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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소사전담반 1(23화)
9장 인간 말종(2)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처럼 보이는 작고 초라한 초가집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초가집이 점점 커져갈수록 그에 반비례하듯 백무건의 발걸음은 점점 더 느려졌다.
그리고 초가집 안으로 선뜻 들어가지 못하고 걸음을 멈추었을 때, 뒤통수에 주먹이 날아들었다.
퍽, 퍽!
둔중한 타격음과 함께 충격이 고스란히 밀려들었다.
그래서 눈앞이 하얗게 변한 순간, 사정없이 뒤통수를 후려친 막동수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뭐해, 이 새끼야! 어디 죽으러 가냐? 꼬락서니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랑 다를 게 없잖아!”
“죄송합니다.”
“정신 똑바로 차려! 넌 지금 죽으러 가는 게 아니라 죽이러 가는 거야!”
“…….”
“사람들은 파락호라고 하면 비웃으면서 손가락질을 하지만, 그 비웃던 입을 찢어 버리고 손가락질을 하던 손가락을 분질러 버리는 것이 파락호가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야. 알겠어?”
“네? 네!”
“그러니까 어깨 쫙 펴고 고개 들어, 새끼야!”
“알겠습니다.”
백무건이 저절로 움츠러들었던 어깨를 억지로 폈다.
그리고 시킨 대로 고개를 들자 뺨에 길쭉한 검상이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는 험악한 막동수의 얼굴이 바싹 다가왔다.
“웃기지?”
“아닙니다.”
“아니긴. 다 봤어. 내가 걷는 모습 보면서 씨익 쪼개던 거.”
“죄송합니다.”
“아니, 죄송할 것까진 없고. 나도 예전에 파락호들이 어깨에 힘 주고 건들거리면서 걷는 걸 보면 한심해서 웃었으니까.”
막동수가 크고 작은 흉터들로 뒤덮인 두툼한 손을 뻗어 백무건의 얼굴을 감싼 채 말을 이었다.
“그런데 내가 파락호가 돼 보니까 왜 그렇게 한심하게 걷는 줄 알겠더라고. 이유가 뭔지 알아?”
“아직 모르겠습니다.”
“이유는 간단해. 가진 게 없어서야.”
무슨 뜻일까?
제대로 말귀를 알아듣지 못한 백무건이 의아한 시선을 던지자 막동수가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씩 웃었다.
그 탓에 다시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는 뺨에 남아 있는 검상으로 시선을 빼앗기고 있을 때, 막동수가 설명하듯 덧붙였다.
“강호인들이 우리처럼 걷는 것 본 적 있어? 이류, 아니, 삼류 무사만 돼도 절대 우리처럼 걷지 않아. 보통 사람들보다도 더 조신하게 걷지. 왠지 알아? 강호인들은 실력이라는 걸 가지고 있거든. 그래서 여유가 생기는 거야. 그런데 우리 같은 파락호들은 가진 게 쥐뿔도 없어. 실력? 비장의 한수? 그딴 건 개나 줘 버리라 그래. 그런 게 있으면 파락호로 떠돌고 있을 것 같아? 그럼 우리 같은 파락호가 가진 게 뭐냐? 뭘 것 같아?”
막동수가 불쑥 질문을 던졌다.
당황한 백무건이 잠시 망설이다가 어렵게 대답을 꺼냈다.
“조직…… 인 것 같습니다.”
“조직? 우리가 속한 흑오방 같은?”
“네.”
“낄낄. 이 새끼, 진짜 순진한 소리 하고 자빠졌네.”
막동수는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왜? 몸에 검은 지네 문신 박아 넣고, 여럿이서 우르르 몰려서 다니니까 대단한 것처럼 보여?”
“아닙니까?”
“조직? 의리? 이 바닥에 그딴 것은 없어. 동료도 아니고 친구는 더욱 아냐. 의형제니 뭐니 하면서 같이 어울려서 밤새 술을 퍼 마시다가도 돈 몇 푼 때문에 안면몰수하고 등에 칼을 꽂는 게 파락호들이거든.”
