내공과 외공을 배웠지. 이 쌀롸쌀라거리는 한어(漢語) 역시.”
강호무림.
의숙 악요가 팔 년을 돌고 돌아 더 이상 승부를 겨룰 상대를 찾지 못했다는 초인들의 보금자리.
“아, 물론 지금은 안 계셔. 돌아가셨거든. 애지중지 키웠던 한 마리 늑대에게.”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는 목골대의 모습이 마치 거대한 늑대를 연상케 했다.
“은혜를 모르는 짐승이라 생각하고 있군.”
끄덕.
“나머진 지옥에 가서 그에게 물어봐라.”
슈악!
말을 마치는 것과 동시에 빠르게 쇄도하는 목골대.
그가 허공에 그리는 푸른 줄기가 마치 단색의 무지개를 떠오르게 한다.
휙! 휘익!
어느 정도 정상으로 돌아온 다리를 빠르게 놀려 목골대의 손을 피하는 백문.
그가 있었던 자리를 파고드는 경력이 바람과 함께 먼지를 일으켰다.
“쳇!”
목골대는 공격이 빗나간 것에 투덜거리며 그대로 허리를 틀은 후 두 팔을 펼쳤다.
그런 후 다시 백문을 향해 달려들어 자신의 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팔을 뻗는 목골대.
백문의 종아리가 한차례 꿈틀거리더니 몸 전체가 허공으로 도약했다.
부웅!
목골대의 신장 이상으로 뛰어오른 백문이 허공에서 그의 뒤통수를 걷어찼다.
딱!
주위로 울려 퍼지는 경쾌한 타격음.
걷어찬 반작용으로 백문이 목골대 너머로 멀리 날아갔다.
“썅!”
최초의 공격을 허용한 것에 분통이 터졌는가.
목골대가 욕을 지껄이며 크게 회전해 백문의 뒤쪽으로 날아들었다.
둔해 보이는 몸에서 어찌 저런 민첩함이.
공중에 뜬 상태에서 목골대는 몸을 여러 번 회전해 두 다리로 백문을 압박해 나갔다.
하지만 머리를 좌우로 슬쩍슬쩍 움직이며 그의 공격을 무력화시키는 백문의 눈은 단 한 번의 깜박임도 없었다.
“허걱!”
콰앙!
투기장과 관중들 사이의 방어벽이 크게 진동했다.
끝까지 백문을 압박했던 목골대의 오른쪽 다리가 결국 돌벽을 강타하니 그 너머에 자리했던 사람들이 놀라 비명을 지른 것이다.
어느새 투기장 중앙으로 피신한 백문을 찾던 목골대가 인상을 쓴 채 으르렁거렸다.
“여우 같은 새끼.”
“그럼 넌 날렵한 곰이로군.”
멋지게 받아친 백문의 말에 목골대가 의아한 표정을 보였다.
“곰? 곰은 당연히 빠르지 않은가.”
비유가 잘못되었나?
곰의 빠름을 직접 본 적이 없는 백문으로서는 목골대가 어리둥절해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했다.
침묵하는 백문을 노려보던 목골대가 신중한 자세를 취했다.
그러더니 두 다리를 벌려 바닥을 굳게 딛고 양팔로 원을 그렸다.
‘내공을 끌어 올리고 있다.’
고수와 하수는 준비 자세부터 다르다.
둘을 나누는 기준으로 많은 이들이 인정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내공을 끌어내는 능력.
강자는 산책하듯 걷는 중에도 언제든 기를 발산할 수 있고, 그렇지 않은 자들은 잠깐이라도 저와 같은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그렇다고 목골대라는 인간이 하수라는 뜻은 아니었다.
지금껏 백문과 싸워 온 이들 중 고수라 불릴 만한 강자들도 많았다.
그러나 그들이 지금 저 목골대와 대결한다면 아마 이각을 넘기지 못하고 떡이 되었을 것이다.
목골대가 내공을 불러오는 데 저런 사전 준비가 필요한 이유는 아마 상승의 가르침을 받기 전에 그의 사부를 해쳤기 때문이리라.
“차하!”
형체가 없는 뜨거운 무언가가 백문을 향해 날아왔다.
미약하지만 강기를 조절해 외부로 뿜어낼 수 있을 정도의 무력.
텅!
백문이 있던 자리가 거칠게 파헤쳐지며 흙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어느새 공중으로 날아오른 백문은 순간적으로 목골대가 보이지 않자 살짝 당황했다.
“여우야.”
그때, 누군가 말을 거는 듯 소곤거리는 음성이 귓속으로 들려왔다.
