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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소사전담반 1(4화)
2장 퇴물 집합소도 아니고(2)


대형은 느긋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문제는 소문이 나서 고객이 몰려들 때까지 버티는 것이었다.
홍보를 하지 않으니 강호소사전담반에 의뢰를 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게다가 가뭄에 콩 나듯이 들어오는 의뢰들도 받지 않겠다고 똥배짱을 부리는 것도 다반사였다.

“불가!”

대형은 마치 입버릇처럼 두 글자를 내뱉었다.
의뢰를 맡을 수 없는 이유라고 꺼내는 핑계들도 가지가지였다.
그 핑계들을 일일이 열거하자면 끝이 없을 정도다.
어쨌든 대형이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먹이며 불가라는 단어를 남발하는 바람에 강호소사전담반은 심각한 경영난에 직면했다.
강호소사전담반의 인원은 대형까지 포함해서 전부 넷.
하지만 그 많지도 않은 인원들에게 월봉조차도 제때 챙겨주지 못할 정도니 더 말해 무엇할까.
실제로 벌써 몇 달째 월봉이 밀려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경제 감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대형과 그런 대형을 말릴 생각이 전혀 없는 나머지 동료들로 인해 참지 못하고 결국 자신이 전면에 나선 것이었다.
일단 담서인은 대형과 담판을 지었다.
그래서 남은 종잣돈을 모조리 끌어모아서 마침 헐값에 매물로 나온 용선 고서점부터 인수했다.
이 고서점을 인수한 목적은 크게 두 가지!
첫째는 강호소사전담반의 근거지가 필요했다.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 찾아와 의뢰를 하려고 해도 그동안은 강호소사전담반을 찾을 방법조차 없었다.
그러니 어느 누가 의뢰를 할까.
그래서 일단 쉽게 찾아올 수 있도록 강호소사전담반의 근거지를 만든 것이었다.
둘째는 불경기로 인해 의뢰가 들어오지 않을 경우에 고서를 팔아서 심각한 경영난을 조금이라도 덜어낼 목적이었다.
하지만 책 장사는 애당초 글러 먹은 듯 보인다.
뭐든지 홍보가 가장 중요하다고 신신당부를 할 때만 해도 선배인 임추량은 자신만 믿으라고 호언장담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지금 대문 앞에 붙어 있는 문구들이었다.
“고전 춘서 다량 보유라?”
담서인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는 종이를 대문에서 거칠게 뗐다.
“아주 망하려고 작정을 한 게지.”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치솟은 담서인이 콧김을 씩씩 내뿜으며 용선 고서점의 문을 거칠게 열어젖혔다.
코끝을 지르는 고서 특유의 냄새가 배어 있는 공기를 폐부 깊숙이 들이켠 후, 이런 만행을 저지른 임추량을 찾았다.
그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팔자 좋게 침상 위에 대자로 드러누워 잠들어 있었으니까.
그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간 담서인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지금 이 판국에 잠이 와요?”
“하암, 계속 잠이 와.”
임추량은 늘어지게 하품을 하면서 대답했다.
여자 손처럼 길고 하얀 손으로 눈가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눈곱을 떼는 임추량의 두 눈은 여전히 반쯤 감겨 있었다.
‘저걸 확!’
뒷일 따위는 생각하지 말고 일단 저 면상에 주먹부터 날려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담서인은 곧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임추량이 엄청난 고수라서 두려운 것이 아니다.
저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가 혹시 작은 생채기라도 남기게 될 경우에 찾아올 후환이 두려운 거였다.
모르긴 해도 항주에 살고 있는 과부들과 한물간 기녀들이 떼로 몰려와 자신을 손톱으로 할퀴어서 죽이려 들지 않을까.
솔직히 말해서 임추량은 미남이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건 인정해야 했다.
눈곱을 덕지덕지 붙이고 있어도, 자다 깬 탓에 머리가 산발이어도 임추량은 진짜 잘생겼다.
좋은 옷감으로 만든 비단옷이 아닌, 때가 잔뜩 묻은 허름한 마의만 걸치고 있어도 귀티가 줄줄 흐를 정도였다.
그러나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바로 임추량이 늙었다는 것이었다.

