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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왕무적 1권(10화)
四章 출전(2)


번쩍!
진유현의 눈동자에 눈부신 뇌광이 번쩍였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잠시 운기의 여운을 즐기던 진유현이 문득 방 안을 둘러보았다.
진유현의 시야에 들어오는 방 안.
자신의 방은 어릴 적 그대로였다.
십 년의 공백.
하지만 진유현이 바라보는 방 안의 모습에서는 십 년간의 공백을 느낄 수 없었다.
십 년 전에 사용하던 집기들이 아직까지도 그 자리에 그 모습 그대로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집기가 낡아 있는 게 아니었다.
십 년의 세월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깔끔하게 관리되어 있었다.
십 년의 세월 동안 새로이 손상된 부분을 찾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평소에 진유현의 방을 얼마나 정성 들여 관리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주인이 없는 방을 십 년 동안 똑같이 관리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새삼 가족들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방 안을 차지하고 있는 집기들.
모두 진유현의 추억이 잠들어 있는 물건들이다.
진유현이 집기들에 새겨진 작은 상처들을 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슥.
진유현이 손으로 집기들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십 년 전에 자신이 사용하면서 만든 상처들.
그 상처들을 보고 있자니, 어릴 적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글공부가 하기 싫어서 책상에 새겨 넣기 시작한 그림들.
방 안에서 검법을 연무하다가 실수로 긁어 버린 벽.
아침마다 키를 재 보며 문틀에 새긴 선들.
그런 사소한 것들이 진유현을 점차 추억에 잠기게 만들었다.
포근한 느낌.
지난 십 년간은 느낄 수 없었던 감정이다.
단리패와 함께 있던 시간에는 결코 느낄 수 없었던 따뜻한 감정을 느끼게 했다.
“후후. 이런 감정도 오랜만이군. 썩 나쁘지는 않아.”
진유현의 입가에 작은 웃음이 걸렸다. 무척이나 편안해 보이는 모습이다.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편안한 웃음이 나오는 것이다.
진유현이 침상에서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겉옷을 걸쳤다.
스윽.
잠시 방 안을 둘러보던 진유현이 문을 열고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

저벅저벅.
자신의 방을 나선 진유현이 진가장을 둘러보며 걸어가고 있었다.
진유현은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진가장 전체를 둘러보고 있었다.
진유현이 어릴 적에는 늘 뛰어다니며 자신의 놀이터가 되었던 장원.
진유현은 어느 것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기세로 장원을 꼼꼼히 살피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십 년.
진유현이 집을 떠나 있던 세월이다.
십 년이면 강산도 한 번은 변하는 세월이고, 실제로 진가장이 자리한 청주는 오면서 둘러본 바로 많은 부분이 변해 있었다.
보기에도 화려한 전각에 새로운 길까지.
진유현은 그 모습에 심한 거부감을 느꼈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게 이상한 것이다. 십 년이라는 시간은 그만큼 긴 세월이니까.
그런데 청주에서 가장 유명한 진가장은 변한 게 하나도 없었다.
새로운 전각이 들어서지도 않았고, 오래된 전각들은 보수된 흔적도 없었다.
오래되고 낡은 전각들이 변한 모습 없이 그대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렇기에 진유현은 진가장을 둘러보며 거부감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변함없는 진가장의 그 모습들에 익숙함과 친근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자연스레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비로소 자신의 집에 돌아왔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후읍.”
진유현이 크게 숨을 들이켰다.
마치 허공에 떠도는 공기마저도 바깥세상과는 다른 듯한 느낌이다.
진가장을 둘러보는 진유현의 입가에는 웃음이 떠날 줄을 몰랐다.
진유현이 여러 전각들을 돌고 돌아 마지막에 도착한 곳은 연무장이었다.
진가장 연무장.
연무장은 진유현에게 특별한 장소였다.
처음으로 사부 단리패를 만난 장소이자, 강제로 납치돼 제자가 되었던 곳.
모든 일의 시작이 됐던 장소.
그런 연무장을 한차례 둘러보는 진유현의 입가에는 쓴웃음이 걸려 있었다.
사부 단리패와의 생활은 결코 유쾌하지 않았다.
물론 처음 사부가 절대이신 중 한 명인 뇌신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정말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그렇다고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십 년간 이어진 수련은 정말 지독했고, 진유현의 정신을 극한에서 다시 극한으로 몰아갔다.
몸이 힘든 게 아니라, 정신이 무너지기 일보 직전까지 간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십 년 동안 미치지 않은 것만 해도 요행일 정도로 위험한 수련이었다.
비록 그 대가로 모든 무인이 바라는 화경이라는 경지에 올랐지만, 그렇다고 해서 원망하는 마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화경이라는 경지에 오른 순간도, 사부를 떠나 하산한 후 조금 전까지도 사부를 원망하고 있었다.
진유현은 사부를 평생 원망할 거라고 생각했다. 진유현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만약 자신이 사부인 뇌신의 제자가 되지 못했다면, 그래서 자신의 무위가 화경에 들지 못했다면 진가장은 사혈성의 마수에 의해 허무하게 멸문을 당했으리라.
그렇기에 사부인 단리패를 떠올리며 처음으로 고마움을 느꼈다.
그것은 진유현에게 있어서 무척이나 생소한 감정이었다.
어색한 느낌마저 들었다.
연무장에서 과거를 돌아보던 진유현이 몸을 돌렸다.
진유현이 연무장을 둘러보고 나가려는 순간이었다.
타타타탁.
누군가 다급하게 달려오는 발걸음 소리.
진유현의 고개가 돌아갔다.
멀리서 총관이 빠르게 달려오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는지 얼굴이 잔뜩 굳은 상태였다.
“소장주님.”
“무슨 일입니까?”
“장주님께서 찾으십니다.”
진유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혹시 사혈성 때문입니까?”
“네. 그 문제로 지금 집무실에서 장주님이 기다리고 계시니 빨리 가시지요.”
총관이 말을 마치고는 앞장서서 가기 시작했다. 진유현이 무심한 얼굴로 뒤를 따라갔다.

