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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마유희록 1권(4화)
제1장 검마접속(劍魔接續)(4)


신철영의 말에 단세천은 흥미가 생겼다. 이 정도의 검이 흔하다니. 날붙이에 대해 신앙마저 가지고 있는 칼잡이인 그에게는 지극히 마음 끌리는 소리가 아닌가!
“사실 동대륙에서 아이템의 가치는 그다지 높지 않습니다. 아이템이 중요시되는 서대륙과는 다르게 동대륙에는 무공이 있으니 말이죠. 뭐, 특수한 암기라든가, 아니면 신기(神器), 그러니까 유니크(Unique) 급 정도 되는 아이템이라면 이야기가 또 달라지겠습니다만……. 아무튼 그 정도 아이템이라도 초반에는 확실히 도움이 될 겁니다.”
신철영이 한 말은 대부분이 사실이었다. 아이템과 레벨 같은 요소가 중요시되는 서대륙과는 다르게 동대륙에서 중요한 것은 단 한 가지, 무공의 수위뿐이었다.
무공이 낮다면 아무리 날카로운 절세의 보검을 든다 하더라도 무공이 고강한 이를 이길 수 없었다. 그건 동대륙을 지탱하는 절대 무협 법칙(絶對武俠法則) 중 하나였다.
예를 들어, 무엇이든 벨 수 있는 검을 쥐고 있는 삼류 무사가 있다고 해 보자. 이 삼류 무사와 절정고수가 싸우면 누가 이기게 될까?
십중팔구는 절정고수의 승리가 될 것이다. 물론 절정고수가 꼼짝도 못하는 상황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둘 다 멀쩡한 상태라면 삼류 무인은 그 어떤 날카로운 검을 든다 하더라도 절정고수에게 이길 수 없다.
절세의 보검이라도 적을 베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는 법. 절정고수의 몸놀림은 감히 삼류 무인이 따라잡을 만한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서대륙에서 전해지는 전설의 성검은 농부가 쥐어도 마스터(Master) 급에 이르는 힘을 준다고 하나, 동대륙에는 그렇게까지 대단한 무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여기서 헷갈리면 안 되는 게, 서대륙의 유니크 급 무기와 동대륙의 신기는 아주 커다란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서대륙의 유니크 급 무기는 온갖 대단한 특수 능력을 보유했다. 주인의 능력을 배가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오러(Arua)조차 쓸 수 있게 만들어 준다. 그러나 동대륙의 신기는 무공을 보조하는 정도의 능력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건 마법의 유무로 인한 차이였다.
동대륙의 신기는 단순히 유일무이, 오직 한 사람만이 지닌다는 정도의 의미밖에 없는 것이다.
‘다음은 흑의 무복인가.’
흑철검을 허리춤에 잘 갈무리한 단세천이 이번에는 흑의 무복을 꺼냈다. 흑의 무복은 그 이름대로 새카만 색의 천으로 만들어진 무복이었다. 흑의 무복을 꺼낸 그는 잠시 무복을 쳐다보다가 신철영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이거, 설마 직접 갈아입어야 하는 거요?”
“아, 아하하핫. 아닙니다. 그냥 ‘장착’이라고 말씀하시면 자동적으로 착용됩니다.”
신철영이 웃음을 터뜨리며 설명했다.
그 설명을 들은 단세천이 장착이라 중얼거리자 그의 흰색 기본 복장이 멋스러운 흑의 무복으로 바뀌었다.
마지막으로 단세천은 ‘수라마공’을 꺼내 들었다.
“아, 수라마공을 익히기 전에 우선 ‘아이템 정보’라고 말씀해 보시죠.”
“아이템 정보!”

아이템 정보
이름 : 수라마공(修羅魔功)
등급 : 일급(一級)
구분 : 내가기공(內家氣功)
설명 : 싸우면 싸울수록 강해지는 수라에서 뜻을 얻어 만들어진 심법. 내가 기공이기는 하나 약간이나마 외문 무공(外門 武功)의 효능을 지닌다. 일종의 동공(動功)으로, 가만히 앉아 수련하는 것보다 목숨을 건 실전을 통해서 더욱 크게 성장한다.

