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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왕무적 1권(11화)
四章 출전(3)
반 시진 뒤.
진가장 정문.
백여 명 정도 되는 진가장의 모든 무인들이 정문에 모여 있었다.
일사불란하게 모여 있는 무인들.
후확.
정문에 모인 무인들의 전신에서 살벌한 기세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맹렬히 타오르는 기세.
그 중심의 단상.
뚜벅뚜벅.
진가장의 장주인 진성원이 단상에 올라섰다.
진성원의 오른쪽에는 진유현이, 왼쪽에는 적소화와 조일영, 그리고 정검대원들이 나란히 서 있었다.
스윽.
진성원이 정문에 모인 진가장의 무인들을 한차례 둘러보았다.
한참을 말이 없던 진성원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어제 저녁에 사혈성의 적혈대에 의해 풍산문이 멸문당했다는 급보가 들어왔다.”
그 말에 모인 무인들이 웅성거렸다.
풍산문의 멸문은 조금 전 들어온 급보이기에 이들은 아직 모르는 사실이었다.
특히 풍산문은 중소문파 중에서도 강한 문파에 속하지 않던가.
풍산문은 적어도 자신들이 속해 있는 진가장보다는 강한 문파였다.
“그런 적혈대가 이번에는 본 장을 노리고 남하하고 있다.”
진가장은 무인들의 보금자리.
가족들이 기거하는 곳이었다.
그렇기에 이 자리에 모인 무인들에게서 강한 적대감이 퍼져 나왔다.
“협상은 없다. 그들에게서 살아남으려면 복종하거나 싸워 이겨야 한다. 상대가 사혈성이라고 해서 노예처럼 무릎 꿇고 복종하겠느냐?”
진성원의 물음.
우웅!
후우웅!
그 물음에 장내의 기세가 흉흉해졌다.
비록 사혈성과는 상대가 되지 않는 중소문파이고 약자라지만 그래도 무인이었다.
무인은 자존심 빼면 시체였다.
충성과 복종은 다르다.
충성이라면 모를까, 복종이라는 말에는 심한 거부감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말도 안 됩니다.”
“아닙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여기저기서 시끄러운 고함이 들려왔다.
스윽.
진성원이 한 손을 들자 좌중이 조용해졌다.
“그렇다. 우리는 무인이다. 결코 복종할 수는 없다. 그래서 적혈대와의 전투를 위해 북쪽 평야로 출전한다. 그리고 이번 전투의 선두에는 소장주가 직접 나설 것이다.”
진성원이 말을 마치고 진유현을 바라봤다.
그 시선에 진유현이 움직였다.
저벅저벅.
진유현이 단상 위로 올라갔다.
진유현을 바라보는 무인들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그것은 일종의 기대감.
이미 진가장의 모든 사람들이 진유현이 뇌신의 제자라는 걸 알고 있다.
사기 차원에서 진성원이 일부로 소문을 낸 것이다.
만약 진유현이 뇌신의 제자가 아니었다면 진가장의 분위기는 지금보다 더 깊숙이 가라앉았을 것이니까.
현재 진유현은 진가장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진유현을 바라보는 기대에 찬 시선.
그런 시선에 잠시 아무 말이 없던 진유현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비록 사혈성이 삼패의 한 곳이라고 해도 본 장은 승리할 것입니다.”
후아아악!
공력이 실린 음성이 주변을 울리고 있었다.
그것은 사자후.
기세가 공간을 장악한다.
확신에 찬 음성.
마치 진짜로 그렇게 될 것 같은 생각이 들게 하는 듬직한 목소리였다.
진유현의 말은 상당히 짧게 끝났다.
하지만 그 효과는 대단했다.
“와.”
“우와와.”
“소장주님 만세.”
진가장에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후우웅!
우우웅!
그리고 모여 있는 무인들의 기세가 들불처럼 일어나기 시작했다.
