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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왕무적 1권(3화)
一章 세상에 나오다(3)


슥.
진유현이 관도로 뻗어 나온 나뭇가지로 손을 뻗더니, 나뭇잎을 하나 툭 떼어 냈다.
나뭇잎을 잠시 만지작거리던 진유현이 손가락 사이에 나뭇잎을 끼우고는 숲을 향해 살짝 튕겼다.
휙!
피잉!
날카로운 파공성.
공기를 가르며 날아간 나뭇잎이 한 줄기 빛살이 되어 숲의 한 공간에 박혔다.
퍽!
“큭.”
숲에서 들리는 한 줄기 신음.
잠시 후에 숲의 한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흑의인이 튀어나왔다.
흑의인의 어께에는 나뭇잎이 박혀 있었는데, 그곳에서 핏줄기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 경악의 표정이 떠올랐다.
흑의인이 갑자기 나타났기 때문이 아니다.
진유현이 펼친 한 수 때문이다.
적엽비화(摘葉飛花).
나뭇잎에 공력을 담아 펼쳐 내는 수법으로, 절정 고수인 조일영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암기술이다.
그러나 거리가 문제였다.
바스러지기 쉬운 나뭇잎으로 십 장 이상의 거리를 격하고 날아가 인체에 박히는 것은 절정 고수인 조일영으로서도 불가능했다.
아니, 가능은 하지만 저런 식으로는 불가능했다.
같은 조건에서 조일영이 펼친다면 인체에 박히는 순간 나뭇잎은 바스러질 것이다.
내공을 감당하지 못하고.
그 정도로 섬세한 내기의 운용은 초절정 고수는 되어야 가능하다.
이 한 수로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진유현이 초절정 고수는 아니더라도 절정의 극의에 달했다고 생각해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놀라운 일이다.
현 무림 전체에 알려진 초절정 고수가 마흔 명을 넘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좌중의 얼굴에 불신의 기색이 역력한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이 한동안 굳어 있었다.
그중에는 숲 속에 은신하고 있었던 흑의인도 포함돼 있었다.
흑의인은 어깨에서 떨어지는 핏줄기를 막을 생각도 못하고 진유현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다.
그 상황에서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조일영이었다. 그도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놀랐지만, 눈앞의 흑의인을 적으로 인식했기에 빠르게 현실로 돌아왔다.
조일영이 흑의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누구냐?!”
조일영의 물음.
그에 퍼뜩 정신을 차린 흑의인이 어깨에서 나뭇잎을 빼내고는 혈도를 눌러 지혈을 했다.
그 유연한 손놀림이 이런 일에 익숙한 듯 무척이나 자연스러웠다.
어느 정도 피가 멈추자 흑의인이 조일영에게 포권을 취했다.
“흑영삼호가 정검대주님을 뵙습니다.”
흑영삼호의 말.
조일영이 얼굴을 찌푸렸다.
흑의인을 알고 있어서가 아니다.
그의 왼쪽 가슴에 흑영(黑影)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흑영당은 사혈성의 한 집단이다.
흑영당(黑影堂).
주로 은신술을 수련한 무인들이 모인 곳으로, 사혈성의 모든 정보를 담당하는 곳이다.
사혈성 군사가 거느리는 정보 집단.
그렇다고 단순히 정보만 다루는 집단이 아니다.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서 특정 대상의 감찰은 물론, 감시와 암살까지도 담당하기 때문에 사혈성 내에서는 공포의 대상이기도 했다.
조일영의 얼굴에 불쾌감이 떠올랐다.
우우웅!
그와 동시에 몸에서 살기가 피어올랐다.
흑영당이 하는 일의 특성상 흑영삼호의 목적이 자신의 감시라고 생각해서였다.
누군가 감시한다는데, 좋을 사람은 없다.
더욱이 적이라면.
사실 정천문에서는 이번에 사혈성과의 무력 충돌은 없을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유는 간단했다.
삼패의 두 곳이 정파였다.
