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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소사전담반 1(11화)
5장 나랑 잘래요?(1)


“여자는 혼인하기 전과 후가 전혀 달라. 혼인 전에는 양처럼 순했던 여자도 혼인 후에는 호랑이처럼 사납게 변한다고. 뭐? 자네 부인은 절대 안 그렇다고? 흥, 이건 해가 동쪽에서 뜨는 것과 마찬가지로 세상의 진리야. 아직 혼인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딴 소릴 하지만, 좀 더 살아 보면 내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될 거야.”

예전에 술자리에서 홍도수가 했던 말이었다.
하지만 최종길은 그때 코웃음을 쳤다.
아내는 혼인을 하고 이 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큰 소리 한 번 낸 적이 없었다.
이렇게 착하고 조신한 아내가 갑자기 호랑이처럼 사납게 변할 리가 없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그건 최종길의 착각이었다.
시간이 좀 더 흐르고 나서 홍도수의 말이 옳았음을 깨닫게 되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 호풍이가 태어나고 나서 아내는 변했다.
비록 호랑이까지는 아니지만 아내는 분명히 사나워지고 부쩍 억척스럽게 변했다.
표독스레 노려볼 때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을 정도였다.
그래도 그 표독스런 눈빛은 견딜 만했다.
정작 최종길을 힘들게 하는 건 경멸하는 눈빛이었다.
조금 전에 도망치듯 방문을 열고 빠져나올 때, 등 뒤로 따라붙던 경멸의 눈초리는 지금까지도 잊을 수가 없었다.
“빌어먹을!”
기분이 이 모양인데 일이 손에 잡힐 리 없었다.
최종길은 대낮부터 객잔에 들어와 술을 마셔 댔다.
변변한 안주도 없이 화주를 연거푸 들이켰음에도 이상하게 취기가 돌지 않았다.
예전에는 화주 석 잔만 마셔도 기억을 잃을 정도로 술이 약했는데.
술은 마시면 마실수록 세진다는 옛말은 틀리지 않았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지?”
탁자 위에 빈 잔을 거칠게 내려놓은 최종길이 한탄했다.
자신은 변한 것이 없었다.
열심히 일했다.
그리고 아들이 태어나서 입이 하나 더 늘어났을 때부터는 책임감이 커진 탓에 몸이 부서져라 더 열심히 일했다.
하늘에 맹세코 한눈 한 번 팔지 않고 열심히 일만 했을 뿐인데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나쁜 년!”
그래, 이건 자신의 탓이 아니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 것은 전적으로 아내 탓이었다.
다른 이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놈 아래 깔린 채 신음성을 내지르고 있을 아내의 모습을 떠올리자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
“죽여 버릴 거야.”
슬슬 취기가 오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내에 대한 분노도 더 강해졌다.
다시 한 잔의 화주를 들이켠 최종길의 생각이 며칠 전 만났던 담서인이라는 젊은 사내에게로 미쳤다.

