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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왕무적 1권(13화)
五章 적혈대와의 사투(2)


파지지직!
뇌신기가 촘촘히 진유현을 감싸기 시작했다.
번쩍!
콰르르릉!
진유현의 전신에서 눈부신 뇌광이 일더니, 뇌성이 울음을 토해 냈다.
진유현의 전신을 뒤덮는 뇌전.
뇌정천벽.
진유현이 절대 방어 뇌정천벽을 펼친 것이다.
뇌정천벽을 혈랑진격살이 덮쳤다.
콰콰콰쾅!
혈랑진격살과 뇌정천벽의 충돌에 폭음이 터져 나오고, 충격파가 주변을 휩쓸었다.
그 충격에 평야 전체가 뒤흔들리고, 커다란 분화구가 만들어졌다.
모든 사람들이 뒤로 물러설 정도의 여파였다.
휘이잉!
잠시 후에 먼지가 걷히고, 바닥에 무릎 꿇고 있는 악사명이 보였다.
“우웩.”
악사명이 한 움큼의 핏덩이를 토해 냈다. 얼굴빛은 이미 하얗게 질려 있었다.
심한 내상을 입은 것이다.
혈랑진격살을 펼치며 무리하게 운용한 내공도 문제였지만, 뇌정천벽의 반탄력을 감당 못한 게 더 심했다.
“큭.”
악사명이 신음을 흘리며 몸을 일으켰다.
뇌신기에 진탕 된 내부는 엉망이었다.
특히 내부에 드는 찌릿찌릿한 느낌은 저절로 인상을 찡그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 다른 사실이 악사명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진유현의 전신을 감싸던 뇌전.
천뢰신공과 뇌신기를 알아본 것이다.
저 정도로 강한 뇌전은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다.
악사명이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로 진유현에게 물었다.
“너…… 뇌신과 무슨 관계냐?”
악사명의 말에 진유현이 눈살을 찌푸렸다.
“사부님을 막 부르다니, 버릇이 없군.”
진유현이 뇌신을 사부라고 칭하자, 악사명과 적혈대 전체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뇌신의 이름은 그만큼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크하하하하.”
악사명이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평야에 악사명의 웃음소리가 한참을 크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 모습이 광인을 연상시켰다.

