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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운틴 로드 1권(20화)
Chap. 10 검은 머리 오크족의 섬(3)


두 번째 쌍둥이 달 어센드도 산 위로 넘어가 버린 시간…….
은밀한 움직임이 소리도 없이 초소들을 휩쓸면서 차츰 오크 수장의 마을로 다가섰다.
마을 위쪽의 감시 초소들도 소리 없이 날아든 아이스 애로우에 심장이 얼어 버렸다.
내려다보는 오크 수장의 마을은 예전에 인간의 성터였던 듯, 허물어진 성벽을 가지고 있었다. 그 성벽의 중심부에 오크 수장의 마을이 존재했다.
갑자기 하늘을 환하게 밝히는 불덩이가 떠올랐다.
점점 커지는 두 개의 불덩이.
7서클의 화염계 마법인 플레임 익스플로전(flame explosion 화염 폭발)이었다.

휘르르르…….
“취익! 벌써 해가 떴나? 취익!”
쿠우우우…….
“취익! 해, 해가 두 개다! 취익!”
쿠우우우웅…….
“취이익! 저, 저건?! 취익!”
쿠와아아아앙…….
점점 거대해지는 불덩이는 그 힘을 이길 수 없다는 듯이 요동치며 소리를 발하더니, 나중엔 모든 소음을 삼켜 버리는 굉음이 되었다.
불덩이를 발견한 오크들이나 무너진 성터에 도착한 기사들 역시 놀라 몸이 굳어 버리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것은 지독한 두려움. 피륙이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이 원천적으로 두려워하는 불에 대한 공포심이었다.
“지옥의 광염이여! 모든 것을 부수고 태우고 소멸시키는 미친 불꽃이여! 플레임 익스플로전(flame explosion)!”
콰콰콰콰아아아앙!

플레임 익스플로전이 네 번이나 떨어진 수장 마을은 이미 공황 상태였다.
기사들이 난입했을 때, 변변한 대응조차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기사들이 예전 성주의 터였을 마을 중앙 건물에 이르자, 회색빛의 비늘갑옷을 입은 오크들이 나타났다.
오크들은 보통의 남자 성인보다 머리 하나 정도는 작다.
하지만 이 몬스터 해역의 해양 오크들은 오히려 인간들보다 더 큰 족속들이었다.
페리스 해의 풍부한 해산물이 영양 상태를 호전시킨 것이다.
그중 검은 머리 오크족이나 붉은 머리 오크족은 인간들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월등한 키와 몸을 가졌다. 타고난 신체 구조에 강한 뼈대, 그리고 나무를 뿌리째 뽑아 버리는 강력한 근력, 그 폭발적인 스피드와 상상할 수 없는 회복력은 이 지역이 대형 해양 몬스터가 들어올 수 없는 곳임에도 인간들이 해로를 만들지 못하게 만든 근본적인 이유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 아르도스의 기사들이 그중 최고라는 검은 머리 오크족의 전사들과 부딪친 것이다.
혼전의 와중에 갑자기 성인들보다 머리 세 개는 더 큰 오크 한 마리가 전사 오크들을 헤치고 나왔다.
다른 전사 오크보다 머리통 하나는 더 큰 오크였다. 거의 트롤급의 거대한 몸뚱이는 주변을 모두 가리는 듯했다.
“취이익! 난 검은 머리 오크족! 취익! 전사 중의 전사! 취익! 대전사 ‘주먹 따라 간다’이다. 취익! 직접 상대해 주마! 취익! 나와라! 취이익!”
“큭! 주먹 따라 간다? 이름 꼬라지 하고는……. 큭큭큭!”
“취익! 넌 누구냐? 취익! 인간 꼬마! 취익!”
“큭큭!”
오크의 덩치에 놀라던 산초가 그 이름에 웃었다. 문제는 졸지에 꼬마가 돼 버린 것.
주변에서 웃는 소리에 산초의 입술이 묘하게 비틀린다.
“꼬마? 이봐, 콧바람! 니가 날 물렁하게 봤다 이거지?”
“뀌이익!”
산초의 모습이 앞으로 달려가는 듯싶더니 순간적으로 사라지고, 다시 돼지 멱따는 소리를 지르며 오크가 뒤로 물러났다.
어보이드 스텝(avoid step)으로 접근하여 검을 그은 것이다.
오크가 있던 자리에는 여전히 비틀린 입술의 산초가 서 있었다.
“어때, 꼬마의 칼을 먹은 기분이!”
“뀌이익! 인간! 취익! 대단하구나! 취익!”
