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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왕무적 1권(17화)
六章 사혈성주(3)
피식.
사공학이 환영사신을 비웃었다.
“그러니까 나를 통해 뇌왕을 죽여서 뇌신이 다시 무림에 모습을 드러내는지 알아보려는 뜻인가?”
“…….”
침묵하는 환영사신.
“나를 뇌신을 불러내는 데 이용하겠다라…….”
사공학이 말없이 환영사신을 바라보았다. 무표정한 얼굴이 환영사신을 향했다.
환마의 계획대로 움직이는 것은 기분 나쁘다. 그것은 자신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못한다.
천하의 그 누구도 자신을 부릴 수는 없었다.
그것이 설사 황제라 할지라도.
하지만 뇌신의 제자인 뇌왕을 죽이는 것.
그것은 너무나 달콤한 유혹이었다.
뇌신의 무공을 꺾는 것과도 같으니, 자신에게 나쁠 것이 없었다.
오히려 그것이야말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리라.
화경에 오른 자신의 첫 번째 제물로, 어쩌면 가장 잘 어울리는 존재가 바로 뇌왕일 수도 있었다.
그 사실에 사공학이 가볍게 흥분했다.
그러고는 결정했다.
“좋다. 환마에게 가서 전하거라. 나, 혈존이 뇌왕을 죽이겠다고.”
“네.”
환영사신이 고개를 숙이고는 대답했다.
스르륵.
그와 함께 환영사신의 신형이 허공에 녹아들며 사라지고 있었다.
직접 보면서도 믿기지 않는 은신술.
유령을 보는 듯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사공학의 두 눈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전신에서 살기가 피어올랐다.
환영사신이 완전히 사라진 집무실.
다시 찾아온 적막감.
사공학이 자신의 주먹을 들어 올렸다.
그와 함께 단전에 머물던 흑철마력기가 기혈을 타고 무서운 속도로 흐르기 시작했다.
노도와 같이 일어난 흑철마력기가 사공학의 오른손에 몰려들었다.
쿠우우우우우!
끼이이익!
그 기운에 집무실이 날아갈 듯 요동치고, 집기들이 비명을 토해 내며 부서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사공학은 멈추지 않고 더 강하게 기운을 끌어 올렸다.
쩌어어억!
이제는 집무실 벽이 비틀리기 시작했다.
압도적인 마기.
사공학은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오른손에 맺힌 흑철마력기.
이 기운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
그 누구도 자신의 앞에 무릎 꿇릴 수 있다는 것을.
흑철마력기의 힘은 사공학에게 절대적인 자신감을 주고 있었다.
마치 세상에 자신 혼자 우뚝 선 듯하게.
“나는 너희들과는 다르다. 천하에 욕심을 내지는 않는다. 가능하다고 생각지도 않고. 다만 산동성 하나만은 확실히 나의 발밑에 둘 것이다.”
산동성의 패주.
사공학이 뜻하는 것.
그것이 바로 사공학이 원하는 것이었다.
흑철마력기의 파괴적인 마기를 즐기는 사공학의 두 눈이 야망으로 불타고 있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사혈성이 산동 무림에 나서기 시작하는 계기였다.
七章 비검문으로(1)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는 속담이 있다.
말은 비록 발이 없지만 천 리 밖까지도 순식간에 소문이 퍼진다는 뜻이다.
북쪽 평야의 전투가 그랬다.
진유현과 적혈대와의 사투.
진유현 단 한 명이 사혈성의 주 무력대인 적혈대 전체를 전멸시킨 것.
그리고 진유현의 뇌신의 제자라는 것까지.
북쪽 평야에 있었던 전투는 순식간에 천하 무림 곳곳에 퍼져 나갔다.
뇌신의 제자의 출현.
적혈대와의 전투.
어느 것 하나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천하는 진유현의 무공에 더 놀랐다.
적혈대는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악명이 자자한 집단.
그런 적혈대를 진유현이 혼자서 전멸시킨 것이다.
그런 일을 누가 할 수 있을까?
