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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운틴 로드 1권(13화)
Chap. 7 크란 영지의 영주, 자크 드 크란 자작(2)


두두두두두…….
기사 벨리스가 앞장서 말을 재촉하며 달렸다.
그 뒤를 자작의 마차와 기사들이 먼지를 날리며 따랐다. 마법이 걸려 있는 마차지만, 돌바닥을 달리다 보니 덜컥거린다.
내심 불편하기도 했지만, 자크 자작은 웃음을 베물었다. 이미 오는 도중 해양 리자드맨을 네 마리나 처리하고 왔다.
소드 익스퍼트에 오른 기사들에게 리자드맨이야 우습지도 않았다. 비록 해양 리자드맨들이라 강하기는 했지만 기사가 스무 명이이니 리자드맨 정도야 연습용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런데 크레인 남작에 이어 란셋까지 기사를 끌고 가다니, 몬스터 전쟁도 아니고 겨우 한 무리의 습격인데 우습지도 않은 일이었다.
설사, 몬스터 수가 많다고 해도 스무 명의 기사는 오우거 한두 마리도 능히 잡을 수 있는 전력이었다. 거기다 헤르시온을 가진 기사만 다섯이다. 무엇을 두려워 할 것인가?
오히려 자신에게 망신을 준 크레인 남작의 코를 눌러 줄 기회였고, 이것을 핑계로 대충 밀이나 얼마 던져 주고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마차가 달리는 내내 보이는 주변의 풍경으로 인해 더 이상 둘러볼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성을 빠져나오는 대로 주변의 집들은, 무언지 구분도 안 가는 먼지로 덮여 있고, 벽들은 지저분했다. 간혹 오가는 사람들 역시 퀭한 두 눈에 구부정한 허리가 절로 불쌍한 마음이 들었고, 한창 뛰어놀아야 할 아이들은 길바닥에 주저앉아 칭얼거리고 있었다.
성 밖으로 나와서도 겨우 검불만 굴러다니는 대지에 간간이 보이는 검은색 이끼들이 바닥이 암반 지대라는 것을 보여 주었다.
적지 않은 여행을 해 봤지만 이런 영지는 듣도 보도 못했다.
도대체 이런 영지의 무엇을 정탐하라는 말인가?
아무리 강한 군대도 먹을 것이 없으면 백패다. 전쟁에 군수와 군량의 의미는 그만큼 큰 것이었다.
그런데 이곳은 싸울 생각조차 사라지게 만들고, 사람의 의지조차 죽이는 땅이 아닌가?
시간이 아까웠다.
이런 곳을 정탐하라 보낸 백부가 원망스러웠고, 그 원흉인 캐러멜 남작이 죽이도록 미운 자크 자작이다.
성이 거의 보이지 않을 즈음부터 간간이 바닥에 핏덩어리가 뿌려져 있었다.
몬스터의 시체도 보이지 않고 핏자국만 남은 것을 보니, 몬스터가 시체를 끌고 간 것이 분명했다.
깊은 산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바다에서 영지 깊숙한 곳까지 들어온 몬스터 하나 처리하지 못하는 기사들이 있는 영지라면 더 두고 볼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당히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는 자크 자작이다.

끼이히히힝―
날카로운 말 울음소리와 함께 갑자기 마차가 멈춰 섰다. 뒤따르던 기사들의 말들이 부딪치지 않으려 앞발을 치켜들며, 울부짖는 혼잡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몬스터다!”
“정신 차려라! 리자드맨에 불과하다!”
챙! 챙!
“으악!”
“오, 오크다!”
“우리는 크란의 기사단이다. 대응하라! 대응하라!”
“하마해라! 말을 버려라.”
사두마차의 앞에 선 두 마리 말의 목이 처참하게 뜯겨 나가 뒹굴었고, 전방의 구릉 사이에서 튀어나온 몬스터들이 날뛰는 말들을 먼저 공격했다.
십여 마리의 리자드맨과 두 마리의 오크였다.
조악한 창과 검을 들고, 겁도 없이 기사들을 기습한 것이다.
하지만 기습은 훌륭해서 몬스터의 살기에 겁먹은 말들이 날뛰는 통에 벌써 기사 둘이 낙마했고, 셋이나 공격을 당해 쓰러졌다. 이미 멈춰 선 기사들에게 기마의 이점은 사라지고 없었다.
