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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소사전담반 1(20화)
7장 빚이 좀 있거든(4)


부모와 자식.
천륜이라 부르는 부모와 자식 간에도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다반사다.
그리고 그 원인은 딱 하나다.
부모는 자식을, 자식은 부모의 속내를 이해하지 못 하기 때문이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서로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점차 불만이 쌓이고, 그 불만들은 시간이 흐르다 보면 도저히 건널 수 없는 간극을 만들어 버린다.
“그 녀석이 집을 나갔어.”
“그렇군요……. 아니,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집을 나갔다고.”
무심코 대답하던 제갈후가 흠칫하며 몸을 떨었다.
지금 맹주가 던지는 말은 아까의 인생 상담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였다.
인생 상담이야 결국 남의 집 가정사에 불과하지만, 맹주님의 외동딸인 독고혜가 가출한 것은 강호의 안위와 직결되는 문제였으니까.
“왜 잡지 않으셨습니까?”
“잡았어. 그런데 어디 내 말을 듣는 아이던가.”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말게. 호천단 애들 중 실력이 빼어난 애들로 몇을 추려서 호위로 붙여 두었으니까.”
독고진이 안심하라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러나 제갈후는 태연할 수 없었다.
지금의 강호는 풍전등화나 다름없는 형국이었다.
오랫동안 숨을 죽이고 있던 마교가 다시 기지개를 켜며 세상으로 나설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고 있었고, 아직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잠재적 위험 요소라 할 수 있는 단체들도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있었다.
이런 판국에 무림맹주의 유일한 여식이 세상에 나섰다는 소문이 퍼지면 어떻게 될까?
무림맹주의 여식만큼 좋은 협상의 패는 없었다.
당연히 모두가 불을 켜고 달려들기 시작하리라.
맹주님이 호위로 붙였다는 호천단의 무인들 몇 명이 감당할 수 있는 한가한 상황이 절대 아니었다.
“제가 직접 나서서 다시 맹으로 모셔 오겠습니다.”
“그만두게.”
“그냥 내버려 두었다가는 위험에 처하실 수도 있습니다.”
“알고 있네.”
“……?”
“만약 도중에 잘못된다고 해도 그게 그 녀석의 운명인 게지.”
제갈후는 헛숨을 들이켰다.
희미한 웃음을 입가에 머금은 채 던지는 독고진의 말을 듣고 나자 비로소 의중을 파악할 수 있었다.
독고진은 혼란을 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혼란을 조성하기 위해서 자신의 딸을 미끼로 사용한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자식을 사지로 내몬 셈이었다.
“후우.”
제갈후가 참지 못하고 긴 한숨을 토해 냈다.
독고혜가 아버지인 독고진을 싫어하는 결정적인 이유를 또 하나 찾았다.
바로 독고진의 저런 비정함 때문이었다.
‘무서운 사람!’
어느새 창가로 다가가 뒷짐을 진 채 석양으로 물들어 있는 서쪽 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독고진은 무서우리만치 비정한 사람이었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난 그 녀석이 어디로 갈 건지 짐작이 가네.”
“어디입니까?”
“혹시 비영을 기억하나?”
예상치 못한 순간에 갑자기 튀어나온 이름이었다.
비영을 떠올리기 위해 애쓰던 제갈후가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사내를 떠올렸다.
흑색 무복을 즐겨 입던 젊은 사내.
진짜 이름은 몰랐고, 맹주님을 포함한 모두가 그를 비영이라 불렀다.

비영(秘影)!
비밀스런 그림자!

그 젊은 사내는 이름과 닮아 있었다.
출신 성분도, 무공 내력도 비밀에 둘러싸여 있었으니까.
그리고 독고혜의 호위무사이자 그림자로 잠시 무림맹에서 머물다가 어느 날 홀연히 사라졌으니까.
“혜아는 비영을 무척 좋아했네. 아마 비영을 찾아 나섰을 거야.”
독고진이 덧붙인 말을 듣고서 제갈후가 처음으로 고개를 끄덕여서 수긍했다.
비영이 사라지고 난 후 독고혜가 몇 날 며칠을 식음을 전폐하고 울기만 하던 모습이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었으니까.
몇 번 마주친 적이 있던 비영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늘 웃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 웃음 속에 감춰져 있던 이유 모를 슬픔을 꿰뚫어 본 제갈후는 문득 궁금해졌다.
‘그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으려나?’



