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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소사전담반 1(5화)
2장 퇴물 집합소도 아니고(3)
염노.
나이는 육십 중반 정도.
하지만 확실한 것은 아니고, 어림짐작일 뿐이다.
그리고 모두가 염노라고 부르니까 이름은 모른다.
그러고 보니 과거에 뭘 했는지도 모른다.
담서인이 염노에 대해 알고 있는 유일한 것이 성은 염 가라는 것뿐이다.
아, 한 가지 더.
원래는 백설처럼 털이 하얗다고 했지만, 지금은 워낙 안 씻어서 시커멓게 변해 버린 지저분한 고양이를 손주처럼 아낀다는 점이다.
“이래 봬도 내가 예전에는 진짜 잘 나갔다니까. 그 때는 말이지, 내 손에 강호의 운명이 달려 있었어.”
아, 저놈의 예전에 내가 어쩌구저쩌구 타령.
정말이지 귀를 틀어막고 싶었다.
야옹.
지저분한 고양이도 비슷한 심정인 듯, 하품을 하며 울음을 토해 냈다.
술 한잔 걸칠 때마다 똑같은 이야기를 꺼내고 있으니, 아무리 미물이라도 얼마나 지겨울까.
발톱으로 얼굴이나 손등을 할퀴지 않고 하품을 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으로 봐서, 저 지저분한 고양이의 성격은 꽤 유순한 것이 틀림없었다.
“여기가 무슨 퇴물 집합소도 아니고.”
담서인이 작게 궁시렁거렸다.
임추량과 염노.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에게도 공통점은 있었다.
바로 추억을 먹고 산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거기에도 차이는 있었다.
임추량은 꽃중년이란 단어가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곱게 늙어 가는 얼굴만 봐도 예전에 미남으로 이름을 날렸다는 그의 말이 허풍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염노는 달랐다.
허풍도 적당히 쳐야 속아 넘어가기 마련이다.
거의 뼈만 남았을 정도로 앙상하고 군데군데 검버섯이 피어 있는 저 손에 강호의 운명이 달려 있었다는 말은 다섯 살배기 꼬마도 순순히 믿지 않을 것이었다.
그리고 하나 더.
강호의 운명을 좌지우지했을 정도로 대단했던 노인네가 여기서 지저분하지만 성격 좋은 고양이를 껴안고 나뒹굴고 있다는 것이 저 말이 허풍이라는 결정적인 증거였다.
그래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을 때, 임추량이 항주 과부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에 차고 넘치는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뗐다.
“어르신, 고서와 기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잘생긴 아우, 뜬금없이 그건 왜 묻지?”
“저 버릇없는 놈이 고서와 기녀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그래서요. 어르신 생각은 어떠신가 궁금해서요.”
“고서와 기녀라…….”
과거의 영광을 헤집느라 허공을 부유하기 바쁘던 염노의 두 눈에 오래간만에 초점이 돌아왔다.
“어울리지.”
“그렇죠?”
“암, 그것도 그냥 어울리는 게 아니라 찰떡궁합이지.”
어때?
내 말이 맞았지?
그 말을 하고 싶은 듯 임추량은 득의만만한 표정을 지은 채 웃었다.
어이없다는 듯이 그 광경을 바라보던 담서인이 지체하지 않고 항변했다.
“대체 고서와 기녀가 어떻게 어울린다는 거예요?”
“고서 냄새가 배어 있는 이곳에서 마시는 술이 얼마나 맛있는지 아느냐? 거기에 어여쁜 기녀까지 함께라면 더할 나위가 없지.”
“…….”
“그래서 고서와 기녀가 찰떡궁합이라는 거다. 하긴 술맛도 모르는, 아직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네놈이 이 사실을 알 리가 없지.”
담서인은 그냥 입을 꾹 다물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대답하기도 귀찮았다.
물론 염노와 임추량이 그런 자신의 속내까지 헤아릴 리가 없었다.
