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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운틴 로드 1권(8화)
Chap. 5 아르도스에서 일어난 기적(1)


영지의 발전 계획은 한 가지 목적에서 시작되었다.
살만 한 영지를 만드는 일.
매년 봄이 되면 굶어 죽어 가는 사람들이 없는 영지, 나아가 굶주린 아이들의 칭얼거림이 사라진 영지라는 아주 단순한 목적이었다.
너무도 단순한 목적.
하지만 그것을 이루는 데는 곳곳에 난관이 돌출했다.
무엇보다 굶주리지 않기 위해서는 식량 자급률을 높여야 했지만, 농지도 부족했고, 단위 면적당 생산 비율도 사막 지역보다 낮았다.
거기다 토양에 맞는 작물마저 찾을 수 없는 상황.
로스는 새로운 계획에서 두 방향으로 목표를 구체화시켰다.
농업과 상업.
우선 농업을 발전시키려니 농지가 절대 부족했다.
대부분의 대지가 암반이나 자갈밭이고, 물이 없다 보니 극히 일부분의 토지에 토양이 만들어져도 건조한 토양 때문에 조금만 강한 바람에도 날려 버렸다.
또 우기가 되면 테이블마운틴의 절벽에서 쏟아지는 물줄기에 남김없이 쓸려가 버리니, 남아나는 농지가 없었다.
그래서 영지의 농사 방법은 자갈밭의 토양에 씨앗을 묻고, 그 위에 자갈을 누르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설사 흙을 덮어도 얼마 지나지 않아 씨앗이 노출돼 버렸고, 설사 싹이 난다 해도 뿌리가 깊지 못하다 보니 대부분 말라죽어 버렸다.
문제는 토지의 점성에 있었다.
토양이 점성을 가지려면 수분을 머금어야 했지만, 영지에는 자그마한 개천조차 없었다.
그저 우기 때 생기는 건천 하나가 전부인 실정.
로스는 머릿속의 지식을 근거로 수로를 생각해 냈다.
아르도스 영지는 북쪽과 동쪽 전역이 테이블마운틴의 절벽과 붙어 있고, 서쪽으로는 몬스터 해역의 페리스 해와 붙어 있다.
오직 테이블마운틴의 끝자락인 남부 절반 정도가 관문처럼 마티스 영지에 붙어 있고, 바닷길 쪽으로 1킬로미터 남짓 크란 영지와 닿아 있었다.
전체적으로 북동에서 남서로 몬스터 해역을 향해 비스듬히 기울어진 장화 모양이 아르도스였다.
로스는 영주성인 아르콘 북동쪽에서부터 절벽을 따라 관문도시인 아르진까지 지름 200미터, 깊이 10미터 정도의 구덩이를 7개 파는 것으로 계획을 시작했다.
동시에 이 구덩이를 연결하는 폭 5미터, 깊이 3미터나 되는 통로를 만들게 했다.
우기가 닥치자 절벽에서 쏟아진 물이 공사하던 현장에 쏟아지기 시작했다.
공사 현장에 물이 차면서 구덩이가 작은 호수로 변했고, 그 사이를 연결하던 통로는 인공 하천으로 변했다.
사람들은 기함을 하면서 놀라워했다.
그저 소영주의 명으로 벌어진 일이었다. 누구도 이런 결과를 상상한 자는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하천과 호수가 생겨난 것이다.
그동안 소영주는 각 현장을 다니며 공사를 독려했고, 직접 일에 뛰어들기도 했다.
하지만 암반을 쪼개고, 구덩이와 통로를 만드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때, 어디서 왔는지 석공들과 기술자들이 나타났고 그들의 지시와 기술이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었다. 그럼에도 일은 너무 힘들어 매일 같이 주어지는 일당만 아니었다면 벌써 도망가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쓸모없어 보이던 공사가 영지에서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호수와 하천을 만드는 일이었다니. 모든 영지민들은 삽시간에 환호일색으로 변해 버렸다.