진유현의 기세에 동화된 것이다.
진가장의 기세가 하늘을 찔렀다.
진가장 출전.
사혈성의 적혈대를 상대하기 위해 진가장의 일백 명의 무인들이 북쪽 평야로 출전했다.
혈사의 시작이자, 뇌왕 진유현이 무림에 알려지는 일의 시작이었다.
***
북쪽 평야.
청주의 북쪽 경계선 끝에는 광활한 평야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곳은 옆 도시인 수광과 이어진 길이기 때문에 상단과 표국이 많이 드나드는 곳이기도 했다.
평야에 도착한 진가장의 무인들에게서 비장한 기색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비록 소장주인 진유현이 뇌신의 제자라고 해도 적혈대를 상대하러 나온 이상, 긴장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무엇보다 적혈대는 악명이 자자하기에 더 그랬다.
들리는 소문에는 적혈대가 악귀들의 집단이나 마찬가지였다.
피를 마시고, 인육을 즐기는.
어떻게 보면 헛소문에 불과했지만, 실제로 이 소문을 믿는 사람들도 다수 존재했다.
그렇기에 무인들에게서 긴장감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무인들이 모인 중심에서 진유현이 평야 전체를 훑어보고 있었다.
나무들이나 바위 같은 장애물 없이 넓고 평평한 들판.
진성원이 진유현에게 다가와 말했다.
“이렇게 넓은 곳에서 적혈대를 상대해도 괜찮겠느냐.”
진성원의 걱정 섞인 말.
하지만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비록 진성원은 진유현이 화경의 고수란 걸 알고 있지만, 이런 곳에서 전투를 벌인다면 진가장의 무인들의 피해가 커질 것으로 생각했다.
진가장의 장주로서는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은 진성원이 화경의 경지를 잘 모르기 때문에 하는 걱정이다.
실제로 진유현은 진가장의 무인들과 같이 전투를 벌일 마음이 전혀 없었다.
혼자서 적혈대와 싸울 생각이었다.
진유현은 앞으로 벌어질 진가장의 안전을 위해서 적혈대를 상대로 압도적인 무력을 무림에 보여 줄 생각이다.
그런데 진가장의 무인들이 가세한다면 솔직히 도움은 안 되고, 전투에 방해만 될 게 분명했다.
그런 점에서 좁고 장애물이 있는 곳보다는 적혈대가 자신에게 합공하기 좋은 이런 평평한 들판이 혼자서 전투를 벌이기에 좋은 장소였다.
다른 사람들이 알면 기겁할 생각이다.
사혈성의 대표 무력 집단인 적혈대를 홀로 상대할 생각을 하다니.
하지만 진유현은 자신이 있었다.
이것은 결코 자만이 아니었다. 충분히 가능한 자신감이다.
화경과 화경에 들기 전은 아예 차원이 다른 경지였고, 화경에 들어섬은 천외천의 무력을 보유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이렇게 넓은 평야가 전투를 벌이기에는 더 좋습니다.”
“너만 믿으마.”
진성원이 진유현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진유현이 미소 지었다. 자신을 생각하는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들의 주위에서는 무인들이 긴장으로 굳어진 몸을 풀기 위해서 가볍게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때였다.
적소화가 진유현에게 다가와 말했다.
“적혈대가 도착하면 제가 먼저 대화를 해 봐도 될까요?”
그에 진유현의 입가가 차갑게 굳어졌다.
“아직도 그들과 대화가 가능할 것 같소?”
“안 되더라도 시도는 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
진유현이 적소화의 말에 담긴 속뜻을 알아들었다.
“명분 때문이오?”
“…….”
적소화가 입을 다물었다.
명분.
정파가 전투를 벌이기 전에 항상 내세우는 것이 바로 명분이다.
자신들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사실 적소화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사혈성과의 협상 때문이었지만, 적혈대의 행보로 보아 그것이 가능할 것 같지 않자 명분이라도 챙기려는 목적이었다.
