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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운틴 로드 1권(3화)
Chap. 1 아르도스 영지의 소영주가 된 아이(3)
한 아이가 보인다.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칠흑같이 검은 머릿결.
아이는 새들에게 모이를 주고 있었다.
아이의 머리와 어깨, 그리고 손등에 작은 새들의 노래가 머물면서 정원에는 목가적인 평화가 가득 차올랐다.
문득, 새들이 날아오르다 이내 내려앉았다.
아이에게 다가온 두 마리의 작은 고양이.
아이는 손을 내밀어 고양이를 반겨 안는다.
무어라고 하는 것일까?
어느새 아이 주변에는 토끼와 고양이, 어린 사슴, 그리고 작은 새들이 가득했다.
특이한 능력이다.
누구나, 무엇이나, 저 아이를 만나면 저렇게 경계심을 잃어버린다.
아이에게는 그런 능력이 있었다.
아니, 아이는 자각하지 못할 것이다.
스스로 누구도 경계하지 않는 아이. 누구도 미워하지 않고 반겨 맞이하며 사랑하는 아이. 항상 조용하고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 주는 싱그러운 미소를 소유한 아이.
아이의 이름은 로스, 로스데일 폰 아르도스다.
수도에서 돌아온 리믹스 폰 아르도스 백작의 외아들로, 이곳 아르도스 영지의 소영주였다.
영주 집무실의 테라스에서 아이를 내려다보는 두 사람. 흐뭇한 미소의 아르도스 백작 왼편에는 수석기사 란셋 폰 아란이 서 있었다.
백작은 처음 아이를 안았을 때를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는 듯, 푸욱 안긴 느낌. 마치 뼈가 없는 것처럼 자신에게 안긴 아이를 느끼면서 백작은 그때 이미 아이를 보호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두 번째, 골목에서의 만남.
아이는 너무 연약했고 가벼웠다. 더욱이 그 아이는 그것이 자의였던 타의였던 자신과 형제의 목숨을 구한 아이였다.
아이는 하늘에서 내려온 것처럼 그 연고가 없었다. 심지어 그 아이를 아는 사람조차 없었다.
무엇보다 아이를 그냥 버려두고 올 수 없는 애틋함이 백작에게 있었다. 그래서 백작은 수석기사와 함께 아이를 영지로 데려왔다.
그것은 누구도 모르는 소영주의 귀환이었다.
여섯 살 소년, 소영주의 귀환.
그리고 어느새 시간은 4년이나 흘렀다.
Chap. 2 리치 히트러스(1)
히트러스…….
히트러스라 불리는 전설적인 이름들이 존재했다.
신화와 같은 신마대전 당시부터 내려온 아득한 전설의 이름.
삼만 년이 넘는 레무니아의 역사에 이 이름은 최소 다섯 번 이상 저주의 이름으로 등장했다.
첫 번째 이름, 히트러스 드 카이너스.
1차 신마대전 당시, 레무니아 대륙의 중동부에 카이너스라는 이름의 왕국이 있었다.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무렵, 카이너스의 국왕이었던 히트러스는 배신의 잔을 마신다.
마왕이 약속한 영생을 향한 욕심 때문이다.
히트러스는 마족의 편에 서서, 인간과 천족들의 연합군을 공격하고, 스스로 마왕의 수족을 자처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아흔여덟.
살 만큼 살았음에도 생의 욕심을 버리지 못한 그였다.
결국, 인류를 배신하고, 피붙이와 왕국의 백성들까지 마족들에게 바치는 대가를 지불하면서 그는 영생을 얻게 된다.
하지만 그 영생이라는 것은 리치가 되는 것이었다. 결코, 히트러스가 바라던 그런 영생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미 리치가 되어 버린 상황에 달리 방법도 없었다.
분노한 리치 히트러스는 자신의 왕국에 있던 모든 마법 서적과 마구들을 모아 왕궁 지하의 모처로 숨어 버린다.
전쟁도 끝나고, 오랜 세월이 흘렀다.
그간 히트러스는 찬란한 마도시대의 마법서들을 통해 궁극의 마법인 9서클을 완성하고, 10서클의 언령마저 얻어 가고 있었다.
그때, 자신의 처소로 텔레포트해 온 존재들이 있었다.
자신과 같은 리치들.
자신처럼 과거에 마족들과 함께 했던 자들이었다. 그들은 마계의 문을 열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고 했다.
