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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왕무적 1권(16화)
六章 사혈성주(2)
“적혈대가 전멸했다는 것은 대주인 악사명도 죽었다는 것인가?”
“네.”
“청주라서 정천문이 나선 것인가.”
사공학이 조용히 중얼거리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정천문은 정파의 주축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명분을 중요하게 여긴다.
사혈성이 정천문을 직접적으로 적대하지 않는 이상, 정천문도 무력을 사용하지는 않을 거라고 예상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공학의 생각은 빗나갔다.
“정천문 때문이 아닙니다.”
연남일이 나서서 틀린 부분을 말했다. 그러자 사공학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연남일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기 때문이었다.
“정천문이 아니다?”
“네.”
“설마 백검문이라도 나선 것인가?”
사공학의 얼굴이 굳어졌다.
사혈성이 산동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아직은 백검문이 나서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백검문이 움직이지 못하게 그들의 정보를 은밀히 흘렸지 않은가.
“아닙니다.”
“정천문도 아니고, 백검문이 개입한 것도 아닌데, 적혈대가 전멸했다?”
“네.”
산동에서 같은 삼패가 아니고서야 누가 적혈대를 전멸시킬 수 있단 말인가?
사공학은 그 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더구나 적혈대의 대주인 악사명은 사공학도 인정하는 수하였기 때문이다.
연남일이 그런 사공학의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진가장의 소장주 때문입니다.”
“진가장의 소장주?”
“네.”
“그러니까 진가장의 소장주라는 한 녀석에게 적혈대가 전멸했다는 것인가?”
“네.”
사공학이 황당한 얼굴을 했다.
“자네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충분히 말이 됩니다.”
“말이 된다?”
“네. 그의 스승을 생각하면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사공학의 눈에 광채가 어렸다.
연남일의 말투로 보아 그 소장주라는 녀석의 스승이 굉장한 고수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군사는 마치 그 녀석이 절대이신의 제자라도 되는 듯이 말하는군.”
“맞습니다. 그의 스승이 절대이신 중 한 명인 뇌신 단리패라고 합니다.”
“뇌신?”
사공학의 진정 놀란 표정을 지었다.
농담으로 한 말인데, 진짜 뇌신의 제자다?
그것도 대계를 시작한 지금?
“네. 십 년 전에 뇌신의 제자가 된 듯합니다.”
“갑자기 나타난 뇌신의 제자라. 재미있군. 그 녀석의 무위는 어떤가.”
“초절정의 극에 달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초절정의 극?”
“네. 혼자서 적혈대의 사살검진을 파훼했으니, 초절정의 극에 달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호오, 재미있군. 정말 재밌어.”
사공학은 말로는 재미있다고 하면서도 눈은 전혀 웃고 있지를 않았다.
싸늘하게 식은 것이다.
그 안에 담긴 것은 지독한 살기였다.
연남일의 고개가 더 숙여졌다.
“죄송합니다.”
“아니네. 갑자기 나타난 뇌신의 제자가 자네의 잘못은 아니지. 그보다 뇌신도 같이 나타난 건가.”
“아닙니다. 뇌신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계를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연남일이 사공학을 찾아온 이유.
이후의 일을 허락받기 위해서였다.
자신이 사혈성의 군사이지만, 뇌신의 일은 자신의 권한을 넘는 일이었다.
연남일은 자신이 가진 권한을 넘어선 적이 없었다.
그래서 더욱 사공학의 신뢰를 받았다.
“뇌신이 아니라면 그대로 진행하게.”
“하지만…….”
연남일이 뒷말을 흐렸다.
연남일에게 있어서 뇌신의 제자는 상당히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정확히는 뇌신의 제자보다는 그 뒤에 있는 뇌신의 존재이리라.
만약에 뇌신이 다시 나타난다면.
뒷일은 생각하기도 싫었다.
사공학이 그 점을 눈치챘다.
“괜찮아. 그대로 진행하게. 설사 뇌신이 나타난다고 할지라도 쉽게 당하지는 않을 테니.”
