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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왕무적 1권(9화)
三章 귀환(4)


빠드득.
송기풍이 이를 악물었다.
자세를 바로 하고 검을 들어 올린다.
방어의 자세.
쿠오오오오오!
자신이 뒤로 밀려난 순간, 악사명은 오히려 앞으로 짓쳐 들며 검을 휘둘러 왔기 때문이다.
송기풍이 내공을 끌어 올리며 검을 휘둘렀다. 송기풍의 검이 원을 그리며 흔들렸다.
그러자.
휘이잉!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송기풍의 검이 그리는 원 안으로 부드러운 바람이 모이기 시작했다.
풍검(風劍).
연풍검(軟風劍).
풍산문의 무공인 풍검.
그 풍검에는 연풍검과 살풍검이 있다.
방어적 요소가 강한 연풍검과 공격적인 부분에 무게를 둔 살풍검.
이번에 송기풍이 펼친 것은 연풍검이다.
송기풍의 검에 맺힌 검기가 원 안에 모여든 바람과 어우러지며 혈랑검에 맞서 나갔다.
쾅!
두 기운이 부딪치자, 폭음이 터져 나왔다.
이번에는 밀리지 않았다.
혈랑검과 연풍검은 극과 극이었다.
혈랑검이 송기풍을 찢어발기고자 거칠게 짓쳐 들고 있다면, 연풍검은 유(柔)를 바탕으로 부드럽게 혈랑검을 튕겨 내고 있었다.
콰콰콰콰쾅!
충돌이 계속될수록 폭음도 연이어 터져 나왔다.
충돌의 여파로 주변의 시체들이 갈라지며 뒤로 나뒹굴고 있었다.
둘의 싸움은 팽팽했다.
송기풍의 몸이 조금씩 뒤로 밀려나고 있었지만, 그건 방어 위주의 움직임이어서 그런 거지 실력이나 기세에서 밀리는 것은 아니다.
“크하하하하.”
악사명이 웃음을 터트렸다.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악사명은 피를 좋아하고, 사람을 죽이는 걸 즐긴다.
약자를 살육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그보다 반항하는 적을 죽이는 건 악사명에게 있어서 그야말로 별미였다.
적의 반항이 거세면 거셀수록 악사명을 더욱 즐겁게 만들었다.
특히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서 적을 죽이는 순간은 여인과의 방사 때보다 더욱 악사명을 흥분시켰다.
물론 악사명의 뇌리에 자신이 누군가에게 죽는 상황은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혈랑검이 악사명의 마음을 대변하듯 더 강력하게 몰아붙였다.
마치 그 모습이 굶주린 이리를 연상시켰다.
그에 반해, 송기풍의 안색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었다.
기세에서 밀리는 게 아니다.
내상을 입어서도 아니었다.
시야에 들어오는 주변의 모습 때문이었다.
충돌의 여파로 문도들의 시체가 갈라지고, 나뒹굴면서 손상되고 있었다.
문도들을 지켜 주지도 못했는데, 시체마저 온전히 보전 못한다면 죽어서도 용서를 구하지 못하리라.
빠드득.
송기풍이 이를 거칠게 갈면서 눈을 번뜩였다.
우우웅!
단전의 내공을 더욱 끌어 올리며 손목을 빠르게 돌리기 시작했다.
손목의 움직임에 따라 검이 회전하며 더 강한 바람이 원 안으로 모여들었다.
휘이잉!
후우우우웅!
폭풍벽(暴風劈).
바람이 정점에 달한 순간.
원이 부서지며 원 안에 모여 있던 바람이 폭발하며 악사명을 덮쳤다.
콰아앙!
천지를 울리는 굉음과 함께 폭발의 영향이 사방을 휩쓸고 지나갔다.
“컥.”
그 충격에 악사명이 신음을 흘리며 뒤로 튕겨져 나갔다.
주르륵.
