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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왕무적 1권(8화)
三章 귀환(3)


“네.”
“하하하하.”
크게 웃는 진성원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슬퍼서가 아닌, 기뻐서 흘리는 눈물이다.
십 년 만에 아들이 무림에서 손꼽히는 절대 강자가 되어 돌아왔는데,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아마 오늘이 진성원의 생애 가장 기쁜 날인지도 몰랐다.
“사혈성이 이렇게 일을 크게 벌이는 걸 보면, 혈존 또한 화경에 들어선 게 분명합니다.”
그 말에 진성원이 웃음을 그쳤다. 그러고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어찌하면 좋겠느냐.”
“일단 적혈대를 통해서 본 장의 무력을 보여 줘야지요.”
적혈대를 언급하는 진유현의 눈가에 시퍼런 살기가 스쳐 지나갔다.
“그러면 혈존이 움직일 수도 있다.”
한 가닥의 걱정.
혈존이 정말 화경에 올랐다면 어찌 걱정이 안 되겠는가.
“저의 존재를 알게 되면 쉽게 움직이지 못할 겁니다. 그리고 만약 혈존이 움직인다면…….”
진유현이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진성원은 이어질 말이 무엇인지 들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짙은 살기가 스쳤기 때문이다.
“알겠다. 네 마음대로 해 보거라.”
진성원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진유현을 바라봤다. 장성한 아들이 너무 든든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앞으로 장의 모든 일을 아들에게 위임하려고 결심하는 진성원이었다.

***

산동성 수광(壽光).
풍산문(風散門).
자시(오후 11―1시).
주위에 짙은 어둠이 자리 잡는 시간.
“큭.”
“컥.”
“크악.”
“으악.”
풍산문에서는 고요한 침묵 대신 요란한 비명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장내에는 수많은 시신들로부터 흘러나온 피가 내를 이루고 있었고, 불타는 전각들이 어둠을 몰아내며 주변을 환하게 비추었다.
불빛에 비친 풍산문은 아수라장이었다.
적의를 걸친 무리와 풍산문도가 서로 격렬하게 싸웠는데, 적의인들이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형국이었다.
적의인들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풍산문도들은 반항도 제대로 못하고 시체가 되어 쓰러졌다.
압도적인 강함.
이건 전투가 아니었다.
일방적인 학살에 가까웠다.
풍산문도들의 눈에는 절망이 어렸고, 시간이 지날수록 등을 보이며 도망치는 자들까지도 생겨났다.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는 상황.
그러나 적의인들은 검을 멈추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검을 빠르게 휘둘렀다. 마치 한 명이라도 더 죽이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자신들끼리 서로 경쟁이라도 하는 것처럼.
입가에 그려진 미소로 적의인들이 이런 학살을 즐기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도망치는 풍산문도들을 뒤쫓아 검을 휘두르는 그 모습이 소름 끼쳤다.
그들은 인간이 아닌, 지옥에서 올라오는 악귀나 마찬가지였다.
악귀들이 인간을 죽인다.
그들의 살육에 풍산문이 점차 광기에 휩싸였다.