아마 현 무림에서도 그 정도의 무력을 지닌 무인은 손가락에 꼽아야 할 정도밖에 안 될 것이다.
그 얘기는 진유현이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다는 이야기도 된다.
그 전투를 두고 많은 무림인들이 설왕설래했지만, 결국 결론은 하나였다.
진유현의 무공이 초절정에는 든 것으로.
그와 함께 수많은 무림인들이 열광했다.
삼십 년 동안 모습을 감추었던 뇌신의 흔적이 드디어 드러난 것이다.
뇌신은 정파 무림인들에게 경외의 대상이니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것도 그 제자가 초절정 고수가 되어서.
물론 그것은 정파 무림인에 한해서였다.
사파 무림인은 오히려 진유현의 등장에 숨을 죽이기 시작했다.
과거 뇌신이 무림에서 활동할 때에, 뇌신에 의해서 수많은 사파인들이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뇌신의 단호한 손속은 결코 사파인을 살려 두는 일이 없었다.
진유현이 뇌신의 제자이니 불안했다.
그렇기에 진유현의 행보에 집중했다.
그리고 적혈대를 전멸시킨 진유현에게 별호가 생겼다.
뇌왕(雷王) 진유현.
무림인들은 진유현을 뇌왕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진유현에게 뇌왕이라는 별호는 전혀 부족하지 않았다.
적혈대를 혼자서 전멸시킨 것으로 천하에 그 무공을 입증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뇌왕의 출현을 가장 반긴 것은 산동 무림이었다.
안 그래도 사혈성이 준동하여 산동 전체에 혈풍이 부는데, 뇌신의 제자가 모습을 드러냈으니 사혈성도 잠잠해지리라고 짐작한 것이다.
아무리 사혈성이 삼패라고 할지라도 뇌신에게 시비를 걸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진가장은 많은 손님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앞으로 무림의 주력이 될 뇌왕 진유현을 만나 안면을 익히고, 친분을 쌓기 위해서 많은 무림인들이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천하 무림이 진가장을 주목하고 있었다.
***
청주는 산동에서 제법 큰 도시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들 대부분은 상인들이었다.
청주가 강의 지류까지 끼고 돌아 돈이 되는 곳이니 당연하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진유현이 뇌신의 제자라는 게 밝혀지고, 뇌왕이라 불리기 시작하면서 상인보다 많은 무림인들이 청주로 모이기 시작했다.
진유현과 친분을 쌓거나, 아니면 멀리서 구경이라도 해 보려는 것이다.
그래서 청주는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두두두두두!
청주의 관도.
사람들이 붐비는 관도를 빠르게 달리는 말 한 마리가 있었다.
얼마나 급하게 달리는지 말은 물론이고 타고 있는 사람 또한 먼지투성이였다.
말에는 한 청년이 타고 있었다.
“헉. 헉.”
그 청년은 말을 타는 게 힘든지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었다.
말 또한 한계인지 입가에 거품을 물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청년은 멈추지 않고, 오히려 속도를 더 내려고 말의 엉덩이를 채찍으로 내려치며 독촉하고 있었다.
“비켜 주십시오.”
말에 탄 청년은 연신 소리를 지르면서 앞으로 달려 나가고 있었다.
말의 질주로 사람들이 다급히 비켜서면서 관도가 갈라지고, 말은 그 사이를 질주했다.
“악.”
“피해.”
“저 녀석 뭐야.”
“이런 미친놈.”
관도에 있던 사람들이 말을 탄 청년을 향해 저마다 비명과 함께 소리를 치며 욕했지만, 청년은 상관하지 않고 급하게 말을 몰고 있었다.
한참을 계속 달리던 말이 멈춘 것은 한 장원의 앞에 도착해서였다.
진가장.
말이 도착한 곳이 바로 진가장이었다.
“헉. 헉. 헉.”
진가장까지 얼마나 급하게 왔는지 청년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거기에 말은 입가에 거품을 물며 쓰러지기 일보 직전으로 보였다.
그 기세에 진가장의 문지기들이 긴장하며 다가왔다.
