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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운틴 로드 1권(14화)
Chap. 7 크란 영지의 영주, 자크 드 크란 자작(3)


“하하하하…….”
“우홧하하하하…….”
“허허허…….”
아르진 성 위에서 멀리 먼지구름을 남기고 사라지는 마차를 바라보며 통쾌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영주님, 오늘은 이 영지에서 가장 통쾌하고 가슴이 후련한 시간일 것입니다.”
“허허허, 세상에 살다 이처럼 유쾌하고 짜릿할 수가 있다니. 고맙습니다, 소영주님. 그나저나 몬스터 앞에서 오줌을 지린 자크 남작의 얼굴을 보지 못한 것이 정말 아쉽네요.”
마차가 사라지자 나타난 토르만 자작이 마치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예전이라면 상상도 못할 마법들을 펑펑 쓰면서 몬스터들을 조종했으니 얼마나 신이 났겠는가?
로스를 향한 자작의 얼굴에는 흠모와 감격이 넘쳤다.
“핫하하, 자작님, 정말 가관이었습니다. 마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거드름을 피우던 자크 자작이 맨발로 뛰어나와 손을 잡고 머리를 주억거려 대는데, 크핫하하…….”
“하하하, 엄마아야아!”
“핫하하하, 엄마야!”
“엥? 웬 엄마야?”
“크레인 남작의 손을 잡고 인사하던 자크 자작이 오줌 싼 것을 그제야 느낀 건지 한참이나 주억거리다 갑자기 다리를 꼬면서 하는 말이 ‘엄마아야아―’ 하는 겁니다. 핫하하하.”
“크핫하하하……. 그래, 그래. ‘엄마아야아―.’ 하하하하.”
“큭큭큭큭. 그러더니 마차로 뛰어올라 가 내려오지를 않는 겁니다. 핫하하하.”
“푸훗! 알만하군. 알만해.”
너 나 할 것 없이 쏟아 놓는 말 속에 감을 잡은 자작이 폭소를 터트렸다.
“그건 그럴 수도 있다 싶더군요. 그 오크는 제가 보기에도 정말 무서웠습니다. 하지만 더 재미있는 사실은 돌아가겠다는 자작에게 크레인 남작님이 지원을 부탁하자, 밀가루가 아닌 자그마치 200골드를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한 것입니다.”
“200골드? 말도 안 돼! 정말이야?”
“그렇다니까요. 아예 인장을 찍어 문서까지 이렇게 주던데요. 그리고는 영지에서 좀 쉬었다 가라는 말에도 저리 꽁지가 빠져라 도망가고 있는 것입니다.”
아문센 남작은 크란 영주의 인장이 찍힌 서류를 펼쳐보였다.
분명 200골드가 분명했다.
염탐할 속셈으로 밀가루 몇십 톤 생색만 내려했을 자크 자작으로서는 정말 거금이었다.
“하긴, 지옥의 문턱보다 더 무섭다는 오크의 입에서 구원해 줬는데, 제 목숨 값은 내놔야지.”
“하하하, 크레인 남작님의 연극은 정말 탁월했습니다.”
“큭큭큭. 우리 영지가 아니라는 말에 일그러지던 자크 자작의 얼굴이라니……. 크핫하하하.”
“이 사람들. 허허허, 허허허허”
“하하하, 그리 거드름을 피웠으니 무슨 얼굴로 성에 남아 부상자들을 치료하겠어요. 하하하하.”
기사들이나 자작, 남작 할 것 없이 웃고 떠들며 자크 자작을 잘근잘근 씹었다.
하긴 평소에 이야깃거리조차 없던 단조로운 이곳에서 이 정도의 일은 모험이요, 흥미진진한 던전 탐험과도 같았다.
동원된 인력만 해도 얼마던가?
“이포란 경, 자네가 주도한 주민들의 연기는 정말 탁월했네.”
“하하, 제가 했겠습니까? 상황을 말해 주자 집시 출신뿐만 아니라 아르진 성의 주민들까지 나서서, 지붕에 뭘 바르고 뿌려 대는 통에 혹시 잘못되는 줄 알고 마음을 졸였습니다.”
“하하, 이포란 경은 그들에게 특별히 술과 고기를 보내 치하하고, 크레인 남작님은 크란 영지에서 지원이 오면 20골드를 이포란 경을 통해 그들에게 전달하게 하십시오.”
“예, 알겠습니다. 소영주님.”
“예. 그대로 조치하고 알리겠습니다.”
“그리고 오토 집사님,”
“허허허, 예, 작은 주인님.”