***

진가장 집무실.
“장주님, 소장주님이 오셨습니다.”
“들어와라.”
안에서 진성원의 음성이 들려왔다.
드르륵.
문을 열고 집무실 안으로 들어가자, 진성원을 비롯해 조일영과 적소화까지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굳어 있었다.
진유현이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아버지, 무슨 일이 있습니까?”
진성원이 어두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적혈대가 수광에 모습을 드러냈다.”
“수광이라면…….”
“풍산문이 있는 곳이다.”
풍산문에서 진가장까지의 거리는 빠르게 움직이면, 하루면 도착할 수 있다.
적혈대가 풍산문에 나타났다는 것은 진가장에도 언제든지 적혈대가 들이닥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 그들이 풍산문에 머물고 있는 건가요?”
적소화가 궁금한 점을 물었다.
“아니네. 그들은 풍산문을 떠났네.”
대답하는 진성원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그 점을 눈치챈 진유현이 물었다.
“풍산문에 무슨 일이 있습니까?”
“풍산문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네?”
“풍산문은 멸문했다.”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경악했다.
“…….”
“…….”
“멸문이라고요?”
적소화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반문했다.
“그렇네. 어제 적혈대가 풍산문을 멸문시켰다는 소식이 지금 도착했네.”
“생존자에게 들은 정확한 소식입니까?”
조일영의 물음에 진성원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풍산문에는 생존자가 없습니다. 말 그대로 완벽한 멸문입니다. 가축마저도 모조리 죽였다는군요.”
“그럴 수가. 멸문이라니. 그들이 정말 전쟁이라도 벌이려는 걸까요?”
적소화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 말에 좌중의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특히 적소화와 조일영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그들은 중간에 자신들이 적당히 중재를 하면 사혈성이 멈출 거라고 예상했는데, 적혈대의 행보가 도를 넘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오늘이라도 본 장에 적혈대가 모습을 드러낼 수 있겠군요.”
진유현의 핵심을 찌르는 물음에 진성원이 대답했다.
“지금 들어온 정보로는 적혈대가 본 장과 두 시진 거리에 있다고 하는구나.”
“두 시진이라. 그럼 곧 들이닥치겠군요.”
“그래, 이제 어쩌면 좋겠느냐.”
진성원이 진유현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 일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아들이 뇌신의 제자이자 화경의 고수란 걸 알았으니, 이제 진가장의 모든 일을 진유현에게 맡기려는 것이다.
진성원의 말에 적소화와 조일영의 고개도 진유현에게 돌아갔다.
진유현의 말에 따라 진가장의 행보가 결정된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잠시 침묵하던 진유현의 입이 열렸다.
“그들이 본 장의 피를 원한 이상, 결코 멈출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진유현의 생각을 뜻하는 말.
그것은 사혈성과의 전투였다.
“그래도 대화를 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어떻게든 전투만은 피하고 싶은 적소화의 물음에 진유현이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
“그들이 풍산문을 멸문시킨 걸로 부족하다는 것이오.”
그 말에 적소화가 입을 다물었다.
풍산문은 중소문파 중에서도 강한 편에 속하는 문파다. 더구나 그들은 정파다.
적혈대가 그런 풍산문을 멸문시킨 것으로 충분히 사혈성의 뜻을 밝혔다고 해도 무방했기 때문이다.
“아버지, 그들의 현재 위치를 알 수 있습니까?”
진유현의 물음에 진성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다. 아직 청주에 들어서지는 않았고, 현재 수광에서 남하하는 중이다.”
“남하라…….”
그 말에 진유현의 눈이 반짝였다.
“그들이 수광에서 남하하는 중이라면 청주의 경계선에 있는 평야에 아직 도착하지는 않았겠군요.”
진유현의 말뜻을 알아챈 진성원이다.
“지금 출발하면 평야에서 마주칠 수 있을 것이다. 평야로 갈 생각이냐?”
“길이 엇갈려 그들이 본 장으로 올 수도 있습니까?”
진성원은 진유현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았다.
만약 길이 엇갈린다면 진가장에 남은 사람들은 모두 시체로 변하리라.
그런 일이 벌어지면 안 된다.
“다른 곳은 몰라도 청주에서만큼은 그들을 놓치지 않을 자신이 있다. 그러니 걱정 마라.”
진성원의 확신에 찬 말에 진유현의 전신에서 싸늘한 살기가 피어올랐다.
“본 장에서 피를 보고 싶지는 않으니, 평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부르르.
진유현의 말에 적소화와 조일영은 물론 진성원마저도 몸을 세차게 떨었다.
진유현의 말에 짙은 혈향이 배어 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