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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운틴 로드 1권(21화)
Chap. 10 검은 머리 오크족의 섬(4)
“아르도스 만세!”
“영주님 만세! 로스데일 폰 아르도스 만세!”
몇몇이 팔다리가 부러지고 상처를 입기는 했지만 토르만 자작에 의해 치료를 받은 뒤라 모두가 건강한 모습으로 섬 중앙에 함께 모였다.
단 한 명의 사망도 없는 완벽한 승리.
기사들은 환호했고, 그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실로 누가 있어 이런 대역사를 이루겠는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그저 굶어 죽어 가는 주민들과 벗어날 수 없는 운명과 같은 원한과 자신들의 신세를 숨죽여 한탄하던 기사들이었다.
지금 기사들의 가슴은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벅찬 감격을 맞고 있는 것이다.
로스는 아버지 리믹스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두 손을 들어 기사들의 함성을 잠재웠다.
“나는 아르도스 영지의 주인이신 내 아버지 리믹스 폰 아르도스의 이름을 빌어 이 섬을 에크베이트라 명명합니다!”
기사들의 어깨가 움찔했다.
두 번째 듣는 이야기지만 기사들은 놀람의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또한 우리가 개척하는 이 해로를 내 조부이신 헤더 폰 아르도스 백작의 이름과 가문의 이름을 기려 아르도스 해로라 하며, 이 해로 상에서 우리가 점령하는 모든 섬에 에크베이트 기사단의 이름을 붙일 것임을 선포합니다. 그분들은 우리 아르도스의 이름과 함께 영원히 이 레무니아에 남겨질 것입니다.”
“우와! 아르도스 만세……!”
“영주님 만세!”
“에크베이트 기사단 만세……!”
심령을 뒤흔드는 커다란 함성이 마음으로부터 울렸고, 모두의 두 눈에 핏물보다 진한 의미가 찾아들었다.
크레인 남작과 포크 부대장, 산초 소대장은 눈을 붉히며 만세를 선창했고, 따라 부르짖는 대부분의 기사들이 흐느끼고 있었다.
시신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진 자신들의 부친과 조부들의 이름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후, 점령하는 해로상의 모든 섬 이름은 산화했던 아르도스 기사들의 백일곱 개 이름으로 명명되었다.
“아울러 우리 아르도스는 과거 남부의 영광을 재현할 것이며, 이를 가로막는 어떤 것도 용납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합니다!”
“헛……!”
뜻밖의 말이었다.
기사들은 놀람을 금치 못하며 로스를 주시했다.
심지어 리믹스 백작까지 놀라 의자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그런 이들을 바라보는 로스의 눈은 외려 그들을 향해 묻고 있었다.
그 의미는 명확했다.
‘어쩔 것인가?’
갑자기 산초가 앞으로 나서며 외쳤다.
“아르도스여! 영원하라!”
“아르도스여! 영원하라!”
“우와아……! 아르도스여 영원하라……!”
그 아버지 크레인 남작이나 란셋 대장보다 딱 한 발자국 빠른 움직임.
크레인 남작과 란셋의 얼굴이 구겨진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모두가 한마음 한뜻이 되는 자리인데.
로스는 남작과 란셋을 향해 빙그레 웃어 주고는 아버지 리믹스에게로 돌아가 무릎을 꿇었다.
“아버지, 이제 이 로스데일 폰 아르도스가 할아버지의 염원과 아버지의 염원을 이어받아 아르도스의 뜻을 이 땅에 세우겠습니다.”
“로스…….”
리믹스 백작의 얼굴에는 걷잡을 수 없는 격동이 떠올랐다.
이어 아들을 안아 일으킨 백작은 아들과 기사들을 향해 외쳤다.
“나 헤더 폰 아르도스의 장자이자 상속된 염원의 주인이며 아르도스의 주인인 리믹스 폰 아르도스는 내 적장자인 로스데일 폰 아르도스에게 모든 상속된 염원을 맡기니, 염원을 성취하고 헤더 폰 아르도스의 이름에 담긴 의미를 대적들의 심장과 목에 각인시키라. 나아가 아르도스의 이름을 대륙의 으뜸으로 세우라!”
“충!”
두 말도 없었다.
로스의 군례와 함께 기사들도 검을 뽑아 군례를 행하며 외쳤다.
“추우우웅!”
제2권에서 계속
-외전
레전드(Legend), 아르도스(1)
시작은 작은 의견 차이였다.
