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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왕무적 1권(15화)
五章 적혈대와의 사투(4)


우우우우웅!
사살검진에 머물던 붉은 안개가 악사명의 전신으로 모여들었다.
결국 선택한 것이다.
혈검이 되기로.
진유현을 반드시 죽이기로.
악사명도 혈검이 되어 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 모습이 다른 혈검들과는 달랐다.
다른 혈검에 비해 더 많은 붉은 안개가 모여들었고, 그 크기와 날카로운 예기도 다른 혈검과 비교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점점 짙어지는 살기.
대기마저 벨 듯한 예기.
기어코 완전히 변해 버린 혈검.
쿠우우우!
쩌어어억!
그 날카로운 예기에 대지가 거미줄처럼 갈라지며 비명을 질렀다.
예기가 전설의 보검보다 더했다.
퍽!
스르륵!
그리고 진유현이 마지막 혈검을 목내이로 되돌리는 순간이었다.
악사명의 앞에 진유현이 등을 지고 서게 됐다.
완벽한 기습의 상황.
그리고.
피잉!
악사명이 화한 혈검이 진유현을 노리고 빠르게 쏘아져 나갔다.
빛살 같은 속도.
닿기도 전에 베일 것 같은 날카로움.
진유현의 몸이 움찔거렸다. 혈검의 날카로운 기세를 느낀 것이다.
진유현이 다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시야에 들어오는 하나의 혈검.
지금까지 상대한 혈검들과는 달랐다.
혈검이 지닌 예기가 공간을 격하고 진유현을 베어 오고 있었다.
마치 마음마저 베어 버릴 듯한 예기.
그 섬뜩한 예기에 진유현이 천뢰신공을 극성으로 운용해 갔다.
파지지직!
무리한 내공의 운용인지 기혈이 통증을 호소했지만, 무시하고 끌어 올릴 대로 끌어 올렸다.
생명의 위험을 느낀 것이다.
그리고 맺혀지는 뇌전의 광구.
뇌격포가 다시 한 번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뇌격포와 혈검이 충돌했다.
콰아아아앙!
천지를 울리는 굉음.
공기가 밀리며 터져 나갔다.
대지가 갈라지고, 기의 폭풍이 주변을 휩쓸고 지나갔다. 평야가 지진이라도 난 듯이 뒤흔들렸다.
“큭.”
휘날리는 먼지 사이로 진유현이 신음을 흘리며 뒤로 밀려났다.
주르륵.
그런 진유현의 가슴은 길게 베어져 핏줄기를 흘리고 있었다.
혈검의 예기가 뇌격포를 뚫고 진유현의 가슴을 베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진유현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혈도를 눌러 지혈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전방을 바라보았다.
시야에 들어오는 혈검.
혈검은 뇌격포와 충돌한 후, 붉은 기운이 조금씩 옅어지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종내에는 붉은 기운이 완전히 사라지더니, 악사명의 목내이가 드러났다.
뼈만 남은 앙상한 목내이.
절정 고수의 죽음치고는 허무하다.
아니, 비참했다.
스르르륵!
그리고 충돌의 여파에 먼지로 흩어져 갔다. 시체조차 세상에서 사라졌다.
악사명을 끝으로 평야의 전투가 끝났다.
그 결과에 좌중이 침묵에 빠졌다.
그것은 하나의 충격이었다.
사혈성의 무력 집단인 적혈대.
그런 적혈대의 전멸.
사혈성을 대표하는 적혈대가 단 한 명에 의해서 전멸한 것이다.
진유현은 이 전투를 계기로 자신의 무력을 무림에 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전투로 인해서 진유현은 무림에서 뇌왕이라 불리게 되었다.
사부가 뇌신이기에 뇌왕이라 불리는 것.
무림에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뇌왕이라는 새로운 바람이.


六章 사혈성주(1)


산동성 평도(平度).
사혈성.
지하 석실.
빛 한 점 없는 지하 석실.
사방이 꽉 막힌 지하 석실에 한 명의 노인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우우웅!
노인의 전신에서 검은 기운이 일렁였는데, 노인이 호흡을 조절함에 따라 검은 기운도 같이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노인의 숨결처럼.
검은 기운은 상당히 넓은 지하 석실을 꽉 채워 가기 시작했다.
조금씩 부피를 늘려 가는 검은 기운.
지하 석실에 내려앉은 어둠보다 더 시커먼 광채를 내는 검은 기운.
지독히도 패도적인 기운.
그것은 패도를 넘은 지독한 마기였다.
기운이 지하 석실을 꽉 채우고, 더 부피를 늘릴 수 없게 되는 순간.
쿠우우우!
쩌어어억!
검은 기운이 지하 석실을 뚫고 나가려는 듯 지하 석실을 뒤흔들고 있었다.
그 기세에 지하 석실 벽에 실금이 거미줄처럼 생겨 갈라지기 시작했다.
스슥!
마치 지하 석실이 무너질 듯이 흔들리며 돌조각들이 떨어져 내렸다.
후우우웅!
끼이이익!
흔들리는 강도가 점점 심해지고.
지하 석실이 그 기운에 뒤틀린다는 생각이 들 때쯤.
휘이이이잉!
갑자기 지하 석실을 꽉 채운 검은 기운이 노인의 전신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너무도 빠르게.
그리고 검은 기운이 모두 노인에게 흡수된 순간.
지하 석실에 적막이 감돌고.
번쩍!
노인의 두 눈이 뜨여졌다.
노인의 눈동자.
어두운 지하 석실임에도 불구하고 노인이 두 눈을 뜨는 순간, 주위가 환하게 빛나는 것 같았다.
두 눈에 담긴 뜻은 지독한 야망과 패기.
검은 기운은 모두 노인의 전신으로 흡수됐지만, 그 위압감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지하 석실에는 노인의 거대한 존재감이 남아 있었다.
그것은 검은 기운이 노인의 몸 안으로 깊숙이 갈무리돼서 응집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씨익.
노인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전신에 흐르는 지독히도 패도적인 마기가 마음에 들어서였다.
천하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마치 천하제일인이 된 듯한 느낌을 갖게 만들 정도로 강한 마기였다.
노인이 잠시 동안 몸 안에 갈무리된 기운을 느끼며 즐기고 있었다.
스윽.
흐뭇하게 웃고 있던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뚜벅뚜벅.
노인이 걸음을 옮겨 지하 석실의 문으로 다가갔다.
빛 한 점 들지 않아 지하 석실은 바로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지만, 노인은 마치 모든 것이 잘 보인다는 듯이 거침없이 걸어갔다.
어둠은 노인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드드드득.
지하 석실 문 앞에 선 노인이 문 옆의 돌출된 부분을 손으로 건드리자, 진동음과 함께 지하 석실의 문이 천천히 열리고 있었다.
노인이 잠시 지하 석실을 바라보더니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휘이이잉!
문의 틈을 비집고 스며드는 한 줄기 바람.
노인이 나간 지하 석실에는 싸늘한 적막만이 감돌았다.