몇몇 공사 현장에서 불어난 물로 위험한 사태도 있었지만, 수로가 없었을 때와 비교해서 영지의 피해는 미미했다. 과거 같았으면 테이블마운틴에서 떨어지는 물줄기에 영지 전체가 난리치며 북새통을 이루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엄청난 폭우에도 거의 피해가 없었다. 일차적으로 절벽을 타고 내려온 물줄기가 하천과 호수에 모인 뒤에 다시 흘렀기 때문이었다.
이후, 주민의 참여도는 놀라울 정도로 적극적으로 변했다.
로스는 바로 수로를 넘친 물줄기가 흐르는 방향을 따라 총 아홉 줄기의 중심 수로를 만드는 일을 병행했다.
폭 3미터, 깊이 2미터의 이 중심 수로는 동북에서 서남으로 영지를 관통하여 바닷가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만 일 년이 지났을 때, 영지엔 폭과 깊이 1미터의 작은 수로가 영지 전체를 거미줄 같이 연결되게 되었다.
영지 발전의 가장 기초적인 형태가 갖추어진 것이다.

그간 온 영지는 이 일에 매달렸다.
석공들의 돌을 다루는 솜씨는 영지민들에게는 신기에 가까웠다.
암반에 일정한 홈을 길게 낸 뒤, 끓인 식초를 갖다 부었다.
그리고 얼마 지난 뒤 가 보면 홈을 따라 바위가 녹아 있었다.
식초에 무엇을 탔는지는 모르나, 녹아 버린 홈을 기준으로 좌우에 구멍을 뚫고 나무을 박은 뒤, 물을 부으면 이튿날 어김없이 쪼개진 암반을 덜어낼 수 있었다.
거기에 기술공들이 세운 도르래로 작동하는 기중기는 무거운 암반도 많은 힘을 들이지 않고서 옮길 수 있게 했다.
이러한 큰 공사로 인해 영지 전체가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로스는 동원된 주민들에게 곡식으로 일당을 지불했다.
구호소를 통해 식량을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니라, 일당으로 일정량의 곡물과 육류를 지불한 것이다.
이 말은 전혀 다른 결과를 도출했다. 적선이나 구제가 아니라, 노동에 대한 떳떳한 대가였다.
풍족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한 사람의 노동으로 여섯 가족이 하루를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는 되었기에 영지민들은 환호하며 수로 사업에 매달렸다.
갓난아이와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만 아니라면, 누구든 현장에서 하다못해 돌 조각이라도 옮겼다.
그러다 보니 5만의 영지민들이 대부분 공사 현장에 나서는 형태였다.
심지어 로스는 원치 않았으나 아이들까지 일을 거들었는데, 먹고사는 것에 예민한 주민들 스스로가 기꺼이 동참시키고 있었다. 결국 아이들에게도 어느 정도의 일당을 지불하게 되었다.
이 일은 로스로 하여금 영지의 아이들에게 관심을 두게 만들었고, 차후 레무니아 전역에 이름을 떨친 아르도스 아카데미의 시발이 되었다.
또한 모트모스 상단이 아르콘에 분점을 내었고, 옛 아르도스 시절의 친분이 있는 은퇴한 노신관 얼라인이 루테 신관과 함께 영지로 들어와 신전을 열었다.
모트모스 상단의 스토일 사무관은 대장장이나 석공, 기술자들과 함께 몇몇 의사들을 영지로 보내 주었다.
평민 출신인 이 의사들은 전쟁 등을 통해 노예가 되었다가 아르도스 영지로 팔려 온 경우였지만, 로스를 만난 후 적극적으로 영지 일을 거들었고 공사 현장에도 참여했다.
이로 인해 현장에서는 다친 자들에게 즉각적인 시술이 이루어지기 시작했고, 영지 전체에서 의사들에 대한 인식이 상한가를 치게 되었다.
하긴 귀족들의 행패를 못 이겨 버림받은 대지라는 이곳까지 도주해서 겨우 연명하던 이들이 언제 의사들을 봤겠으며 의료 시술을 받아 봤겠는가?
