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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왕무적 1권(7화)
三章 귀환(2)


적혈대(赤血隊).
사혈성을 대표하는 사대 무력 집단의 한 곳으로, 어떤 전투든지 항상 최전방에서 활약하며 사혈성의 돌격대 역할을 하는 곳이 적혈대였다.
그렇기에 다른 집단에 비해 가장 피를 많이 보고, 악명이 자자한 곳이기도 했다.
진성원의 얼굴이 잔뜩 굳어졌다. 진가장의 무력은 적혈대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진가장에 적혈대를 보냈다는 것은 사혈성에서 진가장을 멸문시키겠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저희가 온 것입니다.”
조일영이 자신의 앞에 놓인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입을 열었다.
“사혈성이 미치지 않은 이상, 본 문에서 타협을 제시하는데 무조건 전투를 벌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정천문과 사혈성이 진짜로 전투를 벌인다면 서로 공멸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 분명했다.
더구나 산동에는 백검문도 있지 않던가.
삼패의 전력은 서로 팽팽했다.
그런 만큼 사혈성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는 않을 것이 분명했다.
진성원이 적소화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적 소저가 온 것이군요.”
정천문주가 적소화를 사랑하는 마음이 지나치게 강하다는 것은 천하가 아는 사실이니, 사혈성에서도 그녀에게 함부로 검을 겨루지는 못할 것이다.
어떻게 보면 산동일미 적소화야말로 사혈성과의 협상에 제격이었다.
“본 문은 사혈성의 일을 충동적인 무력시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대화로 해결할 생각입니다만…….”
조일영이 진유현을 바라보며 말끝을 흐렸다.
그에 진성원이 의뭉스런 시선으로 진유현을 바라봤다.
조일영의 태도가 이해가 가지 않아서다.
그 모습이 마치 조일영이 진유현의 눈치를 보는 듯하지 않은가.
정천문의 정검대주라면 누구나 알아주고, 인정하는 고수였다.
그런 정검대주가 누군가의 눈치를 본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그러나 조일영은 물론 적소화까지도 대화를 하는 도중에 진유현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결국 진성원도 진유현을 바라보았다.
후릅.
지금까지 조용히 듣고만 있던 진유현이 차를 한 모금 들이키고는 진성원의 시선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버지, 적혈대는 아직 청주에 들어서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이 청주에 도착한 후에 보이는 행동에 따라 결정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진유현이 이미 식은 찻잔을 만지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저희는 지금 도착했습니다. 급하게 오느라 피로가 쌓여 있습니다. 손님들을 이렇게 모시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조일영이 눈썹을 찌푸렸다.
진유현이 자신들을 생각하는 식으로 말했지만, 조일영에게는 마치 축객령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축객령이 맞았다.
진성원의 눈가가 반짝였다.
진유현이 자신에게 따로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진성원이 조일영을 보며 말했다.
“제가 너무 본 장만을 생각했군요. 급한 마음에 실수했습니다. 총관.”
드르륵.
진성원이 말을 마치자마자 총관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장주님, 부르셨습니까.”
“이분들을 숙소로 안내해 주게.”
“네, 따라오시지요.”
총관이 고개를 숙이고는 문을 나섰다.
“크흠.”
조일영은 심기가 상했지만 어쩔 수 없이 총관을 따라나섰다.
이들의 생각이 어쨌든 자신들을 배려하는 것처럼 말하는데 이대로 버티기도 불편해서였다.
힐끔.
적소화도 뒤따라가며 진유현을 향해 못마땅한 얼굴로 눈을 흘겼다.
물론 진유현은 그런 시선을 아예 무시하고 있었다.
드르륵.
조일영과 적소화가 나가고 문이 닫히자, 집무실에는 진성원, 진유현 부자만이 남았다.
잠시의 침묵.
먼저 입을 연 것은 진성원이다.
“어떻게 된 것이냐?”
십 년 전에 행방불명된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빙그르르.
진유현이 차갑게 식은 찻잔을 돌리며 말했다.
“지금의 사부님에게 납치당했습니다.”
“사부? 납치? 그게 무슨 말이냐.”
