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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마유희록 1권(5화)
제2장 검마등산(劍魔登山)(2)
이 등급은 무급(無級), 삼류(三流), 이류(二流), 일류(一流), 절정(絶頂), 최절정(最絶頂), 초절정(超絶頂), 조화경(造化境), 현경(玄境), 무신지경(武神之境)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일류 이후부터는 하나의 경지를 뛰어넘을 때마다 가로막는 ‘벽’이라는 것이 존재한다(절정과 최절정은 예외).
이 벽이라는 것을 넘을 때마다 내공의 증진이나 환골탈태 등의 특혜가 주어진다. 서대륙의 시스템에 비교하자면 전직과 같은 역할이라 하겠다.
소속은 캐릭터가 소속된 문파나 집단 등을 이야기하고, 직업은 그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직업을 말한다.
무인, 낭인, 점소이, 객잔 주인, 군인 등이 이에 속한다 할 수 있다.
동대륙에는 경지만큼이나 종요한 의미가 있는 것이 또 하나 있었다. 캐릭터의 또 하나의 이름이자 그 캐릭터를 대표하는 얼굴!
그것이 바로 별호다.
이 별호를 갖기 위해서는 최소 이백 명의 사람에게 본인의 무위와 이름을 알려야 가능한데, 본인 스스로 정하고 싶은 별호를 정하는 게 아니라 그 이백 명이 가장 많이 부르는 호칭이 그 유저의 별호가 된다.
물론 스스로 별호를 짓는 방법도 있었다. 이백 명의 무인 NPC를 찾아다니며 ‘나 철혈마룡(鐵血魔龍)이오’라 말하고 다니면 그의 별호는 철혈마룡이 될 수도 있다.
물론, 될 수도 있다는 것이지 그렇게 꼭 된다는 법은 없다.
만약 그 말을 들은 이백 명이 ‘허, 자네는 참으로 허풍선이로구만!’ 하고 그를 비웃는다면 그 사람의 별호는 허풍선(虛風扇)이 되는 것이다.
근력을 비롯한 여섯 가지의 수치는 캐릭터의 육체의 단련 정도, 그러니까 외문 무공의 경지를 표시한다. 최대 수치는 99. 반복되고 고된 단련만이 성장시킬 수 있으며, 이 수치가 높아질수록 강한 육체를 갖게 되었다 할 수 있다.
상태창을 찬찬히 살핀 단세천이 입꼬리를 살며시 말아 올렸다.
‘생각 이상으로 즐거울 듯하구나.’
* * *
초보 지대를 벗어난 단세천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잡화점이었다.
여러 가지 잡화를 판매하고 있는 상점인 잡화점은 그 설명 그대로 웬만한 물건들은 거의 대부분 판매했다.
기본적인 소모성 아이템인 벽곡단이라든가 금창약도 팔았고, 간단한 여행 물품들도 판매했다.
그것을 회사 측에서 준 정보로 미리 알고 있던 그는 수련에 필요한 물품들을 구입하기 위해서 잡화점을 찾은 것이다.
“뭘 사러 왔소?”
잡화상점의 주인이 단세천을 보며 심드렁한 어조로 물었다.
그는 얼굴에 털이 무성하게 난 사십대 중반의 남성이었는데, 오랜 시간 홀로 상점을 보다 깜박 잠들었었는지 입가에 침을 흘렸던 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었다.
‘정말 사람 같은 NPC로군.’
귀를 후비적거리는 잡화상점 주인을 찬찬히 훑어본 단세천은 또다시 감탄하고 말았다.
이토록 사람과 똑같은 NPC라니! 실로 놀랍지 않은가.
그는 여타 게임에서도 몇몇의 NPC를 만나 본 적 있었다. 그러나 그때에는 NPC가 결국 인공지능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뿐이다. 제법 발전된 인공지능을 쓰기는 했으나, 그 인공지능은 인간의 미묘한 심리 변화까지 표현해 내지는 못했던 탓이다.
그런데 이 잡화상점의 NPC는 도저히 사람인지 NPC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목소리의 아주 작은 톤 변화, 표정에서 드러나는 감정, 작은 몸짓 하나하나를 통해 전달되는 생각…… 그 모든 것이 사람과 완벽하게 닮아 있었다.
단세천은 무도의 달인이다. 그것도 그를 상대할 만한 적수를 찾아보기 힘든 초절한 고수. 그런 만큼 눈썰미가 보통 사람들보다 수배는 더 좋다. 그래야 대결 중에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하고 흐름을 지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눈으로도 잡화상점의 주인이 NPC인지, 아니면 사람인지 구별이 가지 않을 정도라면 평범한 사람들 또한 절대 구별할 수 없다는 의미일 터!
