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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운틴 로드 1권(18화)
Chap. 9 로스의 부모(3)


그런 리믹스의 태도를 간만에 흡족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르엔느.
“그게 뭐지요. 리믹스?”
“내 무죄를 밝힐 증거가 있소.”
“그래요? 그렇다면 증명해 주세요.”
“네 반드시 그러리다. 로스.”
백작은 비장한 표정으로 로스를 불렀다.
“네, 아버지. 대체 뭐로 아버지가 어머니와 아들을 갈라놓으신 사실을 거짓이라 꾸미실 건가요.”
“하하, 로스 너무 두려워 말아라. 설마 네 어머니가 너를 이 방에서 쫓아내고 다시는 안 만나고, 얼굴도 안 마주치고 말도 안 하시겠느냐? 다만 나는 네 어머니가 내게도 감자파이를 간혹 구워 주기를 바랄 뿐이다.”
“호호, 리믹스. 정말 저를 흉악한 엄마로 모시는 것 같군요. 제가 우리 로스를 이 방에서 쫓아내고 다신 얼굴도 안 보고, 말도 않고 만나지도 않을 매정한 엄마라는 말인가요?”
“앗! 르엔느, 그게 아니라 결코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었소.”
“마치 그러기를 바라는 말 같았는데요?”
“어이쿠! 만일 그렇게 들렸다면 용서하시오. 내가 아무래도 감자파이를 못 먹어 말이 헛 나왔나 보구려.”
“호호, 좋아요. 당신께서 말씀하신 증명을 하시면 용서해 드릴뿐만 아니라 감자파이도 구워 드리지요.”
르엔느는 고운 미소를 베어 물고 사근거리는 목소리로 리믹스 백작에게 말했다.
리믹스는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며 르엔느의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로스, 이제 더 기다릴 수가 없구나. 너도 준비가 되어 있겠지?”
“물론이지요. 아버지. 이번에 꼭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제겐 증인도 증거도 너무 많거든요.”
“좋아. 그리 나와야 이 아버지도 안심이 되지. 하하.”
“핫하하, 기대가 많이 됩니다. 아버지.”
“하하하, 그래 나도 그렇단다. 한 가지 물어보자. 로스.”
“뭐든지 물어보세요. 진실만을 대답하겠습니다.”
묘한 긴장이 도는 중에 리믹스 백작은 빙긋 웃었다.
“로스, 너는 저 목걸이를 네 어머니가 걸었으면 좋겠느냐? 아니면 네가 걸고 싶으냐?”
“앗! 아버지, 무슨 말씀이세요. 당연히 어머니가 거셔야지요.”
“그 이유가 무엇이지? 뭐, 네 어머니가 아름답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는 아예 말아라. 그런 말엔 네 어머니가 결. 단. 코. 목걸이를 걸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
“후후, 르엔느 보시오. 로스가 대답을 못하고 있소. 왜 그런 줄 아시오?”
“……?”
“아마도 그 목걸이에는 나도 잘 모르는 비밀이 있기 때문일 거요.”
“리믹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로스!”
“어, 어머니. 아버지……!”
“하하, 르엔느 지금 밝히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주시구려. 그리고 로스, 너무 난처해 하지 마라. 이제 네 어머니도 알아야 되지 않겠니?”
“하, 하지만…….”
로스가 난처해 허둥거리자 백작은 빙그레 웃었다.
“로스, 네 어머니는 너의 능력을 모르는 상태에서는 절대 이 목걸이를 갖지 않을 것이다. 네 어머니가 이것을 팔지도 않고 네게 가지라는 이유를 모르겠니?”
“아버지……!”
“네 어머니가 너에 대한 걱정을 버리지 않는 한, 너는 그 목걸이를 네 어머니의 목에 걸지 못할 텐데……. 네가 결정하렴. 르엔느, 당신은 아들을 잘 봐두구려. 하하하.”
“……!”
르엔느가 불안한 얼굴로 리믹스를 바라보자, 리믹스 백작은 르엔느의 손을 잡으며 웃었다.
잠시의 침묵이 흐르자 로스는 결심한 듯, 백작과 눈을 마주친 후 르엔느를 향했다.
“어, 어머니.”
“그래, 로스. 네 아빠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어머니. 제가 어떻게 변하든 어머니의 아들이 분명하지요?”
“그럼. 그게 무슨 말이니? 네가 어떻게 변해도 너는 내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야!”
“그래요, 어머니. 이십삼 년이 흘러도 삼십이 년이 흘러도 백 년이 흘러도 저는 어머니의 사랑하는 아들 로스예요. 그렇지요?”
“그래, 로스. 내가 죽어 백골로 변해도 너는 내 아들이야. 누구도 다시는 너를 내게서 뺏어 가지 못하게 할 거야!”
로스의 이상한 질문에 르엔느는 눈물을 흘리며 큰소리로 로스를 끌어안았다.

