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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운틴 로드 1권(16화)
Chap. 8 체인지업(Change up)(3)
부친인 크레인 남작을 닮아 성격은 불같고, 거기에 조각같이 잘생긴 외모와는 달리 그 장난기가 천하에 적수를 찾을 수 없는 사내. 더욱이 궁금한 것은 체질적으로 참지 못하는 성품이었다.
크레인 남작이 스물아홉에 낳은 작은 아들 산초는 그 외모에서부터 장난기, 그리고 수려한 언변까지 크레인 남작과는 절대로 닮지 않은 별종 중의 별종이었다.
그 아버지 크레인 남작과 형인 포크 부대장이 황망한 얼굴로 산초에게 눈치를 주었다.
하지만 산초 소대장은 이미 이 정도 눈치엔 도통한 존재. 무심한 얼굴로 외면하더니 로스를 바라보는 눈에 힘을 준다. 반드시 들어야겠다는 표현이다.
“산초 경이 궁금한 모양이군요. 평소 훈련 때도 이런 자세를 유지하겠다면 특별히 말해 주겠습니다.”
“옙! 소영주님, 이미 산초는 죽어 훈련의 귀신이 되었습니다.”
“큭!”
의지와 상관없이 터진 웃음에 제 풀에 놀란 소대장 하나가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으나, 이미 수많은 눈총이 쏟아지고 있었다.
산초 소대장과 사석에서 형, 동생 하는 가르시아 소대장이다.
“흠흠……!”
“……!”
소대원들 앞에서 위신을 세우려 목을 가다듬었지만 ,가장 어린 이십대 초반의 기사들로 이루어진 산초나 가르시아 소대원들이 넘어갈 리 없었다.
들리지 않는 웃음소리가 모두의 눈에 보였다. 결국.
“크크크큭.”
“풋! 푸후후후후.”
“하하하, 으핫하하하…….”
한바탕 웃음이 터져 버렸다.
크레인 남작은 눈에 불을 켜고 산초를 노려봤고, 포크 부대장은 측은한 눈으로 동생 산초를 바라봤다. 조만간 아버지 크레인 남작의 복수가 산초에게 임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어찌되었건 상관없이 산초 소대장은 여전히 눈에 힘을 주며 로스를 압박했다.
로스가 갑자기 빙그레 웃었다.
“좋습니다. 훈련의 귀신이 되었다는 확신은 없지만, 최소한 말에 대한 약속은 지키는 산초 경이니 말해 주지요.”
“감사합니다, 소영주님!”
“글쎄요. 가지지 못한 힘은 아무 쓸모가 없답니다. 그저 이야깃거리일 뿐. 어쨌든 궁금하니 풀어야겠지요?”
“……!”
어서 말하라는 듯 산초 소대장은 입을 다물었다. 어지간히 궁금한 모양이다.
“소드 익스퍼트를 고대 깨우침을 얻은 사람들은 몸을 느끼는 단계로 봤습니다. 아이가 태어나 자신의 몸과 타인의 몸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다는 말입니다.”
“아……!”
특이한 비유였다.
무언가 깨달음이 있는 듯, 기사들의 표정이 상기되었다.
“하하, 재미있는 표현이지요? 다음으로 소드 익스퍼트 각 단계를 몸을 추스르는 단계로 봤습니다. 목을 가눌 줄 알고 상대를 바라볼 수 있다는 초급, 몸을 뒤집기도 하고 주는 음식을 흘리지 않고 받아먹는 정도의 중급, 무언가에 기대어 몸을 일으키고 서거나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는 상급, 그리고 비로소 혼자 서기도 걷기도 앉기도 하며 스푼으로 스프를 떠먹고, 포크와 나이프를 들어 스스로 고기를 썰어 먹을 줄 아는 최상급의 단계가 있습니다.”
“헛……?”
기사들의 입에서 조금은 맥 빠진 탄식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그들의 눈에는 무언가 의구심이 나타난다.
로스는 무시하고 입을 열었다.
“실망스러운가요? 그만큼 이 최상급의 단계는 길고, 숙련되어야 하는 것이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소드마스터를 보기가 그만큼 힘든 것이지요.”
