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강호소사전담반 1(10화)
4장 그럼 지금까지 외면했던 사람들은?(3)
검은 구름이 손톱만 한 달을 삼켰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우동균이 숨을 가쁘게 내쉬었다.
하지만 느긋하게 쉴 여유는 없었다.
“지독한 새끼들!”
다리가 뻣뻣하게 느껴졌다.
당장 쥐가 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쉬지 않고 경공을 펼쳤다.
종을 알 수 없는 나뭇가지가 얼굴을 할퀴었다.
들꽃이 풍기고 있는 꽃 내음을 음미할 여유도 없었다.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해!’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가하며 두 눈에 잔뜩 힘을 주고 주변을 살폈다.
간신히 어둠에 적응한 두 눈에 보이는 것은 굵은 둥치를 자랑하는 나무들과 우거진 수풀뿐이었다.
‘상황이 안 좋군!’
제대로 길을 찾아가고 있는지도 의문이었다.
그저 아래로, 또 아래로 내려갈 뿐이었다.
‘다섯? 여섯?’
대체 몇이나 뒤를 쫓고 있는 걸까?
저 멀리서 희미하게 들려오고 있는 어지러운 발소리만으로는 수를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귀를 곤두세우느라 신경이 분산된 우동균의 발이 미끄러졌다.
밤이슬이 내려앉은 바위를 밟은 탓이었다.
경공을 펼치는 속도가 너무 빨랐던 탓에 중심을 잡을 새도 없었다.
속절없이 바닥을 구르던 우동균은 고목의 둥치에 등을 부딪치고 나서야 간신히 멈출 수 있었다.
쿵!
순간, 정신이 아득하게 변한 정도로 극심한 통증이 등에서 전해졌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신음성을 삼켰다.
그리고 우거진 수풀로 기어 들어갔다.
“빌어먹을!”
수풀에 몸을 숨긴 채 가장 먼저 몸 상태를 점검했다.
조금 전에 발을 헛딛고 굴러 떨어지다가 고목의 둥치에 강하게 부딪쳤던 등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근육이 조금 놀라긴 했지만 통증을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젠장!’
바닥에 손을 짚고 있던 우동균의 시선이 사흘 전에 꽤 깊은 검상을 입은 왼쪽 옆구리로 향했다.
그럭저럭 아물어 가던 상처가 다시 벌어져 있었다.
끈적거리는 피가 배어 나오기 시작하는 옆구리의 상처를 살피던 우동균의 낯빛이 어둡게 변했다.
비릿한 혈향이 퍼졌다.
이렇게 짙은 혈향을 풍기며 도주하는 것이 가능할까?
절대 가능하지 않았다.
저 지독한 놈들이 이 혈향을 놓칠 리가 없었다.
게다가 왼쪽 발목이 시큰거렸다.
좀 전에 바위를 밟고 미끄러질 때 삐끗했으리라.
이를 악물고 버틴다면 당장 움직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몸 상태로 얼마나 더 도주할 수 있을까.
“누가 죽는지 두고 보자고.”
우동균은 더 이상 도주하는 것을 포기했다.
그리고 그렇게 결정을 내리자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샤삭. 샤사삭.
옷깃이 풀잎과 부딪치며 만들어지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점차 포위망이 좁혀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동균은 움직이지 않았다.
차분하게 기다리며 짧게나마 운기조식을 했다.
최후의 일전에 대비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우동균이 목을 벤 자의 수만 해도 족히 서른.
그 과정에서 부상을 입고 많이 지쳤지만,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리라.
오른손으로 검병을 움켜쥔 채 적들의 기척을 살폈다.
‘넷이라면 해볼 만하지!’
최소 다섯이라 여겼는데, 다가오는 자들의 수는 넷이었다.
다시 희망이 솟구쳤다.
검병을 움켜쥔 오른손에 힘을 더하며 왼손을 품속에 넣었다.
손끝에 닿는 딱딱한 서책.
‘패천호혈장!’
사혈권 권수창이 남긴 무공 비급이었다.
뜻하지 않게 연이 닿은 보물.
우동균은 강호인이었다.
무공 비급을 얻게 되자 욕심이 생긴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리고 그 욕심이 화를 불렀다.
“오라!”
하지만 어차피 여기까지 온 이상 패천호혈장을 순순히 넘길 생각은 없었다.