“어머니, 이제 로스를 믿겠어요? 누구도 저를 어머니에게서 뺏어 가지 못해요. 그리고 저는 어머니의 작은 기사가 되겠어요. 그 무엇도 어머니를 제게서 뺏어 가지 못하게 하겠어요.”
“로스……, 내 아들…….”
로스가 맨손으로 만들어 낸 오러 블레이드에 르엔느뿐만 아니라 리믹스 백작까지 놀라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맨손에서 나타난 오러 블레이드를 누가 상상했겠는가?
이는 소드마스터 최상급에서나 겨우 흉내를 생각할 수 있을까?
아니, 대륙의 누구도 이런 기사를 생각조차 못할 것이다.
로스가 보여 준 경지는 소드마스터 중급에서 상급을 바라보는 백작으로서도 넘볼 수 없는 경지였다.
뿐만 아니라 오러 블레이드에 이어서 로스가 보여 준 것은 매직미사일 수십 개, 토르만 자작이 보여 주었던 매직미사일에 비해 훨씬 더 굵고 컸다. 백작이 알기로 토르만 자작도 보여 줄 수 있는 매직미사일의 수가 불과 칠팔 개에 불과했다.
‘아무리 고대 신전의 힘을 얻었다지만……?!’
리믹스 백작의 이성에 혼란이 찾아들었다. 오러 블레이드와 저 정도 수준의 마법을 수련하기 위해서는 어떤 단계를 밟아야 하는지 너무도 잘 아는 백작으로서는 믿을 수 없는 현실이었다.
로스는 숨기려 했지만, 이미 토르만 자작이 로스의 도움으로 7서클을 완성한 사실을 직접 들어 확인한 백작이었다.
고대의 신전을 찾았다 했으니, 그 정도의 지식은 가능할 수도 있다고 내심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마법을 사용할 뿐만 아니라 그 경지가 그냥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높았다.
리믹스 백작의 경악에 찬 눈에 그 아내 르엔느가 보였다.
아들의 실력을 보자마자 달려가 끌어안고 기뻐하는 르엔느였다.
르엔느는 희열에 찬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저 교양으로 검술을 배웠던 그녀에게는 아들의 경지가 어떠한지는 상관없었다. 실력이 대단하다는 것과 아들을 누구도 쉽게 대할 수 없다는 것 이외에는 다른 관심이 없었다.
순간, 리믹스 백작은 깨달아지는 바가 있어 크게 소리치며 달려가 로스와 르엔느를 끌어안았다.
“오오 로스, 내 아들! 정말 엄마와 나는 네가 자랑스럽구나!”
“아, 아버지……!”
움찔하던 로스의 눈이 붉어진다.
혹시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면 부모님의 태도가 달라질까 두려웠던 로스였다.
다시는, 두 번 다시는 부모님의 곁을 떠나기 싫은 로스였기에,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들로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안주하고 싶었었다.
하지만 상황이 그렇지 못했다.
항상 가난하고 굶주린 영지.
이를 고심하는 아버지와 묵묵히 내조하는 어머니.
로스는 당연히 그런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머릿속에 각인된 지식에는 전형적인 귀족의 삶이 너무도 확실하게 들어 있었다. 왜곡된 지식들이 로스에게는 이미 경험으로 기억되어 있었다.
그 경험과 지식이 말하기를 부모와 같은 귀족은 없었다.
그리고 구호소의 모습과 부모님의 염원을 생각하며 로스는 결심했다.
온 힘을 다해 머릿속에 각인된 전형적인 귀족의 행태와 정반대로 행동하기로.
그러한 가치관을 정립하는데, 걸린 시간이 오 년이었다.
그리고 삼 년여의 영지 개발 계획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로스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꼭 필요한 부분에서만 자신을 드러냈다. 그것조차도 모두를 놀래게 만들었다.
로스는 두려웠다. 혹여 부모님이 자신을 이상한 아이라 생각할까 두려웠고, 자신과 사이가 서먹해질까 두려웠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잃지 않을 것 같아 두려웠다.
그래서 로스는 자신이 드러내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하지만 이제는…….
‘됐어……!’
왠지 힘이 빠지며 정신이 몽롱한 것 같았다.
로스는 허물어지듯, 르엔느의 품으로 쓰러졌다.
그 품에서 로스는 밝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로스, 로스!”