“아아……!”
“어쨌든 다음 단계로 마스터가 있지요. 이 단계를 고대인들은 몸을 다스리게 된 단계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성장한 사람이 자신의 필요에 따라 움직이거나 채울 줄 아는 단계입니다. 더 빨리 가기 위해 달릴 줄 알며 일상생활을 누구의 도움 없이 할 수 있다는 초급, 가벼운 짐이라도 들 줄 아는 중급, 단련된 힘으로 무거운 짐을 들기 위해 힘의 강약 조절이 가능한 상급, 그리고 내 힘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기구나 혹은 기구를 만들어 그 고유의 특성을 이용할 줄 아는 최상급이 있습니다.”
“……!”
정적이 흘렀다.
누구도 말없이 로스만 바라보고 있다.
“참고로 크레인 남작님과 란셋 아저씨는 거의 중급에 이르렀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스스로 검에 무게를 실은 헤비 소드(heavy sword, 중검)를 사용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아!”
“그렇습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말씀드린 것은 마나 수련의 단계이면서 검의 수련 각 단계에서 얻어야 할 과제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남작님과 란셋 아저씨는 상급이나 최상급에 이르기 위해서는, 먼저 더 큰 힘을 부여할 수 있어야 하겠고, 더불어 강약의 조절을 연습해야 하겠지요.”
“아!”
“또한 산초 경과 같은 경우는 마나호흡법에 이끌리던 마나를 스스로의 통제 아래 두고 필요에 따라 움직일 수 있어야 다음 단계로 진입이 가능해지는 겁니다.”
“앗!”
“크흐음……!”
모두에게서 경악과 함께 목이 타는 듯 헛기침을 터뜨렸다.
지금 기사들은 오한을 느끼고 있었다. 지독한 전율이 전신을 타고 흐르며, 주변의 모든 것을 초월하여 말하는 자와 듣는 자가 하나가 되는 신비로운 경험을 하고 있었다.
“기억해 두십시오. 어떤 힘도 내 것이 아닌 것은 사용할 수 없습니다. 내 것일 때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단언하지만 여기 두 분 외에 여러분의 단계는 아직 내 힘으로 만들기는커녕 내 힘도 구분하지 못하고 있는 단계입니다. 마나를 그냥 쌓지 말고 내 의지에 따르는 내 마나로 만드십시오.”
누구도 말이 없었다.
깊은 정적. 로스의 마지막 말이 화두가 되어 그들의 뇌리에 울리고 있었다.
“내가 가진 힘만이 내 것입니다.”
Chap. 9 로스의 부모(1)
기사들의 성장과 함께 영지의 발전은 그 맥을 같이했다. 비록 얕을지라도 암반이 아닌 토지가 만들어지면서 대지에 녹색의 물결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초록의 대지를 바라보는 이들마다 감탄을 터뜨렸다. 불과 삼 년여에 이토록 초록 물결이 들 줄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봄밀의 수확을 마쳤을 때 아르도스의 영지민들은 그 수확량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식량 수입을 파격적으로 줄여도 될 만한 양이 수확된 것이다.
그러나 로스는 전과 다름없는 양을 계속 모트모스 상단으로부터 받아들였다.
지금까지 너무 어려운 영지 환경으로 인해 아르도스의 대부분, 아니 모든 주민들은 구호소를 통한 배급으로 연명했다. 자연히 공동 생산은 아닐지라도 공동 분배가 이뤄졌다.
그러던 것이 영지의 개발 과정에 참여하여 일당을 받게 되었고, 이는 확실한 공동 생산, 공동 분배의 형태가 되어 버렸다.
로스는 이를 다시 환원시키려 했다.
비상시나 단기간은 모르겠거니와, 공동 생산과 공동 분배는 자칫 주민들의 의욕을 떨어뜨리고 방관자의 자세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로스가 구호소를 통하지 않고, 일을 한 사람에게만 일당 명목으로 식량을 배급한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로스는 금년에 봄밀을 수확한 후부터 일당을 돈으로 지급하게 했다. 일에 따라 약간의 차등은 두었지만 왕도의 노동자에 준한 일일 30쿠퍼 정도의 일당이 주어졌다. 10쿠퍼 정도면 6인 가정이 하루를 먹고살 수 있으니 결코 작은 금액은 아니었다.