***

뇌신 단리패.
지난 칠마혈사 이후에 삼십 년간 모습을 감추었던 뇌신의 흔적이 나타났다.
그것도 제자라는 형식으로.
뇌신이 누구인가?
무림이라는 세상의 절대 강자이자, 천하의 모든 무림인의 신이나 마찬가지였다.
누구도 넘을 수도, 깨뜨릴 수도 없는. 그저 경외하고 신성시할 수밖에 없는 존재.
그런데 그런 신 같은 존재의 제자가 자신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뇌신의 제자.
하지만 뇌신의 제자라고 해서 악사명은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뇌신이 절대 강자지, 그 제자까지 절대 강자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와중에 한 가지 생각이 악사명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만약 자신이 뇌신의 제자를 죽인다면?
두근. 두근.
그 생각이 들자, 악사명의 심장이 점점 빠르게 요동치며 전신을 흥분으로 몰아넣기 시작했다.
무림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무공이다.
하지만 무공만큼이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명성이었다.
천하를 떨어 울리는 명성.
무인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별호가 천하에 널리 퍼지기를 원한다.
무인들이 보다 강한 무공을 익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악사명은 다른 자들보다 더 심했다.
자신이 뇌신의 제자를 죽인다면 자신의 명성이 천하 무림에 퍼질 것이 분명했다.
악사명은 이때부터 진유현을 어떻게 죽일까 하는 생각으로 머릿속을 채우기 시작했다.
악사명은 자신이 질 것이라는 생각은 아예 하지를 않았다.
이상할 정도의 자신감.
하지만 악사명에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처음 검을 쥔 열다섯 살 이후로 지금까지 이십 년간 악사명은 수백 명의 사람들을 죽여 왔다.
그중에는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일반인도 있었지만, 무공이 경지에 이른 절정 고수들도 속해 있었고, 자신보다 고수들도 수두룩했다.
그로 인해 악사명이 죽을 위기에 처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악사명은 수백 번을 싸워 오며 살아남았다. 그리고 항상 승리해 왔던 것이다.
그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자신은 언제나 승리한다는 생각이 악사명의 뇌리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더구나 지금은 자신 혼자만이 아니라 적혈대원 일백 명도 같이 있지 않던가.
이만한 전력을 동원하면 뇌신은 몰라도 뇌신의 제자 정도는 충분히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악사명의 머릿속에는 이미 진유현은 언제든지 죽일 수 있는 존재로 전락해 있었다.
“크크크크.”
악사명이 음침하게 웃었다.
단순히 뇌신의 제자를 이기는 게 아니다.
무려 뇌신의 무공을 자신이 꺾는 것이다.
모든 무림인들의 우상인 뇌신의 무공을.
그 생각에 가슴 깊은 곳에서 주체할 수 없는 희열이 솟구쳤다.
악사명에게서 시작된 묘한 열기는 순식간에 적혈대 전체에 들불처럼 번져 갔다.
평소 대주인 악사명에게 동화된 만큼 적혈대원들도 서로 비슷한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다.
후우웅!
우우웅!
적혈대의 기세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악사명이 먹잇감을 보는 듯한 번들거리는 눈으로 진유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크크크. 뇌신의 제자라. 내 앞에 나타난 것을 후회하게 해 주마.”
진유현의 눈빛이 깊숙이 가라앉았다.
“아직도 무력 차이를 느끼지 못했나. 그래도 절정에 올랐다는 녀석이 주제 파악도 못하다니, 한심하군.”
자신을 무시하는 말투에 악사명이 눈을 희번덕거리며 노려봤다.
“그래, 네놈이 강한 건 인정하마. 하나 결국에는 나와 적혈대에 의해 넌 죽을 것이다.”
악사명의 머릿속에는 적소화나 진가장은 사라지고 없었다.
오직 하나 뇌신의 제자를 자신이 죽인다는 공명심만이 가득했다.
“적혈대는 사살검진(射殺劍陣)을 펼쳐라.”
악사명이 적혈대를 향해 명령했다.
“충.”
적혈대가 기세 좋게 대답하며 무척이나 빠르고 기민하게 대형을 이뤘다.
합격진.
보통 합격진이라 하면 공격보다는 방어를 중점으로 한다.
그 이유는 합격진이 자신들보다 강자를 상대하기 위해서 만들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대부분의 합격진이 상대의 공격에 쉽게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방어를 견고히 하고, 시간을 끌며 상대의 진을 뺀 이후에 공격을 하는 형식이었다.
소림의 나한진이나 무당의 칠성검진 등, 무림을 대표하는 합격진일수록 방어가 더 탄탄한 이유도 이래서였다.
특히 소림의 대나한진의 경우, 그 어떤 공격에도 절대 무너지지 않는 절대 방어가 가능하기에 불패의 진이라고 불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간혹 방어보다는 공격에 치중한 진들이 모습을 보였었다.
사살검진.
지금 적혈대가 펼치려는 사살검진이 그랬다.
적혈대의 사살검진은 여타의 다른 검진들과는 궤를 달리했다.
사살검진에는 방어가 없기 때문이다.
사살검진은 오직 공격을 위한 검진으로, 일백 명의 적혈대원들이 자신들의 목숨을 바치는 대가로 적을 말살하는 검진이었다.
적을 죽여야만 멈출 수 있는 검진.
자신의 혼을 불태우는 검진.
그 누가 죽고 싶을까?
보통의 상식을 가진 무인이라면 결코 익히려 들지 않을 검진이 분명했다.
하지만 적혈대원들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기쁘게 사살검진을 익혔다.
그 이유는 적혈대원들은 보통의 무인들과는 생각 자체가 달랐기 때문이다.
적혈대는 적을 죽이며 희열을 느끼는 악귀들이 모여 만들어진 집단이다.
그렇기에 적혈대는 사살검진을 익히는 데 전혀 망설임이 없었다.
오히려 강자를 죽일 수 있는 위력에 더 적극적으로 사살검진을 수련했다.
그런 의미에서 사살검진은 다른 검진보다 적혈대에게 딱 맞는 검진이라고 할 수 있었다.
방어가 아닌, 공격 위주의 검진이기에 한 번 발동하면 멈출 수 없는 사살검진이 진유현을 향해 전개됐다.
우우웅!
쿠우우우!
사살검진이 발동되며 적혈대 전체에서 지독한 살기와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적혈대원 개개인이 지닌 살기 자체도 상당히 짙은데, 일백 명의 적혈대원들의 살기가 사살검진의 영향으로 하나로 합쳐지자, 마치 넓은 평야 전체가 진한 살기로 가득 찬 느낌이 들었다.
마치 공간 자체가 살기 덩어리인 것 같은 느낌.
“컥.”
“큭.”
“헉.”
“뒤로 물러서라.”
“십 장 이상 물러나라.”
그 영향으로 진가장과 정천문의 무인들이 허겁지겁 뒤로 물러나기 바빴다.
단순히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격을 받자, 기세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콰아아아!
사살검진에 대항하듯 진유현의 전신에서도 패도적인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우우우우!
쿠우우우!
진유현의 기세와 적혈대의 기세가 정면에서 부딪쳤다.
두 기세는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서로 밀어붙이며 엮이더니, 소용돌이치며 주변을 휩쓸기 시작했다.
휘이이잉!
마치 그 모습이 말로만 듣던 새외 대막의 용권풍을 보는 듯했다.
그 정도로 압도적인 모습이었다.
단 한 명과 일백 명의 대결.
삼십 년 전에 벌어진 칠마혈사 이후 조용하던 무림에 초유의 전투가 산동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뇌왕전설의 시작이었다.