나중을 위해서.
진유현의 입가에 비릿한 웃음이 걸렸다.
사혈성은 당장 피를 보겠다고 달려드는데, 정천문은 고리타분하게 명분부터 찾으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사혈성이 노골적으로 무력을 사용하고 있다.
그것은 자신감이 있다는 뜻도 된다.
그런데도 이들은 사혈성이 삼패의 두 곳을 압도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안 하고 있었다.
생각이 굳어진 것이다.
“미안하지만, 이것은 본 장의 일이오. 그러니 정천문은 뒤로 빠지는 게 좋을 것 같소.”
“하지만 사혈성과의 전투는 산동 무림 전체의 일이기도 해요.”
“사혈성의 적혈대라는 칼날이 직접적으로 본 장을 노리는 이상, 선택은 본 장이 하오. 그리고 다른 결정은 없소.”
진유현의 확고한 태도에 적소화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
“…….”
둘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때였다.
스윽.
진유현이 갑자기 북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에 적소화도 덩달아 같이 북쪽을 봤다.
하지만 눈에 들어오는 거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광활한 평야.
거기에 의문을 느낀 적소화가 진유현을 바라보려는 순간이었다.
조일영도 북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멀리서 전해져 오는 기세를 느낀 것이다.
잠시 후.
평야 끝에서 붉은 점들이 나타나더니, 점점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우우웅!
후우우웅!
지독한 살기를 전신에 두른 일백 명 정도의 적의를 걸친 무인들.
그들이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붉은 파도처럼 보였다.
적혈대였다.
쉬익!
휘익!
휘리릭!
그들은 순식간에 진가장 일행의 바로 앞까지 도착했다.
무척 빠른 속도로 이동했지만, 적혈대원들의 호흡이나 대형은 흐트러짐이 없었다.
마치 편하게 걸어온 것처럼 안정된 호흡과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들의 기세가 평야에 퍼져 나갔다.
한순간에 주변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 중심.
적혈대의 선두에 선 중년인.
슥.
적혈대주 악사명이 주변을 한차례 훑어보며 눈을 반짝였다.
정검대주 조일영과 산동일미 적소화를 알아본 것이다. 특히 적소화를 바라보는 악사명의 눈빛이 번들거렸다.
악사명이 조일영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무림의 세력이나 명성으로 보아 조일영이 이 일행의 대표라고 생각해서였다.
“정검대원이 고작 오십 정도라니 실망이군. 이들로 나를, 그리고 적혈대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무척이나 오만한 음성.
조일영의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이곳의 대표는 내가 아니다.”
조일영의 대꾸에 악사명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조일영만 한 인물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적소화가 진유현의 눈치를 살피며 앞으로 나섰다.
“악 대협. 저희 정천문이 중재할 테니, 이만 협상하는 게 어떨까요?”
피식.
적소화의 말에 악사명이 실소를 머금었다.
“내가 왜 대협이냐.”
“예?”
적소화가 눈에 띄게 당황하자, 악사명이 웃으며 말했다.
“평소에는 마두니 뭐니 하면서 몰아붙이더니, 지금은 대협이라고 칭하니 웃겨서 그런다.”
악사명이 적소화를 한껏 비웃었다.
“…….”
적소화가 입을 다물자, 악사명이 말을 이었다.
“본 성과 협상하고 싶다라. 물론 정천문이 본 성과 협상할 방법이 하나 있기는 하다.”
악사명의 말에 적소화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 방법이 무엇이지요?”
“정천문이 지부가 되면 된다.”
“……?”
적소화는 악사명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적소화의 얼굴에 떠오른 의문에 악사명이 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정천문이 본 성에 항복해 스스로 지부가 되기를 자처한다면, 굳이 피를 볼 필요는 없다.”
악사명의 말.
적소화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어졌다. 그것은 옆에 있는 조일영과 정검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