더불어, 만들어진 농지를 영지 사업에 성실하게 참여한 이들에게 포상으로 나누어 주었다. 이는 다시 폭발적인 호응을 얻어 냈다.
차츰 사유재산제를 시행하기 위한 조처였다.
또한 로스는 전 영지에 초지와 함께 초록의 물결로 뒤덮을 계획을 실행 중에 있었고, 그 덕에 영지 곳곳에 뿌리가 강한 나무들이 심겨지고 있었다.
특히 해변의 숲에서 옮긴 수종은 매우 강한 적응력을 나타내서 영지 전역에서 푸른 녹음을 보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연중 마르지 않는 수로와 밀짚을 태운 재와 수로에서 걷어낸 토사를 뿌린 땅에서는 버려두면 금방 잡초들이 자라나 애를 먹게 만들었다.
불과 일이 년 전만 해도 보기만 해도 반가운 잡초였지만, 광대한 목초지가 곳곳에 만들어지면서 잡초는 천대받는 존재가 되고 만 것이다.
그동안 영지에 도서관을 개관했고, 아카데미도 개설되었다.
토르만 자작이 왕도와 아라곤 제국의 황도까지 오가며 구한 서적들이 도서관에 가득 찼고, 당시 만났던 실력은 있지만 소외되고 있던 왕도와 제국의 학자들이 속속 영지로하려는왔다. 개교 일 년이 지난 지금, 아카데미는 더욱 알찬 과목들을 개설해 나가고 있었다.
아카데미 초대 학장으로는 토르만 자작이 취임했다.
아르콘 서부에 지어진 아카데미는 중앙의 7층 탑을 중심으로 3층의 건물 10동이 둘러싼 형태였다.
오른쪽으로 돌면서 교양 교육관, 행정 교육관, 의학 별관, 기사관, 마법관, 연무별동, 식당, 기숙사, 교수 연구관이 있고, 동쪽에는 도서관 건물이 들어서 있다.
그 중심의 7층 건물은 마탑이다.
토르만 자작의 동기들과 친분이 있는 이들로 구성된 마법사 열다섯이 적을 둔 아르도스의 마탑이었다.
자금까지는 교양 교육관을 공동으로 쓰면서 위탁 교육을 감당했고, 행정 교육관에는 서른여덟 명의 학생이, 의학 별관에는 열두 명, 기사관에는 수습기사 일흔다섯 명, 종자 쉰다섯 명이, 마법관에는 열두 명의 학생이 수련하고 있었다.
그들이 바로 아르도스의 머지않은 장래였다.
다만 교수는 아직 부족하여 서른한 명의 교수들과 마탑 소속의 마법사 열다섯 명도 교수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었고, 오토 집사와 아문센 남작, 그의 아들 피어리까지 시간을 나누어 강의를 해야 했다.
기숙사는 의사 실링이 사감으로 취임했고, 도서관은 평생을 아르도스에서 보낸 노마법사 플레시드 경이 관장으로 있으면서 실무는 토르만 자작의 제자 마법사 로터가 맡았다.
한편, 과거 암반으로 이루어진 대지 때문에 울어야 했던 아르도스가 이번엔 암반 때문에 웃고 있었다.
석공장인 미티슨은 석공들과 함께 해머 케이프에 대단한 위용의 항구를 세우고 있었다.
산호초로 인해 파도도 없었고, 이미 만들어져 있는 풍부한 석재를 산호초와 근접하여 쌓은 결과였다.
산호초 주변은 수심도 얕았고 그 바닥이 암반이었기에 공사는 순조롭고도 신속하게 이루어져 불과 일 년이 못 되어, 최소 오천 톤은 동시에 입항할 수 있는 거대 접안 시설의 항구가 완성된 것이다.
이제 해로만 뚫리면 해머 케이프 항구는 북부 아틀란 최대의 항구로 발전할 것이 분명했다.