진성원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세상에 어떤 사부가 제자를 가족에게 말도 하지 않고 납치한단 말인가?
무림에 아무리 기인과 괴짜가 많다지만, 사부가 제자를 납치한다는 말은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했다.
그에 진유현이 조용히 말했다.
“강호에서는 사부님을 뇌신이라고 칭합니다.”
“뇌신 단리패.”
진성원이 목소리를 높였다.
뇌신 단리패.
그가 누구던가.
절대이신의 한 명으로, 그 무력이 고금을 논할 정도라고 평가받는 무인이 바로 뇌신이었다.
사실 진성원은 혹시나 했었다.
진유현이 사라지기 전날에 뇌신이 진가장에 방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유현이 사라진 날에 뇌신 또한 진유현과 같이 모습을 감췄으니, 뇌신이 데려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특히 뇌신은 무림에서 알아주는 괴짜로 유명하니,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라도 해야 안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런 가정이 실제로 일어났으니, 기분이 들뜨기 시작했다.
“크하하하.”
진성원이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자신의 아들이 절대이신의 제자가 되어 돌아왔으니 당연한 일이다.
진성원의 웃음은 한참 동안 이어졌다.
“어른신은 같이 오신 게 아니더냐.”
“사부님은 태산에 머물고 계십니다.”
“그래도 어르신이 너를 제자로 삼은 걸 보면 자질이 괜찮았나 보구나.”
진성원이 흐뭇하게 웃었다.
천하의 뇌신이 자신의 아들을 인정한 것이 아닌가.
뇌신이 진유현을 말없이 데려간 것은 이미 머릿속에서 잊혀졌다.
그만큼 진유현의 재능이 탐이 났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저 마냥 좋기만 했다.
그러나 진유현의 얼굴은 굳어졌다.

“너는 충분히 무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검신의 제자는 너를 뛰어넘는 천재다.”

사부에게 항상 들었던 말이다.
십 년 동안이나.
얼굴도 알지 못하는 검신의 제자와 비교당하며 하는 수련은 그야말로 지옥 같았다.
수련하며 결코 좋은 말을 들어 보지 못했다. 오히려 진유현을 몰아붙이고, 더 몰아붙였다.
진유현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을 돌렸다.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먼저 물어볼 게 있다. 정검대주가 너의 눈치를 보는 것 같던데, 어떻게 된 것이냐?”
“오는 길에 흑영당을 만났습니다.”
진성원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사혈성의 흑영당 말이냐?”
“네.”
“설마?”
“모두 죽였습니다.”
진성원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사혈성과 맞설 생각이냐?”
“그들이 먼저 적대했습니다.”
“사혈성은 강하다. 정천문에서 왔으니 대화를 해 보는 게 좋지 않겠느냐?”
진성원의 목소리가 진중하게 변했다.
정천문에 맞기고 뒤로 물러나자는 뜻이다.
진유현이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 소나기는 잠시 피할 수 있지만 장맛비는 기다려도 멈추지 않습니다. 방법이 있다면, 비를 뚫고 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사혈성의 이번 행보가 장맛비란 말이냐?”
“충동적이라기에는 일을 너무 크게 벌였습니다. 그들은 아마 멈추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산동에는 정천문과 백검문이 있다.”
“사혈성이 그 둘을 누를 수 있을 정도로 강해졌을 수도 있습니다.”
“그건 불가능하다.”
진성원이 고개를 저었다.
삼패의 무력은 이미 최절정에 달한 상태였다. 거기에 무인의 수가 더 늘어난다고 해서 전체적인 무력이 증가하는 수준을 넘어선 것이다.
이미 무력의 체계가 확고하게 잡혔기 때문이다.
비록 감춰진 패는 있겠지만, 삼패의 두 곳을 압도할 정도로 무력이 급증할 수는 없다.
진성원의 말뜻을 알아들은 진유현이 고개를 저었다.
“사혈성 전체의 무력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럼?”
“사혈성주 자체의 무력이 강해졌을 경우입니다.”
진성원이 눈을 부릅떴다.