주민들 가운데 남부 아르도스 출신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로웠던 과거를 기억하는 이들은 거의 죽어 버렸고 살아 있어도 곧 죽을 날을 기다리는 노인들에 불과했다. 그들은 너무 빨리, 미처 깨닫지도 못하는 사이에 좋아지는 현실을 기뻐하면서도 또 불안해했다. 가시적으로 직접 와 닿는 부분들이 식량 외에는 자신들의 삶에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로스 역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제 계획의 기초가 놓인 것이다.
헌데, 이 기초 단계에서 원천적인 문제가 발생했다.
갈수기가 되어 수량이 줄어들면서 인공 하천의 바닥이 드러난 것이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아르콘 이북의 가장 크고 깊은 저수지와 관문도시 아르진 동쪽의 마지막 저수지를 제외한, 나머지 다섯 개의 저수지와 아홉 개의 중심 수로가 말라 버렸다.

“역시 갈수기엔 건천이나 마찬가지가 되어 버리는군요.”
“그래도 영지에 이 정도 저수지를 가진 것만 해도 대단한 발전입니다. 일 년 전만 해도, 이 무렵에는 마실 물을 찾아 해변의 용천을 뒤지다가 몬스터에 죽은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래, 로스.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갈 것이냐?”
“예, 아버지. 부족한 면은 보수하면서 가렵니다. 이제부터 2단계를 실행해야지요.”
로스는 아버지 리믹스 백작을 보며 웃었다.
“란셋 아저씨!”
“그냥 란셋이라 부르라 해도 그러십니다.”
“그만하게, 란셋. 자네는 내게 형제와 같은 사람일세. 로스가 그리 부른다면 그리 행동하면 되는 것일세.”
“영주님, 그러나…….”
“란셋 아저씨는 제게 영원한 아저씨입니다. 그러니 이런 말은 지금부터 더 이상 하지 말지요.”
“그래라, 로스. 그리고 란셋 자네도 마찬가지일세.”
“…….”
오십 줄에 접어든 란셋의 얼굴엔 여전히 당혹감이 서려 있었다.
“아저씨.”
“말씀하십시오, 소영주님.”
“참! 하는 수가 없군요. 알겠습니다. 서로가 편한 대로 행동하지요. 사람들을 동원해서 수로와 하천에 쌓인 토사들을 걷어 몇 군데로 모아 주십시오.”
“오! 그렇군요. 그러고 보니 이제는 토사가 쓸려 가는 것이 아니라 모을 수도 있겠군요.”
“허허, 그렇구나. 테이블마운틴에서 내려온 토사면 꽤 기름질 것 같은데…….”
“하하, 아마도 부엽토가 많이 섞였을 것입니다. 이것을 잘 이용하면 토질을 기름지게 만들 수 있을 것 같네요. 이걸 보십시오. 지렁이입니다.”
“허! 그렇구나. 허허허, 아르도스 영지에서 지렁이를 보다니…….”
뜻밖의 횡재와 같았다.
갈수기가 아니었다면 결코 발견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천 바닥의 질펀한 토사에는 지렁이들이 기어 다니고 있었다.
영지의 어느 곳에서도 발견하기 어려웠던 검붉은 색의 싱싱한 지렁이가 꾸물거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선은 하천을 채울 물이 문제였다.

***

“갈수기가 되자 수로들의 물이 마르면서 토양이 마르고 있습니다. 위에 덮어놓은 밀짚들도 말라 바람에 날리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주변의 돌덩어리로 눌러 놓고는 있습니다만, 그 일에 동원되는 인력도 만만치 않습니다.”
“돌덩어리요?”
여태 많은 보고 중에도 일절 말이 없던 로스가 입을 열었다.
토지를 만드는 일을 주관하던 아문센 남작의 한탄 섞인 안타까운 보고에 드디어 반응한 것이다.
아르도스 영지에 단 두 명밖에 없는 남작인 아문센 남작은 오히려 로스의 반응에 자신이 놀라고 말았다.