“…….”
“아까 내가 했던 질문에 대한 답을 알려 주지. 파락호가 가지고 있는 건 허세뿐이야. 가지고 있는 실력이 쥐뿔도 없으니까 상대에게 겁이라도 주려고 눈깔에 힘 잔뜩 주고 어깨에 힘을 줘서 건들거리면서 걷는 거지.”
철썩, 철썩.
막동수가 실실 웃으며 얼굴을 감싸 쥐고 있던 손으로 뺨을 가볍게 때렸다.
어서 정신 차리라고 충고하듯이.
하지만 백무건의 머릿속은 오히려 더 혼란스러워졌다.
막동수가 말한 파락호의 삶이 그가 여태껏 알고 생각해 오던 것과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왜? 대가리가 나빠서 잘 이해가 안 돼?”
“그런 게 아니라…….”
“그럴 땐 한 가지 방법밖에 없어. 몸으로 부딪치면 돼. 얼른 따라와.”
앞장서서 걷는 막동수의 뒤로 백무건이 마지못해 따라붙었다.
그리고 마침내 초가집으로 들어선 백무건이 처음으로 마주한 장면은 먼저 들어선 막동수가 젊은 여자의 머리채를 다짜고짜 붙잡고 끄는 것이었다.
“아악! 아파요! 이거 좀 놔주세요!”
“이거 놔주면 돈 갚을래?”
“…….”
“이 독한 년, 끝까지 대답 안 하는 거 봐라? 네년이 이렇게 독하니까 내가 상냥하게 ‘돈 갚으세요’라고 말로 안 하고 머리털을 다 뽑아 버리려는 거야. 아직 참을 만하지? 머리털이 다 뽑히고 나서도 괜찮을지 두고 보자고.”
“아아악!”
백무건은 말리지 못했다.
아니, 말릴 생각도 하지 못했다고 표현하는 게 옳았다.
얼어붙은 것처럼 그 자리에 서서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막연하게 생각은 했다.
파락호의 삶을 살아가다 보면 이런 광경을 마주하게 될 거라고.
그래서 각오도 다졌다.
그렇지만 나름 단단하게 다졌다고 생각했던 각오는 직접 마주치고 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스르르 풀려 버렸다.
덜컹.
그사이, 눈앞의 상황은 바뀌어 있었다.
구멍이 숭숭 뚫린 방문이 열리고 백발이 성성한 깡마른 노인이 다리를 절룩거리면서 막동수에게 달려들었다.
“이 무지막지한 놈아, 그 손을 얼른 놓지 못하겠느냐?”
노인은 여자의 머리채를 꽉 쥐고 있는 막동수의 두툼한 팔뚝을 붙잡고 늘어지며 악을 쓰듯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깡마른데다가 병색이 완연한 노인의 힘으로 여자의 머리채를 잡고 있는 막동수의 손을 풀게 만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영감이 풀죽만 처먹었나, 그것도 힘이라고 쓰는 거야?”
누런 이를 드러낸 채 이죽거리는 막동수를 노려보던 노인의 시선이 머리채를 잡힌 채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여자에게로 향했다.
“소향아, 괜찮으냐?”
“아버지, 왜 나오셨어요? 그냥 방에 틀어박혀 계시라고 했잖아요.”
“니가 이런 무지막지한 일을 당하고 있는데 애비한테 구경만 하라는 게냐?”
“몸도 안 좋으시잖아요. 찬바람 맞으시면 안 된다고 의원이 그랬잖아요.”
“애비 걱정은 마라.”
“아버지…….”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널 구해 주마.”
노인의 주름진 두 눈에 물이 고였다.
그 일련의 대화를 모두 들었음에도 막동수는 여전히 이죽거리는 것을 멈추지 않고 노인에게 물었다.
“다 끝났나?”
“썩을 놈!”
“그래, 어떻게 구할 거지? 갚을 돈이 있나?”
막동수가 던진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노인이 입을 벌렸다.
그러고는 지체하지 않고 막동수의 팔뚝을 힘껏 깨물었다.
“끄악!”
