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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왕무적 1권(12화)
四章 출전(4)


후확!
그들의 몸에서 조금씩 살기가 새어 나왔다.
“지금 정천문을 모욕하시는 건가요?”
적소화의 말투에 날이 서 있었다.
“모욕이 아니라,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사혈성의 무력이 본 문과 백검문을 동시에 감당할 정도라는 건가요?”
적소화가 또 다른 산동삼패의 한 곳인 백검문을 들고 나섰다.
“크크크. 글쎄, 과연 백검문이 움직일까.”
“무슨 뜻이죠?”
적소화의 물음에 악사명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나한테서 어떻게 살아남느냐가 아닐까?”
날름.
악사명이 혀로 입술을 한 번 훑고는 적소화를 음흉하게 바라보았다.
부르르.
그 시선에 적소화가 몸을 세차게 떨었다.
감당하기 힘든 시선.
결국 적소화가 먼저 고개를 돌렸다.
“걱정 마라. 너는 살려 줄 생각이니. 하지만 다른 녀석들은…… 크크크.”
악사명이 주변을 한차례 훑어보며 중얼거렸다.
우우우웅!
특유의 짙은 살기와 어울려 마치 먹잇감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부르르.
악사명의 시선 안에 있는 모든 무인들이 살기를 감당 못하고 몸을 떨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뒤로 물러서기까지 했다.
그만큼 악사명의 살기는 지독했다.
모두가 두려움을 느꼈다.
평야에 침묵이 감돌았다.
그때였다.
피식.
누군가 비웃는 소리가 들렸다.
작은 소리였지만, 평야에 널리 퍼졌다.
진유현이다.
진유현이 일행의 앞으로 나서며 악사명을 향해 조소를 머금었다.
그에 악사명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자신을 비웃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넌 뭐냐?”
“내가 누군지도 모르다니, 사혈성의 정보력도 보기보다 형편없군.”
진유현의 대꾸에 악사명의 입가가 비틀렸다.
눈가에는 살광이 번쩍였다.
“누구냐고 물었다.”
“나? 너희들을 저승길로 보내 줄 사람.”
“미친놈이었군.”
“글쎄, 조금 뒤에 죽어 가면서도 그런 말이 나올까?”
진유현의 빈정거리는 말투에 악사명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전신에서 뿜어지는 살기가 진해졌다.
“확실히 미친놈이 맞군. 죽는 게 그렇게 소원이라면 죽여 줘야겠지.”
미친놈은 굳이 자신이 손을 쓸 필요도 없다.
힐끗.
악사명이 적혈대원에게 눈짓을 하자, 한 명이 앞으로 나서며 진유현에게 다가갔다.
“애송이, 나서야 할 때와 나서지 말아야 할 때를 구분하지 못하나?”
“더 다가오면 죽는다.”
후확!
진유현의 말에 적혈대원의 몸에서 살기가 거세게 뿜어져 나왔다.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이군. 정 소원이라면 지금 바로 죽여 주마.”
휘릭!
적혈대원이 진유현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지척까지 다가와서 이어지는 발검.
스르릉.
번쩍!
눈부신 섬광과 함께 적혈대원의 검이 진유현의 목을 베어 나가는 순간이었다.
스윽.
갑자기 진유현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허깨비처럼 모습을 감췄다.
그와 함께 신음을 흘리는 적혈대원.
“컥.”
어느새 가까이 다가간 진유현이 적혈대원의 목줄을 틀어쥐고 있었다.
“내가 더 다가오면 죽는다고 했지.”
적혈대원의 귓가에 진유현이 싸늘한 말투로 속삭였다.
그리고.
우두둑.
진유현이 손아귀에 힘을 주자, 적혈대원의 목뼈가 바스러졌다.
즉사였다.
악명이 자자한 적혈대원 한 명이 너무나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다.
어찌 보면 현실감이 없었다.
그렇기에 평야에 고요한 적막이 찾아왔다.
털썩!
“시시하군.”
진유현이 적혈대원의 시체를 악사명의 앞으로 던지며 도발했다.
그 행동에 악사명의 입가가 비틀리고, 전신에서 살기가 폭사 되었다.
“쓸모없는 놈.”
콰직!
악사명이 적혈대원의 머리를 짓밟아서 터트렸다. 적혈대원의 머리가 터지며 사방으로 뇌수가 번졌다.
짙은 혈향이 평야에 퍼지고 있었다.
악사명이 고개를 돌려 진유현을 바라봤다.
“제법 한 수가 있는 놈이었군. 네놈은 누구냐?”
말투에 당장이라도 진유현을 죽일 것 같은 짙은 살기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악사명의 물음에 진유현이 답했다.
“말했을 텐데. 너를 죽여 줄 사람이라고.”
작은 목소리.
하지만 적혈대 전원의 귓가에 속삭이는 듯이 정확하게 들리는 음성이었다.
그 음성이 소름 끼쳤다.
감정이 배제된 무심함이었기 때문이다.