Chap. 10 검은 머리 오크족의 섬(1)


오늘이다.
지옥을 넘나들던 아르도스의 기사들이 드디어 그 성과를 확인하는 날이자, 몬스터 해역을 뚫고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기 위한 첫 출전이요, 최대의 공략일.
드디어 산호초의 바다를 넘어 스탠 공국과의 사이에서 제일 큰 섬인 검은 머리 오크족의 섬을 공략하는 것이다.

검은 머리 오크족의 섬.
스스로 약탈한 무기들을 자신들에게 맞게 개발하고 특이한 물고기 비늘갑옷마저 만들어 입을 정도로 지능과 기술이 발달한 족속이며, 붉은 머리 오크족과 함께 북부 몬스터 해역을 지배하는 검은 머리 오크족들의 터전이다.
토르만 자작은 이 섬을 로스데일이라 부르려 했으나 로스는 이 섬을 에크베이트 섬이라 명명했다. 아르도스의 미래를 위해 스스로 산화해 간 기사단의 이름을 보존하려는 의도에서였다.
이미 로스와 토르만 자작은 몇 차례 탐문을 마친 상태였고, 지난번 자크 자작 때도 이곳에서 잡아 온 오크들이 성공적인 역할을 감당하기도 했었다.
물론, 그 이면에는 로스가 스트랭스(strength)의 강화 마법과 흑마법 커스(curse 저주)를 적절히 걸어, 몬스터들을 비약적으로 강화시켰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방법은 과거 신마대전 당시 마족들이 즐겨 사용했던 방법으로, 원기를 너무 많이 허비한 몬스터가 통제를 따르지 않으므로 폐기되었다.

검은 머리 오크족의 섬은 서북향에서 동남향으로 길게 드러누운 뭉툭한 도끼날 모양이다.
서북부에는 높은 바위산과 함께 절벽이 있어 접근이 어려웠고, 동남부는 모래가 펼쳐진 해변이라 접근이 용이하지 않았다.
서부는 붉은 머리 오크족으로 인해 감시가 철저했고, 서남부로는 거의 붙어 있는 두 섬에 검은 머리 오크족의 마을이 존재했다.
결국 공략은 처음부터 전면전이 아니기에 동부에서 가능한한 들키지 않고 공략해 들어가야 했다.