***

풍산문 대연무장.
연무장 주변은 이미 시체들로 가득 차 있었고, 바닥은 시체에서 흘러나온 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그 중심에 한 중년인이 있었다.
풍산문주 송기풍.
중년인이 바로 풍산문의 문주였다.
송기풍이 잔뜩 굳은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의 눈에 보이는 거라고는 온통 시체들밖에 없었다.
그 수가 무려 이백여 명에 달할 정도였다.
그런데 어디에도 적의를 걸친 시체들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시체들 전부가 풍산문도인 것이다.
풍산문은 중소문파다.
비록 대문파에 비할 수는 없지만, 중소문파 중에서는 나름 강한 편에 속하는 문파였다.
규모가 큰 편은 아니지만, 문주인 송기풍이 절정의 고수로 이름 높았고, 일류 고수로 구성된 소수 무력대도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이 모두 죽었다.
그것도 적들을 한 명도 죽이지 못하고.
송기풍은 눈앞에 보이는 현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자신이 힘겹게 일으킨 풍산문이 멸문한다는 것을 인정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렇게 되기까지 걸린 시간이 한 시진도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도 일백 명의 적들에 의해서.
그것은 풍산문의 무력에 나름 자부심을 갖고 있던 마음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절망만이 느껴졌다.
송기풍이 고개를 돌려 자신의 눈앞에 있는 적의인을 바라보았다.
오늘 습격한 무리의 대장인 듯한 자.
몸에 걸친 적의는 혈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피에 흠뻑 젖어 있었고, 손에 들린 검에서는 시뻘건 핏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풍산문을 뒤덮은 광기의 중심에 선 자.
송기풍은 이자를 잘 알고 있었다. 적어도 산동에서 모르는 자는 없으리라.
적혈대주 악사명.
사혈성의 모든 전투에 항상 선두에 서는 자.
한 번 손을 쓰기 시작하면 결코 생존자를 남기지 않고 멸문시키는 적혈대.
오늘 풍산문을 습격한 무리가 바로 악명이 자자한 적혈대였다.
스윽.
악사명이 주위에 널린 시체들을 바라보았다. 대부분이 자신의 검에 죽은 시체들이다.
피식.
시체들을 보는 악사명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 미소는 지금의 상황에 만족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무척이나 흡족해하는.
마치 자신의 작품을 감상하는 장인처럼.
부르르.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송기풍이 몸을 한차례 떨었다.
수많은 시체와 피를 보며 미소 짓는 악사명의 모습이 소름 끼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주변의 상황과 그런 악사명이 너무 잘 어울렸다.
위화감이 들지 않았다.
“어째서냐?”
잠시 악사명을 바라보던 송기풍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본 문은 한 달 전부터 봉문을 했거늘, 어째서 이런 만행을 저지른 것이냐?”
송기풍이 비분에 찬 감정으로 고함을 질렀다.
발악에 가까운 말투.
악사명의 입가가 실룩였다.
송기풍을 향한 조소였다.
“순진한 건지, 아니면 멍청한 건지 모르겠군.”
악사명이 빈정거리는 말투로 말했다.
“봉문을 하면 본 성을 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
“살아남고 싶었으면 봉문이 아니라 본 성을 향해 개처럼 엎드려 빌었어야지.”
“…….”
“그랬다면 살려 줄 수도 있었다.”
“…….”
악사명의 말에 송기풍이 입을 닫았다.
무림의 불문율.
자고로 봉문을 선택한 문파는 건드리지 않는 게 무림의 불문율이다.
물론 나라의 법처럼 정해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무림이 존재했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계속 지켜져 오고 있었다.
그래서 사혈성의 마수를 잠시 피하고자 송기풍은 풍산문의 봉문을 선택했다.
봉문은 단순히 문을 닫는 게 아니라 모든 외부 활동을 멈추는 것이기에 쉽지만은 않은 결정이었다.
잘못하면 경제적으로 파탄이 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혈성에 복종하는 것도, 그렇다고 사혈성의 무력을 감당할 자신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봉문을 선택했다.
봉문을 한 이상, 이 고비만 넘기면 될 거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런 자신의 안일한 결정이 결국 풍산문을 멸문으로 이끈 것이다.
송기풍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풍산문 전체에서 들리던 비명 소리는 이미 그친 지 오래였다. 풍산문의 생존자가 더 이상 없는 것이다.
하지만 송기풍은 아직도 처절한 비명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자신이 아끼던 제자와 문도들이 자신의 잘못된 결정 하나로 모두 죽은 것이다.
송기풍이 감았던 눈을 떴다.
두 눈에 여러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절망이나 비분의 감정이 아니었다.
자책과 후회였다.
정천문에 도움을 요청해 사혈성에 적극적으로 대항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그랬다면 적어도 이렇게 허무한 감정을 느끼지는 않았으리라.
이미 뒤늦은 후회.
철컹.
송기풍이 바닥에 떨어진 검을 집었다.
검의 손잡이는 바닥을 흥건하게 적신 핏물로 인해 질척거렸다.
짙은 핏물.
모두 풍산문도의 피였다.
핏물을 바라보는 송기풍의 두 눈에 시퍼런 살기가 번뜩였다.
그 안에 자리 잡은 건 확고한 결심.
그리고.
후우웅!
송기풍의 전신에서 살기와 함께 날카로운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기세의 영향에 가까이 있는 시체가 조금씩 밀려나고 있었다.
송기풍이 자신의 내공을 끌어 올리는 것이다.
“호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악사명이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입가에는 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자신의 생각보다 송기풍의 기세가 강했기 때문이다.
“반드시…….”
그 장난 같은 태도에 송기풍의 전신에서 살기가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너만은 반드시 죽인다.”
송기풍의 고함이 풍산문에 울려 퍼졌다.

***

후아아악!
우우우웅!
주변을 잠식해 가는 송기풍의 기세.
악사명을 향해 쏟아지는 살기.
그 모든 걸 정면에서 받으면서 악사명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결코 송기풍이 우스워서 그런 게 아니었다.
오히려 송기풍이 자신의 생각보다 강하기 때문에 나오는 웃음이었다.
그것은 흥분.
찌릿. 찌릿.
피부를 통해 전해지는 기세가 송기풍이 강자라고 전하고 있었다.
짙은 살기는 전신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무시하지 말라고 전하고 있었다.
낼름.
악사명이 혀로 입술을 한 번 훑었다. 상대가 마음에 들었을 때 나오는 습관이었다.
악사명의 눈이 먹잇감을 발견한 야수처럼 번들거렸다.
포식자의 눈빛이다.
후우웅!
악사명의 전신에서 살기가 폭사 되었다.
일반의 살기와는 다르다.
타고난 살인자의 기운.
수백 명을 죽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농도가 짙은 살기였다.
우우우웅!
살기에 호응이라도 하듯 악사명이 든 검이 울음을 토해 냈다.
마치 피를 달라고 하듯이.
슥.
검의 앙탈에 악사명이 검을 한차례 쓰다듬었다.
“크크크크. 이번에 마실 피는 무척 달고 맛있을 거다.”
악사명이 지금 상황이 정말로 즐겁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악사명의 살기가 정점에 달해 핏빛 기운이 외부로 표출되는 순간.
먼저 움직인 것은 악사명이었다.
텅.
그의 신형이 땅을 박차고 앞으로 쏘아져 갔다.
검에는 핏빛 검기가 넘실거렸다.
혈랑검(血狼劍).
악사명의 성명절기인 혈랑검이 펼쳐졌다.
우우웅!
마치 이리의 발톱처럼 사납고 거친 검이 송기풍을 향해 뻗어 나갔다.
휘리릭!
송기풍도 거기에 맞춰 검을 휘둘러 부딪쳐 갔다.
첫 충돌.
쾅!
“큭.”
폭음이 터지고.
송기풍이 신음을 흘리며 뒤로 밀려났다. 절로 인상이 찡그러졌다.
혈랑검의 검기를 다 해소하지 못하고 그 충격에 밀려났기 때문이다.
혈랑검을 받아 낸 두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검을 쥔 손아귀가 찢어지는 듯한 아픔.
송기풍의 얼굴이 잔뜩 굳어졌다.
악사명이 강한 건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상대하니 소문보다 더 강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