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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소사전담반 1(15화)
6장 녹슨 낫(2)


콰직.
남편과 달리 우동균은 망설이지 않았다.
그가 거침없이 내뻗은 발이 최종길의 가슴을 강타했다.
비록 내력은 실려 있지 않았지만 일류 고수가 내지른 발길질에 실린 힘을 최종길이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쿨럭, 쿨럭.”
맥없이 바닥을 뒹굴다가 간신히 멈춘 최종길은 뱉은 기침을 토해 냈다.
“여보!”
그 모습을 확인한 홍미옥이 황급히 바닥을 기어 다가갔다.
“당신, 괜찮아?”
“…….”
“죽지 마. 내가…… 정신이 나가서 당신한테 몹쓸 짓을 한 내가 벌을 받을게. 그러니까 당신은 살아.”
“왜? 대체…… 왜 그랬냐니까?”
입가에 묻은 피를 닦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최종길이 소리쳤다.
그 모습에 망설이던 홍미옥이 어렵게 입을 뗐다.
“싫었어.”
“내가…… 내가 그렇게 싫었어?”
“아니, 당신이 싫은 게 아니라 우리 아들이 당신처럼 사는 게 싫었어. 적어도 우리보다 조금은 낫게 살아야 하잖아.”
금방이라도 불구덩이가 쏟아져 나올 것 같던 최종길의 강렬한 눈동자가 순간 얼어붙은 것처럼 식어 버렸다.
그리고 한참 만에야 입을 뗐다.
“그럼 이럴 게 아니라…… 나한테 말을 했으면 됐잖아.”
“말했어.”
“뭐?”
“수십 번, 아니, 수백 번도 넘게 당신에게 말했어. 하지만 당신은 내 이야기를 들은 척도 안 했잖아.”
“내가…… 그랬나?”
“미안해. 미안해, 여보!”
홍미옥이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빌었다.
넋이 빠져나간 듯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최종길이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 손이 떨리고 있는 홍미옥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그 남자 말이 맞았네.”
“뭐?”
“세상에 아무런 이유 없이 벌어지는 일은 없다더니.”
“지금 뭐라는 거야?”
“내 잘못도 있었네.”
마치 혼이 나간 사람처럼 최종길은 연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 말의 의미를 파악할 수 없어 홍미옥이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때, 최종실이 불쑥 말을 꺼냈다.
“다시…… 시작하자.”
“당신, 지금 뭐라고 그랬어?”
“우리, 다시 시작하자고.”
오열하느라 격렬하게 흔들리던 홍미옥의 어깨가 멈추었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을 들어 최종길을 바라보던 홍미옥이 연신 입을 벙긋거렸다.
답답했다.
무슨 말이라도, 어떤 대답이라도 남편에게 해야 할 것 같은데, 쉽게 말이 되어 흘러나오지 않았다.
“이제 다 했나?”
“…….”
“…….”
“꽤 재미있었어.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감동적이기도 했고.”
빈정대던 우동균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아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내가 해 주지.”
“…….”
“…….”
“아쉽겠지만, 너흰 다시 시작할 수 없어. 지금 둘 다 죽을 테니까.”
우동균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나만 죽여! 이 사람은 건드리지 마!”
홍미옥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졌지만, 우동균은 코웃음을 치며 검병을 쥔 손에 힘을 더했다.
이제 흥미가 떨어졌다.
그러니 더 살려 둘 필요가 없었다.
시퍼런 검신을 들어 올렸다.
최종길이 이를 악문 채 녹슨 낫을 집어 드는 것이 보였지만, 우동균은 곧 시선을 뗐다.
평생 곡괭이나 잡던 손에 들린 녹슨 낫이 무슨 위협이 될까.
녹슨 낫을 무시한 채 홍미옥의 목을 자르기 위해서 검신을 휘둘렀다.
챙!
그런데 놀랍게도 검신이 도중에 가로막혔다.
최종길의 손에 들린 녹슨 낫에 의해.
아니, 그 녹슨 낫의 옆으로 다가온 대두도에 의해서.
우동균이 잔뜩 미간을 찌푸린 채 염소수염을 기른 장한을 노려볼 때, 각양각색의 무인들이 마당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툭.
데구루루.
바닥에 떨어진 누군가의 머리통이 굴러왔다.
억울한 듯 눈조차 감지 못한 머리통을 바라보던 홍미옥이 급히 입을 틀어막고 주변을 살폈다.
어느새 마당 안에는 시체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흐흡!”
너무 무서운 탓인지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억눌린 울음소리만 토해 내던 홍미옥이 사지를 벌벌 떨고 있을 때였다.
두툼한 손이 어깨를 감쌌다.
굳이 고개를 돌려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 두툼한 손의 주인이 남편이라는 사실을.
