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검마유희록 1권(3화)
제1장 검마접속(劍魔接續)(3)


보통 어른의 두 배 정도, 그러니까 약 3, 4미터쯤 되어 보이는 커다란 크기의 거울에는 단세천의 전신이 비쳐지고 있었다.
“우선은 단세천 님의 아바타(Avatar)를 만드셔야 해요. 거울을 보시면 단세천 님의 모습이 보일 거예요. 거기서 본래 모습의 10퍼센트 내외만을 조정할 수 있어요. 단! 신장이나 체중은 바꿀 수 없답니다!”
실리아의 설명을 들은 단세천은 거울에 비쳐진 자신의 모습으로 시선을 돌렸다.
무뚝뚝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는 기본 복장으로 보이는 새하얀 천 옷을 입고 있었다. 제법 오랫동안 자르지 않은 머리카락은 어깨까지 늘어져 있고, 백 일간 햇빛을 받지 못한 탓인지 피부도 전에 비해 약간 하얗게 변한 상태였다.
단세천은 손을 들어 자신의 왼쪽 눈 아래를 만져 보았다. 길게 새겨진 흉터의 감촉이 손끝을 타고 전해져 왔다.
‘외모 수정이라…….’
단세천은 잠시 고민하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괜히 인위적으로 손을 대는 것보다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좋으리라는 생각이었다.
“외모 수정은 하지 않으마.”
“그러시겠어요? 그럼 다음 단계로 넘어갈게요.”
실리아가 다시금 별 모양 지팡이를 휘둘렀다. 실리아의 행동에 거울 속에 비쳐지던 단세천이 금색 기류에 휩싸였다. 화려하게 반짝거리는 금색의 기류는 거울 속에 비친 그의 몸을 한 바퀴 휘감고 돌았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잠시였다. 금색 기류는 순식간에 씻은듯이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변한 것 없는 그가 비쳐지고 있었다.
외모 수정을 끝낸 실리아가 포르르 날아올랐다.
“이제 아바타의 이름을 정할 차례랍니다! 환상 연대기에서 새로이 사용하실 이름을 말해 주세요!”
캐릭터 이름이라…… 단세천은 잠시 침묵하다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단세천.”
“본래의 이름을 그대로 쓰시게요?”
“그럴 생각이란다.”
“넵! 그럼 이번에는 단세천 님이 시작하실 대륙을 정할 차례네요. 대륙은 총 네 개! 무협 바탕의 동대륙과 판타지 바탕의 한 서대륙, 총과 기계의 북대륙, 주술과 야만의 남대륙이 있답니다. 어디로 하시겠어요?”
무협을 바탕으로 하여 온갖 무공이 있는 동대륙과 판타지를 바탕으로 한 검과 마법의 서대륙. 그리고 총과 기계가 발달한 북대륙과 주술과 야만의 남대륙.
하지만 단세천의 결정은 이미 정해져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리라.
“동대륙으로 하마.”
“동대륙이요? 그럼 이제 동대륙 어디에서 시작하실지 정해 주세요. 아, 굳이 어디로 정하시지 않고 환경을 이야기해도 된답니다. 호수나 커다란 산이 있는 곳 정도로 말이죠. 그럼…… 얍! 나와라, 동대륙 지도!”
실리아가 과장스럽게 별 모양 지팡이를 휘둘렀고, 곧 단세천의 앞으로 커다란 지도 한 장이 펼쳐졌다. 대륙 전도였다.
거대하다 못해 광활하기까지 한 대륙의 모습을 살펴본 단세천은 느긋하게 턱을 쓰다듬었다. 그는 대다수의 유저들과 다르게 환상 연대기에 대한 정보를 약간이나마 갖고 있었다. 그렇기에 어디에서 시작하면 좀 더 편하게 성장할 수 있을지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어디에서 시작하면 좀 더 고생하고, 어렵게 성장할 수 있을지 또한.
잠시 생각하던 단세천이 마음을 정했다.
‘애초에 환상 연대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전력을 다한 대결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어렵게 성장하는 것도 좋겠지.’
그렇게 생각한 단세천은 손을 뻗어 지도의 한곳을 눌렀다. 그러자 그의 손이 닿은 동그란 점 옆으로 그곳의 정보가 떠올랐다.

수원관(守原關)―관문(關門) 급.
· 야만족과 치러지는 전쟁의 최전방입니다. 수시로 야만족들이 쳐들어와 전투가 일어납니다.
· 관문 사람들 대부분이 병사들입니다.
· 이렇다 할 문파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오지인 동시에 전장인지라 땅이 매우 척박합니다.

