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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소사전담반 1(18화)
7장 빚이 좀 있거든(2)


천라지망.

검신 독고진을 죽이기 위해서 그동안 치밀하게 준비를 했고, 여기 대천산 인근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 기어 들어올 수 없는 천라지망이 펼쳐져 있었다.
그런데 대체 누가 이곳을 찾아올 수 있단 말인가.
“흥, 궁지에 몰리니 그런 얕은 수를…….”
“멸마대주 자리를 준다고 했는데도 싫다고 하더군.”
“…….”
“나중에 늙어서 기력이 떨어지면 먹으려고 꼬불쳐 두었던 만년설삼도 내주고, 노후 자금으로 쓸 요량으로 뒷돈 챙겨 둔 것도 슬쩍 건네 봤지. 그런데 딱 잘라 싫다고 하더군. 그래서 최후의 수단으로 하나밖에 없는 딸년까지 주려고 했지. 한데 그때 그놈 반응이 어땠는지 아나? 내 딸이 너무 못생겨서 싫다면서 펄쩍 뛰더군. 그리고 대체 누구 신세를 망치려고 이러느냐고 따지는데, 솔직히 그땐 나도 자식 가진 부모라 빈정이 좀 상했지. 하지만 어쩌겠나? 아쉬운 사람이 참아야지.”
“지금 대체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살다 보면 언젠가 이런 날이 찾아올 거라 예상했네. 그래서 그 친구에게 억지로 마음의 빚을 지워 둔 거야. 그 대가로 내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을 때 딱 한 번만 도와달라고 부탁했지.”
순간, 구효서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천라지망을 뚫고서 누군가 여기까지 온다는 것이 여전히 믿기지 않았지만, 이유 모를 불안감이 부피를 키워 갔다.
슬슬 뒷통수도 근질거렸고.
“그놈이 대체 누구길래?”
“직접 보게.”
“흥!”
“이래 봬도 정파무림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무림맹을 이끌고 있는 나일세. 치사하게 암습 따윈 안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돌아보게.”
‘분명히 허세일 텐데.’
이상하게 불안했다.
그래서 더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린 구효서가 두 눈을 부릅떴다.
독고진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천라지망이 뚫렸다.
하나 그보다 더 큰 충격은 예고도 없이 등장한 불청객이 불과 삼 장 거리까지 접근할 때까지 자신은 아무런 기척도 느끼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
“어떻게……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지?”
대체 어떻게 천라지망을 뚫었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세 살 먹은 어린아이의 울음도 뚝 그치게 만든다는 공포의 대명사인 천마 구효서의 질문은 가볍게 씹혔다.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은 구효서의 질문에 대답하기는커녕 아예 무시했다.
“이걸로 퉁 치는 겁니다.”
“내가 좀 손해 보는 것 같은데.”
“자꾸 그러면 그냥 갑니다.”
“거참, 알았네, 알았어.”
감히 자신을 무시하고 독고진과 시시덕거리는 불청객.
그것도 아직 새파랗게 젊은 놈을 노려보던 구효서의 이마에 핏줄이 불거졌다.
그리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도 참아 넘길 정도로 구효서의 인내심은 깊지 않았다.
“이 건방진 애송이 새끼가!”
마혈검이 번뜩였다.
눈부신 검광이 좀 전까지 젊은 놈이 서 있던 공간을 촘촘히 뒤덮었다.
감히 피할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로 완벽한 한 수!
하지만 구효서의 안색은 밝지 않았다.
‘뭐지?’
검을 움켜쥔 손에 전해지는 묵직한 감각이 없었다.
구효서는 자신의 눈을 비비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아 냈다.
“어떻게?”
분명히 피할 공간이 없었는데 새파랗게 젊은 놈은 멀쩡했다.
마치 산보라도 나온 사람마냥 유유히 걸어서 자신의 곁을 스쳐 지나가 독고진의 앞에 서 있었다.
“넌 누구지?”
구효서가 불신의 빛이 서린 눈으로 불청객을 노려보았다.
나이는 많아야 서른 정도.
큰 키와 윤곽이 뚜렷한 이목구비가 묘하게 어울렸다.
그리고 가장 인상적인 것은 젊은 사내의 눈이었다.
호수처럼 깊고 조금의 흔들림도 없는 두 눈은 구효서의 매서운 눈빛을 담담히 받아 내는 걸로 모자라 자석처럼 끌어당기고 있었다.
“알 것 없어.”
“뭣이라?”
“어차피 다시 볼 일도 없을 테니까. 이번 일을 끝으로 다시는 골치 아픈 강호사에 끼어들지 않을 거거든.”
젊은 사내가 싱긋 웃으며 흑색 장갑을 꺼냈다.
구효서가 뭐라 대꾸하기도 전에 그 장갑을 양손에 낀 젊은 사내가 목을 좌우로 꺾은 후 느긋하게 말했다.
“미리 경고하지만, 운이 좋아서 이 자리에서 살아남게 되면 죽은 듯이 살아. 복수가 어쩌고저쩌고 설치면서 절대 날 찾지 마.”
“이 건방진 애송이 새끼가!”
“내 경고, 무시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혹시라도 날 찾게 되면…… 진짜 무서운 걸 보게 될 테니까.”
젊은 사내가 씨익 웃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던 구효서는 뒤늦게 자신의 추태를 깨닫고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하지만 애병인 마혈검을 들어 올리지는 못했다.
구효서를 천마의 자리까지 오르게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본능이 속삭이고 있었다.
저놈은 위험하다고.
저놈의 말대로 하는 것이 좋을 거라고.
그래서 구효서가 망설이느라 미적대고 있을 때, 젊은 사내가 흑색 장갑을 고쳐 끼며 재촉했다.
“너, 겁먹었지?”