“설마 혈존이 초절정을 넘었다는 것이냐?”
“네. 화경이라면 산동을 넘볼 만하지요.”
진유현의 말에 진성원은 부정적이었다.
“천하 무림을 통틀어도 화경에 든 무인은 현재 두 명밖에 없다.”
“그렇다고 불가능한 경지는 아닙니다. 그리고 두 명이 아니라 세 명입니다.”
진성원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소림의 불성(佛聖)과 무당의 검선(劍仙) 말고도 화경에 든 무인이 또 있다는 뜻이냐? 혹시 절대이신 어르신을 말하는 것이냐?”
“아닙니다. 아버지의 눈앞에 있지 않습니까.”
진유현의 말.
너무나 담담하다.
하지만 그 말을 알아들은 진성원이 경악했다.
“네가 화경에 들었다고?”
진성원의 놀람은 당연하다.
무인의 무력은 나이에 비례하는 법이다.
장강후랑추전랑(長江後浪推前浪).
장강의 뒤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낸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일반인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무공을 익힌 고수에게 있어서는 앞 물결이 밀려나는 게 아니라 앞서 나가는 것이다.
아무리 천재라도 세월을 겪으며 생기는 내공과 경험을 앞지를 수는 없다.
강호를 대표하는 강자들 대부분이 최소 지천명을 넘긴 나이인 걸 생각하면 당연하다.
특히 화경이란 경지는 무인이 오를 수 있는 무공의 끝자락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화경 위에 현경이라는 경지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현경은 다른 말로 탈각이라고도 한다.
현경은 이미 인간의 경지를 벗어나 반선에 오르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고금을 통틀어도 현경에 올라선 이는 손가락에 꼽힐 정도였다.
현 무림에서 화경에 오른 무인이 불성과 검선, 단 두 명인 걸 감안하면, 진유현이 화경에 올랐다는 걸 믿기란 힘든 일이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무리 뇌신 어르신이라고 해도 이십 대의 제자를 화경에 오르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진성원의 반응은 당연했다.
다른 무림인들도 백이면 백, 모두 이렇게 말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진유현의 경우는 좀 특수했다.
물론 일반적으로는 불가능하다.
진유현의 경우에는 세 가지가 겹쳐지면서 가능해졌다.
첫째, 단리패가 진유현을 천재가 아니라 했지만, 실제로는 진유현은 천재였다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의 천재가 바로 진유현이었다.
둘째, 십 년 동안의 폐관수련.
그 지독하고 외로운 수련은 진유현의 내면을 확실하게 다지면서 보다 빠르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단리패가 현경의 경지에 들었기 때문이다.
고금을 통틀어도 현경에 든 자는 손에 꼽을 정도.
그런 경지에 단리패가 올랐다.
일반 무인이 가르치는 것과 반선의 경지인 현경의 고수가 가르치는 건 비교할 수가 없다.
현경이란, 무공이라는 한계를 벗어난 경지.
무공을 보는 시야가 다를 수밖에 없다.
이 세 가지가 우연히 겹치면서 진유현은 화경에 들 수가 있었다.
그야말로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었다.
슥.
진유현이 아무 말 없이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말로는 납득시킬 수 없어서였다.
팟. 팟.
파지지직.
진유현의 오른손에 뇌전이 번쩍였다.
찬란한 빛을 뿌리는 뇌전.
뇌신기.
강기였다.
그것도 단순한 강기가 아닌, 뇌전의 중심에 집중되고 응축된 강기.
쿠오오오.
쩌어억.
그 기운을 집무실이 감당하지 못하고 부서질 듯 요동쳤고, 집기들과 벽에는 실금이 가기 시작했다.
찻잔이 깨진 지는 오래였다.
조금만 더 지나면 집무실마저 무너질 기세.
진성원이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는 다급히 말했다.
“그만. 이만 멈춰라.”
진성원이 고함을 질렀다.
진성원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진유현의 손에서 뇌전이 사라졌다.
완숙의 경지에 든 모습.
지금 모습만으로도 의심할 필요가 없다.
잠시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진성원이 말했다.
“정말로 화경에 든 것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