단세천은 게임에 대해서 잘 몰랐지만, 일급 무공서라는 게 구하기 어려운 것이라는 사실쯤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짐작대로 일급 무공서는 실로 구하기 힘든 것이었다.
환상 연대기의 동대륙은 철저하게 무협을 바탕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 만큼 무공을 배울 수 있는 방법은 지극히 제한되어 있는 편이었다.
굳이 따져 보자면 네 가지 정도?
무공을 익히는 방법, 그 첫 번째는 돈을 모아 무공서를 구입하는 방법이다. 웬만큼 커다란 마을에는 서점이 하나씩 있는데, 그곳에서는 무공서를 비롯한 여러 서책을 판매한다. 거기서 돈을 주고 무공서를 구입하는 것이 무공을 익히는 첫 번째 방법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돈을 벌기 위해 지극히 오랜 시간이 걸리고, 살 수 있는 무공서의 등급 한계가 이급이라는 단점이 있다. 덧붙여, 이급 무공의 가격은 최하가 금화 단위다. 상당한 재력가가 아니면 이 방법은 시도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두 번째 방법은 문파에 입문(入門)하거나, 혹은 무인 NPC의 제자로 들어가는 방법이다. 이 방법을 사용할 경우, 확실히 첫 번째 방법을 쓸 때보다는 조금 더 높은 확률로 무공을 배울 수 있다.
익힐 수 있는 무공의 등급도 소속 문파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겠지만, 대다수의 문파에 일급 무공이 있음을 감안해 볼 때, 거의 최하가 이급, 잘하면 절정 급의 무공을 익힐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방법 또한 두 가지 단점이 있었다. 하나는 문파에 들어가기가 더럽게 어렵다는 점이다. 사파나 마도 문파는 그나마 들어갈 만한 데 반해, 정파 같은 경우에는 이것저것 따지는 것이 무척이나 많다.
게다가 그렇게 들어간다고 해도 문파에서의 위치는 최하위! 온갖 잔심부름과 고난을 견뎌 내야 겨우 무공에 입문이라도 해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 방법의 단점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것이다. 첫 번째 방법은 돈만 있다면 당장에라도 실행 가능하지만, 이 방법의 경우에는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지 장담할 수 없다.
더군다나 문파에 소속되면 행동의 자유가 극도로 제한된다. 그러므로 두 번째 방법은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이들에게는 그다지 맞지 않았다.
세 번째 방법은 무협의 로망이자 꿈, 희망이라고 할 수 있는 ‘기연’이다.
깎아지른 듯한 천애절벽을 비롯해 외딴 숲에 위치한 전대 기인이 잠든 동굴, 수많은 무인들이 잠들었다고 전해지는 땅이라든가 하는 험지에 위치한 이벤트. 그것을 통해 무공을 얻는 것이 바로 세 번째 방법이었다.
문제는 이렇게 기연을 얻을 경우,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어려운 협행(俠行, 퀘스트)이 뒤따른다는 점이다. 일급 무공이라는 기연을 얻어 좋아라 하고 있는데 절정고수를 상대로 일 년 이내에 원한을 갚으라든지 하는 말도 안 되는 협행들이 말이다.
그럼 안 하면 되지 않느냐?
괜찮다! 안 해도 된다. 그쪽에서 알아서 찾아와 줄 테니 걱정할 필요 없다. 찾아가는 서비스 차원에서 원수들이 몸소 찾아와 줄 테니 걱정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방법은 아예 무공을 새로 창조해 내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다른 방법과 다르게 현실에서도 웬만큼 무술 실력이 있어야 했다. 더불어 게임상에서도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추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니, 일류 고수 급이나 되어야 무공을 창시하겠다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런고로 네 번째 방법은 고수들이 새로 무공을 익힐 때 쓰는 방법이고, 초보자 시절에는 꿈도 못 꿀 이야기라는 말이다.
그러니 게임이 열린 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일급 무공서를 얻은 것은 참으로 대단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수라마공]을 습득하시겠습니까?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 창을 본 단세천은 습득이라 말했고, 그에 따라 무공서는 순식간에 가루가 되어 그의 몸으로 흡수되었다. 마공이라서인지 무공서의 가루는 검은색이었다.
단세천이 수라마공을 익히는 것을 보고, 무언가를 확인한 신철영이 그에게 물음을 던졌다.
“심법 외의 것은 그다지 필요없다고 생각해서 드리지 않았습니다. 괜찮으신지요?”
“괜찮소. 하지만 먼 거리를 이동할 때에 쓰이는 경공(輕功)이라는 건 필요할 듯한데, 그건 없소?”
“아, 그렇군요.”
신철영이 다시금 허공에다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허공 한곳에서 물결 같은 파장이 일더니, 그 속에서 책 한 권이 스르륵 나타나 단세천에게로 천천히 내려갔다.
단세천은 책을 받아 들었다. 책에는 ‘수라행(修羅行)’이라는 제목이 쓰여 있었다. 일급 경공서였다. 그는 수라마공을 익힌 것처럼 수라행 또한 익혔다.
그 모습을 모두 지켜본 신철영이 말했다.
“안타깝게도 저희가 드릴 수 있는 도움은 이게 다입니다.”
“이 정도면 충분하오.”
“그렇게 생각해 주신다면 다행이로군요. 그럼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아! 선생님께는 담당 모니터링 인원이 세 명 정도 배정되었습니다. 아무래도 동화율이 백 퍼센트인만큼 주의를 기울이고 싶어서요.”
“별다른 간섭만 없다면 괜찮소이다.”
“네, 그럼 이만.”
“잘 가시오.”
신철영의 신형이 빛과 함께 사라졌다.
홀로 남은 단세천은 허리춤에 걸린 흑철검의 검파를 매만지며 앞으로 해야 하는 일에 대해 생각했다.
우선, 어느 정도 힘을 기르는 게 좋겠군.’
전력을 다한 대결을 벌이는 것도 좋지만, 패배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힘!
절대적일 정도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힘을 가지고 있을 필요가 있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을 정한 단세천은 곧장 행동에 들어갔다.
마음을 정하면 결코 망설이지 않는다.
그것이 그의 생활신조였다.



