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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왕무적 1권(2화)
一章 세상에 나오다(2)
“진유현이오.”
간단한 자기소개.
그러나 진유현의 이름에 적소화의 눈이 가늘어졌다. 생각에 잠긴 것이다.
진유현은 그런 적소화를 두고 다시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이어진 적소화의 말 때문이다.
“혹시 십 년 전에 실종됐다는 진가장의 소장주 진유현 소협인가요?”
적소화의 물음.
진유현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진가장은 강호의 명문인 사대세가만큼이나 역사가 오래된 전통 있는 무가였다.
하지만 세가의 무공은 평범한 편에 속해서 무림에서 그리 유명하지 않은 수많은 중소문파의 한 곳에 불과했다.
그런데 십 년 전에 실종된 자신을 이름만 듣고 한 번에 알아본다?
그것도 산동을 지배하는 대문파가?
불가능한 일이다.
진유현의 눈에 의문이 떠오른 것은 당연하다.
“나를 아시오?”
진유현이 인정하자, 적소화의 얼굴에 놀라는 표정이 떠올랐다.
“맞군요. 십 년 전에 실종됐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된 건가요?”
“…….”
“진 소협?”
“나름 사정이 있었소.”
사부인 단리패를 떠올린 진유현이 쓰게 웃었다.
그것은 진유현에게 결코 좋은 추억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누구에게나 말 못할 사정이 있는 법이다.
특히 무림에 존재하는 문파라면 한두 가지의 비밀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었다.
실제로 그녀의 문파인 정천문 또한 천하에 알려지지 않은 몇 가지 비밀이 있었다.
그렇기에 쉽게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소문을 듣고 세가로 향하는 건가요?”
“소문?”
진유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세상에 나오자마자 곧장 태산루로 먼저 왔기에 세간의 소문은 듣지 못한 상태였다.
“지금이 십 년 만에 처음 나온 거라 알지 못하오. 본 장에 무슨 일이라도 있소?”
진유현의 물음에 적소화가 당황했다.
“진가장의 일을 아직 모르시군요.”
근심 어린 목소리.
거기에 불안감을 느낀 진유현의 눈동자가 깊숙이 침전되어 갔다.
“무슨 일인지 알 수 있소?”
“진가장의 문제만은 아니에요.”
잠시 침묵하던 적소화가 입을 열었다.
적소화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
그것은 비단 진가장만의 일이 아니라 산동 무림 전체를 뒤흔드는 일이었다.
두 달 전.
삼패의 한 곳인 사혈성의 대문이 활짝 열렸다.
그리고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무인들.
사혈성의 사대 무력 집단도 포함돼 있는 정예들이었다.
그들이 사혈성을 나와서 한 일은 산동에 흩어져 있는 사파들을 흡수하는 것이었다.
갑자기 이루어진 파격적인 행보.
정파에서 대책을 세우기 위해 회의를 하는 동안에, 이미 산동에 있는 사파를 모두 통일할 정도로 발 빠른 행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진짜 문제는 그 이후에 생겼다.
사혈성이 자리 잡은 평도(平度)를 중심으로 점점 세력을 확장해 나갔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정파에 속하는 중소문파들은 멸문되거나 사혈성에 흡수됐다.
사혈성은 마치 산동 무림을 통일할 기세로 움직이고 있었다.
평도를 기점으로 동쪽은 모두 사혈성의 영역이 되고 말았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사혈성의 움직임은 시간이 갈수록 더 빨라지고 있었다.
거기에 정천문과 같은 삼패의 한 곳이자 정파인 백검문은 움직일 생각이 없는지 정천문의 연락에도 소식 없이 요지부동이었다.
삼패의 두 곳이 정파임에도 불구하고 움직이는 사혈성과, 그런 사혈성을 방관하는 백검문.
이해할 수 없는 상황.
그러나 사혈성의 움직임은 거침없었다.
그사이 사혈성의 세력은 청주(靑州) 바로 앞까지 진출하고 있었다.
정천문의 입장에서 청주는 무척 중요했다.
정천문이 있는 제남(齊南)과 청주에는 잘 닦인 큰 관도가 있기 때문이다.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
그리고 청주에는 진가장이 있다.
진가장마저 무너지면 정천문의 입장에서는 사혈성을 상대하기가 상당히 곤란해지기에 이들을 진가장의 지원으로 보내는 것이다.
이야기를 들은 진유현의 눈이 차가운 한광을 발했다. 마치 북해의 차디찬 만년설을 보는 듯하다.
부르르.
그 눈동자를 정면에서 바라본 적소화가 몸을 세차게 떨었다.
차갑게 가라앉은 눈동자 안에 담긴 광포한 살기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뿐이 아니었다.
마치 주위의 온도가 내려간 것처럼 추위마저 느껴졌다.
적소화는 느낄 수 있었다.
진유현이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더 고수라는 것을.
“현재 진가장에 인명 피해가 있소?”
말투가 칼바람처럼 싸늘하다.
적소화가 긴장하며 말했다.
“아직 그들은 청주에 도착하지 않았어요. 청주에 도착하려면 빠르게 움직여도 일주일 정도는 걸릴 거예요.”
“정보를 알려 줘서 고맙소.”
진유현이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둘러 세가로 돌아가려는 의도였다.
십 년 만에 돌아갔는데, 집안에 인명 피해가 있다면 그것만큼 참을 수 없는 일도 없을 것이다.