“최대한 빨리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에 하나 실패한다면 착수금은 그대로 다시 돌려드리겠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담서인이라 밝힌 젊은 사내는 몇 번이나 강조했다.
술기운 때문이었을까?
그때는 그 말이 무척이나 달콤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무척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던 담서인도 꽤 믿음직스럽게 보였다.
그래서 착수금까지 건넸다.
‘기댈 곳이 없었기 때문이야!’
다음 날, 술에서 깨고 나서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 꽤 거금이라 할 수 있는 착수금을 건넨 이유를 고민해 보고서야 깨달았다.
그만큼 절실했다는 것을.
“사기 아냐?”
그 후로 벌써 며칠이 흘렀다.
하지만 아내는 멀쩡히 살아 있었다.
아내와 바람이 난 그 강호인도 마찬가지였고, 담서인이라는 젊은 놈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담서인과 연락할 방도도 없었다.
“빌어먹을. 멍청하게 사기를 당했군!”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달은 최종길이 자신을 탓하며 화주를 병째 움켜쥘 때였다.
“사기는 아니니까 안심하시오.”
“……?”
“더 이상 기댈 곳이 없어서 마지막 수단이라 여기고 찾아온 사람들에게 사기를 칠 정도로 우리가 나쁜 놈들은 아니니까.”
언제 다가왔을까.
기척조차 느끼지 못했는데 한 사내가 다가와 있었다.
최종길은 그 사내를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꼭 죽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오.”
사내가 화주가 든 병을 최종길의 손에서 낚아챘다.
하지만 그 병을 다시 빼앗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최종길은 가만히 서 있었다.
“아이 생각도 해야 하지 않겠소? 졸지에 엄마를 잃은 아이가 받을 충격이 얼마나 클지 생각해 봤소?”
시내의 말을 듣던 최종길이 미간을 찌푸렸다.
아내가 미웠다.
그리고 아내와 바람이 난 그 강호인이 미웠다.
다른 것은 돌아볼 여유조차 없을 정도로.
한데 지금 사내의 말을 듣고서야 아들에게까지 퍼뜩 생각이 미쳤다.
“미처 거기까진…….”
“왜인지 아시오?”
“뭐가?”
“부인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가에 대해 생각해 봤소?”
“그야 빤한 것 아닙니까. 배운 것도 많고 무공도 익힌 놈이 꼬드기니 이때다 싶어서 넘어간 거겠죠.”
“과연 그런 이유 때문일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요?”
“부인이 그런 선택을 하겠다고 결심하게 된 배경에 당신의 책임은 없소?”
내 책임은 전혀 없다고 소리치려던 최종길이 담담하기 그지없는 사내의 눈빛을 마주하고 급히 입을 다물었다.
“난…… 난…… 최선을 다했소.”
“정말 최선을 다했소?”
“그건…….”
“물론 그동안 노력한 것은 알고 있소. 몇 년째 이어진 가뭄으로 인해 먹고살기도 어려운 시절에 가족들 밥을 안 굶긴 것만 해도 대단하니까.”
사내의 말대로였다.
굶어 죽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먹고살기 위해서 돈을 받고 자식도 팔아넘길 정도로 지금은 각박한 세상이었다.
이런 시절에 굶을 걱정하지 않고 살게 해 주는 것만 해도 어딘가.
그래서 최종길의 어깨에 슬쩍 힘이 들어갔다.
“분명히 말하지만, 내 탓은 아니오.”
“정녕 그렇게 생각하시오? 하지만 이 세상에 아무런 이유 없이 그냥 벌어지는 일은 절대로 없소.”
“…….”
“그리고 사람이란 밥만 먹고살 수 없는 법이오.”
사내가 희미하게 웃었다.
그러다 최종길이 반론을 펼칠 틈도 주지 않고 다시 입을 뗐다.
“일단 앉으시오. 무척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줄 테니까.”
최종길은 잔뜩 미간을 찌푸렸다.
이미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차오른 상황인데, 아무리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귀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그래서 거절하려 했지만, 사내는 막무가내였다.
허락도 없이 맞은편 의자에 앉은 사내는 어느새 빈 잔에 화주를 채우고 있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독고 성을 가진 무인이 있소. 꽤나 야심이 큰 양반이었는데, 물론 그렇게 큰 야심을 품어도 될 자격도 갖추고 있소. 머리도 꽤 좋은 편이고, 검도 꽤 잘 다룰 줄 아니까. 아, 잘하면 그쪽도 알고 계실 수도 있겠구려. 성은 독고이고 이름은 진, 현재 무림맹의 맹주 자리를 꿰차고 있는 사람인데.”
“독고…… 진?”
최종길이 눈을 치켜떴다.
평생을 땅만 파며 살아온 천생 농사꾼이라고 해도 귀동냥으로 강호의 풍문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무림맹의 맹주에 대한 소문도 몇 번이나 들은 적이 있었다.
검선 독고진.
한 자루 검을 귀신같이 다루는 무인!
당연히 평범한 고수가 아니었다.
강호의 최고수 자리를 놓고 다투는 고수 중의 고수였고, 자신 같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평생을 살아도 한 번 만나기조차 힘든, 신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당연히 압니다. 그런데 왜?”
“마침 알고 있는 것 같으니 이야기를 풀어 나가기 더 쉽겠소. 그 양반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오?”
“그야…….”
막상 대답하려 하자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검선 독고진과 자신은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
그래서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분은 세상에 부러울 게 없는 사람이지요.”
한참 만에야 최종길이 간신히 이야기를 꺼내자 사내가 다시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오?”
“모든 걸 다 가졌으니까요.”
무림맹의 맹주라는 직책은 아무나 오를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무식한 최종길도 그쯤은 알고 있었다.
그렇게 높고 대단한 직책에 올랐으니 명예도 얻었고, 돈도 많을 것이며, 배운 것도 많을 터였다.
하지만 마주 앉은 사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틀렸다고 말했다.
“그 양반은 불행한 사람이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그리고 불쌍한 사람이기도 하오. 이건 틀림없는 사실이오. 내가 곁에서 긴 시간 지켜보았기 때문에 이건 장담할 수 있소.”
“…….”
“영 못 믿겠다는 표정이구려. 그럼 지금부터 그 이유를 말씀드리겠소.”
사내는 술잔을 들어 목을 축인 후,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 양반은 야심이 많은 사람이었소. 무림맹의 맹주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 많은 것을 준비했소. 그리고 당연한 말이겠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희생했소. 예를 들면, 소중한 가족이라든가.”
“좀 더 알아듣기 쉽게 말해 주시오.”
“그 양반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앞만 보고 달려왔소. 그리고 마침내 그 꿈을 이루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됐소. 아내가 죽을병에 걸렸다는 것을. 얼굴을 마주하고 잠깐 얘기를 나누기만 했어도 낯빛이 창백하게 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텐데. 다정하게 손이라도 한 번 잡아 보았다면 얼음장처럼 차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텐데. 하나 그 양반은 그러지 못했고, 그래서 가장 가까이에서 곁을 지켰던 아내가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도 몰랐던 것이오. 아내에게 병이 있음을 알아챈 그 양반은 뒤늦게 후회했소. 그러나 이미 손을 쓰기에는 너무 늦어 버린 상황이었지. 그토록 원했던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서 천하에 소문이 자자한 명의들을 모조리 불러들였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소.”
사내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러고 다시 화주를 들이켜며 목을 축이는 동안 최종길은 꿈쩍도 하지 않고 이어질 이야기를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