덕분에 떨리던 몸이 조금씩 진정되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한 사내가 다가왔다.
피가 튀고 살점이 뜯겨져 나가는 처절한 싸움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지만, 그 사내의 표정엔 여유가 넘쳤다.
마치 산책이라도 나온 사람처럼.
짙은 눈썹, 호수를 품은 것처럼 깊고 맑은 눈, 입가에 머물러 있는 산들바람처럼 부드러운 미소까지.
흑의 장삼을 입은 사내는 미남이었다.
여인들이라면 쉽게 시선을 떼기 힘들 정도로.
그렇지만 홍미옥은 달랐다.
사내의 얼굴을 향해 있던 시선을 떼고 옆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 사내의 손을 잡은 채 걸어오고 있는 것은 분명 자신의 아들이었다.
불과 조금 전까지만 해도 홍미옥은 꼼짝없이 여기서 죽을 거라 여겼다.
다시는 아들의 얼굴을 볼 수 없을 거라 여겼다.
그래서 거짓말처럼 이곳에 나타난 아들의 얼굴을 다시 본 순간, 울컥하는 감정과 함께 참고 참던 눈물이 다시 쏟아져 내렸다.
“당신은…….”
그때, 최종길이 사내를 향해 입을 뗐다.
마치 안면이 있는 사람인 양.
하지만 사내는 슬쩍 고개를 흔들며 홍미옥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피하지 말고 제대로 보시오.”
아까부터 두 눈을 질끈 감아서 자신의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지옥도를 외면해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사내의 말을 듣는 순간, 이상하게 거역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억지로 두 눈을 부릅뜨고 눈앞에 펼쳐진 지옥도를 바라보았다.
분수처럼 솟구치는 피가 허공에 흩뿌려지고, 주인을 잃은 팔과 다리는 사방에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었다.
그리고 부유하듯 사위를 훑던 홍미옥의 시선이 한곳에서 멈추었다.
적살검 우동균!
왼팔을 잃어버리고, 전신에 크고 작은 상처를 입은 우동균이 연신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생에 대한 마지막 의지를 불태우며 본능적으로 검을 마구잡이로 휘둘렀지만, 사방에서 동시에 떨어져 내리는 병기들을 모두 막아 내는 것은 무리였다.
쩡, 쩌정!
머리 위를 노리고 떨어지는 대두도를 막고, 옆구리를 노리며 파고든 편을 연달아 막아 내는 데 성공했지만, 그 탓에 우동균의 가슴이 순간적으로 비었다.
푹.
그 순간, 번개같이 파고든 한 자루 박도가 가슴에 깊숙이 박히고, 최후의 발악을 하던 우동균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필사적으로 저항하던 그의 손에서 검이 빠져나갔다.
털썩.
그리고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던 우동균이 힘없이 무너졌다.
‘이제 끝인가?’
우동균이 죽었으니 홍미옥은 이제 모두 끝이라 여겼다.
그러나 그건 그녀의 착각이었다.
그가 죽어도 싸움은 멈추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우동균을 합공하던 사람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를 향해 병기를 겨누었다.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상황에 홍미옥이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였다.
“저게 다 욕심 때문이오. 마지막 한 명만이 살아남아 패천호혈장을 차지할 때까지 저들은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오.”
“…….”
“또한 바로 저게 강호라는 곳이오.”
원하는 것이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차지하려는 자들.
저들은 사람의 목숨도 가차 없이 빼앗았다.
그리고 저런 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 바로 강호!
‘내가 과연 옳았을까?’
홍미옥이 지옥도가 펼쳐지고 있는 광경을 넋을 놓고 바라보는 아들을 바라보았다.
겁에 질린 탓인지 가늘게 떨리고 있는 아들의 신형을 본 순간, 홍미옥은 비로소 자신이 그동안 무엇을 하려 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임추량의 말이 옳았다.
강호라는 곳에 대한 막연한 동경만으로 아들을 사지로 몰아넣으려고 했다.
아들의 의사 따위는 상관하지 않고.
“이리 와!”
홍미옥이 아들을 와락 끌어안았다.
그리고 아들의 두 눈을 가리려고 했다.
이 끔찍한 광경을 보여 주는 것은 아들에게 너무나도 가혹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뜻밖에도 사내가 그것을 막았다.
“왜?”
“강호는 넓소. 저건 강호의 일면일 뿐이오.”
“하지만…….”
“선택은 결국 이 아이의 몫이오.”
사내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돌아섰다.
멍하니 서 있던 홍미옥이 아들을 다시 힘껏 끌어안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 주겠다는 필사적인 의지로.
그리고 잠시 뒤, 홍미옥의 등은 따뜻해졌다.
자신과 아들을 등 뒤에서 껴안고 있는 것이 최종길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홍미옥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그동안 미처 알지 못했는데…….
남편이란 울타리는 든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