“에에에? 정말로 수원관을 시작 지점으로 하실 건가요? 거기는 전쟁터라서 처음 시작하는 데 적합하지 않은데…….”
“괜찮다.”
“단세천 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어쩔 수 없네요.”
그렇게 말한 실리아가 지팡이를 흔들었다. 실리아의 별 모양 지팡이에서 뻗어 나온 빛이 단세천의 몸을 휘감았다. 단세천은 갑작스레 누군가 확 끌어당기는 느낌을 받으며 빛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빛이 사그라들었을 때, 단세천은 어느새 자신이 수원관에 있는 초보자 지대 한가운데에 서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무사히 가상 세계로 접속되었음을 깨달은 단세천은 몸을 움직여 보았다. 그의 몸은 생각한 대로 충실하게 움직였다. 가벼운 손동작부터 뛰는 것까지, 기본적인 움직임을 시험해 본 그는 감탄했다.
‘호오, 대단하군.’
과연 최고의 현실감이라 자부할 만했다!
단세천은 그로서는 예외적일 만큼 감탄을 감추지 못했다. 평소 무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면 뭘 해도 무표정할 뿐인 그의 얼굴에 감탄한 표정까지 드러났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런 그의 감탄은 이해할 만한 것이었다. 환상 연대기의 현실감은 그 정도로 대단했다.
얼굴에 느껴지는 공기의 느낌, 스쳐 지나가는 바람, 몸을 움직이는 감촉까지 모든 것이 현실과 다를 바 없을 만큼 선명했다.
‘다만 뭔가 이질적인 느낌이 남는구나.’
마치 남의 몸을 덧씌운 느낌이랄까?
몸을 움직일 때마다 자신의 몸이 아닌, 남의 몸을 조종하는 것 같은 불쾌함이 남았다.
단세천이 불쾌함의 이유를 찾기 위해 몸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을 때, 허공에 우웅― 소리와 함께 마법진이 그려졌다. 자신의 몸을 살피던 단세천의 시선이 마법진을 향했다.
화려하게 그려지던 마법진은 이내 하얀색 옷을 입은 사내를 툭 뱉어내고 사라졌다. 마법진에서 튀어나온 사내는 신철영이었다.
신철영은 단세천에게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환상 연대기 내에서는 처음 뵙는군요, 선생님. 접속해 보신 소감은 어떻습니까?”
“좋소. 그런데…….”
단세천은 인상을 찡그리며 말끝을 흐렸다. 그런 그의 태도에 약간 당황한 신철영이 물었다.
“뭔가 문제라도 있습니까?”
“전체적으로 약간 이질적인 느낌이 남아서 그렇소이다.”
“아, 그건 아마도 동화율 때문일 겁니다.”
“동화율?”
고개를 갸웃하는 단세천에게 신철영이 씨익 웃으며 설명했다.
“현재 선생님의 동화율은 70퍼센트입니다. 일반 에그로 설정할 수 있는 최고치지요. 나머지 30퍼센트는 통각에 관련된 것들이라 평범하게는 올리지 못합니다.”
“평범하게는…… 이라. 그 말은 평범하지 않게는 올릴 수 있다는 말처럼 들리는데, 틀리오?”
“틀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선생님, 잘 생각하시고 결정해야 합니다. 통각에 관련된 나머지 30퍼센트의 동화율 제한마저 해제한다면 게임을 하다 선생님의 아바타가 죽을 경우, 현실에서마저 사망할 위험이 있습니다.”
“괜찮소. 어차피 죽을 정도의 부상은 수련을 하며 몇 번이나 당해 봤소이다. 굳이 그런 걸 두려워할 이유는 없소.”
“하는 수 없군요.”
한숨을 내쉰 신철영은 허공에 손짓했다. 그의 손짓에 따라 기괴한 문양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 행동은 그에게도 그리 쉬운 것이 아니었는지, 그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 갔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신철영이 단세천을 향해 손을 뻗자, 허공에 새겨졌던 문양 중 하나가 단세천의 오른손 손등 위로 날아와 스며들었다.
그 문양이 스며드는 것과 동시에 단세천은 미미하게 느껴지던 이질감이 완전히 해소되었음을 알아차렸다. 그는 숨을 가다듬고 있는 신철영에게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을 보냈다.
신철영은 어디선가 마술처럼 나타난 손수건으로 땀을 닦아 내며 말했다.
“그 문양은 일종의 버그 아이템입니다. 나머지 30퍼센트의 통각을 의지에 따라 상승시킬 수 있는 아이템이지요. 본래 최고급 권한을 가진 운영자만이 생성, 사용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지만, 선생님께는 특별히 허락된 겁니다.”
“고맙소.”
“굳이 저한테 고마워하실 것 없습니다. 이건 윗분들의 결정이기도 하니까요. 게다가 그 문양으로 100퍼센트의 동화율을 끌어올린다고 해도 문제는 아직 남아 있습니다. 바로 몰입 동화율이라는 문제가 말이지요.”
단세천이 눈빛으로 설명을 종용했다. 그 눈빛에 신철영이 가볍게 심호흡을 하고는 긴 설명을 쏟아 냈다.
“동화율은 두 종류가 있습니다. 방금 버그 아이템을 통해 100퍼센트로 끌어올린 설정 동화율과 유저 스스로가 끌어올려야 하는 몰입 동화율이 바로 그것들이지요. 이 중 설정 동화율은 저희 회사가 조절할 수 있습니다. 보통의 유저분들도 1퍼센트에서부터 70퍼센트까지는 자유롭게 조절 가능하고요. 하지만 몰입 동화율은 다릅니다. 몰입 동화율은 말 그대로 몰입, 게임에 얼마나 깊이 빠져드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건 마음가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저희 회사 측에서도 특정한 수치로 나타낼 수가 없어 유저들의 재량에 맡긴 상태입니다. 여기까지 이해하셨습니까?”
마치 속사포같이 쏟아 내는 신철영의 설명에 단세천은 약간 질린 표정으로 대답했다.
“대충 이해가 가오. 요컨대 설정 동화율은 회사 측, 그리고 유저 스스로 조절 가능한 동화율이고, 몰입 동화율은 유저가 얼마나 게임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동화율이라, 이 말 아니오?”
“맞습니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100퍼센트로 설정 동화율을 끌어올린다 해도 몰입 동화율이 낮으면 말짱 도루묵이 됩니다. 높은 동화율을 바탕으로 캐릭터를 열심히 키워 놨는데, 정작 능력을 완전히 끌어낼 수 없다고나 할까요. 이해하신 것 같으니 다음으로 넘어가죠.”
길게 숨을 토해 낸 신철영이 딱, 소리 나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허공에서 세 개의 상자가 생성되더니, 단세천을 향해 날아들었다.
단세천은 손을 뻗어 세 개의 상자를 받으려 했다. 그러나 상자들은 그의 손을 통과해 몸 안으로 스며들었다.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흠칫하는 그를 향해 신철영이 말했다.
“당황하지 마시고, ‘가방’이라고 말씀하시면 됩니다.”
“가방?”