***

사혈성주 집무실.
사혈성주가 일을 보는 집무실 창가에 지하 석실에 있던 노인이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그 모습이 무척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지고 있었다.
마치 늘 하던 것처럼.
그러나 그럴 수밖에 없었다.
혈존 사공학.
산동삼패의 한 곳인 사혈성의 성주.
그리고 천하에서 손꼽히는 무력을 지닌 초절정 고수인 혈존.
모든 무인이 두려워하는 혈존이 바로 지하 석실의 노인이었던 것이다.
사공학은 고요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빛은 고요하지만, 그 안에 담긴 뜻은 패도다.
사공학이 창밖의 사혈성을 지켜보고 있었다.
사공학의 집무실은 사혈성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창밖으로 사혈성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사공학은 이렇게 집무실의 창으로 사혈성 전체를 내려다보는 것을 좋아했다.
사공학 자신이 세운 사혈성이기에 더 집착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사혈성의 전경을 바라보는 사공학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자신의 모든 것이 바로 사혈성이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저벅저벅.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
그리고 집무실 밖에서 조심스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성주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남자의 목소리지만 생각보다 가는 목소리였다.
“군사인가? 들어오게.”
묵직한 음성이다.
드르륵.
집무실 문이 열리고 중년인이 들어왔다.
사혈성이라는 거대한 문파를 실질적으로 책임지고, 세세한 계획을 세우고 이끄는 자.
사혈성의 군사인 연남일이었다.
사파의 군사치고는 정파의 인물처럼 상당히 청수한 인상을 지니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학문에만 매진하는 순진한 학자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연남일은 사파의 하늘인 사혈성의 군사였다.
결코 겉모습으로 판단할 수 없는.
연남일이 사공학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 자세는 사공학을 존경하는 마음이 묻어 나올 정도로 공손했다.
“성주님을 뵙습니다.”
사공학이 창밖을 보며 뒤돌아선 상태로 말했다.
“요새 한창 바쁜 군사가 웬일인가?”
사공학의 물음에 연남일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대계에 차질이 생겼습니다.”
그제야 사공학이 연남일에게 고개를 돌렸다.
“호오. 일이 틀어졌다고?”
사공학이 화났다기보다는 오히려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연남일을 바라보았다.
“죄송합니다.”
연남일이 죄를 지은 것처럼 고개를 깊숙이 숙여서 다시 들어 올릴 줄을 몰랐다.
마치 모든 게 자신의 잘못인 것처럼.
“괜찮네. 일을 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나는 그보다는 군사가 진행한 일이 틀어졌다는 게 더 흥미롭군.”
사공학은 정말 궁금한 듯했다.
적어도 사공학에게 있어 연남일은 모든 계획에 흐트러짐이 없는 군사였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연남일과 함께한 사십 년간 일이 틀어지는 것을 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
그야말로 군사로서 완벽한 존재.
사공학에게 연남일은 그런 존재였다.
그런데 지금 대계가 비틀어졌다는 것이다.
“진가장의 일이 틀어졌습니다.”
“진가장?”
사공학이 진가장에 대해 생각에 잠겼다. 기억 속에 있는 진가장을 끄집어내려는 것이다.
그러나 고개를 가로저었다.
“진가장이라, 잘 모르겠군.”
“모르실 겁니다. 진가장은 청주에 자리한 조그만 중소문파입니다.”
“청주라면 정천문으로 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곳이군. 그런데 중소문파 때문에 일이 틀어졌다는 것인가?”
사공학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중소문파를 하나 처리하는 일이 잘못됐다는 게 이해가 안 가는 것이다.
사공학에게 있어서, 그리고 사혈성에게 있어서 중소문파는 언제든지 지울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진가장으로 향한 적혈대가 전멸했습니다.”
사공학의 눈이 반짝였다.
진정 놀랍다는 표정.
“적혈대가 전멸했다?”
“죄송합니다.”
연남일의 고개가 더 깊숙이 숙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