8장 예쁘냐?(1)


엽차는 엄청 뜨거웠다.
호호, 불어 가며 엽차가 식기를 기다리는 동안, 담서인은 다루에 앉아서 이른 아침부터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담서인은 이 잠시의 여유가 좋았다.
그래서 느긋하게 만끽하고 있을 때였다.
“또 밤샜니?”
백묘령이 화사한 웃음을 띤 채 다가왔다.
“왜? 오늘도 모공이 호수 같아?”
“어머, 너 뒤끝 있다? 그거 농담이었어.”
“네가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을 수도 있어.”
이미 마음이 상한 탓일까?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 말에 가시가 돋쳤다.
“어머, 너 개구리였어?”
백묘령이 한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웃었다.
이런 몰상식하고 재미없는 농담을 던지고 깔깔 웃다니.
가뜩이나 없던 정이 더 떨어지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남자들은 달랐다.
백묘령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서 다루 근처에 몰려든 사내들은 그녀의 웃는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사내들은 저런 백묘령의 농담마저 백치미라고 여기겠지.
예쁘고 몸매만 좋으면 뭐든지 용서받는 불공평한 세상에 담서인이 분통을 터트리고 있을 때였다.
“나도 한 잔 줘.”
“이거 싸구려 엽차야.”
“알아. 향이 구리더라고.”
“그런데 왜 마셔?”
“서민의 삶을 체험해 보려고.”
정말 재수 없다.
잘나가는 아버지를 둔 게 죄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짜증이 분수처럼 샘솟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뜨거운 엽차가 담긴 주전자를 저 곱게 화장한 면상에 던져 버리고 싶은 것을 필사적으로 참느라 손이 부들부들 떨릴 지경이었다.
“한 잔 마신다고 해서 죽기야 하겠어?”
확 독을 타 버릴까?
만약 미리 준비해 놓은 극독이 있었다면 당장 엽차 주전자에 몰래 넣었을 텐데.
앞으로는 꼭 독을 준비해서 다녀야겠다고 다짐하면서 떨리는 손으로 엽차를 한 잔 따라 주었다.
“그런데 결정은 내렸니?”
“무슨 결정?”
“우리 아버지가 운영하는 상단에 들어오라고 했던 거 말이야.”
“아, 그거? 안 갈래.”
“왜? 조건이 별로야? 돈 더 주라고 할까?”
“돈 때문이 아냐.”
“그럼?”
“불쌍해서 그래.”
“불쌍해? 누가?”
“있어. 추억만 먹고 사는 사람들.”
추억만 곱씹어 먹으면서 살 수는 없는 법이다.
돈을 벌어서 음식을 먹어야 살아갈 수 있는 게 사람이니까.
만약 자신이 강호소사전담반을 떠난다면 추억만 먹고 사는 임추량과 염노는 굶어 죽을 게 빤했다.
차마 그런 그들을 두고 떠날 수는 없었다.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주제에 다른 사람 걱정씩이나!’
하여간 이 넓은 오지랖이 항상 문제였다.
“그리고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나 때문에 불쌍한 사람이 또 생기겠지.”
“그게 무슨 소리야?”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속눈썹이 긴 두 눈을 연신 깜박이고 있는 백묘령에게 설명을 덧붙여 주었다.
“내가 네 아버지가 운영하고 계신 천수상단으로 냉큼 가 버리면 원래 거기서 일하던 누군가는 자리를 잃을 테니까.”