“그 정도로?”
챙!
다시 산초의 몸이 사라졌지만 들려온 소리는 쇳소리.
그 순간 오크가 검을 휘둘러 막은 것이다.
챙! 챙! 채챙!
산초의 삼단 콤보 공격이 연달아 오크를 향해 내뻗었지만 오크의 솜씨는 산초 이상의 것이었다.
보법인 어보이드 스텝의 효능으로 산초를 놓친 오크가 번번이 공격을 당하고는 있었지만, 산초가 나타나 검을 휘두르는 그 짧은 시간에 반응하는 오크 ‘주먹 따라 간다’였다.
오크의 근력이 얼마나 좋았던지, 검이 맞부딪칠 때마다 산초의 검은 사정없이 튕기면서 산초의 자세까지 흔들고 있었다.
하지만 산초는 당황함 없이 오크의 힘이 흐르는 방향으로 그 힘을 흘리면서, 사각으로 파고들었다.
오크는 정말 타고난 전사 이상이었다.
오크가 본능적으로 어보이드 스텝을 감지했는지 산초와의 거리를 좀 더 벌리려 했다.
사각의 틈을 줄이려는 것이다.
그 조그만 차이가 사라지면서 오크의 검은 방어에서 공격으로 전환되었다.
더욱이 산초의 검은 브로드 소드, 그에 비해 오크의 검은 글라디우스를 투 핸드 소드 형태로 키운 초대형 검, 당연히 그 무게부터 세 배 이상이다.
챙!
“크윽”
한손으로 장난처럼 휘두르는 오크의 검에는 막강한 힘이 들어 있어 막던 산초의 검을 튕겨 버렸다.
황급히 물러서는 산초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고, 검을 잡은 손은 생각과는 다르게 떨리고 있었다.
‘헛! 대체 뭘 먹고 저렇게 힘이 좋은 거야?’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상대.
하지만 산초는 마음을 굳히며 마이티 포스를 운용했다.
우웅―!
브로드 소드가 울리며 검에 얇은 청색 빛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취익! 인간, 처음부터 취익! 그랬어야 했다. 취익!”
오크는 검에 마나를 주입한 줄 아는 듯, 산초의 마나소드를 보면서도 여유롭게 웃었다.
“나는 산초, 산초 반 어플라인, 쉽게 보지 마라!”
쿠앙!
검끼리 내는 소리라 볼 수 없는 둔탁한 소리가 울리면서 산초의 몸이 바닥을 구르다 겨우 일어섰다.
흔들리는 산초의 눈과 변함없는 오크.
차츰 오크의 입가가 일그러졌다. 비웃음이었다.
“취익. 더 보여 줄 것이…… 취익! 있는가? 취익!”
“……!”
마나를 주입한 검으로도 오크의 검을 어찌할 수 없었다.
안타깝지만 산초로서는 더 이상 다른 수가 없는 듯싶었다. 이때.
“야합!”
산초가 번개처럼 검을 들어 오크를 찔러 갔다.
오크의 검이 산초의 검을 다시 올려쳐 갈 때, 산초가 다시 기합을 넣었다.
“차핫!”
순간 앞으로 곧장 찔러 가던 산초의 검이 몸과 함께 회전하며 오크의 검을 피하고, 그 검의 뒤를 따라 다시 찔러 갔다.
“취익!”
다급한 오크의 콧소리.
오크는 쳐올리던 검을 억지로 다시 끌어내렸다.
따당!
“뀌이익!”
검의 면과 검극이 부딪치며 날카로운 쇳소리가 울렸고, 비명과 함께 물러선 오크의 가슴에서 핏줄기가 솟아났다.
베기 전용 검인 브로드 소드를 검기의 예리함으로 찌른 것이다. 동시에.
채캉! 채캉!
“크으윽!”
“마, 마나소드?!”
호기를 잡고 접근하는 산초의 검과 부딪치는 소리는 뜻밖에 같은 마나를 주입한 검끼리 부딪치는 맑은 소리였다.
오크 역시 마나를 익숙하게 사용할 줄 아는 존재였던 것이다.
이를 지켜보던 기사들도 놀라 경악성을 터뜨렸지만, 오크들은 변함없는 자세로 자신들의 대전사를 지켜봤다.
“허억! 오크들도 마나를 사용하나?”
“취익! 인간, 취익. 난 검은 머리 오크족의 대전사. 취익!”
큰소리로 외친 오크가 가슴을 치며 크게 검을 휘둘렀다.