“언제나 상벌이 명확해야 합니다. 이번 연극은 모두가 공을 세웠다지만 특히 아르진 성에서 많은 애를 썼습니다. 모두가 다 수고하셨지만 특히 크레인 남작님의 역할은 주연급이었습니다.”
“어이쿠! 소영주님, 저야 자작님께서 일러 주신 방법대로 한 거고, 고생이야 모두 다 했지요. 해양 몬스터들을 잡아 적재적소에 보내고 제압할 방법을 알려 주신 토르만 자작님이나, 별별 모욕을 다 당한 저기 아문센 남작이나 기사들, 더군다나 소영주님은…….”
“어라? 왜 이러십니까? 남작님, 연세가 드시더니 정말 늙기라도 하신 겁니까? 평생 없던 칭찬도 하시고…….”
“어, 아문센 남작. 나는 자네를 가장 신뢰하는 사람일세.”
“화아. 남작님으로부터 잘했다고 칭찬받을 때도 있네요. 어려서부터 책만 읽는다고 그리 구박하시더니.”
“어, 이 사람. 내가 언제…….”
짐짓 딴청을 부리는 크레인 남작과 도끼눈으로 웃고 있는 아문센 남작. 둘은 어려서부터 함께 자란 친동기 같은 사이였다.
“하하하, 그럼, 이젠 칭찬도 좀 해야지. 이번 연극에 주연씩이니 맡은 크레인 남작이 아니신가?”
“글쎄 말입니다. 열혈 아르도스의 불께서 그토록 연극을 잘하실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글쎄 말이야. 난 성문 앞에서 정말 검이라도 휘두르실 줄 알았다니까? 정말 남작님이 주, 조연을 다 맡으신 거야.”
토르만 자작의 말에 또다시 시끄러워졌지만, 크레인 남작은 그저 헤벌쭉 웃고만 있었다. 다른 때라면 있을 수 없는, 상상도 안 되는 모습이다.
“아닙니다.”
“……!”
로스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로스에게로 향했다.
“크레인 남작님께서 많은 수고를 하셨지만 우리 모두가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한 결과였습니다.”
“하하하, 그렇지요.”
“잘한 사람에게는 상을, 못한 사람에게는 벌이 당연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지원금은 크레인 남작님이 버신 거나 다름없겠지요. 해서 이번 지원금은 영지로 귀속되지 않고, 이곳 아르진 성에 내리고자 합니다. 오토 집사님, 어떠십니까?”
“어떻다니요. 작은 주인님의 뜻대로 따르겠습니다.”
“소영주님, 아닙니다. 모두가 수고한 것을…….”
“크레인 남작님, 남작님은 따라 주시기 바랍니다. 제게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으니까요. 여기 계신 다른 분들도 이의가 없으시겠지요?”
“예! 소영주님!”
“그럼 그렇게 하는 것으로 결정하겠습니다. 남작님.”
“고맙습니다. 소영주님. 정말 필요한 곳에 잘 쓰겠습니다. 그리고 모두 양보해 줘서 고맙소.”
“하하하, 축하드립니다. 남작님.”
“이거 우리 아르마 성에서 연극을 할 것을 잘못한 것 같습니다. 남작님.”
“하하하, 그거야 다 복이 아니겠는가? 더구나 이렇게 탁월한 배우가 존재하니,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어이쿠! 큰일 났네. 크레인 남작님이 집시한다고 나서시는 거 아니야?”
“에끼!”
“하하하…….”
“핫하하하…….”
정말 시원하도록 맑은 하늘이었다.

“그런데 정말 토르만 자작님의 마법은 신통해. 대체 어디서 그런 몬스터를 잡아 오신 거야?”
“아니, 그것보다 뭔 놈의 오크가 그리 강해? 더군다나 그 물고기 비늘갑옷은 대체 뭐야? 설마 해양 오크족의 전사들이라는 그 오크들 아니야?”
“오크 전사? 에끼! 우리 영지와 그 거리가 어딘데?”
“아, 왜 오늘 성문에서 자작님이 갑자기 나타나셨잖아…….”
“그러고 보니 정말?”
“그것도 그거지만, 헤르시온 기사들도 어찌 못하던 오크들을 크레온 남작님이 어떻게 그리 쉽게 해치운 것일까?”
“정말 그러네? 헤르시온 기사가 다섯이나 붙어서 쩔쩔맨 오크들이잖아. 남작님은 최상급 정도시지 않아?”
헤르시온 갑옷을 입은 기사는 보통 자신의 수준보다 두 단계 정도 이상의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 다시 말해 크란 영지의 헤르시온 기사들은 소드 익스퍼트 상급 이상이고 대부분 최상급은 된다는 말이다.