내상을 입었는지 입가에는 핏줄기를 흘리고 있었고, 머리는 산발이 됐다.
“흐읍.”
악사명이 들끓는 기혈을 진정시키려고 호흡을 가다듬는 순간.
화아아악!
바람의 흐름이 바뀌었다.
송기풍을 중심으로 머물던 바람.
송기풍의 검이 그려 낸 원 안에서 맴돌던 부드러운 바람이 원이 파괴되어 벗어난 순간, 날카로운 기세를 동반한 채 거세게 날뛰며 휘몰아쳤다.
살풍검(殺風劍).
풍검의 살풍이 펼쳐졌다.
텅.
송기풍의 신형이 악사명을 향해 짓쳐 들었다.
쉬이익!
쿠오오오!
살풍검이 거센 바람과 날카로운 검기를 쏟아 내며 악사명을 몰아붙였다.
콰콰콰쾅!
폭음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살풍검을 막아 내며 연신 뒤로 밀려나는 악사명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위험한 검기는 다 막아 냈지만, 뒤에 따라오는 날카로운 바람에 옷자락과 피부를 베이고 있어서였다.
비록 살 거죽이 베이는 정도였지만, 살짝 흐르는 핏줄기는 악사명의 기분을 상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와 함께 가슴 깊은 곳에서 불길이 일어났다.
“감히.”
악사명이 노성을 질렀다.
중소문파의 문주 따위에게 잠시라도 뒤로 밀리는 상황이 화나서였다.
번쩍!
악사명의 눈이 섬뜩한 살광을 발했다.
“놈, 편히 죽을 생각은 마라. 전신을 갈가리 찢어 죽여 주마.”
악사명이 내공을 극성으로 끌어 올렸다.
우우우웅!
악사명의 전신에서 막대한 기세가 퍼져 나왔다.
주변의 공기마저 요동치며 밀려난다.
기세의 영향에 송기풍의 살풍검이 주춤거리고, 바람이 사그라질 정도였다.
점점 강해지는 기세.
진해지는 핏빛 검기.
후우웅!
검기가 모이고 모여 응축되더니, 검을 감싸며 또 다른 검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혈랑진격살(血狼進擊殺).
쿠우우우!
혈랑검 오의 혈랑진격살이 송기풍을 덮쳐 갔다.
순간 송기풍의 전신이 돌처럼 굳어졌다.
강기였다.
비록 형태가 뚜렷하지는 않았지만, 강기가 분명했다.
불완전하더라도 강기는 강기.
초절정 고수의 전유물인 강기의 파괴력은 그야말로 절대적이다.
송기풍이 입술을 질겅질겅 깨물고는 단전에 자리한 모든 내공을 검에 쏟아부었다.
그러고는 검을 빠르게 회전시켰다.
기혈이 무리한 내공의 운용에 뒤틀리며 비명을 질렀지만 무시했다.
이번을 막아 내지 못하면 끝이다.
솔직히 막아 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하기 힘들 정도였다.
한계 이상으로 휘둘러지는 검.
그리고 그 안으로 모이는 거대한 바람.
휘이잉!
후우우웅!
원이 생겨나고 바람이 모여 펼쳐지는 폭풍벽.
폭풍벽을 덮치는 혈랑진격살.
콰아아아앙!
두 기운의 충돌에 풍산문 전체를 뒤흔드는 폭음이 울려 퍼졌다.
충격의 여파에 시체들은 물론, 대지마저 터져 나가며 사방으로 비산했다.
마치 강한 지진이 일어난 듯했다.
풍산문이 분진에 휩싸였다.
그로 인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휘이잉!
한 줄기 바람에 분진이 가라앉고, 드러난 광경은 마치 벽력탄이 터진 것 같았다.
주변의 모든 것이 터져 나가 있었다.
스윽.
악사명의 눈이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송기풍을 찾는 것이다.
곧 그의 눈에 들어오는 시체 한 구.