마치 파리채를 휘두르는 것같이 검에서 예리한 기운이 폭출했다.
“소드 에너지(sword energy, 검기)!”
“피해!”
카라락!
“이런 염병!”
누군가의 외침과 돌바닥을 찢는 쇳소리.
검기가 지나간 바닥에서 돌먼지가 일어나며 2미터 정도 갈라졌다.
“취익! 다시 받아라! 취익!”
산발을 한 산초의 낭패한 모습이 드러나는 순간, 다시 오크의 검이 옆으로 휘둘러졌다.
위기의 그 순간, 산초의 몸이 꺼지듯 주저앉았다.
동시에 머리 위로 스쳐 가는 검기.
쭈그린 자세를 펴는 폭발적인 탄력으로 오크의 하체 부위로 파고들던 산초는 왼쪽 옆구리로 검을 찔렀다.
탁월한 어보이드 스텝. 하지만,
슈욱!
바람을 일으키며 산초의 머리를 부술 듯 내려찍는 오크.
옆구리에 검이 닿았지만 자칫 머리통이 떨어질 판이다.
그때였다. 산초의 모습이 순간적으로 흐려졌다.
오크가 사라진 타격점에 흠칫하는 순간, 산초의 검이 그대로 오크의 목젖을 스쳐 갔다.
“취익! 취익! 취익!”
턱 부위에서 피를 흘리는 오크는 얼마나 놀랐는지 연속으로 콧바람을 쏟아 냈다.
산초 역시 전력을 다한 뒤라 거친 호흡을 겨우 삼키고 있었다.
둘 다, 상대에 대해 충분히 감탄한 모양새.
하지만 이때 울리는 음성이 있었다.
“더 이상 시간을 끌면 평생 내 종자 노릇을 해야 할걸?”
“헛! 소영주님……!”
산초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다른 방법이 없지 않은가? 소드 에너지를 뿌려 대는 상대를 무슨 수로 이긴단 말인가?
그러나 죽더라도 이렇게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자신은 산초 반 어플라인, 어플라인 남작가의 후예였다. 대륙을 울린 에크베이트와 크레인의 뒤를 이은 자.
더욱이 자신이 평생 섬기기로 작심한 주군 로스 앞이었다.
산초는 품에서 가죽끈을 꺼내 손과 브로드 소드를 함께 묶었다.
검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매일 얻어터지면서 뭘 배웠어? 소드 에너지를 날리는 자세를 봐!”
“……!”
“취익! 인간, 간다! 취익!”
턱 끝이 갈라져 피가 흘렀지만 다른 상처와는 달리 마나소드에 당한 상처는 회복력이 떨어졌다.
오크는 신경질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연속된 십자 베기.
주변에서 탄성과 염려의 신음이 흘렀지만 산초의 눈은 오크의 어깨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매일같이 두들겨 맞으면서 배운 한 가지. 그것은 손을 움직이는 모든 공격이 어깨의 움직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바닥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피어오르는 돌먼지들이 시야를 방해하고, 연이은 공기를 찢는 쇳소리가 귀를 울렸다.
빠각!
“취익!”
연약한 발이 자신의 허리통만 한 오크의 무릎 안쪽을 걷어차자 오크는 비칠 옆으로 물러섰다.
아무리 오크라 해도 무릎 안쪽은 관절을 지닌 모든 동물의 약점이었다.
쉬익―!
“뀌이익!”
그 순간, 연속된 수평 가르기가 오크의 양 무릎을 스쳤다.
이어서 어쩔 수 없이 무릎을 꿇으며 자세가 흐트러진 오크의 눈과 산초의 눈이 일직선으로 마주쳤을 때, 산초의 검이 오크의 목을 수평으로 갈랐다.
서걱!

오크 대전사가 죽고, 이어진 파상적인 공격에 이미 사기가 바닥에 떨어진 오크 전사들은 한 시간이 못되어 지리멸렬하고 말았다.
플레임 익스플로전의 공이었다. 범위 마법으로 이미 대다수의 주술사 오크들과 오크 족장마저 죽임을 당한 후였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너무 허망한 정벌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개별 오크의 능력과 힘을 생각할 때, 기적과도 같은 승리였다.
다행히 주변 오크 마을에서도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한나절을 쉰 기사들은 동부와 서부의 오크 마을을 정벌하러 출발했고, 어려움 없이 임무를 마칠 수 있었다.
다음날, 피어스 일호와 이호를 타고 다시 만난 기사들은 부속된 남부의 두 섬에 있는 오크 마을들까지 완전하게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