별 시답지 않은 것으로 새벽부터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함박웃음까지 지은 채 기꺼이 둘만의 대화를 이어나갔다.
“역시 어르신은 풍류를 아시는군요.”
“암, 근데 풍류라면 잘생긴 아우도 꽤 알지 않나? 이러지 말고 말 나온 김에 오래간만에 풍류를 즐겨 볼까?”
“어르신과 함께라면 늘 영광이지요.”
“암, 풍류를 아는 사내라면 그래야지.”
“기왕이면 기녀들도 좀 불러서 제대로 즐길까요? 주신루의 매월이와 월매라면 만사를 젖혀 놓고 당장 달려 나올 겁니다.”
“역시 내 눈이 잘못되지 않았어. 내가 잘생긴 아우를 처음 볼 때부터 풍류를 아는 진짜 사내라는 것을 눈치챘지. 그럼 술이 문젠데…….”
신이 나서 대화꽃을 피우던 염노가 넌지시 물었다.
“너, 혹시 돈 가진 거 없냐?”
“설마 나한테 물은 거예요?”
“우리 중에 네가 돈이 제일 많잖아.”
“매일 술만 퍼 드시느라 돌아가는 상황을 잘 모르시는가 본데, 월봉 못 받은 건 나도 마찬가지거든요.”
“혹시 뒷주머니 찬 거 없어?”
“앞주머니 채울 돈도 없거든요.”
“쩝!”
“그리고 제발 부탁인데, 우리라고 말하지 말아요. 쪽 팔리니까.”
담서인이 정색하고 말했지만 씨도 안 먹혔다.
“어이.”
“…….”
“마누라.”
“…….”
“우리 마누라.”
“아, 진짜 우리라고 하지 말라니까요. 그리고 내가 왜 마누라예요?”
“잔소리가 죽은 내 마누라처럼 많으니까.”
“헐!”
“우리끼리 너무 야박하게 굴지 말고 돈 좀 꺼내 놓지그래?”
“진짜 없거든요! 먹고 죽으려 해도 한 푼도 없어요!”
빽! 소리를 지르던 담서인이 멈칫했다.
머쓱한 표정을 지은 채 고양이의 목을 어루만지고 있던 염노의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는 것을 확인하고서.
“뭐야? 지금 설마 내가 돈 안 줬다고 우는 거예요?”
“갑자기 죽은 마누라가 생각나서.”
염노가 소매를 들어 눈가를 스윽 닦으며 대꾸했다.
절로 동정심이 일어나서 동전이라도 몇 푼 던져 주고 싶을 정도로 애처로운 표정이었지만, 담서인은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혼인한 적 없다면서요?”
“응?”
“풍류를 아는 강호의 영웅은 절대로 한 여자만 사랑할 수 없다. 그래서 난 평생 혼인을 하지 않았다.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했잖아요?”
담서인이 조목조목 반박하자 염노가 끙, 소리를 냈다.
“기억력도 더럽게 좋은 새끼!”
야옹.
염노가 애꿎은 고양이를 걷어차며 화풀이를 했다.
잔뜩 기가 죽어서 청승맞은 표정을 짓고 있는 염노와 어디서 술값을 조달할지 여전히 고민에 잠겨 있는 임추량을 힐끗 살핀 담서인이 다시 입을 뗐다.
“여기서 이러지 말고 같이 대형한테 가요.”
“대형한테는 왜?”
“오래간만에 의뢰가 들어왔거든요. 이 의뢰 해결하고 나서 밀린 월봉 받으면 술독에 빠져 죽든지 알아서 하세요.”
담서인이 앞장서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지금 만나러 가는 강호소사전담반의 대형 철무경은…….
한마디로 도무지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철무경은 잠이 없다.
담서인이 철무경을 알게 된 지도 벌써 이 년 가까이 됐지만, 그가 잠든 것을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밖으로 나가는 경우도 드물었다.
대형은 방에 틀어박혀서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책만 읽으며 보냈다.
