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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왕무적 1권(14화)
五章 적혈대와의 사투(3)
사살검진은 아직 정점에 이른 게 아니었다.
만약 사살검진이 정점에 달해 먼저 공격해 들어온다면 진유현이 낭패를 볼 수도 있으리라.
그렇다고 자신이 먼저 공격하자니, 공격할 순간을 찾지 못했다.
분명 사살검진은 공격적인 검진인 만큼 군데군데 빈틈이 너무 많았다.
굳이 찾으려고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그런데 막상 그 빈틈이 생기는 혈검을 향해 진유현이 공격을 하려고 하면, 나머지 혈검들이 자신에게 쏟아질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 느낌에 진유현이 주춤거렸다.
그래서 진유현은 쉽사리 공격을 하지 못했다. 그렇다 보니 대치만 길게 이어졌다.
사실 이런 상황에 놓인 것은 진유현의 실수였다.
진유현이 화경인 것은 맞다.
십 년 동안의 폐관수련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정신을 단련한 것도 사실이고.
하지만 단 하나, 진유현이 생각 못한 것은 실전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정신을 단련해 부동심을 이룬다고 해도, 실제 목숨이 오가는 실전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것.
그것은 바로 흐름이다.
빈틈을 만들고, 공격하는 순간이 부드럽게 이어져 흐름을 타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진유현은 실전이 전무하다 보니 빈틈을 발견해도 공격하는 흐름을 찾지 못했다.
그렇기에 눈에 보이는 사살검진의 빈틈을 효과적으로 공략하지 못하는 것이다.
만약 다른 화경의 고수인 불성이나 검선이라면 사살검진을 큰 피해 없이 격파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살검진은 공격에 치중한 만큼 진유현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빈틈이 많았고, 그 빈틈이 서로 이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진유현이 그 빈틈의 흐름을 보지 못하는 것뿐이었다.
쉽사리 공격하지 못하는 진유현.
진유현이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쿠우우우!
사살검진의 기세가 정점에 이르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예기 또한 날카로워지며 대기를 사정없이 가르고 있었다.
그리고.
혈검(血劍).
일백 개의 혈검이 시뻘건 핏물을 연상시킬 만큼 붉게 물든 순간.
이어지던 대치가 끝났다.
피잉!
화살이 쏘아지는 파공성과 함께 일백 개의 혈검 중에 하나의 혈검이 빠르게 진유현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마치 탄환처럼 빠르다.
명검보다 날카롭다.
진유현이 얼굴을 굳히며 내공을 끌어 올렸다.
뇌신기가 모이며 다가오는 혈검을 후려쳤다.
쾅!
“큭.”
폭음과 함께 진유현이 신음을 흘리며 뒤로 한 걸음 밀려났다.
혈검은 뇌신기에 막히자 흐릿하게 사라져 갔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소멸하는 것이다. 그리고 드러나는 적혈대원.
적혈대원은 모든 정기를 빨린 목내이처럼 삐쩍 마른 상태로 죽어 있었다.
혈검을 형성하는 기운이 적혈대원의 내공은 물론 생명의 원기까지 흡수한 것이다.
지독한 검진.
진유현이 눈을 부릅떴다.
단순히 적혈대원이 목내이로 변해서가 아니다.
뒤로 밀린 진유현이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주르륵.
손바닥에 흐르는 한 줄기 선혈.
혈검의 예기가 뇌신기를 뚫고 손바닥에 상처를 입힌 것이다.
비록 살 거죽이 살짝 베인 정도였지만, 진유현이 놀라기에는 충분했다.
그만큼 뇌신기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적혈대원의 내공과 생명의 원기까지 흡수했다지만, 생각 이상의 예기였다.
하지만 놀라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피잉!
미처 몸을 추스르기도 전에 또 다른 혈검이 쏘아져 왔기 때문이다.
우우웅!
진유현이 내공을 더 끌어 올렸다. 진동과 함께 눈부신 뇌전이 오른손에 감겼다.
다시 부딪치는 뇌신기와 혈검.
쾅!
평야를 울리는 폭음.
“큭.”