아르진 성에서 자작에게 몬스터의 습격을 알려 줬던 기사가 리자드맨 하나를 가르더니 앞으로 나서서 외쳤다.
“하마! 하마! 일조는 자작님의 마차를 보호하고, 삼조와 사조는 리자드맨을 처치한다! 이조는 나와 함께 오크부터 먼저 처리한다!”
훈련이 철저했는지 혼란은 바로 수습되었다.
하마한 기사들은 말을 쫓아 버리고, 각자가 맡은 부분에서 차분히 대응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대응을 하면서 사태를 수습하던 기사와 몇 명의 기사들의 온몸에 천천히 회색 갑옷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니 가슴께로부터 온몸에 덮여 가고 있었다.
마법 갑옷 헤르시온.
그 가격도 가격이지만 일단 소드 익스퍼트 초급을 넘어 중급에 다다른 마나가 있어야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다는 헤르시온 갑옷이었다.
일개 자작 영지에 헤르시온 기사가 최하 다섯?
쉽게 생각할 부분은 아니었다.
과거 왕국 최고의 무력을 지녔다던 아르도스 백작가에도 헤르시온 기사는 다섯에 불과했었다.
헤르시온을 입은 기사들이 다시 전장에 나서면서 싸움의 양상은 변하기 시작했다.
헤르시온을 입은 기사와 맞먹을 정도로 해양 오크는 강한 힘을 보였지만, 결론은 이미 나와 있었다.
헤르시온 갑옷에 막혀 상처는 줄 수 없고, 일반 검으로는 막기 힘든 마나소드의 강력한 힘에 오크의 몸은 상처투성이로 변해 갔던 것이다.
더욱이 세 명의 헤르시온 기사에게 둘러싸인 오크는 마나소드의 강한 힘에 온몸에 상처를 입고 비틀거렸다.
조만간 정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가질 즈음, 구릉 사이에서 다시 오크의 거북한 콧소리가 들려왔다.
“취이익! 취익! 인간들. 취익!”
“오, 오크다!”
“대체 어디서 저런 오크들이 나와!”
“제기랄! 이놈의 영지는 밤도 낮도 없이 이게……. 헉!”
챙! 챙! 챙!
“이 오크 새끼들아! 제발 죽어! 죽어!”
“취익! 인간이나 죽어! 취익!”
어디서 나타나는 건지 검은 비늘갑옷을 입은 오크 세 마리가 투 핸드 소드를 한손에 휘두르며 기사들을 덮쳤다.
결국 헤르시온을 입은 기사 한 명만 마차 곁에 남고 나머지 기사들은 오크들에 맞서 갔다.
하지만 이 오크들의 힘은 상상 이상이라 마나소드마저 밀리는 형국이었다.
다행히 리자드맨들을 정리한 몇몇 기사들이 지원하면서 가까스로 위기를 넘기고 있었지만, 위기는 더욱 중첩되고 있었다. 구릉 사이에서 오크 한 마리가 달려들고 있었던 것이다.
자크 자작이 살펴보니 구릉 사이에 기사 하나가 막아서고 있는 모습이 모였다.
안내하던 아르도스의 벨리스라는 기사였다. 오크 두 마리를 상대로 그런대로 막고 있던 기사가 결국 한 마리를 놓친 것이다.
오크가 다시 추가되자 균형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갔다.
상처 입고 쓰러진 리자드맨을 완전히 처리하지도 못하고 삼조와 사조가 연이어 오크를 맞아 뛰어들었지만, 오크 한 마리가 더 추가되면서 밀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쓰러졌던 리자드맨들까지 강한 회복력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몸을 일으키더니, 다시 기사들을 공격해 왔다.
“랑케 경! 나를 보호해라! 프랑크 경은 뭐 하는가? 돌아와!”
기사단장인 랑케는 겨우 한 마리를 처리하려는데, 다른 오크의 공격을 받고부터 정신없이 밀리고 있었다.
일조 조장이던 프랑크가 이것을 보고 검을 휘두르며 나갔다. 지금 여기서 무너지면 도망칠 시간조차 벌 수 없다는 사실을 프랑크나 모든 기사들은 알고 있었다.
이제 자크는 두려움에 정신을 놓을 정도가 되었다. 지금은 자크 자작도 검을 휘둘러야 하는 시간인 것이다.
프랑크의 도움으로 겨우 위기를 넘긴 랑케는 벼락같이 오크에게 검을 휘둘렀고, 오크가 물러난 사이 숨을 몰아쉬었다.