그런 그들이 힘들어 했던 오크를 단숨에 해치운 크레인 남작이었다.
“글쎄? 설마 마스터?”
“하하, 그렇다면 좋겠지만……. 정말 그럴까?”
“그러니 자크 자작도 오줌을 지리면서 도망치지…….”
“하하하, 제발 그랬으면 좋겠구먼. 그분에게 검술을 배우면서 얼마나 고달팠나. 남작님께서 마스터가 되셨다면 그분께 배운 우리도 마스터가 될 수 있다는 말이잖아?”
“하긴 그렇군. 정말 마스터신 거 아니야?”
아르콘으로 돌아가는 내내 기사들은 의구심을 푸느라 분주했다.


Chap. 8 체인지업(Change up)(1)


“자크가 오고 있다고?”
“예, 백부님.”
“얼마 전에 아르도스 영지로 간다지 않았나?”
화초의 잎사귀를 정성을 닦는 노인과 세 명의 사내들.
노인은 화초에 시선을 준 채 질문을 던졌다.
이때, 여태 침묵하던 사내 하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실은…….”
“뭐냐? 브로커.”
“실은 자크로부터 연락이 왔었습니다.”
노인은 화초를 닦던 손을 멈추고 사내를 향했다.
노인의 이름은 부르터 드 크랜스 후작, 가느롱 공작의 오른팔이라는 인물이자, 카스틴 왕국의 정무대신이다.
말을 하는 사내는 큰아들 브로커 백작이고, 나머지 두 사내는 작은 아들 슈타인과 조카인 캐러멜 남작이었다.
“네게 말이냐?”
“예, 아버님.”
“캐러멜과 슈타인은 나가 일을 봐라.”
조카와 작은아들을 내보낸 부르터 후작은 큰아들 브로커 백작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브로커, 자크 녀석을 너무 챙기는 것이 아니냐?”
“염려 마십시오. 캐러멜이나 자크나 가신일 뿐, 제겐 다름이 없습니다.”
“아니. 슈타인도 마찬가지다!”
“예? 아버지!”
짐짓 놀란 듯 브로커 백작의 탄성이 터졌다.
“잘 기억해 둬라, 브로커! 만일 네가 그 애들을 동생들이라고 안심한다면 너는 당하고 말 것이다. 네가 그렇게 약할 리는 없겠지만 네 동생들은 모두가 만만치 않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슈타인은 친동생입니다.”
“후후, 네가 알아들었다고 생각하니 그만 하마. 그런데 자크의 연락이 뭐더냐?”
가벼운 웃음으로 핵심을 짚는 부르터 후작의 말에 브로커 백작의 등허리엔 식은땀이 흘렀다.
어찌되었건 아버지의 한마디는 자신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다.
“이번엔 캐러멜이 넘겨짚은 것 같습니다.”
“그래? 캐러멜의 판단이 그리 허술한 것이 아닐 텐데?”
“나름 알아봤습니다. 모트모스 상단에서 작년에 아르도스의 영지 일부분을 매입했더군요. 아마 캐러멜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알고 있는데, 내게 보고하지 않았다는 말이냐?”
“경중을 따지기보다 먼저 확인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굳이 그 외곽의 땅을 무엇에 쓰려고?”
“원래 모트모스는 아르도스에게 끔찍하잖습니까? 여태 부어 주었던 곡물들의 대가로 영지 일부분을 받았더군요.”
“그렇다고 그 정도 물량을 또 보내 줘? 작년에 광석이나 기술자들은 뭐고?”
“그곳에 장차를 대비한 창고와 목장을 지었던 모양입니다.”
“결국 모트모스는 팜플로나 공작에게 붙기로 한 것인가?”
“이전부터 그랬지요. 드러내지 않았을 뿐.”
“이 사실을 알면 아르도스가 가만있지는 않을 텐데……?”
“아르도스가 불만을 표시할 수 있을까요?”
“아르도스를 얕보지 마라! 그러면 우리 모두 당한다.”
“아닙니다. 절대 얕보지 않습니다. 당대엔 말입니다.”
“당대에만?”
“그렇습니다. 자크가 오면 상이라도 줘야 할 것 같습니다.”
“……!”
“고생을 많이 했더군요. 또 매우 깊이 아르도스를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흠……!”
“한 가지 안 좋은 소식은 아르도스의 불이 마스터에 근접했다고 하더군요.”
“마스터?”