진유현의 몸이 뒤로 반보 밀렸다.
이번엔 작정하고 막았는데도 뒤로 밀리자 진유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저절로 입가가 비틀렸다.
그리고.
그게 시작이었다.
피피피피피핑!
남은 혈검들이 연이어 진유현을 향해 쏘아지기 시작했다.
끝도 없이 쏟아지는 혈검.
하늘을 뒤덮는 붉은 비.
유성우(流星雨).
마치 그 모습이 지구에 비처럼 떨어지는 유성들을 보는 듯했다.
어찌 보면 아름답기까지 한 모습.
그러나 그 안에는 지독한 살기를 동반하고 있었다.
하나하나가 위협적인 혈검이 진유현을 노리고 떨어져 내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진유현의 얼굴이 잔뜩 굳어졌다.
아직 다가오지도 않았는데, 혈검의 예기에 살갗이 베이는 것만 같았다.
결코 쉽게 막을 수 있는 공격이 아니었다.
아니, 전력을 다해 막아야 한다. 막지 못하면 오히려 죽을지도 모른다.
본능이 귓가에 경종을 울렸다.
진유현이 천뢰신공을 극성으로 운용하자, 뇌신기가 전신을 감싸기 시작했다.
번쩍!
콰르르릉!
펼쳐지는 뇌정천벽.
뇌정천벽과 혈검비의 충돌.
콰콰콰콰콰쾅!
평야를 울리는 폭음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충돌의 여파에 십 장의 공간이 기의 폭풍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대지가 터져 나가며 비산했다.
사방에 먼지구름이 피어올랐다.
“큭.”
진유현이 신음을 흘렸다.
뇌정천벽은 절대 방어의 초식이다.
과거 뇌신이 뇌정천벽을 펼쳤을 때는 그 어떤 공격도 뇌정천벽의 방어를 뚫을 수 없었다.
그것은 과거 무림을 전란으로 몰아넣었던 칠마들조차도 마찬가지였다.
절대 방어.
그것이 바로 뇌정천벽이었다.
그런데 혈검의 계속 이어지는 공격에 뇌정천벽이 흔들리고 있었다.
단리패와 진유현의 성취가 같을 수는 없었다.
물론 뇌정천벽이 확실히 뚫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뇌정천벽을 계속 두드리며 작은 틈을 만들고, 그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는 혈검의 예기가 진유현의 전신에 상처를 입혔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처음에는 옷자락만 베던 예기가 시간이 지날수록 살갗을 베어 나가며 핏줄기를 늘려 가기 시작했다.
콰콰콰콰쾅!
평야에 폭음이 이어질수록 진유현의 상처 또한 계속 늘어났다.
하지만 그에 따라 혈검 또한 사라지고, 적혈대원의 목내이가 평야에 쌓이기 시작했다.
주르륵.
혈검의 숫자가 오십 이하로 줄어들 때에는 진유현의 입가에 핏줄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연이어 두드리는 혈검의 예기에 급기야 내상까지 입은 것이다.
스윽.
진유현이 입가에 흐르는 핏줄기를 소매로 닦았다.
피가 묻은 소매를 바라보는 진유현의 얼굴이 잔뜩 굳어졌다.
지신은 이렇게 수세에 몰리고자 무공을 수련한 게 아니었다.
파지직!
진유현의 얼굴이 싸늘하게 변하자, 전신에 흐르는 뇌전의 흐름이 변했다.
방어에서 공격으로 전환하려는 것이다.
번쩍!
두 눈에서 뇌광이 빛났다.
천뢰신공이 급속도로 단전을 휘감기 시작했다.
전신에서 폭발하듯이 뿜어져 나오는 뇌전.
뇌전은 허공으로 흩어지지 않고 오른손에 집중되어 모이며 광구(光球)를 이루었다.
찬란한 빛을 뿌리는 광구.
쿠우우우우!
광구에 맺힌 힘에 공기가 울렁이며 밀린다.
뇌격포(雷擊砲).
뇌전의 포탄이 혈검들의 사이로 뻗어 나갔다.
뇌격포와 혈검의 충돌.
우우웅!
