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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마유희록 1권(7화)
제2장 검마등산(劍魔登山)(4)
크와앙!
단세천은 거친 포효와 함께 달려드는 흑랑을 흐르는 듯한 동작으로 베어 넘겼다. 앞발이 잘려 나간 흑랑이 바닥을 나뒹굴고, 다음 순간 기회를 노리던 다른 흑랑이 높이 뛰어오르며 달려들었다.
쿠웅!
단세천이 땅을 강하게 밟으며 몸을 뒤틀었다. 땅을 디딘 발로부터 오른 힘이 발목, 종아리, 무릎을 거치고 대퇴부에 이르러 경(勁)으로 승(陞)하여, 척추에 도달한다. 거기서 다시 한 번 최대한으로 뒤틀리고, 나선(螺旋)으로 변환된 힘이 가슴을 거쳐 오른팔에 이르러 그 위력을 행사한다.
마치 폭발시키는 것처럼 축적된 힘을 뿜어내는 참격(斬擊)!
“하아앗!”
서걱!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상체와 하체가 분리된 흑랑의 시체가 바닥에 널브러졌다.
단 한 번의 검격으로 흑랑을 처리한 단세천은 앞발이 잘린 채 바닥에서 으르렁대는 흑랑에게 흑철검을 꽂아 넣었다. 이내 목 부위에 검이 꽂혀 바들거리다 축 늘어지는 흑랑.
흑랑이 완전히 죽었음을 확인한 그는 그제야 흑철검을 뽑아내 납검했다.
‘단련되지 않은 육체는 이 정도가 한계로군.’
단세천은 주먹을 쥐락펴락하며 생각에 잠겼다.
단련되지 않은 육체, 그리고 내공의 미사용이라는 두 가지 제한을 건 상태로 날릴 수 있는 최대한의 참격의 위력을 재던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생각보다 못하다. 몰입 동화율이란 것 때문인가?’
그가 생각하기에 10의 힘을 끌어내어 참격을 가했다면, 실제로 육체가 행한 것은 5의 힘이었다. 절반이나 되는 힘이 허공에 붕 떠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유는 명확했다. 그가 흑랑들과의 전투에 흥미를 잃어 몰입 동화율이 떨어졌기 때문이리라.
그는 결코 이번 사태를 좌시하지 않았다. 몰입 동화율이 떨어질 경우, 절반가량의 힘이 붕 떠 버린다. 그것은 몰입 동화율이 낮아졌을 때 암습이라도 받았다가는 절반가량, 혹은 그 이상의 힘이 붕 떠 버린 채 적을 상대하는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급박한 상황에서 생각만큼 힘을 끌어낼 수 없다면 상황은 굉장히 나빠지게 된다. 여차하는 순간 죽을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몰입 동화율을 끌어올리는 수련도 해야겠구나.’
그가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어느새 흑랑들의 시체는 회색 가루가 되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여러 가지 아이템들이 남았다.
정신을 차린 그는 아이템을 회수한 후,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나저나 호연봉이라면서 웬 늑대들이지?’
여우 연못 산에서 검은 늑대라니,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던 그는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그런 건 아무래도 좋겠지. 그보다 이제 슬슬 수련에 적당한 장소를 찾았으면 좋겠는데…….’
다행히도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원하는 적당한 장소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곳은 정상 부근에서 약간 아래쪽에 위치한 동굴이었다. 입구를 가린 덩굴로 인해 못 보고 지나칠 뻔했을 만큼 잘 숨겨져 있었고, 이곳저곳을 살펴본 결과, 다른 야생 동물이 살았던 흔적도 없었다.
게다가 주변의 환경도 좋았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폭포가 위치한데다가 동굴 옆에는 육체 수련에 적당해 보이는 단단한 암석 절벽이 존재했다. 수련할 만한 장소로는 지극히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정상 부근이기에 이런저런 짐승들을 쉽게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었는데, 그래도 조용히 수련하기에는 그 편이 더 좋으니 괜찮다고 생각하는 그였다.
‘우선 불을 피워야겠구나.’
동굴 내부를 정리한 단세천은 밖으로 나왔다. 모닥불을 피울 만한 장작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나무가 지천에 널려 있었기에 장작으로 쓸 만한 나무들을 구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순식간에 장작 십여 개를 모은 단세천은 동굴 내부로 들어갔다.
화르륵!
둥글게 쌓아 놓은 장작 위에 불붙은 화섭자를 던지자, 화섭자의 불꽃이 장작으로 옮겨붙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단세천은 자신이 피운 모닥불을 바라보았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철타금강법(鐵打金剛法)을 통해 육신갑(肉身甲)부터 만드는 것. 금창약과 수라마공의 운기를 이용한다면 빠른 속도로 육신갑을 만드는 것이 가능할 터.’