그 작은 의견 차이 하나가 두 왕국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공교롭게도 나빠진 분위기에 호응이라도 하듯이, 국경에서는 작은 다툼이 발생했다.
국경을 맞댄 상황에서 작은 다툼은 언제나 상존했던 것.
문제는 오딘 왕국이 전군을 동원하여 카스틴 왕국 남부의 곡창지대인 그레이너리 평야를 점령해 버린 것에 있었다.
여기서 그레이너리 평야의 몇몇 귀족 영주들이 오딘에 투항하면서, 카스틴은 전체 이십 퍼센트에 해당하는 국토를 잃어 버리고 만 것이다.
사건의 바탕에는 두 왕국의 특이한 역사와 지형이 있었다.
오딘 왕국의 영토는 대부분 광란의 기사 히트러스에 의해 멸망했던 미누아 왕국의 땅이었다.
그리고 과거 레무니아 대륙의 문명 중심지 중 하나였던 카스틴 지역은, 그 이북에 테이블로스 산맥과 테이블마운틴이 솟아나는 천재지변으로 말미암아 인간들이 사라진 몬스터들의 땅이었다.
미누아의 컬킨 국왕은 비스토 제국이 침입해 오자, 지금의 카스틴 남부로 피하면서 끝까지 제국에 대항했다. 그리고 지금의 슬린산 서부 병목지에서 큰 승리를 거둔 후, 힘을 얻어 전 아틀란 대륙을 통일하는 대역사에 근접할 수 있었다.
스스로 미누아 제국 컬킨 황제의 정통을 이었다고 주장하는 오딘 왕국은 아직도 슬린산을 컬킨마운틴이라 불렀고, 서부 병목지를 컬킨디펜스라 부르며 카스틴 왕국의 남부 영토를 자신들의 영토라 생각하고, 특히 슬린산 북서부 지역의 컬킨디펜스는 성지로 숭상하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오딘 왕국의 공격은 고토 회복의 일환이요, 성지 회복을 위해 치러야 할 성전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그 이면에 곡창지대에 대한 탐심 역시 없지 않았다. 아니, 오딘의 귀족들에게는 그것이 더 큰 이유였을 것이다.
광란의 기사 히트러스는 미누아 왕국을 멸망시키면서, 아틀란 대륙의 대부분을 통일하게 된다.
그런데 대륙 통일의 대역사를 얼마 남겨 두지 않은 채 히트러스는 돌연 종적을 감추어 버렸다.
어디로 사라진 건지, 왜 사라진 건지 소문만 무성할 뿐 그의 모습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원래 비스토는 미누아의 컬킨 기사단에 의해 많은 귀족들이 죽은데다가, 히트러스의 광기에 목숨을 잃은 황족이나 고위 귀족들이 워낙 많았다. 그러다 보니, 히트러스가 사라진 비스토에는 제국을 유지하고 관리할 중심 귀족들이 없었다.
채 십 년도 못 되어, 각지에서 옛 왕족들과 지방 호족들이 난을 일으키면서 제국은 다시 갈가리 찢어져 나뉘어졌다.
중심을 잃고 이합집산하던 대륙은 혼돈의 시기를 맞고, 이후 이 혼돈은 오백여 년이 넘도록 지속되었다.
그리고 다시 수많은 세월이 흘러 오늘날과 같은 세력 구도가 갖춰지게 된 것이다.
오딘 왕국도 이 혼돈의 시기 말엽에 미누아 제국의 컬킨 대왕을 잇는다는 명분으로 개국된 왕국이었다.
오딘 왕국의 명분은 사실 그들만의 주장에 불과했다.
더군다나, 카스틴이나 오딘 이전에도 대륙 서부는 카린 왕국의 영토였다. 무엇보다 카스틴 왕국이 개국한 지 이미 삼백 년이 넘었다는 점이다.
그동안 국경선이 국지적으로 바뀐 적은 여러 차례 있었지만 이처럼 대대적인 침공이나 점령은 유례가 없었다.
실지로 카스틴 왕국이 개국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레이너리 평야 이북은 버려진 몬스터의 대지였고, 왕국이 들어서면서 개발되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모두 생각한다면 오딘의 침략이나 명분은 과도한 욕심이었다고 밖에는 볼 수 없는 일이었다.
오딘은 이 개월 만에 그레이너리 평야를 완전히 점령했다.
그 여세를 몰아 불과 보름 만에 컬킨디펜스도 점령해 버렸다.