시체는 처참했다.
몸통의 절반 가까이가 사라진 시체. 겉으로는 누구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시체였다.
하지만 악사명은 그 시체가 누구인지 한눈에 알 수가 있었다.
송기풍이었다.
혈랑진격살의 충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몸통의 절반이 터져 나간 것이다.
씨익.
악사명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자신은 초절정의 경지에 오르지 못했다.
다만 절정의 극에 달했기에 무리한 내공의 운용으로 잠시나마 강기를 유지한 것이다.
그 대가로 단전은 물론 기혈이 들끓으며 통증을 호소했지만, 악사명은 만족한 듯 웃고 있었다.
자신의 모든 걸 쏟아부어서 적을 죽일 때의 쾌감은 다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처럼 몸이 통증을 호소할 정도로 전투를 한 직후에 느껴지는 상쾌함은 어떤 때보다 악사명의 기분을 최고조로 이끌었다.
악사명이 지금의 순간을 즐기고 있을 때였다.
저벅저벅.
적혈대의 부대주가 다가왔다.
“대주님, 오늘은 이곳에 머무르실 겁니까?”
악사명이 부대주를 바라봤다.
“쓰레기들은?”
“풍산문 전체의 생명을 말살했습니다.”
그에 악사명이 기분 좋은 웃음을 머금었다.
“우리 측의 피해는 없겠지?”
“…….”
잠시 멈칫거리던 부대주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사망 한 명에 부상이 일곱 명입니다.”
악사명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사혈성의 정예인 적혈대가 중소문파 하나를 처리하는 데 사망자까지 나왔다고 하자 기분이 상한 것이다.
좋던 기분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느낌.
전신에서 미묘한 살기가 새어 나왔다.
그에 부대주가 긴장했다.
악사명은 타인보다 부하에게 더 가혹하기 때문이다.
부하 몇 명 죽이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실제로 적과의 전투에서 사망한 대원들보다 악사명의 손에 죽은 대원들이 더 많을 정도였다.
부대주가 긴장감에 침을 꿀꺽 삼켰다.
“이번만큼은 그냥 넘어가지. 하나 진가장에서도 사망자가 나온다면…….”
악사명의 뒷말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명심하겠습니다.”
악사명이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위에 널린 시체들.
흥건하게 젖은 대지.
그 모든 게 악사명을 흡족하게 만들었다.
자신이 만든 작품인 것이다.
“크크크크. 진가장, 너희는 어떻게 나를 즐겁게 해 줄 것이냐.”
악사명의 광소가 풍산문에 울려 퍼졌다.
피와 살육의 광기가 풍산문을 지배했다.
그 모습은 마치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들.
적혈대로 인해 풍산문이 완벽하게 멸문당했다.


四章 출전(1)


진가장.
묘시(오전 5―7시).
아침 햇살이 비추던 시간.
“으음.”
진유현이 눈가를 비비며 슬며시 눈을 떴다.
점차 눈에 들어오는 방 안의 천장.
스윽.
잠시 멍하니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던 진유현이 느린 동작으로 침상에 앉았다.
으드득.
진유현은 자고 일어난 후라 몸이 뻐근한지 이리저리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벌써 아침인가.”
나른한 음성이다.
창밖을 바라보니, 이미 해가 떠올라 주변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진유현은 침상에서 가부좌를 틀었다.
두 눈을 감고 가볍게 들어가는 운기.
운기를 시작하자, 천뢰신공이 기혈을 타고 전신을 돌기 시작했다.
일주천. 이주천.
기혈의 흐름을 타던 천뢰신공이 시간이 흐를수록 미세한 세맥까지 뻗어 나가며 몸을 상쾌하게 만들었다.
무인으로서 최상의 몸 상태.
그것이 잠시 진유현의 기분을 황홀하게 만들었다.
진유현이 두 눈을 뜬 것은 그로부터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