상당히 급해 보였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십니까?”
“흐읍.”
청년은 잠시 호흡을 가다듬더니, 문지기를 향해 포권을 취했다.
“사혈성의 일로 비검문(飛劍門)에서 왔습니다. 장주님을 뵐 수 있겠습니까?”
청년의 말에 문지기들이 흠칫하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사혈성에 관한 일은 자신들이 판단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비검문은 대문파는 아니더라도 상당히 강한 문파에 속하지 않던가.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둘 중에 한 명의 문지기가 장원 안으로 급히 들어가고 있었다.
타타타탁!
조금의 시간이 지나고, 진가장의 총관이 급하게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진가장의 총관을 따라 비검문의 사내 또한 진가장 안으로 들어갔다.
***
진가장 집무실.
집무실의 탁자에 네 명의 사람들이 모여 앉아 있었다.
진가장주인 진성원과 이번에 뇌왕이라는 별호를 받은 진유현, 그리고 정천문의 산동일미 적소화와 정검대주 조일영이었다.
비검문에서 사혈성의 문제로 급하게 왔다는 소식에 집무실에 모두 모인 것이다.
본래 적소화와 조일영은 적혈대와의 전투가 끝난 후 정천문으로 돌아가야 했지만, 정검대원을 시켜서 소식만 정천문에 전한 후에 진가장에 계속 머물고 있는 중이었다.
진유현 때문이었다.
뇌신의 제자인 뇌왕이 탄생했으니, 옆에서 친분을 쌓으며 정보를 얻으려는 것이다.
이 둘의 행동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진유현은 무림에 떠오르는 별이었으니까.
어쩌면 앞으로 무림은 진유현을 중심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계속해서 진가장에 머물고 있었다.
집무실에 고요한 침묵이 감돌았다.
후릅.
집무실에 차를 마시는 소리가 울렸다.
계속되던 집무실의 적막은 적소화에 의해 깨졌다.
진유현의 눈치를 살피던 적소화가 입을 열었다.
“진 소협, 뇌신 어르신은 어떠신가요?”
진유현이 적소화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잘 지내고 계십니다.”
진유현의 말에 적소화가 눈을 반짝였다.
“어르신은 어디에 계신가요? 무공은 어떠세요? 호사가들이 말하길, 절대이신 어르신들이라면 전설의 경지인 현경에 올랐을 수도 있다던데, 진짜인가요?”
적소화가 단리패에 관해 궁금한 점을 속사포처럼 끊임없이 물었다.
순간 흥분한 것이다.
진유현이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적소화를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적소화와 함께하며 차분하고 조신한 모습만 보아 왔는데, 이렇게까지 수다스러운 모습을 보자, 한순간 당황한 것이었다.
진유현의 시선에 적소화의 얼굴이 순식간에 빨갛게 달아올랐다.
뒤늦게 자신의 행동에 부끄러움을 느껴서다.
“큭.”
적소화의 그 모습이 귀여워서일까 진유현이 작게 실소를 머금었다.
그에 적소화의 얼굴이 더 달아올랐다.
“저는 그저 어르신의 소식이 궁금해서요.”
적소화의 목소리가 부끄러움으로 인해 끝으로 갈수록 조금씩 작아졌다.
그 모습에 집무실의 분위기가 부드러워졌다.
진유현이 살짝 웃으며 말했다.
“사부님이 어디 계신지는 알려 주기가 곤란하오. 그래도 나름 은거를 하신 거니까, 그냥 넘어가 주시오.”
진유현의 말에 적소화가 다시 물었다.
“그럼 무공은요. 은거하시기 전인 삼십 년 전에는 화경이셨는데, 혹시 현경에 들지는 않았나요?”
적소화의 말에 진성원과 조일영도 귀를 기울였다.
절대이신의 경지를 두고 ‘현경에 올랐다, 아니다’로 한때 말이 많았기 때문이다.
뇌신의 경지는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궁금증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 이 자리에서 그 궁금증이 풀릴 수도 있는 것이다.
모두의 시선이 진유현의 입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