카스틴으로서는 자다가 벼락을 맞은 격이었다.
왕도는 뒤숭숭해졌고, 온 나라가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남부 영지의 귀족들은 영지를 버려두고 왕도로 몰려들었다. 파상적인 오딘의 공격에 중앙군의 지원이 없는 가운데서 이루어진, 별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왕도의 귀족들이 보기에 그들은 겁쟁이에 불과했고, 귀찮은 존재일 뿐이었다. 오딘에 동조한 배반자는 아니었지만 별 다를 것이 없는 그렇고 그런 존재들.
오딘군은 호호탕탕 몰려오는데, 왕도에서는 남부 귀족들을 성토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닥친 위기 앞에 화합보다 분열의 조짐이 더 컸던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파상적인 오딘의 공격은 컬킨디펜스를 넘어 중부로 이어졌다. 중부의 영주들 역시 남부와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런데 오딘의 승승장구에 제동을 건 영지가 나타났다. 컬킨디펜스와 맞붙은 아르도스 백작령이었다.
아르도스는 개국 초부터 용맹한 군장의 맥을 이어왔고, 수많은 용장과 맹장이 배출되었던 가문이었다.
개국 이후, 여러 번의 국가적인 위협 때마다 나타나 나라를 구했던 아르도스.
그 아르도스가 백여 년 만에 이름을 드러낸 것이다.
영주인 헤더 폰 아르도스 백작은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 그 아들인 리믹스나 백작령의 세 남작과 그 자식들 역시 최소한 소드 익스퍼트 중상급이나 그 이상일 것이라 알려져 있던 존재들이다.
일개 영지로 보면 꽤 강한 전력이겠지만, 그것이 전황에 무슨 영향을 미치겠는가?
오딘에는 공식적인 소드마스터만 열 명이 넘었다.
일개 영지에게 발목이 묶일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더욱이 아르도스는 백오십여 명의 기사와 이천여 명의 군세에 불과했다.
당연히 누구도 아르도스를 주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기적이 일어났다. 오우거와 고블린의 대결로까지 비교되던 두 진영 간의 전쟁에서 놀랍게도 열세에 있던 아르도스가 승리한 것이다.
속수무책이었던 왕도의 귀족이나 항복한 남부 귀족들과는 달리 북진하는 오딘의 정예를 상대로 싸워 당당하게 승리하며 백여 년 만에 그 이름을 드높인 것이다.
그것은 아르도스의 화려한 부활이었다.
적국 오딘으로서는 천만뜻밖의 결과였다.
하지만 왕권을 누르고 권세를 누리려던 왕도의 정치 귀족들에게 아르도스의 부활은 그리 달갑지 않은 사건이었다.
하지만 당장은 들이닥친 오딘의 대군이 더 큰 문제였다. 중앙 귀족들이 서로를 헐뜯으며 우왕좌왕하고 있는 사이, 아르도스 백작령을 제외한 중부 지역 여덟 영지가 이미 오딘군에게 넘어간 것이다.
왕도 카스티느를 감싼 공작령들과 자치령 외에는 이미 오딘의 군대에게 짓밟힌 후였다.
비로소 귀족들은 사병들을 내놓았고, 중앙군까지 팔만의 군사가 중부 지역에서 오딘의 대군과 마주하게 된다.
아직까지는 오딘의 군세가 갑절은 많았다.
하지만 군사적인 우위에도 불구하고, 오딘도 더 이상의 진군은 하지 않았다.
문제는 측면을 공격해 오는 아르도스.
조금만 본진을 떠나 멀리 나가면, 어김없이 습격을 받았다.
큰 타격이 아니었지만, 성가신 것 이상의 문젯거리였다.
만일 카스틴의 주력과 접전할 때 후방을 공격해 온다면,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한편으로는 아르도스를 잡으면서, 한편으로는 후방의 보급로를 확실히 다지려는 오딘의 작전이었다.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삼 개월이 넘어가면서, 추수를 앞둔 농지는 군마에 짓밟혔고, 화목을 위한 산지는 화공 작전에 연기로 사라졌으며, 대지는 핏물로 색이 변해 버렸다.
카스틴만 황폐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삶의 터를 잃고 유랑하는 국민이 늘어나고, 왕국은 망국의 이야기로 뒤숭숭했다.
심지어 북부의 영주들 중에 오딘 왕국에 동조해서 반란을 일으킨 자들조차 나타났다.