* * *

맹주가 함정에 빠졌다.
강북에 위치한 신흥 명문세가인 금천가의 가주인 금적산의 환갑잔치에 참석하기 위해 무림맹을 떠난 독고진은 도중에 마교의 무리들에게 습격을 당했다.
호위무사들이 제 목숨을 아끼지 않고 용감하게 맞서 싸웠지만, 이미 작정하고 달려든 마교의 무리들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장렬히 싸웠지만 결국 전멸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무림맹주 독고진이 죽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검선이란 칭호를 얻을 정도로 초절정고수인 독고진은 혈혈단신으로 마교도들의 포위망을 뚫었다.
하지만 포위망을 뚫었다고 해서 안심하기는 일렀다.
마교의 무리들은 집요하게 독고진을 추적했다.
그리고 그냥 추적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토끼 사냥을 하듯 독고진을 사지로 몰아넣어 갔다.
독고진이 아무리 대단한 고수라고 해도 수천이나 되는 마교의 무인들을 혼자 상대하며 무사할 수는 없었다.
이미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다고 알려진 독고진이 마교의 무리들을 상대하며 필사적으로 도망친 곳은 대천산이었다.
그리고 그곳이 바로 토끼 사냥의 종착점이었다.
대천산에는 이미 간악한 마교의 무리들이 파 놓은 함정이 설치되어 있었다.
천라지망!
독고진은 마교가 자랑하는 천라지망에 갇혔다.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드나들 수 없다고 알려진 바로 그 천라지망에.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맹주님을 구해야 한다!

물론 무림맹에서도 손을 놓고 바라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독고진이 습격을 당하고 마교 놈들이 쳐 놓은 함정에 빠졌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무림맹의 책사 역할을 맡고 있는 제갈후가 나섰다.
일명 맹주 구출 작전!
멸마대와 파사대, 그리고 호천단까지.
천라지망에 갇힌 독고진을 구해내기 위해서 무림맹이 자랑하는 최고의 무력 집단이 일제히 맹을 나섰다.
어디 그뿐인가.
신분을 노출하지 않은 채 극비리에 세작 활동을 펼치고 있던 비선들까지 모조리 맹주 구출 작전에 투입되었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독고진을 죽이기 위해서 철저히 준비를 한 마교는 무서웠다.
멸마대는 덫에 걸렸다.
마교 놈들이 일부러 흘린 거짓 정보에 속아서.
잔악한 마교의 무리들을 섬멸하기 위해 결성됐던 멸마대는 섬멸 대상이던 마교도들의 칼끝에 전멸했다.
그 비보가 무림맹에 도착하기도 전에 파사대 역시 압도적인 수적 열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은 채 퇴각했다.
일천의 무인들로 구성된 파사대 무인들 가운데 생존자가 불과 일백이 되지 않았으니, 거의 전멸이나 다름없었다.
그 비보를 접한 제갈후는 피가 날 정도로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아직 포기하기는 일렀다.
호천단과 비선들이 남아 있었으니까.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으며 제갈후를 비롯한 무림맹의 장로들이 초조하게 기다릴 때, 급보가 날아들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날아든 급보는 비보였다.

호천단 전멸.
비선망 모조리 끊김.

비보를 접한 제갈후는 탄식을 토해 냈다.
무림맹주 독고진을 구하기 위해서 급히 투입됐던 대부분의 인원이 죽었고, 결국 구출 작전은 실패했다.
이제 마교가 파 놓은 함정에 빠진 독고진을 구할 사람은 없었다.
물론 독고진의 무공 실력이 입신지경에 이르렀을 정도로 뛰어나긴 했지만, 한 손이 열 손을 감당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게다가 독고진은 정상이 아니었다.
극독 중의 극독인 무형지독에 중독된데다가 치명적인 부상까지 입은 상태였다.
‘죽었군!’
제갈후는 책사.
책사는 철저하게 계산하며 움직이는 자리였다.
헛된 기대를 품고서 미련을 가져서는 안 됐다.
그래서 독고진의 죽음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독고진의 죽음이 기정사실이 되자 상황이 급변했다.
마치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숨죽인 채 상황을 살피고 있던 장로들이 전면에 나섰다.
“최악이군!”
집무실에 틀어박혀 있던 제갈후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무림맹주 자리가 공석이 되자 여태껏 야심을 감추고 기회만 엿보고 있던 장로들이 더 이상 눈치를 보지 않고 움직였다.
특히 이장로인 혁련권과 오장로인 서문추를 중심으로 파벌이 나눠진 채 공석이 된 무림맹주 자리를 노골적으로 노렸다.
“이게 정치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제갈후는 작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장로들은 전임 맹주 독고진의 죽음에 대한 애도조차 표하지 않은 채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바빴으니까.
게다가 강호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았다.
마교가 무림맹주인 독고진을 함정에 빠트려 죽인 것은 선전포고나 다름없었다.
언제 정마대전이 벌어질지 몰랐다.
아니, 지금 당장 정마대전이 벌어져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강호의 주인이 누가 되든지, 또 정마대전으로 인해서 얼마나 많은 무인들이 죽더라도 상관없다는 뜻이겠지.”
정작 중요한 것은 안중에도 없이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바쁜 장로들의 행보를 욕하던 제갈후가 독한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그리고 비어 버린 잔을 다시 채울 때였다.
“나도 한 잔 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