五章 적혈대와의 사투(1)


파지직.
진유현의 단전에서 자리 잡고 있던 천뢰신공이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기혈을 타고 흐르는 천뢰신공.
쿠오오오!
그와 함께 진유현의 전신에서 패도적인 기세가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헉.”
“컥.”
“윽.”
“크윽.”
진유현의 기세가 한순간에 평야 전체로 퍼져 나가며 적혈대원들을 압도해 갔다.
전신을 짓누르는 기세.
그 기세에 평소 살기에 익숙한 적혈대원들조차도 신음을 흘리며 주춤거릴 정도였다.
그만큼 패도적인 기세였다.
단순히 그뿐이 아니었다.
존재감.
마치 드넓은 평야에 진유현 하나만 우뚝 서 있는 듯한 거대한 존재감이 있었다.
태산을 마주한 듯한 기세.
악사명이 경악했다.
고수이기 때문에 더 확실히 진유현의 기세를 느낄 수 있었다.
진유현의 기세가 자신의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이다.
느껴지는 기세만 따지면 자신은 상대가 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와 함께 한 가지 의혹이 생겨났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저 애송이에게서 마치 성주님을 마주한 것 같은 기세가 느껴지다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제 이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자가 자신의 주군이자 절대 강자인 혈존과 같은 기세와 존재감을 풍긴다니.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상황이다.
무림의 어떤 기사(奇事)에서도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있을 수 없는 일.
악사명의 머리가 빠른 속도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 순간 한 가지 가능성이 악사명의 뇌리를 스쳤다.
‘사술.’
요사스러운 술법이라면 단순히 기세를 끌어 올리는 것 정도는 가능하리라.
거기서 악사명은 결론지었다.
이것은 사술이라고.
사술로 끌어 올린 기세로 자신과 적혈대를 물러서게 하려는 얄팍한 수작이라고.
그와 동시에 악사명의 가슴에서 분노가 끓어올랐다.
사술 따위에 자신이 위축됐다는 사실에, 그리고 자신의 우상인 혈존과 잠시나마 상대를 대등하게 생각했다는 것에.
쿠오오오!
악사명의 전신에서 섬뜩한 살기가 폭사 되었다.
빠드득.
악사명이 이를 거칠게 갈며 내공을 끌어 올렸다.
“갈.”
악사명이 공력이 실린 노성을 터트리며 자신을 압박하는 기세에 대항했다.
후우웅!
진유현의 기세와 악사명의 음파가 부딪치며 충격파가 생겼고, 그 사이로 미세한 틈이 만들어졌다.
악사명이 기세의 영향에서 벗어나자.
“감히 사술 따위로 이 자리를 모면하려 하다니.”
그 순간.
쾅!
강한 진각에 땅거죽이 터져 나갔다.
휘리릭!
그리고 악사명의 신형이 진유현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쏘아져 나갔다.
챙!
츠츠츠츠!
악사명의 검이 뽑히며 혈랑검이 펼쳐졌다.
쏟아지는 핏빛 검기.
진유현의 눈에 싸늘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
단전에서 천뢰신공이 움직이자, 저절로 진유현의 양손에 뇌신기가 발현되었다.
파직. 파직.
진유현이 양손을 휘두르자, 맺혀 있던 뇌신기가 앞으로 뻗어 나가며 혈랑검과 부딪쳤다.
쾅!
“큭.”
울리는 폭음.
두 기운의 충돌과 함께 악사명이 뒤로 밀려나며 신음을 흘렸다.
충격에서 벗어난 악사명이 눈을 부릅떴다.
한 번의 충돌이지만, 알 수 있었다.
진유현의 강함은 진짜였다.
충돌에서 느껴지던 반탄력에서 악사명은 자신이 감당 못할 거대한 벽을 느꼈다.
악사명의 본능이 귓가에 속삭이고 있었다.
사술 따위가 아니라고.
자신보다 더한 강자라고.
지금 당장 진유현에게서 도망치라고.
그와 함께 가슴 깊은 곳에서 질투와 분노가 동시에 피어올랐다.
악사명은 무척이나 오만한 자다.
그런데 자신이 가장 믿고 의지하는 본능이 등을 보이고 도망치라고 귓가에 속삭이자, 자존심이 상하며 순간 눈이 뒤집혔다.
자신보다 어린 상대에게 등을 보이고 도망친다는 것은 악사명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악사명이 이성을 잃고 달려들었다.
“감히.”
쿠쿠쿠쿠쿠!
악사명이 내공을 극성으로 끌어 올리며 핏빛 검기를 연신 쏘아 대기 시작했다.
허공이 혈랑검으로 뒤덮였다.
진유현의 전신을 뒤덮는 핏빛 검기.
거기에 맞서 진유현의 양손에서 풀어지며 부딪쳐 가는 뇌신기.
파지지직!
콰콰콰쾅!
폭음이 연이어 터져 나왔고, 두 기운의 충돌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계속됐다.
공간을 뒤덮는 핏빛 검기.
거기에 대항하는 금빛의 뇌전.
두 기운의 충돌은 한동안 계속됐다.
혈랑검이 진유현을 노리고 무섭게 쇄도하면, 뇌신기가 중간에 막아섰다.
혈랑검의 핏빛 검기에 있어 뇌신기는 절대로 뚫을 수 없는 벽과 같았다.
아무리 두드리고 두드려도 뇌전을 뚫고 나아갈 수가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공포에 떨게 했던 혈랑검이 뇌신기 앞에서는 무력했다.
오히려 자신을 대충 상대하는 듯한 느낌, 자신을 조롱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쾅!
마지막 충돌 후, 뒤로 물러선 악사명이 입술을 질겅질겅 깨물었다.
혈랑검으로는 뇌신기의 벽을 뚫을 수 없다. 그렇다면 방법은 한 가지.
강기뿐이었다.
두 눈동자에 광기가 어렸다.
악사명이 내공을 극성으로 끌어 올렸다.
쿠우우우우!
대지가 울리고 있었다.
공기가 뒤로 밀린다.
악사명의 전신에서 기세가 폭사 되며 검이 핏빛 기운에 물들어 갔다.
모여드는 기운.
혈랑진격살.
후우우웅!
불완전한 강기 무공인 혈랑진격살이 진유현을 노리고 쇄도했다.
진유현을 잡아먹을 듯 덮쳐 오는 핏빛 강기.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