그러나 히트러스의 목적은 다시 인간이 되는 것뿐.
그들의 바람은 그에게는 의미 없는 일이었다.
싸움이 벌어졌다.
리치의 수가 많다고 해도 이미 언령마저 얻어 가던 히트러스를 꺾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히트러스는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여야 했다.
인간이 될 수 있는 방법을 그들이 제시했기 때문이다.
다시 오랜 시간이 흘렀고, 드디어 마계의 문이 열렸다.
2차 신마대전이 발발한 것이다.
처참한 종말의 시간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마족 연합의 일방적인 승리가 드러났다.
그런데 마족 연합의 승리가 확정되어 갈 무렵.
마족 연합 내 파벌 간의 다툼이 일어났고, 이 다툼은 결국 마족 연합끼리의 전쟁으로 확전하게 된다.
리치마저 소멸되는 혼전에 혼전이 거듭되었다.
한편, 그 혼전 중에 히트러스는 은밀하게 자취를 감추었다. 중간계가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되어 갈 때, 신의 분노가 모든 피조물에게 찾아들었다.
신의 진노 아래, 더 이상의 전쟁은 존재하지 못했다.
마족들은 두려워 숨을 곳을 찾아 바위 아래 웅크렸고, 신을 배반한 자들은 슬피 울며 어둠 속으로 숨어들었으며, 고통에 찬 마왕의 울음이 어둠에서 흘러나올 때, 마계의 문은 닫혀 버렸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레무니아는 처절했다.
대륙은 아틀란과 뮤란, 오델란과 수많은 섬으로 찢어졌다.
곳곳에서 화산이 폭발했으며, 바다는 솟아 산맥이 되고, 다시 끊어진 대륙 사이로 대양이 펼쳐졌으며, 평원이 사막이 되고, 곡창지대가 영원히 풀리지 않는 동토로 변해 버렸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이전의 레무니아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흘렀다.
신마대전의 슬픔도 회복되어 갈 때, 역사에 두 번째, 히트러스라는 이름이 나타났다.
대마도사 히트러스, 그 이름은 살육자의 이름이었다.
마족보다 더 무섭고 잔인했으며 추악했던, 레무니아의 악몽과도 같았던 이름 대마도사 히트러스.
아틀란 대륙에 처음 나타났던 대마도사 히트러스는 이유 없이 파괴와 살육을 자행하더니, 오델란과 뮤란 대륙에까지 건너가 살육을 행하면서, 그 악명을 전 레무니아에 남긴다.
단 3년에 불과하지만 그는 신마대전을 방불케 할 만큼 많은 상처와 피의 수레바퀴를 굴렸다고 역사는 전한다.
그런 대마도사 히트러스도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세월이 지나면 상처가 아물고 회복되는 것처럼, 그 살육의 이름도 기억도 차츰 잊혀져 갔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르자 그 이름은 그저 빛바랜 고서처럼 회자되는 옛이야기로 남게 된다.
다시 천여 년이 지난 아틀란에 다시 피의 바람이 불었다.
소국이었던 미누아의 국왕 컬킨이, 당시 최강의 제국이었던 비스토의 침입에 대항하면서, 차츰 힘을 얻기 시작한다.
어느 순간, 컬킨의 미누아는 비스토의 공격을 물리치고, 거꾸로 비스토를 점령하는 파란을 일으킨다.
이후, 비스토 제국의 힘까지 흡수한 컬킨은 무서운 속도로 아틀란 대륙 전체를 복속시키기 시작한다.
모든 왕국들이 거침없는 컬킨의 행보에 손을 들었다.
제국들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북 대륙의 제국과 모든 왕국이 컬킨의 발아래 허리를 숙였고, 남 대륙에서도 두 개의 왕국과 비스토 제국의 일부만이 남았을 때, 비스토에 구국의 영웅이 나타난다.
광란의 기사, 히트러스.
레무니아에 세 번째로 등장하는 히트러스라는 이름이다.
광란의 기사라 불리는 말티스 산맥에서 온 이 검사는 오러 블레이드를 날리며, 컬킨의 검을 부수고, 30년을 이어 온 대륙전쟁을 종결시켰다.
하지만 그의 행보는 피와 죽음으로 점철된 철저한 패도의 길이었다.
히트러스의 광란에 흘린 3년간의 피가 컬킨에 의해 30년간 흘린 피와 맞먹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히트러스는 광란의 살육을 벌였다고 한다.