부르터 후작의 얼굴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예. 오러 블레이드를 본 것은 아니지만 분명 마스터에 근접한 무위를 보였다고 합니다.”
“무엇을 근거로 그런 추정이 가능하다는 말이냐?”
다소 짜증스런 의문. 마스터는 그런 것이다.
아버지의 예민한 반응에 브로커 백작도 진지해 진다.
“헤르시온 기사 다섯이 어찌하지 못하는 몬스터들을 크레인 남작 혼자서 해치웠다고 합니다.”
“그, 그게 정말이냐?”
후작은 매우 놀라 말마저 더듬었다.
“그렇답니다.”
“음……. 헤르시온 기사 다섯이면 기사들이 적어도 스무 명은 넘었겠구나.”
“그렇겠지요. 분명 자크라면 숨기겠지요.”
“마스터라고 봐도 무방하겠군. 그래, 마스터라……. 크레인이 마스터에 올랐다면 리믹스 백작이 못할 리가 없고 란셋까지도?!”
“아닙니다. 리믹스 백작은 어떨지 모르지만 란셋은 소드 익스퍼트 상급을 넘는 정도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어떤 근거라더냐?”
“원래 자크와 란셋은 왕실아카데미의 동기이지 않습니까. 크레인과 란셋의 기세에서 확실한 차이를 봤고, 란셋은 자크가 예전에 보았을 때보다 그리 발전한 기운을 못 느꼈다고 합니다.”
“그래? 왜 그럴까? 혹시 실력을 숨긴 건 아닐까? 란셋은 왕실아카데미 시절 이미 소드 익스퍼트에 들었던 사람이야. 가느롱 공작 각하께서도 탐을 내셨던 그런 천재가 그 정도 발전밖에 못했다고?”
“사람은 변합니다. 더군다나 아버님께서 더 잘 아시겠지만 크레인 남작은 아라곤 제국의 황실아카데미에서도 이름을 떨쳤던 인물입니다. 어찌 보면 란셋이 따르기엔 그 연륜에서부터 버겁습니다.”
“하긴 마스터가 애들 장난인가? 소드 익스퍼트 상급만 해도 그 나이엔 대단한 거지. 장차 마스터를 내다볼만도 해.”
“시간만 지나면 모두 마스터가 된다면 이 땅에 마스터가 왜 이렇게 찾아보기 힘들겠습니까? 너무 염려 마세요.”
“염려가 아니라 아르도스라는 이름이 그런 것이다. 게다가 마탑에서 들리는 소리에 의하면 토르만 자작이 마도사라는 이야기도 있고. 이거 아르도스를 쓸어버리는 것도 만만치 않고, 그렇다고 내버려 두면 방해가 될 것이 분명하니……. 예전부터 아르도스는 정말 문제 중의 문제로구나.”
부르터 후작은 한탄을 터트리며 양 엄지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누르다 브로커 백작을 바라봤다.
“염려 마십시오, 아버님. 그대로 내버려 두다 보면 결국은 제 스스로 사라지거나 우리에게 무릎을 꿇을 것입니다. 그들의 형편이라는 것이…….”
아들의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부르터 백작의 얼굴은 펴졌다.
“자크의 말대로 크란 영지를 통해 지원을 해 주면 결코 거절하지 못하리라 생각됩니다.”
“그래, 아르도스의 목을 자크를 통해 움켜쥘 수도 있겠구나. 그 아르도스의 불이라는 크레인이 스스로 머리를 숙일 정도라면 충분하겠지. 후후, 간만에 시원하고 반가운 소리였다. 부르터, 네가 자크를 움직여라. 필요한 지원은 네가 해 주고. 녀석의 욕심을 적당히 챙겨 주는 것도 잊지 말고.”
“예. 아버님.”
“아, 자크가 왔을 때, 캐러멜과 마주치지 않게 해야겠지?”
“예, 아버님. 그렇지 않아도 캐러멜에게 제 영지를 맡기려 했습니다.”
“그래, 어차피 네가 후작 위를 이으려면 그 영지는 누군가에게 맡겨야겠지. 하지만 캐러멜만 그곳을 차지하란 법이 없다.”
“알고 있습니다. 핑계로 내려보내는 것입니다. 자크에게는 제가 따로 언질을 남기겠습니다.”
“그래, 슈타인에게는 내가 언질을 주마.”
“……!”
브로커 백작은 아버지의 눈을 피해 급히 고개를 숙였다.
평생 아버지의 그림자뿐 아니라, 그 생각조차도 못 벗어나는 브로커 백작이었다. 그의 마음에는 아버지 부르터 후작에 대한 두려움이 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