비록 지금은 백검문이 잠잠하지만, 만약 사혈성과 본격적인 무력 충돌이 일어나면 백검문이 정파인 이상 나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삼패의 전력은 서로 엇비슷하다.
그런 만큼 사혈성 혼자서 다른 두 곳을 감당할 수는 없었다.
사혈성 또한 이 사실을 알고 있으니 정천문을 크게 자극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는 건 당연했다.
사실 칠마혈사 이후에 삼십 년 동안 삼패는 크게 무력을 사용할 일이 없었다.
힘을 회복하기에 바빴던 것이다.
그 말은 현재 삼패의 전력이 쌓일 대로 쌓여 터지기 일보 직전이라는 얘기다.
정천문에서는 사혈성의 이번 움직임을 팽창된 무력을 외부로 표출하고자 충동적으로 벌인 무력시위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
무력이 한계까지 팽창된 것은 정천문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조일영이 이번에 나선 것도 무력 충돌보다는 의례적인 협상 쪽에 가까웠다.
하지만 흑영당에서 자신을 감시한다고 생각하자 절로 살심이 일어났다.
“흑영당에서 나에게 무슨 볼일이지.”
조일영의 싸늘한 말투에 흑영삼호가 웃으며 대꾸했다.
“다른 뜻은 없습니다. 그저 정천문에서 누가 나오는지 확인하라는 지시가 있었습니다.”
흑영삼호의 말투는 정중했지만, 능글맞기도 했다.
그에 조일영이 차갑게 웃었다.
“건방지군.”
조일영의 눈가에 살기가 스쳐 지나갔다. 흑영삼호를 죽일까 잠시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기색을 눈치챈 흑영삼호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저희 같은 말단은 위에서 시키면 무조건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신의 능글맞은 대꾸에 조일영의 살기가 더 진해지자, 흑영삼호가 그 즉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모습 또한 다른 흑영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상부에 바로 보고가 이루어진다는 의미였다.
슥.
그 말에 조일영이 숲을 바라봤다. 그곳에서 다른 기척들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흑영은 혼자 활동하지 않으니, 아마 그들도 흑영이리라 생각했다.
“나한테는 앞으로도 계속 따라붙겠다는 소리로 들리는 것 같군.”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흑영삼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번에 책임자가 정검대주님과 산동일미라는 것을 확인했으니, 저는 이만 물러나야지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물러서지 않고 그저 웃고 있었다. 그에 조일영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빨리 꺼져라.”
조일영의 싸늘한 말에도 흑영삼호는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근데 저쪽 소협은 누구…….”
우웅!
흑영삼호의 말이 중간에 끊겼다.
조일영의 전신에서 지독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기 때문이었다.
“정말로 죽고 싶나.”
감정이 배제된 음성.
지금까지의 살기가 위협이었다면, 이번에는 정말 죽이고자 마음먹은 농도가 짙은 살기였다.
그 살기에 흑영삼호가 주춤거렸다.
흑영삼호는 상당한 고수로 보이는 진유현이 누군지 은근슬쩍 알아보려 했지만, 조일영이 정말 자신을 죽일 것 같은 살기를 뿜어 대자 뒤로 물러섰다.
“아닙니다. 그럼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흑영삼호가 고개를 숙였다.
씨익.
조일영은 보지 못했지만, 흑영삼호의 입가에는 만족한 듯한 미소가 어렸다.
이번에 얻은 정보가 꽤 컸기 때문이다.
흑영당의 수많은 정보에는 진유현이라 존재가 없었다.
그래서 흑영삼호는 진유현을 정천문에서 비밀리에 키운 정예 고수로 생각했다.
비록 정확한 정체를 모르는 것은 아쉽지만, 정천문에서 저만한 고수를 비밀리에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안 것만으로도 자신에게는 행운이다.
특히 이번 일행에 적소화가 포함됐다는 것은 큰 수확이었다.