“헉헉! 자작님, 여기서 조금만 지나면 헤르시온을 유지할 수도 없게 됩니다. 헉헉! 지금 이 놈들을 해결해야 합니다. 자작님도 나와서 리자드맨이라도 베십시오.”
“뭐라고! 이보게, 랑케! 우리라도 먼저 도망가세. 성으로 돌아가 병사들을 끌고 오면 되지 않겠는가?”
자크 자작은 핏발 선 눈을 숨기고 수석기사 랑케에게 사정하듯 외쳤다.
“그, 그랬다간 모두 죽습니다. 여기서 조금만 밀렸다가는 전멸입니다. 이미 남은 기사들의 말들도 다 죽었으니 오크의 추적을 따돌리지도 못합니다.”
“이런 제기랄! 내가 이런 지옥에 왜 왔단 말이냐? 랑케! 명령이다! 나를 보호하라!”
“자작님!”
“명령이다! 기사! 명령이다!”
자크 자작의 외침은 목숨을 걸고 싸움을 하던 모든 기사들에게 다 들렸다.
배신감. 그러나 자작은 자신들의 주군이었다.
랑케는 문득 차선책을 생각해 냈다.
“쿠에엑!”
랑케는 전력을 다해 검을 휘둘러 오크의 팔을 끊은 뒤, 마차 근처로 이동했다.
“모두 마차 주변으로 모여라! 어차피 시간 싸움이다! 모여라!”
“모두 방어하면서 마차 쪽으로 물러선다. 서둘러라!”
기사들은 힘껏 검을 휘두르며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이보시오! 벨리스 경! 벨리스 경!”
랑케가 힘껏 불렀지만 벨리스는 보이지 않았다.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고 오크도 더 이상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같이 죽었을 수도 있었다.
잠시 후, 마차 쪽으로 등을 붙인 기사들은 앞만 방어하면 되었기에 조금의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여유도 잠시라는 것을 랑케는 안다. 이미 자신부터 헤르시온에 들어가는 마나가 달리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지금은 헤르시온 때문에 방어에 신경을 쓰지 않고 공격할 수 있지만, 마나가 떨어지고 나면 헤르시온 기사들이 먼저 오크들의 칼 밥을 먹게 될 것이 분명했다.
방법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 수석기사의 몫이다.
랑케는 죽은 말과 마차를 연결한 등자와 언치를 끊어 말들을 떼어 냈다. 기회를 봐서 자작이라도 먼저 보내는 것이 기사의 도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몸이 자유로워진 말들은 몸부림을 쳤고, 그 통에 기사들의 사이가 벌어지면서 오크들의 공격이 기사들을 다시 갈라놓기 시작했다.
챙! 챙!
오크의 검이 뒤로 몰린 일조 조장 프랑크를 때리고 있었다.
검은 비늘갑옷을 입은 오크는 정말 강했다.
아무리 헤르시온 갑옷이라지만 저런 물리적인 공격이 중첩되면 우그러지게 되고, 그 속의 육체가 견디지 못하게 된다.
랑케의 검이 마나를 머금으며 파란 빛을 드러냈다.
쾅!
서걱!
“뀌익!”
오크의 검이 랑케의 마나소드에 튕겨 올라갔다.
기회.
순간적으로 뛰어오른 랑케가 오크의 목울대에 그대로 마나소드를 박아 넣었다.
한 마리는 처리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런데 오크가 절명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목을 관통한 검의 끝에 있는 랑케의 손을 움켜쥐었다.
순간적으로 검을 빼려 했지만 팔이 수수깡처럼 꺾여 버렸다.
“으아아악!”
이어 랑케의 목을 노리고 날아오는 투 핸드 소드.
랑케의 눈이 질금 감겨 버렸다. 마지막 순간이었다.
쿠쾅!
“뀌이익!”
서걱!
굉량한 울림과 함께 누군가의 목을 갈라 버리는 소리.
랑케는 한동안 눈을 감고 기다렸다.
‘벌써 죽은 것인가?’
하지만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갑자기 오른팔에서 극심한 통증이 올라왔다.
“크흐윽……!”
눈을 뜬 랑케의 눈에 그림 같은 광경이 펼쳐졌다.
두 눈을 부릅뜬 사자 형상의 기사.
크레인 남작이 마치 이리를 약탈하는 사자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오크들을 도륙하고 있었다.
십 분? 그 지옥의 사자 같던 몬스터들을 해치운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