타닥, 타다닥.
불씨가 튀어 오르는 모닥불을 바라보는 단세천의 눈동자가 더욱 깊게 가라앉았다.
‘육체 단련이 끝난 후에는 연련권(連聯拳)을 통해 육신의 유연성을 키우고, 그다음에 중검술(重劍術) 중 하나인 철검십이식(鐵劍十二式)을 익혀야겠군.’
그는 화륵, 떨리는 모닥불에 장작 하나를 던져 넣었다.
모닥불 안으로 던져진 장작이 순식간에 불꽃에 휩싸여 타올랐다.
‘무림을 생각한다면 쾌검(快劍)인 광검십익(光劍十翼)이나 변검(變劍)인 암륜차혼검(暗輪差魂劍)도 나쁘지 않겠지만, 지금 내가 가려는 곳은 군부. 중검인 철검십이식이 낫겠지. 전쟁터에서는 갑옷을 입고 싸우니까.’
한참을 생각하던 단세천은 이내 동굴 벽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잠을 청하려는 것이다.
환상 연대기는 작은 부분을 제외하고는 현실성을 극대화시킨 게임이다. 수면 또한 그 현실성을 극대화시킨 부분에 들어간다. 그렇기에 게임 내에서 적절하게 수면을 취하지 않을 경우, 과로사를 할 수도 있다.
그것을 알고 있는 그는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그리고 천천히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제3장 검마조우(劍魔遭遇)(1)
다음날 아침.
가수면 모드에서 깨어난 단세천은 동굴을 나와 몸을 풀었다. 앉아서 잔 탓인지 움직일 때마다 뼈가 뚜둑거리며 비명을 질러댔다.
100퍼센트까지 높아진 설정 동화율로 인해 몸이 느끼는 피로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가벼운 스트레칭을 끝낸 단세천이 흑의 무복을 벗고, 가방 안에 있는 흰색의 기본 복장을 착용했다. 지금부터 그가 할 수련은 몸은 물론이고, 옷에도 상당히 큰 상처를 남긴다. 어차피 해지게 될 것을 아는데 굳이 흑의 무복을 고집할 이유는 없었다.
옷을 갈아입은 단세천은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가 지금부터 시작할 수련은 마음의 준비 없이는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좋아, 이제 시작하자.’
마음의 준비를 끝낸 단세천이 커다란 아름드리나무 앞에 가서 섰다. 그리고 한차례 크게 숨을 들이마시더니, 주먹을 쥐고 아름드리나무를 후려치기 시작했다.
퍽! 퍼벅! 퍽!
나무를 가격할 때마다 주먹의 피부가 터져 나가며 붉은 피가 허공에 흩날렸다. 그러나 단세천은 고통에 인상을 찡그릴지언정 결코 주먹질을 멈추지 않았다. 아름드리나무의 껍질은 곧 그의 주먹에서 흘러내린 피로 붉게 물들었다.
그렇게 약 일각(一刻:15분) 정도 나무를 쳤을까?
인상을 찡그린 단세천이 아름드리나무를 가격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의 손은 완전히 피부가 터져 나가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붉은 피 사이로 언뜻 새하얀 무언가가 드러난 것도 같았다.
그는 덜덜 떨리는 손을 품에 넣고, 가방에서 금창약을 꺼냈다. 그리고는 겨우겨우 금창약의 뚜껑을 열고 그 안의 연고를 주먹의 상처 부위에 발랐다. 반투명한 연고가 상처 위에 덧칠해질 때마다 그의 손이 움찔움찔 떨렸다.
“크으으…….”
금창약을 바르자마자 급격하게 아물어 가는 상처.
아물어 가는 상처에서 느껴지는 기묘한 통증에 이를 악문 단세천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이윽고 상처가 다 아물자 그는 다시 아름드리나무를 후려치기 시작했다. 퍽퍽! 소리와 함께 아름드리나무의 껍질이 조금씩 벗겨져 나가고, 그 이상으로 더 크게 그의 주먹이 터져 나갔다.
그 행동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는 그의 표정이 일그러진 것만 보아도 충분히 알 수 있을 정도였다. 피부가 터져 나가고, 그 터져 나간 부분으로 나무를 후려치는 것이니 고통스럽지 않으면 그것이 거짓말일 터다.