결국 동부와 남부에서부터 하나하나 처리해 나가기로 했다.
피어스 일호와 이호가 동시에 동부와 남부 지역에 도착했다.
섬에 마을은 모두 여섯 개. 검은 머리 오크 수장의 거처는 섬의 서북쪽에 솟아오른 바위산의 중간 지점이다.
그중 수장이 있는 마을의 오크 수는 이천 마리가 넘었고, 이외에도 천 마리가 넘는 마을이 네 개나 되었다.
인접한 섬을 빼고도 전체 수는 만 마리에 가까웠다.
더욱이 오크족의 특징이 새끼만 빼면 모두 전사였다.
거의 팔천 마리와 싸워야 한다는 결론이었다.
그것도 기사들의 손실 없이, 아니 사망자나 큰 부상자 없이, 로스는 이 섬을 점령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과거라면 이 섬을 점령하기는커녕, 마을 하나와의 전투에서도 모두 전멸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년 반이라는 기간 동안 그들은 충분히 강해졌고, 또 지금도 강해지고 있었다.
로스는 그 속에서 가능한 길을 찾았다. 몇 개의 마을만 먼저 정리할 수 있다면, 그래서 힘을 합쳐 빠른 시간 안에 수장 마을을 공략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로스의 관여 정도와 전면전이 일어나기 전에 최대한 전사 오크와 주술사 오크들을 처치하는 것이 이번 작전의 관건이었다. 이 작전에 있어 실패는 생각지도 않았다.
공격은 양 방향에서 이루어졌다.
피어스 일호의 리믹스 백작이 토르만 자작과 함께 포크 부대장의 일군을 이끌고 동부에서부터 오크 마을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피어스 이호의 란셋 대장은 펄스 부대장의 이군을 이끌고 남쪽 마을부터 공략해 서부 중 산간지대의 수장 마을로 진군했다.
로스는 공중에서 투명화 마법으로 몸을 숨긴 뒤 양측을 관찰하면서, 두 개의 마을에서 혹 빠져나올지 모를 몬스터를 감시했다.
다행히 세 시간도 못되어 일군은 오크 마을 한 개를 완전히 지우고 두 번째 마을을 향해 진군하고 있었다.
이군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 하나를 완전히 초토화시키고 이동했다.
다시 시간이 흐르면서, 이군은 빠르게 팔백 마리 정도의 작은 마을 하나를 지웠지만, 일군은 천칠백 마리 정도의 마을에서 시간을 잡아먹고 있었다.
‘저놈!’
로스는 생각과 함께 몸이 반응했고, 정신없이 수장 마을로 도주하던 검은 비늘갑옷을 입은 다섯 마리의 오크 앞에 내려섰다.
“미안하다마는 여기서 죽어 줘야겠다!”
“취이익! 뭐, 뭐냐? 취익! 이, 인간의 목소리다! 취익!”
“어, 어딘가? 취익!”
갑자기 들린 음성에 오크들은 놀라며 사방을 둘러봤다.
로스의 빠른 움직임에도 아직 투명 마법이 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로스는 망설임 없이 매직미사일 다섯 개를 날렸다.
“취익! 마법이다! 취이익!”
퍼퍼퍽!
동시에 터진 살을 찢어발기는 소리와 함께 다섯 마리의 오크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뒤로 날아갔다.
“취이이익……! 누군가? 취이익!”
다섯 마리의 오크 중에 머리털을 위로 세운 오크였다.
다른 오크들은 심장이 관통되어 즉사했는데, 그 순간에 몸을 비틀어 심장을 피했는지 가슴 중앙에 커다란 구멍이 나서 뭉글거리며 녹색 피를 토해내고 있었다.
“미안하구나. 하지만 너희와 우리는 함께 공존할 수 없는 관계. 이제 이곳에서 오크들을 몰아내려는 사람이라는 것만 알아 두어라.”
“취익! 이, 인간……!”
픽!
놀람에 한껏 커지는 오크의 두 눈, 그리고 번쩍하는 빛줄기와 함께 가슴의 구멍과 다른 조그만 구멍이 심장에 나타났다.
매직애로우였다.
여전히 로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녹색의 핏물 위에 다섯 구의 고깃덩이만이 한 시간 뒤 리믹스 백작이 이동하는 자리에 남겨져 있었다.
공중에서 감시하던 로스는 도주하는 오크뿐만 아니라, 아르도스 기사들의 진행 방향에 있는 감시 초소들도 남겨 놓지 않고 처리해 나갔다.
그리고 두 번째 달, 어센드(ascend)가 중천에 떠오르고, 첫 번째 달 리브(leave)가 하늘에서 사라져 갈 때, 리믹스 백작의 일군과 란셋 대장의 이군이 로스와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