염노처럼 술도 즐기지 않았고, 임추량처럼 여자를 밝히지도 않았다.
그래서 예전에 한 번 물은 적이 있었다.
“대형은 왜 잠을 안 자요?”
그때, 철무경은 이렇게 대답했다.
“잠을 잘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쁘기 때문이지.”
물론 그 말을 순순히 믿지는 않았다.
당시에 강호소사전담반을 이끌고 있는 대형이라는 번듯한 직함이 있기는 했지만, 말 그대로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었다.
의뢰가 들어오지 않으니 할 일도 없었다.
쉽게 말해 백수나 다름없는 신세.
백수가 바쁘다는 말을 믿을 정도로 담서인이 순진하지는 않았다.
“대체 뭘 하느라 바쁜데요?”
“씨를 뿌리지.”
그래서 다시 던진 질문에 철무경은 그렇게 답했다.
그때,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하늘을 봐야 별을 따는 법이었다.
여자에겐 전혀 관심도 없고 만나는 모습을 본 적도 없는데 대체 무슨 수로 씨를 뿌린단 말인가.
어쨌든 철무경이 잠이 없는 것 하나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아직 날이 밝기 전의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철무경은 침상에 편안한 자세로 기댄 채 책을 읽고 있었다.
“새벽부터 무슨 일이냐?”
책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질문을 던지는 철무경의 모습을 확인하고 나자 슬그머니 부아가 치밀기 시작했다.
누구는 혼자 발을 동동 구르고 뛰어다니면서 의뢰를 따내고 계약하기 위해서 불철주야 애를 쓰고 있는데, 명색이 강호소사전담반을 이끄는 대형이란 양반은 팔자 좋게 반쯤 드러누워서 책이나 읽고 있었다.
심각한 경영난 따위는 걱정하지도 않고.
“의뢰가 들어왔어요.”
“의뢰?”
“네.”
“어떤 의뢰지?”
담서인이 간략하게 요약해서 간만에 들어온 의뢰에 대해서 설명했다.
여전히 책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그 설명을 듣고 있던 철무경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 입을 뗐다.
“불가(不可)!”
단호한 목소리.
하지만 담서인도 이번에는 순순히 물러나지 않았다.
“불가, 불가, 불가. 아주 입에 붙었네, 붙었어.”
작게 궁시렁거리던 담서인이 철무경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왜요? 이번에는 또 왜 안 되는데요?”
“그게…….”
“설마 그냥이란 대답을 할 건 아니죠? 아니면 또 느낌이 안 좋아요? 그도 아니면 어제 꿈자리가 뒤숭숭했어요?”
“…….”
“아, 진짜 뭔가 크게 착각하는가 본데, 이러다가 굶어 죽어요. 지금 이것저것 가리면서 의뢰를 받을 처지가 아니랍니다.”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 내자 그제야 철무경이 책에서 눈을 뗐다.
“그 정도로 안 좋아?”
담서인이 냉큼 대답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철무경의 시선이 향한 것이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술값이 없긴 하죠.”
임추량이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자칭 살인 미소라 부르는 객쩍은 미소를 지은 임추량의 대답을 들은 철무경의 시선이 다음으로 염노에게 향했다.
“너무 걱정할 것 없네. 돈이란 원래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생기는 법이니까.”
저 입을 꿰매 버려야 했는데.
돈이 없다가도 생긴다고?
어디 땅을 파 봐라.
동전 한 문 나오나.
담서인이 속 편한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염노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하지만 염노는 그 매서운 시선을 가볍게 무시했다.
“상황이 그렇게 어렵다면 오래간만에 일 좀 할까?”
잔뜩 구겨졌던 담서인의 얼굴이 펴진 것은 철무경의 말을 듣고 나서였다.
이제야 강호소사전담반의 심각한 경영난을 제대로 인지한 것이라 여기고 안색이 밝아질 때, 철무경이 덧붙였다.
“그런데 꽤 골치 아픈 사건을 떠맡은 것 같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