진유현의 몸에서 진한 살기가 풍겨 나왔다.
그때 적소화가 말을 걸었다.
“잠시만요. 저희도 진가장으로 가는 길이니, 같이 동행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적소화의 말에 진유현이 생각에 잠겼다.
혼자서 가는 것이 빠르겠지만, 이들과 함께 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진유현은 상대가 사혈성이라도 충분히 상대할 만한 자신감이 있었고, 그만한 무력도 갖고 있었다.
그것은 결코 자만이 아니었다.
사부인 단리패와 함께한 십 년 동안의 폐관수련.
그 지독한 수련은 진유현의 정신을 극한의 극한으로 몰아넣었고, 결국에는 진유현을 신화경의 경지로 이끌었다.
현 무림에서도 단 둘밖에 없다는 신화경.
그런 경지에 진유현이 오른 것이었다.
그렇기에 진유현의 자신감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정천문이라는 이름이 혹시 모를 다른 일에 필요하게 될지도 몰랐다.
정천문은 그만한 무게가 있었다.
특히 자신이 십 년 만에 세상에 나온 이상, 모르는 게 너무 많기도 했다.
같이 움직인다면 보다 많은 정보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 분명했다.
“지금 출발할 수 있겠소?”
서두르는 기색이 역력하다.
진유현의 물음에 적소화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 시선이 향하는 곳에는 한 중년인이 있었다. 중년인이 이번 일행의 대표였던 것이다.
중년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의 의미.
중년인도 진유현이 흘린 강한 기세에 흥미가 생겼기 때문에 동행하려는 것이다.
그에 적소화가 진유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
진유현과 적소화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
두두두두두두.
관도 위를 달리는 오십여 필의 말들.
거기서 들리는 말발굽 소리가 관도를 요란하게 울리고 있었다.
관도를 빠르게 달리기에는 많은 수였지만, 그들의 대형은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들은 마치 한 몸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겉모습에서 느껴지는 절도.
그 모습에서 평소 그들의 기강이 얼마나 엄격한지 알 수 있었다.
일행의 선두에서 중년인과 적소화, 그리고 진유현이 나란히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를 오십의 무인들이 따르고 있었다.
적소화가 옆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그 시선의 끝에는 진유현이 있었다.
그녀는 진유현을 만난 후부터 지금까지 계속 그를 생각하고 있었다.
진유현에게 반했다거나, 특별히 이성으로 생각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진유현에게 호기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진유현의 무력.
태산루에서 정검대원들을 상대로 보여 준 기세는 진유현이 일류를 넘어 절정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일류 고수인 정검대원들을 상대로 보여 준 패도적인 기세.
물론 기세만으로 무력을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 당시 보여 준 기세는 그만큼 대단했다.
적소화의 뇌리에 남을 만큼.
그리고 그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현 무림에서 대문파의 정예로 키워진 후기지수들이 이제 일류에서 절정으로 넘어가는 경지니, 적소화가 진유현에게 놀라고 호기심이 생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십 년간의 실종.
적소화는 진유현이 간직한 무력의 비밀이 십 년 동안의 시간에 있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이제 이십 대 중반의 나이에 절정에 오를 수 있었을까?
그것도 대문파가 아닌 중소문파의 소장주가.
머릿속에는 계속 그 생각이 맴돌고 있었다.
적소화가 계속 진유현의 무력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가장 선두에서 나아가던 중년인이 갑자기 멈췄다. 그러고는 관도 옆의 숲을 쳐다봤다.
그 행동에 일행 전체가 그 자리에서 움직임을 멈췄다.
슥.
중년인이 손을 들자, 정검대원들이 적소화를 중심으로 빠르게 대형을 이뤘다.
적소화를 보호하기 위한 대형이었다.
그와 함께 기세를 피워 올려 외부와의 벽을 만들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중년인이 고개를 돌려 숲을 바라보았다.
날카로운 시선.
정검대주 조일영.
조일영은 정천문의 삼대 무력 집단 중 한 곳인 정검대의 대주를 맡고 있다.
그뿐이 아니라 가진 바 무력이 정천문에서 열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강한 무인.
중년인의 정체였다.
정천문에서 손가락에 꼽힐 정도라는 건 산동에서도 특별하다는 얘기였다.
그런 조일영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숲에 숨어 있는 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조일영의 입이 열렸다.
“나와라.”
조일영의 공력이 실린 음성에 한차례 숲이 울리고, 크게 흔들렸다.
그러나 숲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없이 조용하기만 했다. 흔한 벌레들의 울음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런 반응에 조일영의 얼굴이 굳어졌다.
뻔히 상대가 은신한 것을 아는데,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을 무시하는 것과도 같았다.
그에 심기가 상한 것이다.
조일영이 내공을 끌어 올리며 다시 한 번 숲을 향해 입을 열려고 할 때였다.
뒤에서 숲을 보고 있던 진유현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그려졌다.
사기.
숲에서 사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적소화가 말하길, 사혈성이 산동의 모든 사파를 통일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산동에서 사기를 지닌 자들은 사혈성의 무인들밖에 없으리라.
그런데 사기를 지닌 자들이 자신이 지나가는 길에 은신한 채 있는 것이다.
사혈성은 진가장에 칼날을 들이댄 상태.
진유현의 눈가에 살기가 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