“십 년 전에는 말이지, 내 얼굴 한 번 보려고 객잔 앞에 길게 줄이 늘어서 있을 정도였어.”

임추량이 술에 취하면 늘 꺼내는 자기 자랑이었다.
취중진담이란 말도 있으니, 아주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딱 십 년 전의 일이었다.
하늘이 내린 미남 중의 미남인 임추량도 세월의 흐름만큼은 피해 가지 못했다.
눈가에 자리 잡은 주름은 깊어졌고, 이마는 꽤 넓어졌다.
그래서 지금은 항주의 과부들과 한물간 기녀들 사이에서나 먹히는 얼굴이었다.
자기 잘난 맛에 사느라 혼인도 하지 않고 초라하고 쓸쓸하게 늙어 가는 임추량을 안쓰럽게 바라보던 담서인이 마음을 다잡았다.
지금은 마음이 약해질 때가 아니었다.
독하게 마음먹고 임추량이 저지른 만행에 대해 추궁할 때였다.
“대체 이게 뭐예요?”
담서인이 아까 대문에서 떼어낸 종이를 눈앞에 흔들며 임추량을 거칠게 몰아붙였다.
하지만 임추량은 당황하지 않았다.
반쯤 감긴 눈으로 힐끗 살핀 후, 느긋하게 대꾸했다.
“내가 지금 진짜 졸려서 그런데, 중요한 일 아니면 나중에 얘기하면 안 될까?”
“잠귀신이라도 붙었나.”
“하암, 미남은 잠이 많다는 옛말도 있잖아.”
“미남이 아니라 미녀겠죠.”
“엎어치나 메치나 매한가지야.”
얄밉게 한마디를 툭 내뱉는 임추량의 눈은 완전히 감기기 일보직전이었다.
다시 완전히 잠들어 버리기 전에 담서인이 재빨리 소리쳤다.
“고전 춘서 다량 보유라니? 지금 이걸 홍보 문구라고 붙여 놨어요?”
“그래.”
“뭐요?”
“왜? 좋잖아?”
너무 당당하게 대꾸해서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곧 담서인은 더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이래 놓고 책이 팔릴 것 같아요?”
고전?
좋다.
사실 아무 책에나 고전이란 단어를 붙이진 못한다.
뛰어난 작품성에 문학성까지 갖추어야만 고전이란 단어를 앞에 붙일 수 최소한의 자격이 생긴다.
거기에 더해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며 사랑을 받아야만 고전이란 단어를 당당하게 붙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고전이라는 수식어가 춘서 앞에 붙어 있다는 점이었다.
춘서를 찾는 사람들 가운데 고전을 원하는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
단언컨대 아무도 없다.
춘서를 찾는 독자들은 고리타분하고 빤한 내용보다는 자극적인 내용을 원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고전으로 손꼽힐 정도로 지어진 지 오래된 춘서들이 이 태반의 독자들을 만족시킬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 독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은 바로 신작 춘서다.
감각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젊은 작가들이 솔깃한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거기에 자극적인 삽화까지 들어가야 간신히 먹힐까 말까 한 요즘 세상에 한물간 고전 춘서를 들이미는데 어찌 장사가 될까?
그리고 아직 끝이 아니었다.
“고금제일고수들의 무공 비급 다량 보유라니? 이건 또 뭐예요?”
“말 그대로지.”
“뭐가요?”
“하암, 너도 머리가 있으면 생각을 해 봐라. 고금제일고수들의 무공 비급을 다량 보유하고 있다고 하면 강호의 고수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 막 몰려들지 않겠어?”
“헐!”
담서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젠 너무 한심해서 화도 나지 않았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그에 발맞추어 사람들도 변했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은 예전처럼 순진하지 않았다.
감언이설에 쉽게 혹하지 않고 매사에 의심부터 품었다.
실제로 시장 바닥에서 가짜 약을 만들어 파는 약장사들이 차력 시범을 보일 때도 더 이상 박수와 환호를 보내지 않는다.
대신 차력사의 몸에 박히지 않고 튕겨져 나와 바닥에 떨어진 칼날을 주워 들고 가짜가 아닐까 유심히 살필 정도로 의심이 많다.