세상에 빈자리는 없다.
자신이 어느 조직으로 들어가면 누군가는 그 자리에서 밀려나야 한다.
어쩌면 한 사람이 아닐지도 몰랐다.
아침마다 은자 닷 냥씩 하는 용정차를 마실 정도로 월봉을 지급해 주려면 자신 때문에 몇 명이 자리에서 밀려날지도 몰랐다.
누군가의 남편이고, 또 누군가의 아버지일 사람들.
그들이 자신 때문에 하루아침에 자리를 잃고 궁지에 몰리는 것을 담서인은 원치 않았다.
“착하네.”
“그걸 이제 알았어?”
“하긴 얼굴이 안 예쁘면 마음이라도 착해야지.”
“콕 집어 알려 주셔서 눈물 나게 감사하네요.”
“농담이야.”
“아, 농담이세요? 부자 아빠 없는 개구리는 벌써 돌을 두 번 맞았네요.”
기껏 따라 준 아까운 엽차는 입에 대지도 않고 백묘령은 두 눈을 새초롬히 내리깐 채 고민에 잠겨 있었다.
슬슬 지겨워진 담서인이 엽차를 홀짝이고 있을 때, 백묘령이 입을 뗐다.
“그럼 이건 어때?”
“뭐가?”
“내가 아빠한테 이야기해서 네가 속해 있는 단체인 강호소사전담반을 아예 통째로 인수해 버릴게.”
“얼마에?”
“돈은 달라는 대로 줄게.”
“인수해서 뭐에 쓰려고?”
“몰라. 아직 거기까진 생각 안 해 봤는데?”
“헐!”
“어디 쓸데가 있겠지.”
역시 부자 아빠 둔 년은 뭐가 달라도 달랐다.
그런데 가만히 듣다 보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묘령은 대체 왜 이렇게 적극적인 걸까?
뭔가 이유가 있는 게 틀림없었다.
“갑자기 왜 이래?”
“뭐가?”
“이러는 이유가 있을 거 아냐?”
“아, 그거…….”
백묘령이 수줍게 웃었다.
그리고 살짝 붉어진 얼굴로 고백했다.
“나, 그 사람이 마음에 들어.”
“누구?”
“잘생긴 사람 있잖아?”
“너!”
“왜 그래?”
“보기와 다르게 취향이 독특하구나. 삼촌뻘인 아저씨를 좋아하는 걸 보니.”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곱게 늙어 가는 추량 아저씨를 좋아하는 거 아냐?”
“야!”
“귀청 떨어져 나가겠다.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이게 사람을 대체 뭘로 보고. 퇴물 기생오라비같이 음흉하게 생긴 아저씨를 내가 좋아할 것 같아?”
잘생겼다는 말을 듣고서 곱게 늙어 가고 있는 임추량을 퍼뜩 떠올린 담서인이 반신반의한 채 묻자 백묘령이 두 눈을 흘겼다.
“나 눈 높거든?”
그래, 임추량이 잘생기긴 했지만 이젠 한물간 기녀들이나 과부들에게나 통하는 얼굴이었다.
부잣집 여식인 백묘령이 그런 임추량을 좋아할 리 없었다.
“그럼 설마……?”
“……?”
“삼촌뻘이 아니라 아빠뻘인 염노를?”
“너 진짜!”
“아냐?”
“나 눈 높다니까!”
빽! 소리를 지르고 있는 백묘령을 바라보던 담서인이 아미를 찡그렸다.
임추량도 아니고, 염노도 아니면 이제 강호소사전담반에 남은 사람은 딱 한 명뿐이었다.
“너 설마 우리 대형을 좋아하는 거야?”
설마했는데…….
그 설마가 맞았다.
백묘령이 어울리지 않게 목덜미까지 붉게 물들인 채 고개를 끄덕였다.

“불여시 같은 년.”
백묘령이 요즘 들어서 갑자기 더 친한 척을 하기에 어쩐지 수상쩍다고 여겼다.
그 불여시 같은 년에게는 다 이유가 있었다.

“니가 좋아하는 돈 줄게. 그 돈 받고 자리를 좀 마련해 주면 안 될까?”

다른 때였다면 일단 돈부터 덥썩 받아서 챙겼을 텐데, 이번에는 아예 협상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잊어버리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자꾸 신경이 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