그런데도 그는 결코 그만두지 않았다. 간혹 가다 가끔씩 멈추기는 했다. 그러나 그는 그때마다 주먹의 상처 부위에 금창약을 바르고 상처를 치료했을 뿐, 결코 그만두려고는 하지 않았다. 금창약 덕분에 상처가 모두 나으면 다시금 헛된 주먹질을 시작했다.
퍽! 퍼벅! 퍽퍽!
나무와 주먹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호연봉에 끝없이 울려 퍼졌다.
‘과연 천혹단련법의 최상위권에 위치할 만하군……!’
지금 단세천이 하고 있는 행동은 그의 가문에 내려오는 천혹단련법 중 하나인 철타금강법(鐵打金剛法)의 기초였다.
철타금강법의 기초는 나무를 두들기는 것으로 시작한다. 나무를 미친듯이 두들긴 후 상처를 치료한다. 치료가 끝나면 다시 나무를 두들기기 시작한다. 그 과정을 계속해서 반복한 끝에 나무를 몸 어느 부위로든 부숴 버릴 수 있게 된다면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철타금강법의 제2단계는 바위다. 무기 없이 몸으로만 두들겨 바위를 부술 수 있다면 이제 철타금강법이 기초적인 수준을 넘어서 꽤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바위 다음에는 암석이다. 맨몸으로 암석까지 깨부술 수 있다면 비로소 육신갑을 완성했다고 볼 수 있다. 이 경지에 이르면 어지간한 도검으로는 상처 하나 입지 않을 수 있다고 한다.
암석을 끝내면, 다음에는 드디어 대망의 철(鐵)이다. 철을 두들기고 두들겨서, 마침내 철까지도 부숴 버릴 수 있다면 철타금강법의 수련은 비로소 끝이 나는 것이다. 철타금강법의 수련법을 적어 놓은 부분에 따르면, 이 수준에 이른 자의 육체는 그야말로 금강불괴의 수준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 한다.
연약한 인간의 몸을 쇠처럼 굳건하게 만드는 철타금강법.
철을 때려 쇠처럼 굳건해진다는 그 이름처럼 몸에 한계 이상의 충격을 가하고 치료하는 것을 반복하여 단련하는 것이 바로 철타금강법의 정체인 것이다.
사실 바른대로 말하자면, 철타금강법은 그야말로 미친 짓이라고 할 수 있다.
철을 때려 쇠처럼 굳건해진다? 말이 쉽지, 자칫 잘못하다가는 쇠처럼 굳건해지기 전에 완전히 박살 날 수도 있다. 아니, 아마 십중팔구는 완전히 박살 나고 말 것이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결코 철을 때림으로써 쇠와 같은 굳건함을 얻을 수 없을 테니까.
검마단가의 가주가 된 이후로 천혹단련법의 대부분을 행했던 단세천조차도 철타금강법만큼은 할 엄두를 내지 못했었다.
그 이치의 비합리성은 물론이고, 결코 자신의 육체를 돌보지 않는 수련법이라는 점이 단세천이라는 현대에서 적수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걸출한 무인조차 시도조차 하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그런 철타금강법을 단세천이 시도하고 있는 이유는 이 세계, 환상 연대기가 ‘게임’이기 때문이다.
그가 치료약으로 쓰고 있는 금창약은 현실 세계에는 있을 수 없는 기물이다. 바르기만 하면 순식간에 치료가 된다니, 현실에 있었다면 엄청난 화제가 되었을 물건이다. 비록 자상에 한한다지만 그 대단함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다.
상처가 나도 중상이나 치명상이 아니라면 순식간에 회복되는 금창약이 있으니 수련 중에 몸이 좀 깨지는 것쯤이야 별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요컨대 그에게 금창약이 있는 한, 몸이 부서지는 고통만 감내해 낼 수만 있다면 가문 내에서 절대 이룰 수 없다는 소리를 듣고 있는 철타금강법을 완성해 낼 수 있게 된다는 이야기다. 게임이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랄까.
아무튼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단세천이 미친 짓이라고 생각되는 철타금강법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었다.
퍽! 퍼억! 퍼억!
‘이렇게까지 수련해 본 게…… 얼마 만인지!’
단세천은 두 손을 짓누르는 고통을 느끼며 피식 웃었다. 현실의 그의 육체는 철저하게 계획된 단련으로 다져진 철의 육신이다.
더 이상 나아갈 곳이 없을 만큼 발전된 육신.
그러다 보니 그는 어느 순간부터 직접 움직여 하는 동적인 수련보다는 명상 같은 정적인 수련을 주로 해 왔다. 우습게도 무술의 경지가 높아질수록 몸을 쓰는 것보다 머리를 쓰는 쪽으로 더 발전하고 있었던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