가끔씩은 진짜 칼을 들고 와서 시범을 보인 차력사의 몸에 찔러 넣어서 기어이 피를 보는 경우도 존재했다.
그런데 과연 저 허황된 문구를 믿을까?
아마 지나가다 저 문구를 보고 나서 사기꾼들이라고 손가락질을 하고 침을 탁, 뱉고 지나치리라.
“일부러 이러는 거죠?”
“왜? 내가 심혈을 기울여 작성한 홍보 문구가 마음에 안 들어?”
“너무 맘에 들어서 죽이고 싶을 정도예요.”
임추량이 반쯤 감고 있던 눈을 처음으로 크게 떴다.
그 시선을 마주하고서 흠칫했다.
미남이었던 임추량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후줄근하게 변했지만, 딱 하나 더 멋있어진 것이 있었다.
바로 눈빛.
사람의 속내까지 꿰뚫어 볼 것처럼 깊고 맑은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임추량이 입을 뗐다.
“그거 욕이냐?”
“그냥 잠이나 계속 퍼 자세요.”
빈정대듯 충고했지만, 임추량은 그 충고를 흘려들었다.
“벌써 잠 다 깼거든? 대체 뭐가 불만이야?”
“아까도 말했지만, 이래서 홍보가 되겠어요?”
“그러니까, 홍보가 문제란 말이지?”
머리를 긁적이던 임추량이 잠시 뒤 두 눈을 빛냈다.
“그 문구가 영 맘에 안 들면 새로운 방법으로 홍보를 할까?”
“어떤 방법요?”
담서인이 혹시나 하는 표정을 지은 채 바라볼 때, 임추량이 득의만만한 표정을 지은 채 대꾸했다.
“간단해. 기녀들을 부르는 거야!”
너무 기가 막혀서 할 말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임추량은 그 침묵을 호응으로 착각한 듯 열변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
“유흥의 도시 항주에서도 제일 예쁘다고 소문난 기녀들이 단체로 몰려와서 가야금 타면서 노래 몇 곡조 뽑고, 거기다가 엉덩이 살살 흔들어 가면서 덩실덩실 춤까지 추면 효과가 끝내줄 거야. 암, 홍보에는 그만한 게 없지.”
“기녀 부를 돈은 어디서 나서요?”
“돈? 돈 같은 건 필요 없어. 매향이, 춘월이, 월매, 단향이까지. 내가 부르기만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올걸?”
“헐!”
“왜? 못 믿겠어? 진짜 한 번 불러 볼까?”
“됐거든요.”
“왜 그래?”
“제발 부탁인데, 우리 생각이란 걸 좀 하면서 삽시다. 기녀하고 고서하고 어울릴 것 같아요?”
“그야…….”
“머리가 저 잘난 얼굴의 반의반만 따라갔어도 좋았을걸.”
담서인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리고 임추량은 귀가 무척 밝았다.
침상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갑자기 내원으로 저벅저벅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어디 가요?”
“염 노한테 간다.”
“나하고 말하다가 갑자기 왜요?”
바짝 따라붙으며 담서인이 던진 질문을 듣고서, 임추량이 걸음을 멈춘 후 홱 소리가 나게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머리가 안 좋아서.”
“삐쳤어요?”
“난 머리가 안 좋아서 모르겠지만, 우리 염노라면 누구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잘 알 것 같으니까.”
“그러니까…….”
“그러니까 뭐냐?”
“지금 삐쳐서 이르러 가는 거죠?”
속마음을 들킨 탓일까.
임추량은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종종걸음으로 내원으로 들어가 버렸다.
“밴댕이 소갈딱지!”
그 뒷모습을 지켜보던 담서인이 작게 말했다.
못 들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임추량의 귀는 생각보다 더 밝았다.
“그 말도 잊지 않고 기억해 두마.”
뒷짐을 진 채 앞장서서 걸어가는 임추량.
항주의 과부들과 한물간 기녀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드는 멋진 뒷모습이었지만, 담서인은 피식 웃으며 바라보았다.
사실 임추량은 알고 보면 소심하고 잘 삐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지금 임추량이 찾아가는 염노는…….
한마디로 정신 나간 노인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