제2장 검마등산(劍魔登山)(1)


‘우선 확인해야 할 것은 몸 상태로군.’
단세천은 자리에 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그리고 천천히 크고 깊게 호흡하기 시작했다. 숨을 들이마실 때에는 굵고 길게, 반대로 내쉴 때에는 얇고 길게. 그의 호흡은 점차 가늘고 길어져서, 이윽고 겉으로 보기에는 숨을 쉬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 상태로 그는 자기 자신의 몸을, 정확하게는 몸 안쪽을 살폈다. 그것은 일종의 관조였다. 자기 자신의 몸에 대한 관조. 새로이 얻게 된 몸은 그의 머릿속에서 낱낱이 해체되고 다시 분해되며 그에게 신체에 대한 정보를 알렸다.
‘뼈의 강도, 근육의 밀도, 신체의 유연성을 비롯한 모든 것이 매우 우수하다. 단련하지 않고도 이 정도의 근골을 가질 수 있다니, 놀라울 정도군.’
새로 얻은 신체에 대한 평가를 마친 단세천이 눈을 떴다. 그의 눈은 마치 깊은 바다와 같이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는 마치 속에 있는 모든 것을 토해 내듯 긴 숨을 내쉬었다.
주관적인 판단을 확인했으니 이제 객관적인 분석을 볼 차례였다. 환상 연대기는 몸으로 느끼는 것보다 더 확실하게 자신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이 존재하는 게임! 단세천은 그를 비롯한 모든 유저들에게 주어진 강점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상태창.”

기본 정보
이름 : 단세천 소속 : 없음
직업 : 없음 별호 : 없음
신분 : 평민
체력 : 100 / 100 기력 : 100 / 100
내공 : 0 / 0 [무급]
근력 : 10 체력 : 10 민첩성 : 10
순발력 : 10 지구력 : 10 유연성 : 10
무공 정보
일급 기공 [수라마공] : 숙련도 0/12
일급 경공 [수라행] : 숙련도 0/12

동대륙의 ‘상태창’은 서대륙을 비롯한 여타 대륙의 상태창들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우선 동대륙의 상태창에는 게임에서 주로 사용되는 시스템인 ‘레벨(Level)’이 존재하지 않았다. 당연한 이치로 레벨이 오르면 얻을 수 있는 스텟 포인트를 비롯한 이득 또한 얻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무엇을 통해서 그 캐릭터의 강함을 판단할 수 있느냐?
그 역할을 맡은 것이 바로 내공 수치 옆에 나오는 경지다.
현재 단세천의 경지는 무급. 너무 강해서 등급을 매길 수 없을 정도가 아니라, 한 줌의 내공조차 존재하지 않는 저잣거리 왈패와 같은 수준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