***

후우웅!
사살검진에서 붉은 안개가 피어올랐다.
붉은 안개는 조금씩 범위를 넓혀 가더니, 종내에는 적혈대 전체를 감싸 안았다.
정확히는 적혈대가 아닌 적혈대원 개개인을 감싸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응집되듯 부피를 줄여 가고 있었다.
점점 형태를 갖추는 붉은 안개.
적혈대원을 감싼 붉은 안개는 뭉쳐지며 날카로워지더니, 마침내 한 자루 검의 모습이 되었다.
무엇이든 베어 버릴 듯한 핏빛 혈검.
적혈대원의 몸이 완전히 사라지고, 그 자리에 핏빛을 머금은 요사스러운 검이 생겨났다.
날카로운 예기를 발하는 일백 개의 혈검.
쩌저저적!
혈검에서 뿜어지는 예기에 들풀이 휘날리고, 대지가 갈라지고 있었다.
상당히 떨어져 있는 사람들도 자신들의 몸이 베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의 예기였다.
진유현이 얼굴을 찡그렸다.
사살검진 전에는 적혈대가 자신의 기세에 정면에서 부딪치며 대항했다면, 지금은 일백 개의 혈검에서 뿜어지는 예기에 자신의 기세가 베어 나가고 있었다.
상상을 초월한 예기.
패도적인 기세를 베어 가며 다가오는 예기는 무척이나 위험했다.
진유현을 위협할 정도로.
진유현이 내공을 끌어 올리자, 전신에 뇌신기가 어른거리며 사살검진에 대항해 갔다.
사살검진을 짓누르려는 뇌신기와 그런 뇌신기를 베어 나가는 사살검진의 예기.
두 기세는 팽팽했다.
어느 한쪽이 밀리지 않는 상황.
진유현과 적혈대의 대치는 한동안 계속 이어졌다.
그러는 동안 진유현의 얼굴이 굳어졌다.
지금의 대치 상황은 진유현의 예상 밖이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자신이 화경에 오른 이상, 적혈대 정도는 언제라도 격파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화경은 그만큼 차원을 달리하는 경지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막상 적혈대가 합격진을 펼치자, 생각만큼 만만하지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사살검진의 예기가 진유현을 위협하기까지 했다.
핏빛이 감도는 일백 개의 혈검.
자신의 기세를 베어 가며 다가오는 검의 예기는 진유현의 가슴을 서늘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