콰아아아아앙!
폭음에 평야가 뒤흔들렸다. 공기가 서로 얽히며 비명을 질러 댔다.
충격파에 흙먼지가 휘날리는 평야의 모습은 말 그대로 포격에 의한 참상.
십여 개의 혈검들이 뇌전의 포격에 파괴되며 목내이로 변해 갔고, 충격의 여파에 결국에는 먼지로 화했다.
충격파에 혈검들의 공세가 주춤할 무렵.
텅.
평야를 울리는 진각음.
섬전보를 펼치는 진유현이다.
휘리릭!
진유현의 신형이 빠르게 주춤거리는 혈검들의 사이로 파고들었다.
퍼퍼퍼퍼퍽!
손에 뇌신기가 맺힌다.
진유현이 양손을 휘저음에 따라 뇌신기가 요동치며 혈검들을 차근차근 공격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거칠 게 움직이던 진유현의 신형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혈검들 사이를 이동하며 공격해 갈수록 조금씩 부드럽게 변해 갔다.
근접 거리에서 혈검들과 어울릴수록 실전에 적응이 돼 가고 있는 것이다.
이미 화경이라는 높은 경지에 든 만큼 적응하는 속도도 다른 무인에 비해 빨랐다.
혈검들과의 전투로 진유현이 점점 발전해 갔다.
반쪽짜리 화경에서 진정한 화경으로 변해 가는 것이다.
진유현이 한 번 흐름을 타기 시작하자 무서운 속도로 혈검들을 몰아치기 시작했다.
진유현의 신형이 혈검들의 사이로 파고들어 진형을 흩트리자, 혈검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콰콰콰콰쾅!
폭음이 연이어 울려 퍼졌다.
그에 따라 혈검들이 파괴되어 드러난 목내이들도 허공에서 바스러지며 흩어졌다.
진유현은 흐름을 타고, 그 흐름에 몸을 맡길수록 현재의 상황을 잊기 시작했다.
그리고 종내에는 아무것도 인지하지 못하는 무아지경에 들고 있었다.
이렇게 되자, 혈검들의 예기와 기세는 더 이상 진유현에게 위협적이지 못했다.
오히려 진유현을 적절히 자극하며 무아지경에 든 상황에 도움을 주는 격이었다.
진유현의 신형이 물 만난 물고기처럼 혈검들 사이를 휘젓고 다녔다.
진유현의 움직임에 혈검들은 무력했다.
일수일살.
진유현이 한 번 손을 휘저으면 혈검 하나가 반드시 사라져 갔다.
혈검들의 숫자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
후우우웅!
악사명의 주위에는 붉은 안개가 아직 흡수되지 않고 머물고 있었다.
사살검진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아직 혈검이 되지는 않은 것이다.
한 번 혈검으로 변한다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죽음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망설이는 것이다.
전황을 살피며 혈검들이 진유현을 죽이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상황이 그렇지 않았다.
악사명이 핏빛으로 충혈된 눈으로 전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의 끝에는 진유현의 신형이 혈검들을 유린해 가는 모습이 들어왔다.
진유현의 뇌신기에 혈검들이 사라져 가는 모습.
혈검의 공격에 늘어나던 상처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상처는커녕 검이 옷자락을 스치지도 못했다.
진유현이 점점 압도해 갔다.
전장을 지배했다.
혈검을 상대하며 조금씩 더 완숙해지는 것이다.
더 발전해 가는 것이다.
빠드득.
그 모습을 바라보는 악사명이 분한 마음에 이를 거칠게 갈았다.
처음 진유현을 상대할 때만 해도 충분히 죽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뇌신의 제자라도 결국에는 애송이일 뿐이라는 생각.
실제로 진유현이 상당히 위험한 순간까지 갔다고 느낀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것도 한순간이었다.
지금은 오히려 자신들이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사살검진이 무너질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전장에는 혈검이 이십여 개밖에 남지 않았다.
이대로 간다면 적혈대는 허무하게 전멸하고 말리라.
전장을 바라보는 악사명의 두 눈이 붉게 변하며 혈안이 되어 갔다.
그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