“…….”
사공학의 말에 연남일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렇다면 대공을 이루신 것입니까?”
“다행히 벽을 깰 수가 있었네.”
벽을 깼다는 말.
그것은 초절정을 넘어 화경에 들어섰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연남일이 잔뜩 흥분했다.
현 무림에 화경의 고수가 알려지기론 두 명.
그것도 산동 무림에는 없었다.
무림의 양대 산맥인 소림과 무당뿐이었다.
그런데 사공학이 화경에 올랐다면 그 누가 사공학을 막을 수 있을까.
적어도 산동에는 없는 것이 확실했다.
연남일에게 있어서 산동 무림은 이미 사혈성의 이름으로 통일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경하드립니다.”
“허허허. 그러니 다른 걱정은 말고 군사는 대계에만 신경 쓰도록 하게.”
“충.”
연남일이 그 자리에서 부복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사공학이 문득 물었다.
“그보다 백검문은 어떻게 움직이고 있나?”
“저희가 흘린 칠마의 잔재를 찾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좋군. 계속해서 조금씩 정보를 흘리도록 하게. 정천문을 상대하는 동안은 백검문이 움직여서는 안 되니”
“그런데 칠마 쪽에서 저희가 정보를 흘리는 걸 알아챌 수도 있습니다.”
“괜찮네. 그때쯤이면 그들은 정파와 싸우기에도 바쁠 테니까.”
“하지만 칠마 쪽이 정파를 이긴다면, 맹약을 어긴 저희에게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연남일의 말에 사공학이 피식거리며 웃었다.
“자네는 칠마가, 아니 칠마혈사 당시 절대이신에게 셋이 죽었으니 이제는 사마로군. 사마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면 정파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들은 강합니다.”
대답하는 목소리에는 두려움마저 담겨 있었다.
칠마란 그만큼 공포의 대상이다.
사혈성의 군사가 두려움을 느낄 정도로.
“맞아. 그들은 강하지. 하지만 천 년 무림 역사를 통틀어도 한 집단이 무림을 통일한 적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야. 나는 이번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네. 그러니 더 이상 그 일로 문제 삼지 말고 대계를 진행하도록 하게.”
“충.”
칠마가 공포의 대상이라지만, 사공학이야말로 연남일의 지존이자 하늘이었다.
더구나 사공학은 화경에 올랐지 않은가. 칠마들에게도 밀릴 이유가 없었다.
하늘이 명령하니 그대로 시행하는 게 당연하다. 토를 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사공학이 눈살을 찌푸렸다.
기분이 상한 것 같은 모습.
“일을 그대로 진행하고, 그대는 이만 나가 보게.”
축객령.
하지만 연남일은 사공학의 태도에서 무엇인가 알겠다는 듯이 눈을 빛내고 있었다.
“그럼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드르륵.
연남일이 고개를 숙이고는 뒤로 물러나 천천히 집무실을 나갔다.
***
집무실에 찾아온 정적.
잠시 아무 말이 없던 사공학이 인상을 찡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언제까지 그렇게 숨어 있을 생각인가?”
아무도 없는 집무실에 말을 하는 사공학.
하지만 곧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스슥!
집무실의 한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은밀하게 한 인영이 나타난 것이다.
아무 소리도 없이 나타난 회의를 걸친 인영.
회의 인영은 모습을 드러낸 지금도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눈으로는 보이지만, 기척은 느껴지지 않는 회의 인영.
회의 인영을 바라보는 사공학의 눈이 편치 않았다.
화경에 오르지 못했다면 자신도 느끼지 못하고 뒤를 잡혔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사공학이 노골적으로 마음에 안 든다는 얼굴로 회의 인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환영사신이 웬일로 나를 찾아왔는가?”
사공학이 입에 올린 환영사신.
그 말은 결코 가볍지 않다.
무림에서 금기와 같았기 때문이다.
환영사신(幻影邪神).
환마(幻魔)의 직속 부하들.