몬스터 해역 북부의 평균 수심은 5~7미터 내외였지만, 로스의 예상대로 아르도스 영지 앞바다에는 해저 강줄기가 존재하고 있었다.
각인되어 있는 기억 속에 지금의 대륙 북부 시비리 지역에서 발원한 강이 오르구스 왕국과 테이블로스 산맥 남부, 테이블마운틴의 옛 카이너스 왕국 자리를 지나 아르도스 영지와 스탠 공국의 북부를 관통하여 뮤란 대륙을 가로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 해저 강줄기의 평균 수심은 약 25미터, 폭은 50미터 정도로 짐을 가득 실은 대형 캐랙 선이나 그보다 좀 더 큰 규모의 갈레온 선도 무리 없이 통과할 수 있는 천연의 항로였다.
더군다나 이 해저 강줄기는 해머 케이프 부분에서 갑작스럽게 시작되어 검은 머리 오크족의 섬과 붉은 머리 오크족의 섬 사이로 지나 스탠 공국의 북부 10킬로미터 해상에서 갑작스럽게 나타난 해저 직벽으로 대양과 맞닿아 있었다.
이는 장차 뮤란 대륙에서 이 항로로 대형 상선들이 들어올 때, 스탠 공국으로는 수심으로 인해 들어갈 수 없다는 뜻이고, 이는 고스란히 아르도스에서 이득을 얻는다는 의미였다.
계속해서 늘어나는 접안 시설과 부두의 건설이 본격화되면서 항구 주변으로는 새로운 성을 만들기 위한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먼저 항구 서쪽엔 창고와 식당, 여관들이 들어섰고, 동쪽의 빈터에는 배를 만드는 조선공장이 들어섰다.
최근에 아르도스 일호라는 배수량 이백오십 톤, 길이 약 삼십오 미터, 다섯 개의 돛을 가진 상선이 진수식을 기다리고 있었고, 삼십 톤 급의 피어스(pierce) 일호는 이미 작전에 투입되면서 운행 중이었다.
뿐만 아니라 몬스터가 사라지면서 어업이 활성화되어 고기잡이 어선들도 다수 만들어져 어로 작업에 투입되었다.
로스가 모트모스 상단을 통해 지속적으로 유입하고 있는 노예들 중에 어부 출신들도 다수여서, 고기잡이와 수산물 채취도 활성화되고 있었다.
더욱이 산호초의 바다는 그야말로 황금 바다라 할 만큼 수자원이 풍부한 지역이라 어획량도 엄청나 모트모스 상단에서는 은근히 건어물의 매입을 추진해 왔다.
몬스터 해역으로 인해 북 아틀란의 서북부 지역에서는 해산물이 귀했기 때문에 부르는 것이 값인지라 모트모스 상단이 이를 놓칠 리가 없는 것이다.
창고들과 조선소의 사이에는 관공서와 역마차 시설, 그리고 계획도시에 맞춘 주택들이 들어서면서 로스는 천여 명을 우선 이주시켰다.
이들은 오토 집사에게 글과 수에 대한 교육을, 아문센 남작에게 상술을 교육받고 있는데, 향후 해머 케이프에서 장사를 하며 직접 운영할 사람들이었다.
이미 토르만 자작은 이 지역의 해도를 완성했고, 스탠 공국까지의 페리스 해 해도도 거의 완성단계에 이르고 있었다.
이 말은 새로운 해로의 개척이 가깝다는 뜻이고, 아틀란 대륙의 북부에 새로운 상업 거점이 나타날 날이 머지않았다는 의미였다.
어느 순간부터 리믹스 백작은 영지의 모든 권한을 로스에게 위임하고 수련에만 전념하고 있었다. 수련에 있어 기사들이나 마법사들도 다름없었으나, 리믹스는 의도적으로 아들 로스에게 모든 일을 일임하고 수련에 몰두했다.
상대적으로 기사들이나 마법사들은 수련 외에도 각자의 임무가 있었기에 언제나 로스의 주변에 머물렀다.
이로써 기사들과 마법사들이 거리낌 없이 로스를 주군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를 염두에 둔 리믹스 백작의 의도가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