목골대였다.
흠칫하며 돌아보니 백문과 같은 높이로 허공에 떠 있는 거대한 곰이 있었다.
부라린 두 눈 가득 분노가 담긴.
쾅!
백문이 빠른 속도로 땅을 향해 떨어졌다.
쿵! 소리를 내며 바닥에 닿았다 한차례 튀어 오르는 백문.
그를 향해 목골대가 강하게 무릎을 찍으며 내려왔다.
콰악!
급히 옆으로 구른 백문이 있던 자리에 절반이나 박혀 버린 목골대의 무릎.
만약 자신의 움직임이 조금이라도 늦어 머리에 찍혔더라면…….
깨어진 수박이 백문의 머릿속으로 절로 떠올랐다.
백문은 등을 바닥에 댄 자세로 원형으로 회전해 날렵하게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방금 쇄골 부위에 받았던 충격이 허파를 타고 찌르르 창자까지 전해졌다.
“푸웁! 퉤!”
고통을 참으며 뱃속에서 올라온 핏덩어리를 거칠게 내뱉었다.
색깔이 선명한 붉은색을 띠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직 내장이 터지거나 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공격해 봐!”
목골대는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백문을 도발했다.
이번 공격으로 자신감을 되찾은 듯싶은 모습이었다.
사실 백문은 지금껏 누구에게도 먼저 공격해 들어간 적이 거의 없었다.
상대가 완전히 사경에 몰렸을 때가 아니면 최대한 신중한 모습을 보여 왔던 것이다.
아마 어릴 적 악요의 가르침 때문일 것이다.
―상대의 공격을 피한 후 아주 잠깐 생기는 틈을 노려 살수를 꽂는다.
자신과 대등하거나 적어도 상위의 무력을 보유한 자에게는 그런 방식으로 싸워야 했다.
그리고 지금 저 목골대는 충분히 백문을 압도하는 무력을 보여 주고 있으니 다른 방도가 없었다.
“많은 이들이 보고 있잖나. 죽을 때도 최대한 멋진 모습을 보여야지. 안 그런가?”
멋있게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하지만 백문은 그 말을 듣고 오기가 생기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힘든 모습으로 이 싸움을 이길 수 있을지 고민했다.
아직 자신은 물밑의 수초로 남아 있어야 하니.
존재를 알 수 없으나 누구든 걸리면 헤어나지 못하는 죽음의 수초.
그것이 바로 백문이 세상에 내보여야 하는 모습이었다.
“겁 많은 여우로군.”
입을 크게 벌리며 웃음 짓던 목골대가 백문을 향해 달려왔다.
빨랐다.
그의 말이 틀림없다면 질주하는 곰과도 같이.
안면을 노리고 쏘아져 들어온 주먹을 왼팔로 툭, 쳐서 흘린 백문이 빠르게 뒤로 돌았다.
그리고 오른쪽 다리를 축으로 삼아 왼발을 힘껏 뒤로 차올렸다.
투두둑!
뭔가가 걸렸다.
뒤꿈치를 타고 오는 짜릿한 느낌이 백문에게 전해졌다.
제대로 된 타격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살갗 일부를 찢어 놓을 정도는 되는 듯했다.
“큭!”
목골대의 짧은 신음이 이어지고, 예상치 못한 백문의 공격에 그도 꽤 당황한 듯했다.
휙휙!
백문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몸을 바닥에 최대한 굽힌 채 오른발을 축으로 삼아 빠르게 회전하며 왼발로 목골대의 다리를 쓸어 갔다.
하지만 목골대도 만만치 않은 무인인지라 바닥을 박차며 백문의 사정권에서 벗어났다.
“후으으읍! 크아!”
훌쩍 뒤로 물러난 목골대가 숨을 크게 들이켜자마자 괴성을 지르며 주먹을 뻗었다.
펑!
목골대의 주먹이 백문의 어깨 근육에 정확히 틀어박혔다.
급히 공격하느라 내공이 제대로 실리지는 못했지만, 무지막지한 타격에 어지간한 백문조차도 비명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크읍!”
그 순간, 목골대의 다리가 눈앞을 꽉 채웠다.
피한다면 회전력을 이용해 그대로 다음 공격으로 이어질 수 있는 최악의 상황.
여기서 막아 흐름을 끊어야 했다.
텅!
머리를 최대한 숙인 백문이 밑에서부터 발을 끌어 빠르게 위쪽을 향해 쳐올렸다.
허공에서 두 사람의 다리가 교차하고, 효율적으로 방어를 해낸 백문의 기지에 목골대도 놀란 얼굴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