칠마 중 환마의 직속 부하들을 가리켜 환영사신이라고 부른다.
환영사신은 무공 자체도 강하지만 암살에 더 특화됐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의 무공은 화경, 아니 최소한 초절정의 극에 이르지 않으면 기척을 느끼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환영사신이 암살을 시도하면 실패하는 법이 없었다.
아니, 유일하게 실패한 존재들이 바로 절대이신 정도였다.
그 외에는 누구도 그들의 칼날을 피할 수 없었다.
칠마혈사 당시 환영사신에 의해 암살된 정도 무림인들이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들은 말 그대로 사신이었다.
죽음을 관장하는.
환영사신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높낮이가 없는 음성이다.
마치 진짜 귀신처럼.
그래서 더 소름 끼쳤다.
“주인님의 전언입니다.”
환영사신의 주인.
환마를 말함이다.
“환마의 전언이라. 그래, 무슨 일인가.”
“주인님께서는 사혈성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 주기를 바라십니다.”
“본 성은 지금도 충분히 적극적인 걸로 알고 있는데, 아닌가?”
“성주님이 나서 주기를 원하십니다.”
사공학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러니까 나보고 직접 움직여라, 이 말인가?”
“네.”
사공학의 전신에서 기세가 폭사 되었다.
화아아악!
쿠우우우우!
그 거친 기세에 집무실이 요동치고 있었다.
기세는 순식간에 집무실 전체를 채우더니, 환영사신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환영사신을 짓누르는 기세.
“큭.”
환영사신이 신음을 흘리며 잠시 휘청거렸다.
사공학의 기세를 견디기 힘든 것이다.
화경의 고수는 기세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들 한다.
그런 화경의 고수가 작정하고 뿜어내는 기세다. 결코 기세가 평범할 수가 없는 것이다.
사공학이 그 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에게 명령하는 것인가?”
감정이 전혀 섞이지 않은 음성.
당장이라도 환영사신을 향해 살수를 펼칠 것만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아닙…… 니다. 주인님께서는 부탁이라고 하셨습니다.”
환영사신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피식.
사공학이 환영사신의 대답에 입가에 조소를 머금고는 기세를 거둬들였다.
“헉. 헉.”
잠시 환영사신이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흐트러진 호흡을 가다듬기 위해서다.
“부탁이라. 그래도 싫다면.”
환영사신이 순식간에 무표정한 얼굴로 바꾸며 사공학을 바라보았다.
“주인님을 도와주는 대가로 흑철마력기를 받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흑철마력기(黑鐵魔力氣).
칠마 중 권마의 독문무공이다.
권마는 칠마혈사 당시에 절대이신에게 죽은 삼마 중 하나이기도 했다.
환마는 권마가 죽자 흑철마력기를 사공학에게 주는 대가로 사혈성과 밀약을 맺었다.
후일 자신들을 도와주는 대가로 말이다.
사공학은 당연히 환마의 조건을 받아들였다.
칠마혈사 당시 공포의 대상이었던 권마의 무공이 평범할 리 없기 때문이다.
사공학이 흑철마력기에 욕심을 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사공학은 흑철마력기 덕분에 초절정을 넘어 화경에 들 수 있었던 것이기도 했다.
그만큼 권마의 무공은 기존 자신의 무공과 차원을 달리하고 있었다.
환영사신은 그 점을 말하는 것이다.
자신들로 인해서 사공학이 화경에 들 수 있었다고.
그 사실에 사공학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나도 알고 있다. 그래서 정확히 어떻게 해 주길 바라는 것이냐.”
“성주님이 뇌왕(雷王)을 죽여 주길 원하십니다.”
“뇌왕?”
사공학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은 알지 못하는 별호였기 때문이다.
“뇌신의 제자를 뇌왕이라고 칭합니다.”
“아, 그 진가장의 소장주라고 했나. 뇌신의 제자가 뇌왕이라, 어울리는군. 그래서 나보고 직접 나서서 뇌왕을 죽여 달라, 이건가?”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