게다가 이 대단한 NPC의 직분은 고작 잡화상점의 주인이다. 이 마을, 저 마을에 여럿 있는 잡화상점 주인 NPC에게 대단한 인공지능을 쓰지는 않을 테니, 결국 환상 연대기의 거의 모든 NPC가 이 정도 수준의 인공지능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리라.
단세천은 과연 신철영이 그렇게 극찬을 할 만한 게임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용건을 말했다.
“벽곡단 한 알에 얼마요?”
“벽곡단? 쳇, 한 알에 동전 다섯 냥이오.”
잡화상점 주인의 태도가 벽곡단이라는 말에 더욱 퉁명스러워졌다. 간만에 손님이 찾아왔는데 고작 동전 다섯 냥짜리 벽곡단을 찾은 탓이다.
반면에 단세천은 잡화상점 주인의 대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벽곡단의 가격이 의외로 쌌기 때문이다.
벽곡단은 한 알만 먹어도 하루 동안 완전히 허기를 면해 주는 효과를 지닌 소모성 아이템이다. 따라서 폐관수련을 비롯한 여러 수련 등에서 필수적으로 필요한 아이템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벽곡단의 가격이 고작 다섯 냥이라니. 그로서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벽곡단이 싼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맛이 없었기 때문이다.
환상 연대기에서 벽곡단은 여러 곡식들을 잘 빻아 가루로 만든 뒤, 그것을 솔잎을 빻은 것과 섞고 끈끈한 점성이 있는 액체를 발라 동그랗게 만드는 것이었다.
요컨대 거의 곡식을 생으로 씹어 먹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소리.
그런 설정이니만큼 벽곡단이 맛있을 리가 만무했다. 그런 이유로 벽곡단이 하루 동안의 허기를 완전히 면해 줌에도 불구하고 고작 동전 다섯 냥의 가치를 가지게 된 것이다.
“벽곡단 백 알만 주시오.”
“은화 다섯 냥이오.”
품속에서─정확하게는 가방 속에서─은화 다섯 개를 꺼낸 단세천이 잡화상점 주인에게 그것을 건넸다.
잡화상점 주인은 재빠른 손놀림으로 은화 다섯 개를 채 가고 벽곡단 백 알을 내밀었다. 짤랑거리는 은화를 손에 든 그의 얼굴에는 꽤 기쁜 기색이 감돌고 있었다. 고작 동전 다섯 냥짜리 벽곡단을 찾기에 거지 같은 놈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알짜배기 손님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태도에 단세천이 정말 사람답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단세천의 생각을 눈치라도 챈 듯, 잡화상점 주인이 흠흠, 헛기침을 하더니 어설프게 웃었다.
“어허허, 더 살 건 없소?”
“화섭자(火攝子)와 금창약(金瘡藥)은 얼마요?”
화섭자는 현실 세계의 성냥 같은 것이다. 본래 불씨를 가진 숯을 마른 종이로 감싸 밀봉하여 천천히 타게 하여 불씨를 보관하는 기구와 부싯돌을 일컬어 화섭자라 부르는데, 그런 모습의 화섭자는 유저들이 사용하기에 불편할 것이라는 의견에 따라 환상 연대기 내에서는 찢으면 불이 붙어 사라지는 종이로 변한 물건이었다.
그리고 금창약은 서대륙의 포션쯤 되는 위치의 아이템이다. 포션과는 다르게 연고 형태로 되어 있는데, 칼에 베이거나 창에 찔린 등의 외상(外傷)에만 효과가 있는 약이었다.
“화섭자는 한 장에 동전 열 냥, 금창약은 하나에 동전 스무 개요. 사시겠소?”
“스무 개씩만 주시오. 아, 그리고 혹시 이 근방에서 가장 험한 산이 어딘지 아시오?”
“은화 여섯 개요. 그리고 이 근방에서 가장 험한 산은 저 멀리 보이는 구령산(九靈山)이오. 구미호(九尾狐)라는 요괴가 나온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산세가 험하지. 혹시 그곳에 갈 생각이라면 그만두쇼. 잡아먹힐지도 모르니까.”
잡화상점 주인이 얼굴을 굳히며 으름장을 놨다. 단세천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은화 여섯 개를 내밀었다. 반짝이는 은화 여섯 개를 본 잡화상점 주인이 희희낙락한 얼굴로 화섭자 스무 장과 금창약 스무 개를 단세천에게 내밀었다. 그것을 가방에 챙겨 넣은 단세천은 몸을 돌렸다.