정천문에서는 이번 사혈성의 발호를 단순히 충동적인 무력시위 정도로 생각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사혈성이 이번에 움직인 것은 산동 무림을 사혈성이라는 이름하에 통일하기 위해서였다.
사혈성의 성주인 혈존의 지휘하에 이루어진 파격적인 행보.
일단 움직인 이상 끝을 보고야 만다.
결코 협상으로 멈추지 않는다.
산동을 사혈성의 이름하에 두기 전에는.
적소화는 정천문주의 손녀다.
그것도 정천문주가 보물처럼 생각하는 손녀.
그런 만큼 적소화는 정천문을 유인하는 데 최고의 미끼나 마찬가지였다.
흑영삼호는 중요한 정보를 알아낸 자신에게 돌아올 혜택을 생각하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결과가 좋으면 한 단계 승진도 가능하리라.
흑영삼호가 만족하며 이제 보고하기 위해 돌아서던 순간이었다.
저벅.
진유현이 일행의 앞으로 나섰다.
“누가 가도 좋다고 했나.”
조용한 음성.
하지만 말투에 살기가 담겨 있다.
진유현의 말에 흑영삼호가 어정쩡하게 돌아섰다.
“소협, 저에게 볼일이 있습니까?”
“나는 너를 보내 줄 생각이 없다.”
진유현의 말에 흑영삼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나이도 어린 게 높은 무공만 믿고 자신을 너무 막 대한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러면서도 의아한 표정으로 조일영을 바라봤다.
이번 일행의 대표가 조일영이라 생각했는데, 진유현이 너무 나서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예를 중시하는 정파에서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조일영도 같은 생각이 들었는지 눈살을 찌푸렸다.
진유현의 행동이 자신을 무시하는 것같이 느껴져서 기분이 상한 것이다.
“그를 보내 주게.”
진유현이 조일영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저는 적을 살려 줄 마음이 없습니다.”
단호한 말투.
진유현의 말에 적소화가 나섰다.
“사혈성과 전쟁이라도 할 생각인가요?”
“시비는 사혈성이 먼저 걸었소.”
적소화의 얼굴이 잔뜩 굳어졌다.
“저자를 죽이면 정말로 돌이킬 수 없을 거예요.”
씨익.
그 말에 진유현이 미소 지었다. 가슴 한구석을 서늘하게 하는 미소였다.
“본 장에 먼저 시비를 건 것은 사혈성이니, 그 대가 또한 사혈성이 부담해야 할 것이오.”
당당한 태도.
그러나 적소화는 진유현의 태도에 답답함을 느꼈다.
사혈성이 괜히 삼패에 속하는 게 아니다. 그들의 무력은 막강하다.
적소화가 속한 정천문조차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그런데 진유현이 사혈성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혈성은 강하네.”
보다 못한 조일영이 말했다.
사혈성을 표현할 수 있는 한마디였다.
그러나 진유현은 물러서지 않았다.
“본 장 또한 강합니다.”
자만이라기보다는 어떤 확신이 담긴 목소리.
조일영의 얼굴에 곤혹스런 표정이 떠올랐다.
사혈성이 직접적으로 진가장을 향해 칼날을 들이댄 지금, 진가장의 소장주인 진유현의 뜻을 무조건 말릴 수만도 없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정천문은 진가장의 문제에서 제삼자의 입장이었다.
스윽.
흑영삼호가 돌아가는 상황을 살피며 은근슬쩍 뒤로 물러서려는 순간이었다.
쿠오오오!
그 모습을 지켜본 진유현의 전신에서 압도적인 기세가 폭사 되었다.
패도적인 기세.
“헉.”
“큭.”
“으윽.”
기세의 영향으로 한순간이나마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신음을 흘릴 정도였다.
그것은 흑영삼호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사혈성을 적대할 생각입니까?”
흑영삼호가 자신에게 쏟아지는 기세를 억지로 참아 내며 말했다.
그런 흑영삼호의 이마에는 어느새 식은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진유현의 기세를 정면에서 받았기 때문이었다.
“먼저 본 장을 적대한 것은 사혈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