이 일 년 간, 로스는 그저 지시하고 보고받고, 다시 시정하여 지시하는 형태로 회의를 이끌어 왔다. 그 어떤 보고와 주장에도, 심지어 반발이나 부정적인 보고, 반대의 의견에도 반응을 보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아문센 남작이나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11명, 그 누구도 로스에게 불경하지 못했다.
로스는 귀족들의 반발을 철저히 무대응으로 제어했다. 그저 필요한 일을 분배했으며, 성취되지 못한 부분은 끝까지 반복 지시함으로써 지금까지 이 자리를 이끌어 왔다. 그 결과가 명확히 현실로 나타난 지금에 이르러서는 모두 로스의 지시와 명령을 철저히 이행하고 있었다.
“수로를 만들 때, 나온 돌들입니다.”
“아, 석공들이 꽤 많은 석재들을 만들었지요?”
“그렇습니다. 사실 보고 드리지 않아서 그렇지 캐낸 석재들과 돌 조각들도 큰 문제입니다. 여기저기 쌓아 놓다 보니 아이들이 올라가 놀다가 다치는 경우도 빈번하고, 길가에 나온 날카로운 돌 조각 때문에 신이 없는 영지민들이 발을 다치기도 합니다.”
“그래요, 알겠습니다. 아문센 남작님!”
“예, 말씀하십시오. 소영주님.”
“란셋 아저씨께 최대한 인력을 보충 받아 밭 주변에 일 미터 정도의 담을 쌓도록 하십시오. 특히 바다 쪽은 석재를 이용하여 튼튼히 쌓기 바랍니다. 미티슨 씨는 석공들과 함께 강풍에도 견딜만한 담을 만들 방법을 연구해 공사 현장에 적용할 수 있도록 가르치도록 하세요.”
“명하신 대로 따르겠습니다.”
“또한, 아문센 남작님이 분주하실 터이니, 펄스 경은 란셋 아저씨가 채취한 토사들을 이용하여 초지를 만드는 일을 주관해 주세요. 란셋 아저씨와 상의해서 처리하시기 바랍니다.”
“예, 알겠습니다.”
깔끔한 처리와 지시. 이견이 있을 수 없었다.
“크레인 남작님!”
“예, 소영주님.”
“포도를 재배할 주민들은 언제 돌아오지요?
“사흘 정도면 도착한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좋습니다. 포도 묘목을 관리하고 있는 주민들에게 준비를 시키십시오. 그리고 모트모스 상단에 연락하여 포도 묘목을 더 구해 달라고 요청하세요. 힘드시더라도 우리 측에서 직접 묘목 재배지에 다녀올 수 있게 하십시오.”
“알겠습니다. 소영주님, 제가 직접 준비하겠습니다.”
“오딘 왕국입니다. 모트모스 상단이 있다고 하지만 정체가 드러나면 어려우실 수 있습니다. 각별히 조심하도록 하십시오.”
“예, 소영주님.”
“그리고 오토 집사님!”
“예, 작은 주인님. 말씀하십시오.”
“조만간 모트모스 상단이 일만 골드를 지불할 것입니다.”
“이, 일만 골드요?”
오토뿐만 아니라 모든 중인들이 놀라며 로스를 주시했다.
“하하, 집사님은 그저 골드 이야기만 나오면 화색이 도시는군요.”
“지금 일만 골드라 하셨습니까?”
“맞습니다. 집사님은 귀도 먹지 않으셨으면서 골드 이야기만 나오면 되물으시는군요.”
“허허, 죄송합니다. 작은 주인님. 아마도 죽을 날이 가까운 것 같습니다. 다시 가문이 부흥하려는 모습을 보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을 듯합니다.”
평생 변함없이 아르도스 가문만을 위해 충성한 가신 오토 집사. 일흔이 넘은 오토에게 지난 일 년은 근 오십여 년 만에 맛본 풍요로운 한 해였다. 마치 과거 청년 시절의 아르도스 백작가에 돌아온 것 같았다.
“아닙니다! 집사님. 지금 돌아가시면 안 됩니다. 지금 돌아가시면 정말 억울하지요. 아르도스의 번영을 보셔야 합니다. 그리고 제 아이에게도 집사님의 단정한 삶을 보여 주셔야 합니다.”