잡화상점에서 살 것은 벽곡단과 화섭자, 그리고 금창약까지 모두 세 가지였다. 그 이외의 것은 수련을 하며 구할 생각이었다.
‘대략적인 준비를 갖췄으니, 이제 기본적인 수련을 해야겠구나.’
잡화상점을 나선 단세천은 다음 목적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번에 그가 선택한 목적지는 동대륙의 숙박 시설 중 하나인 객잔이었다.
객잔의 방에서는 살수의 습격 따위의 특별한 협행이 아닌 이상, 거의 대부분의 위험이 방지된다. 거기서 일단 수라마공을 어느 정도 수준까지 수련한 다음, 구령산으로 가서 본격적인 수련을 시작하려는 것이 단세천의 계획이었다.
굳이 그가 객잔으로 가서 수라마공을 수련하려는 이유는 동대륙의 무협 설정 때문이었다.
거의 대부분의 무협 소설에서 그렇듯이, 동대륙에서도 운기 중에 타격을 받으면 ‘주화입마’라는 상태 이상에 빠지게 된다. 일단 이 주화입마 상태에 빠지게 되면 기본적으로 내공의 일 할을 손실하게 되고 만다.
여기서 착각하면 안 되는 것이, 주화입마의 피해는 그게 끝이 아니란 거다.
‘기본적으로’내공의 일 할을 잃는다는 것은 단순히 그렇게 끝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뜻이다. 그나마 내공의 일 할만 잃고 끝나는 것은 잘 치료되었을 때의 이야기고, 최악의 경우에는 그냥 죽는다. 뭔가 조치를 취할 새도 없이 몸속 혈관이 다 터져 나가고 사지가 비틀어져 죽는 것이다.
하기야, 내공이 몸속에서부터 마구잡이로 날뛰며 공격하는데 버텨 낼 수 있다면 그건 인간이 아니다.
동대륙에서 운기조식하다가 사망한 절대고수의 이야기가 거짓이 아닌 현실로 취급되는 것이 이 때문이다.
비록 게임 속에 죽음에 대해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단세천이지만, 시작하자마자 운기조식하다가 죽고 싶지 않은 것은 당연했다.
은화 세 개를 내고 객잔 방을 삼 일간 빌린 단세천은 자신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하루에 은화 한 개의 값어치를 하는 듯, 객잔의 방은 제법 깨끗한 편이었다. 방문을 닫고 중앙에 선 그는 가볍게 목을 돌리며 몸을 풀었다.
“수라마공.”
기본적인 스트레칭을 끝낸 단세천이 나지막하게 읊조리자, 그의 눈앞으로 푸른색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운기 방법을 설정해 주십시오.
└ 자동 운기 / 수동 운기
동대륙의 운기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메시지 창에 쓰여진 자동 운기와 수동 운기가 바로 그것들이다.
자동 운기는 말 그대로 시스템이 유저의 아바타를 조종해 자동으로 운기를 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기의 경로나 몸의 움직임 따위를 기억하지 않아도 좋다는 장점이 있는 데 반해, 운기로 인한 내공의 증가량이 똑같이 고정된다는 단점이 있었다.
반대로 수동 운기는 유저 스스로 운기를 하는 것을 말했다. 내공의 증가량이 고정되는 자동 운기와는 다르게 수동 운기는 유저의 몰입도에 따라 내공의 증가량이 달라졌다. 얼마나 집중해서 운기를 하느냐에 따라 그 성과가 차이 난다는 이야기다.
수동 운기의 단점은 몸속에 흐르는 기의 경로부터, 동공(動功)의 경우에는 육체의 사소한 움직임 하나하나를 모두 기억하고 똑같이 해내야 한다는 점이다. 만약 기의 경로를 틀리거나 하는 경우에는 주화입마에 들 위험이 있기도 했다.
각 방법마다 일장일단이 있는 것이다.
‘결국 강한 이들은 수동 운기를 사용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내공의 총량이 다른 이들에 비해 떨어지게 될 테니까.’
이렇게 운기 방법을 두 개로 해놓은 것은 유저들의 게임 몰입도 차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자동 운기는 게임을 가볍게 즐기려 하는 라이트 유저(Light User)들을 위한 운기 방법이고, 수동 운기는 진정 게임에 몰입해서 플레이를 하는 헤비 유저(Heavy User)들을 위한 운기 방법인 것이다.
단세천은 우선 자동 운기를 선택하기로 결정했다. 일단 몸으로 겪어 본 뒤, 수동 운기를 해 보려는 의도였다.
“자동 운기.”
자동 운기로 설정되었습니다. [수라마공]의 운기를 시작합니다. 운기 중 타격을 받을 시 주화 입마에 빠질 위험이 있으니 주의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