가방
소지품 : [벽곡단(x10)], [흑철검(黑鐵劍)], [흑의 무복(黑衣武服)], [수라마공(修羅魔功)]
보유 자산 : 금화 0닢, 은화 15닢, 동전 10닢.

“흑철검과 흑의 무복, 그리고 ‘수라마공’이라 쓰여 있는 게 있을 겁니다. 그것들을 꺼내 보시지요.”
“어떻게 꺼내면 되오?”
“품 안에 손을 넣고 아이템의 이름을 떠올리시면 됩니다.”
신철영의 설명을 들은 단세천은 품속에 손을 넣고 흑철검이라는 아이템을 떠올렸다.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이름뿐이었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무언가 손에 잡히는 느낌이 났다. 확실하게 하기 위해 잠시 동안 더 흑철검을 떠올리던 그는 품 안에서 손을 꺼내 들었다.
품 안에서 나온 그의 손에는 한 자루의 검이 들려 있었다. 네 자(121.2cm) 정도로 보이는 쭉 뻗은 흑색의 날카로운 검신을 가진 장검이었다.
칠흑같이 새카만 검신의 아래 부분에는 흑철검(黑鐵劍)이라는 글자가 음각되어 있었다.
명검을 수집하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던 터라 단세천은 이 흑철검이라는 검의 가치를 금방 눈치챘다.
“멋진 검이구려.”
“선생님의 마음에 드셨다면 다행이군요. 그렇지만 그 정도의 검은 동대륙에서 꽤 흔한 편입니다. 이렇다 할 특수 능력이 없는 동대륙에서는 무기의 강도와 날카로움을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야장 기술이 발달했으니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