“어이쿠! 작은 주인님께서 이 늙은이를 죽지도 못하게 하시는군요. 예, 작은 주인님의 소공자님에게도 이 늙은이의 쉰내를 맡게 해 드리겠습니다. 허허허허.”
웃는 오토의 눈가가 붉어졌고, 그 주변의 사람들 역시 같이 웃었다.
“하하하, 그래 주십시오. 약속하신 겁니다.”
“예, 그러지요. 그럴 겁니다. 작은 주인님께서 원하신다면 반드시 그래야지요.”
“고맙습니다, 집사님. 감사하는 마음에는 아무래도 부족하지만 일만 골드를 부탁드립니다. 우선 과거 밀렸던 영지 관리금부터 채우시고, 기사들과 관료들, 그리고 병사들의 미지급 급여를 지급해 주십시오. 그리고 올해부터 일괄적으로 급여를 50% 인상해 주시기 바랍니다.”
“옛? 50%를 말씀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집사님.”
“일만 골드가 엄청난 금액이기는 하지만 영원히 마르지 않을 금액은 아닙니다. 더욱이…….”
“죄송합니다, 집사님. 저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염려 마십시오. 먼저 말씀드리지만, 해마다 최소 일만 골드가 집사님께 전달될 것입니다.”
“매, 매년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니 염려 놓으십시오. 그리고 향후 4년간은 매년 봄밀과 가을밀 수확기가 끝난 무렵에, 이천 골드에 해당하는 곡물과 가축들이 들어올 것입니다. 그러니 영지민들에게 인색함을 보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말은 여기 계신 모든 분들에게 드리는 말씀입니다.”
“예, 알겠습니다. 소영주님.”
얼떨떨한 가운데서도 좌중은 화급히 허리를 숙이며 복명했다.
“이포란 경은 가까운 시기에 영지 전체의 축제를 기획해 주십시오. 필요한 금액은 오토 집사님과 상의해서 준비하시고, 필요한 물품은 모트모스 상단을 통해 조달받으시기 바랍니다. 다만 이 축제는 우리 영지민을 위로하기 위한 아르도스만의 축제입니다. 다른 영지에서 우리 영지의 상황을 알지 못하도록 보안에 만전을 기해 주십시오.”
“예, 알겠습니다. 소영주님. 영지의 비밀이 새나가지 않도록 준비하겠습니다.”
“토르만 자작님!”
“에휴, 이제야 불러 주시는군요.”
“하하, 기다리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별말씀을. 기다리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일을 맡겨 주지 않으시는 것이 두렵지요.”
“하하, 감사합니다. 자작님. 그런데 이번에는 좀 번거로운 일을 맡으셔야 하겠는데요.”
“어이쿠! 소영주님께서 번거롭다고 하시니 이 늙은이는 겁이 나는군요.”
“허허, 토르만 자작님, 아직 젊으신 분이, 그 무슨 엄살이십니까?”
“어이쿠! 요즘 잠잠하던 오토 집사께서 소영주님을 위해 칼을 잡으셨구려!”
“예?”
“허허허허…….”
“하하하하…….”
“핫하하하…….”
토르만 자작과 오토 집사는 동년배에 남부 아르도스 시절부터 함께 해 온 인연으로 작위에 상관없는 우정을 나누고 있었다. 영지 최고의 노인들 덕에 오랜만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로스는 미소를 머금은 채, 입을 열었다.
“자작님께선 왕도에 다녀오셨으면 합니다.”
“왕도에요?”
순간, 토르만 자작의 안색이 일그러졌다.
토르만 자작은 아라곤 제국의 마법 아카데미 출신이다.
그는 타고난 마나 감응 능력으로 불과 17세에 4클래스 유저에 올랐고, 19세에 카스틴 왕실마법사로 청빙을 받은 천재형 마법사였다.
카스틴 왕실의 파격적인 지원으로 20세에 5서클의 마나고리를 이루고, 자작의 작위를 받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