소주천을 마친 우동균이 당당하게 적들을 맞이했다.
* * *
덜커덩.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자마자 침상 위에 누워 있던 우동균이 번쩍 눈을 떴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머리맡에 놓아두었던 검을 향해 손을 뻗다가 멈추었다.
희미하지만 익숙한 분내가 콧속으로 파고든 순간, 자신을 노리고 찾아온 살수가 아님을 알아챘다.
“왔나?”
홍미옥이 대답 대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꿀물이 담긴 잔을 내밀었다.
반쯤 몸을 일으킨 다음 그 잔을 받아 벌컥벌컥 들이켠 후, 우동균이 가볍게 굳어 있는 홍미옥을 힐끗 살폈다.
벌써 여덟 살이나 된 아이가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홍미옥은 아름다웠다.
얼굴은 물론이고, 몸매도 좋았다.
애를 낳은 경험이 없는 숫처녀마냥 배나 옆구리에 군살 한 점 붙어 있지 않았다.
새초롬히 눈을 내리깐 채 앉아 있는 홍미옥의 옆모습을 바라보던 우동균이 혀를 내밀어 입술을 훑었다.
욕정이 들끓기 시작했다.
아랫도리가 뻐근해짐을 느낀 우동균이 명령했다.
“벗어!”
하지만 홍미옥은 그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지그시 입술을 깨물고 치맛자락을 움켜쥔 손은 어느새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왜? 싫어?”
두 눈을 가늘게 뜨고 홍미옥의 반응을 살피던 우동균의 입가에 흐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홍미옥은 확실히 특이한 여자였다.
여자라면 수도 없이 안아 본 우동균이었다.
기루에 들어가서 돈만 내면 안을 수 있는 것이 여자였으니까.
손바닥 위에 은자 몇 개를 올려놓으면 기녀들은 마치 입안의 혀처럼 살살 녹을 정도로 살갑게 굴었다.
기녀만이 아니었다.
과부들은 물론이고, 여염집 아낙들도 숱하게 안았다.
처음에는 도도하게 구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 끝은 대동소이했다.
마치 발정난 개처럼 먼저 옷을 벗고 달려들면서 제발 버리지만 말아 달라고 매달리기 바빴으니까.
그러나 홍미옥은 달랐다.
‘하긴 처음부터 평범하지 않았지!’
지그시 입술을 깨물고 있는 홍미옥을 웃으며 바라보던 우동균이 그녀를 처음 만났을 당시의 기억을 떠올렸다.
홍미옥을 처음 만난 것은 향주의 뒷골목이었다.
마지막까지 따라붙은 네 명의 적과 혈전을 치른 끝에 간신히 살아남았다.
적들의 추적을 간신히 따돌렸지만, 마지막 전투에서 우동균이 입은 부상도 만만치 않았다.
우선은 부상을 다스리고 몸 상태를 최상으로 만드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하고 항주에 집을 한 채 얻었다.
아직 안심하기는 일렀다.
패천호혈장을 노리는 놈들은 많았다.
그리고 그놈들이 혈안이 된 채 자신을 찾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한동안은 죽은 듯이 조용히 지내려고 했다.
실제로 한 보름가량 새로 구한 거처에 틀어박혀 부상만 다스리기도 했다.
하지만 제 버릇을 개 줄 수는 없는 법이었다.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물고 내상이 치유되자 몸이 근질거렸다.
결국 갑갑함을 참지 못하고 객잔에서 술을 마셨다.
그동안 쌓인 욕정을 풀기 위해서 기녀라도 안고 싶었지만, 혹시나 얼굴이 알려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꾹 참았다.
적당히 취해서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파락호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홍미옥을 발견했다.
처음엔 그냥 무시하고 지나치려고 했다.
그러나 도중에 마음이 바뀌었다.
허름한 옷을 입고 있었지만 귀티가 자르르 흐르면서도 반반한 홍미옥의 얼굴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도와주세요!”
홍미옥이 소리쳤다.
사실 무공도 모르는 파락호들을 처리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동균은 바로 나서지 않았다.
“내가 도와주면 뭘 해 줄 거지?”
우동균이 질문하자 홍미옥은 잠시 망설였다.
“내가 원하면 몸을 줄 텐가?”
예상 밖이었을까.
홍미옥이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그리고 마침내 결심을 굳힌 듯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비로소 나섰다.