민담에 의하면 컬킨은 유희 나온 드래곤이고, 히트러스는 인간으로 최초의 그랜드 마스터 경지에 올라 드래곤 슬레이어가 되었던 존재로 전해 온다.
구국의 영웅일지는 모르나, 그는 피와 살육을 의미하는 광란의 기사, 저주의 이름 히트러스였다.
다시 수많은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다시 히트러스라는 인물이 역사에 등장한다.
그의 정체는 마검사로, 사서에 기록된 내용은 이랬다.
시에라네 산맥의 동부 레어에서 수면 중이던 레드 드래곤 라바 에렉쿠스는 마검사 히트러스라는 인물에게 두들겨 맞고 레어마저 빼앗긴 채 쫓겨난다.
잠결에 겨우 도망친 라바는 다시 히트러스를 찾는다.
혈전이 벌어졌고, 그 결과는 라바의 참담한 패배. 히트러스는 절정의 검술과 마법으로 라바를 죽여 버렸다.
그런데 헤츨링의 문제나 마족들의 문제가 아니면, 결코 협력하지 않던 드래곤들이 무엇 때문인지 뭉쳤다.
라바가 히트러스에게 죽어갈 때, 갑자기 레드 일족 전체가 나타나 히트러스라는 마검사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하늘이 놀라고 땅이 울리며 바다가 뒤집히는 전투였다.
지금의 시에라네 산맥 동쪽의 포브스 사막과 발칸 일대는 당시 미리안이라는 제국의 영토였는데, 산맥 동부 라바의 레어에서 발발한 레드 일족과 히트러스의 전투는 미리안 제국의 서부를 거쳐 중부에 이르기까지, 온통 헬 파이어와 헬 브레스로 녹여 버리고서야 끝이 났다.
당시, 미리안에서 죽은 사람의 수는 헤아릴 수 없었다.
이후, 제국은 멸망하고, 여섯 왕국으로 분할되었다고 한다.
녹아 버린 땅은 드래곤들의 저주로 사막으로 변해 버렸다. 사람들은 그 땅을 레드 일족의 수장이었던 포브스의 이름을 따서 포브스 사막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어찌되었든 인간과 드래곤의 전쟁 결과는 확실치 않았다. 히트러스가 녹아 버렸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백 년 뒤, 아틀란 대륙의 서부에 히트러스라는 절정의 마검사가 나타났다.
동일인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같은 이름을 쓰는 절정의 마검사가 백 년 내에 두 명일 수는 없다는 것이 역사가들의 판단이다.
이후에도 역사에 히트러스라는 걸출한 이름이 몇 차례 나타났고, 그때마다 피는 강을 이루고, 시체가 산을 쌓는 한결같은 결과를 보여 주었다.
그렇기에 레무니아의 모든 대륙, 특히 아틀란의 모든 왕국에서 히트러스라는 이름은 저주의 대상이며, 가장 부정적인 의미로 쓰였다.
누구에게든 태어난 아이에게 히트러스란 이름을 주는 것은 레무니아 전역에서 최고의 금기 사항이기도 하였다.
― 레무니아 역사서, 인물편 ‘히트러스’ 중에서
***
“소영주님.”
“…….”
작은 새들이 날아올랐다.
아이는 말없이 그 맑은 눈빛으로 수석기사 란셋을 향했다.
처음에는 약간의 원망과 약간의 당황이 떠올랐다. 하지만 란셋을 발견한 아이는 이내 환한 얼굴로 웃었다.
란셋이 미소를 지었다.
“이젠 돌아가실 시간입니다. 너무 오래 나와 있었습니다.”
“오늘은 나오지 않았어요.”
약간은 시무룩한 표정.
할 수 있다면 란셋은 그 작은 새를 잡아다 주고 싶었다.
“너무 실망하지 마십시오. 아마도 내일은 나올 겁니다.”
“그래도 오늘 보지 못했잖아요.”
“내일은 빛나는 무지개 날개를 펴고 소영주님을 찾을 것입니다.”
“그랬으면…….”
아쉬운 듯, 테이블마운틴의 절벽 쪽을 힐끔거리는 로스.
멀리 영주관 방향에서 누군가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식사 시간이 지났으니 찾는 것이리라.
란셋은 어린 소영주를 들어 목마를 태웠다.
소영주의 맑은 웃음소리가 테이블마운틴의 절벽을 울리며 퍼져 갔다.
“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