처음으로 막동수의 입에서 비명이 새어 나왔다.
소향이란 이름을 가진 여자의 머리채를 잡고 있던 손을 놓아 버린 막동수는 그 손으로 노인을 힘껏 밀쳤다.
콰당!
속절없이 뒤로 밀려나던 노인이 맥없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아버지!”
놀란 여자가 비명처럼 소리를 지르자 노인이 기침을 하면서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막동수를 노려보던 노인이 시선을 돌렸다.
뿌옇게 흐려진 주름진 노인과 백무건의 시선이 부딪친 순간, 노인이 두 눈을 치켜뜨며 입을 열었다.
“무건아, 네가 여기 어쩐 일이냐?”
노인은 바닥에 쓰러진 채로 소리를 질렀다.
“얼른 가거라!”
“…….”
“여긴 네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다. 괜히 곁에 있다가 저 무지막지한 나쁜 놈한테 너도 호되게 당할 수가 있으니까 얼른 가.”
노인의 목소리에는 다급함이 묻어났다.
그렇지만 백무건은 노인의 바람처럼 이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대신 노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노인의 이름은 심태촌.
백무건은 심태촌을 알았다.
아니, 단순히 얼굴만 알고 있는 사이가 아니라, 심태촌과 꽤 오랫동안 알고 지내 온 사이였다.
지금은 중병에 걸려 저렇게 변했지만, 심태촌은 무척 성실한 사람이었다.
열심히 농사를 지어 번 돈으로 사별한 아내가 남긴 하나뿐인 딸을 무척 아끼면서 키웠다.
그리고 비록 부자는 아니었지만, 그는 마음이 넉넉했다.
그래서 부모를 잃고 누나와 함께 어렵게 살아가는 백무건을 항상 걱정하며 먹을 것이나 헌 옷가지를 구해서 챙겨 주었다.

“내가 널 사윗감으로 점찍었다. 까짓것, 지금 가진 게 없으면 어떠냐? 너처럼 착하고 성실한 녀석이라면 우리 소향이를 믿고 맡길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소향이도 널 마음에 두고 있는 눈치고.”

텅 빈 독에 하얀 쌀을 채워 넣어 주시던 심태촌이 한쪽 눈을 찡긋거리며 던지던 말이 불쑥 떠올랐다.
그래서 이 초가집으로 걸어오는 발걸음이 더 무거웠다.
백무건이 차마 더 바라보지 못하고 얼른 시선을 돌렸을 때, 막동수가 두 눈을 빛내며 다가왔다.
“호오, 아는 사이였어?”
“조금…… 압니다.”
“조금 아는 사이가 아닌 것 같은데? 뭐, 어쨌든 더 잘됐군. 이번 일 니가 직접 처리해 봐. 보다시피 난 팔을 좀 다쳐서 말이야.”
막동수의 팔뚝에는 심태촌이 물었던 이빨 자국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물론 팔을 쓰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서 거절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차마 그 말을 꺼낼 수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어떻게 할 건데?”
“아직 모르겠습니다.”
“그럼 내가 알려 줄게. 상황은 대충 알지? 저 영감이 아파서 약값을 대느라 딸년이 우리 돈을 끌어 썼는데 갚지를 않는 상황이야. 그런데 저년이 어찌나 독한지 악다구니를 써대면서 돈을 안 갚아. 그냥 버티다가 떼먹으려는 수작인 것 같아. 독한데다가 양심에 털까지 난 년이지.”
“…….”
“물론 그런 수작이 통할 리 없지. 상대를 잘못 골랐거든. 어쨌든 처음에는 그냥 저년을 족치다가 안 되면 사창가에 팔아먹으려고 했어. 그런데 저 독한 년의 생긴 꼬락서니를 보니, 사창가에 팔아 봐야 원금도 못 찾겠더라고. 그래서 어떡해야 할지를 계속 고민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뭔지 알아? 저 독한 년이 아니라 저 독한 년의 애비를 족치는 거야. 아무리 독한 년이라도 지 애비가 죽어 가는데 나 몰라라 하고 있을 수야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