거의 다된 밥에 재를 뿌렸기 때문인지, 파락호들은 잔뜩 인상을 구긴 채 다가왔다.
“곱게 사라지는 게 신상에 좋을 텐데.”
어깨를 건들거리며 다가온 파락호들이 협박했다.
겁을 집어먹고 조용히 사라지길 바란 것이겠지만, 안타깝게도 파락호들은 상대를 잘못 골랐다.
우동균은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예상대로 항주 뒷골목에서나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니는 파락호들에 불과했다.
검은 빼 들 필요도 없었다.
순식간에 파락호 다섯을 죽였다.
적당히 손속을 조절해서 정신만 잃게 만들 수도 있었지만, 우공균은 일부러 독하게 손을 썼다.
행여나 얼굴이 알려질지도 모른다는 염려 때문이었다.
순식간에 절명한 파락호들을 바라보던 홍미옥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 가늘게 몸을 떨었다.
처음에는 겁을 먹었기 때문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무안할 정도로 빤히 바라보던 홍미옥이 한참 만에 입을 뗐다.
“혹시 강호인인가요?”
“그래.”
“고수…… 인가요?”
“고수라고 하더군.”
대답을 꺼내던 우동균은 홍미옥의 두 눈이 순간 반짝이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홍미옥은 약속을 지켰다.
우동균은 파락호들 다섯이 혀를 빼 물고 죽어 있는 뒷골목에서 홍미옥을 안았다.
그걸로 끝낼 생각이었는데…….
‘아쉬워서 끝낼 수가 없었지!’
분한 듯 가늘게 몸을 떨고 있는 홍미옥을 노려보던 우동균이 움직였다.
거칠게 옷을 벗겼다.
홍미옥이 강하게 저항했지만, 우동균의 힘을 감당할 수 있을 리 없었다.
홍미옥은 순식간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으로 변했다.
“뒤로 돌아!”
“약속은…… 지킬 거죠?”
“약속? 아아!”
우동균은 한참 만에야 기억해 냈다.
홍미옥이 자신에게 몸을 내주는 대신 조건을 내걸었던 것을.
그런 상황에 처했으면서 조건을 내걸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기에 솔직히 조금 놀라기는 했다.
‘하여간 재밌는 년이야!’
물론 그 약속을 지킬 생각은 없었다.
이미 까맣게 잊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속내를 감추고 우동균이 말했다.
“그야 네가 하기 나름이지.”
아까부터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꽉 깨물고 있던 홍미옥이 마침내 결심을 굳힌 듯 몸을 돌렸다.
그리고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땅만 파는 무지렁이에게는 아까운 년이야! 그리고 확실히 다른 년들이랑은 다른 면이 존재해!’
벌써 몸을 섞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보통 여자들이라면 이렇게 몸을 몇 번 섞고 나면 먼저 안아 달라고 달려들었을 텐데 홍미옥은 달랐다.
마지못해 몸을 내준다는 기색이었다.
또 관계를 가질 때에도 이를 악물고 신음성 한 번 흘리지 않았다.
‘건방진 년!’
그리고 그게 우동균을 더욱 흥분하게 만들었다.
우동균이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벌써 빳빳하게 하물이 서 있었다.
하물을 덜렁거리며 납작하게 엎드려 있는 홍미옥의 뒤로 다가간 우동균이 몸을 거칠게 밀어붙였다.
전희도 없이 갑자기 몸속으로 거대한 하물을 밀어 넣은 탓에 홍미옥의 얼굴이 고통으로 찡그려졌다.
“아아!”
잇새를 비집고 새어 나오는 신음성.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홍미옥은 손으로 입을 막고 필사적으로 신음성을 참아 냈다.
‘독한 년!’
우동균의 손이 홍미옥의 허리에 닿았다.
매끈한 살결을 쓰다듬던 우동균의 오른손이 홍미옥의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이를 악물고 있는 홍미옥의 머리채를 힘껏 잡아당긴 다음, 바쁘게 허리를 움직이며 물었다.
“좋아?”
홍미옥은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고통 때문인지, 희열 때문인지 몰라도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있으면서도 독하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오히려 우동균을 더 즐겁게 했다.
정복욕을 묘하게 자극했으니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두고 봐. 머지않아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안아 달라고 매달릴 테니까.”
우동균이 흡족하게 웃으며 더욱 거칠게 허리를 움직여 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