차츰 귀족들이 몸을 사리면서 사병을 내놓은 것을 꺼려하는 사태가 나타날 즈음, 아르도스 백작령으로부터 기사회생의 소식이 전해졌다.
컬킨디펜스 탈환.
왕도와 카스틴 전체가 환호했다.
불과, 이천수백 명의 군세로 컬킨디펜스를 탈환하고, 남과 북을 갈라 중동부의 오딘 대군을 거의 고립시킨 상황이었지만 누구 하나 아르도스의 상황을 살피는 이는 없었다.
그저 공을 세우기에 혈안이 된 귀족들은 고립 상태의 오딘을 공략하기 위해 전장으로 달릴 뿐이었다.
이제는 서로 사병을 내놓겠다는 일이 속출했다. 승작이 눈앞에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삼십만이 넘는 카스틴 군이 모였고, 압도적인 군세의 차이로 인해 오딘의 대군도 밀리기 시작했다.
겨울이 되었을 때, 전선은 컬킨디펜스 북동쪽 십오 킬로미터 지점에서 고착되고 있었다.
초반과는 달리 뭉친 오딘의 십오만은 무서운 힘을 발휘했고, 그저 승작을 위한 공에 눈먼 카스틴의 삼십오만 군사는 더 늘어난 군세에도 불구하고 오합지졸처럼 흔들렸다.
오딘 북군의 구원을 위해 컬킨디펜스를 향한 오딘 남군의 공격은 파상적이었다.
그러나 아르도스의 저력은 무서웠다. 그 엄청난 공격에도 꿋꿋하게 컬킨디펜스를 지켜낸 것이다. 보급조차 없는데, 어디서 났는지 끊임없이 화살을 날렸다.
밤새 어둠을 틈타, 죽음을 무릅쓰고 성을 빠져나온 병사들이 화살을 수거해 갔던 것이다.
그만큼 집요하고 끈질긴 아르도스였다.
이때, 오딘의 북군은 아르도스 백작령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컬킨디펜스를 뚫지 못하면 장기전에서 패할 수밖에 없음을 아는 오트 대공의 명이었다.
대부분의 군세와 물품들을 컬킨디펜스로 옮긴 아르도스는 바람 앞의 촛불, 그 말 그대로였다.
보다 못한 카스틴 국왕이 직접 아르도스로 향했다. 국왕이 움직이면서 중앙군도 움직였다.
그리고 아르도스를 향하던 오딘의 군사들과 국왕의 군대 사이에 접전이 벌어졌다.
아무리 많은 군세라도 통제되지 않는 군대는 오합지졸이었다.
삼십오만이나 되는 군세가 겨우 십오만 명에 농락당해 버렸다.
국왕조차 위기에 노출되는 극악한 상황에, 또다시 아르도스로부터 소식이 올라왔다.
오딘의 총사령관인 오트 대공이 아르도스의 에크베이트 기사단에 의해 사로잡혔다는 소식이었다.
더군다나, 백오십구 명의 기사단이 삼백 명의 기사단과 격돌해서, 단 삼십팔 명의 사상자만 내고 완승을 거두었다는 기적과 같은 소식이었다.
대륙의 모든 국가들이 경악을 금치 못한 일대 사건이었다.
오딘은 떨었다.
무엇보다 오트 대공은 오딘 왕국의 표상과도 같은 인물. 오딘 최고의 지장이며, 덕장으로, 수련을 위해 왕의 지위를 아우에게 양보했던 기사의 표상이었고, 현 국왕의 백부이며, 무엇보다 오딘 왕국의 십대 마스터 중에 수위를 다투는 소드마스터였다.
오트 대공과 검을 나누고 직접 사로잡은 사람이 바로 헤더 폰 아르도스 백작.
그는 알려진 바와는 달리 소드마스터 중급에 이른 강자로 밝혀졌다.
적들은 떨었지만, 카스틴은 환호했다.
하지만 그때, 아르도스를 질시하는 무리들이 생겨났다.
마론 드 해밀 공작.
선대 국왕의 아우요, 당시 국왕의 숙부였고, 귀족파의 수장이기도 했던 그는 아르도스 가문의 영향력 증대가 달갑지 않았다.
전쟁을 끝내도 자신이나 자신의 영향력 아래에서 끝내야 향후 국왕과 국왕파를 누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또 다른 꿍꿍이까지 겹쳐진 해밀 공작에게 아르도스는 눈에 난 티보다 더 성가신 존재였다.
다른 꿈을 꾸는 자들에게 아르도스는 언제나 훼방거리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