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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마유희록 1권(8화)
제3장 검마조우(劍魔遭遇)(2)
이렇게 미친듯이 주먹을 휘두르고, 그에 맞춰서 몸의 어딘가가 삐걱대는 느낌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단세천은 그리운 느낌을 음미하며 입가에 더욱 진한 미소를 띠었다.
마침 그의 웃음을 더욱 진하게 하는 메시지 창들이 눈 앞으로 떠올랐다.
근력이 1 상승하셨습니다.
체력이 1 상승하셨습니다.
지구력이 1 상승하셨습니다.
신체 능력의 상승을 알리는 메시지 창들이었다.
흥이 오른 단세천의 입에서 강렬한 기합이 토해졌다.
“하아아압!”
퍼아억!
커다란 기합 소리와 함께 나무를 후려치는 소리가 산중 멀리 울려 퍼졌다.
* * *
금창약의 효능은 상처의 치료다. 정확하게는 자상(刺傷), 혹은 창상(創傷)의 치료. 그 말인즉슨, 피로를 회복하거나 하는 편리한 효과는 없다는 말이다.
따라서 금창약으로 상처를 치료하며 수련을 한다고 해도 체력적인 문제 때문에 하루 종일 수련한다는 것은 무리다.
상당히 단련이 되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반나절, 아니, 세 시간만 단련해도 파김치가 되어 축 늘어져 버리게 된다. 더구나 그것이 철타금강법이라는 피곤하기 짝이 없는 단련법이라면 단련할 수 있는 시간은 더욱더 짧아지리라.
그런 면에서 단세천은 대단히 훌륭한 무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조금도 단련되지 않은 몸으로, 단련을 시작하는 첫날에, 철타금강법이라는 고단하기 그지없는 단련법을 실행하면서 반나절을 약간 넘게 단련을 하다니 말이다.
하지만 그에게도 한계는 있었다.
산 너머로 붉은 노을이 질 무렵, 몸이 피로를 이겨 내지 못하고 휴식을 호소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아…… 하아……!”
숨이 거칠어지고, 주먹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가격할 때마다 나던 퍽퍽! 소리는 탁, 혹은 툭, 하는 가벼운 충돌음으로 변한 지 오래. 그나마도 빗나갈 때마저 있었다.
단세천은 이를 악물고 눈을 부릅떴다. 설정 동화율이 100퍼센트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단련으로 인해 몰입 동화율이 올라갔기 때문인지 현실에서 몇 번이나 느껴왔던 ‘한계’의 고통이 완벽할 정도로 되살아나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크으으……!’
귀에 들려오는 웅웅거리는 이명(耳鳴) 사이로 누군지 모를 목소리가 그를 유혹했다.
이제 그만 편안히 누워 쉬라고.
지금까지 해온 것이면 충분하다고.
굳이 이렇게 고통을 감내할 이유는 없으며, 그저 편안한 수련만 해도 충분히 강해질 수 있노라고.
그러나 유혹의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단세천은 더욱 강하게 나무를 후려치며 자신을 다잡았다.
지금 이 순간이 고비다. 여기서 목소리의 유혹에 넘어가 꺾이게 되면 단련의 효과는 절반, 아니면 그 이하가 되고 만다. 오랜 무도인으로서의 생활이, 그리고 인류 최강이라는 칭호의 주인으로서의 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단세천은 결코 멈추는 일 없이 주먹을 휘둘렀다.
그리고 마침내…….
털썩!
진정으로 한계에 달한 단세천의 몸이 무너지듯 바닥에 쓰러졌다. 여전히 주먹은 꽉 쥐어진 채였다.
“하아, 하아…… 하하핫!”
대자로 바닥에 쓰러진 단세천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터뜨렸다. 극한까지 단련된 현실의 육체는 이렇게 단련을 하다 쓰러지는 일을 경험하기 힘들었다. 이 상쾌한 기분은 오로지 최고의 현실감을 이야기하는 환상 연대기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새삼 환상 연대기를 해 보기로 한 자신의 선택이 만족스러워진 단세천이었다.
체력이 2 상승하셨습니다.
지구력이 2 상승하셨습니다.
‘첫날에 꽤 많이 오르는군.’
아무래도 단련되어 있지 않던 몸이다 보니 단련의 효과가 더욱 크게 나타나는 것일 터다. 아니면 ‘게임’이라는 특수성 때문이든가.
‘어느 쪽이든 상관없겠지.’
떠오른 메시지 창을 지워 버린 단세천이 비척거리며 일어났다. 떨리는 다리로 땅 위에 우뚝 선 그는 가슴을 활짝 열며 크게 심호흡을 했다. 산의 맑은 공기가 오랜 단련으로 답답해진 폐부를 깨끗하게 씻어냈다.
어느 정도 기력을 되찾은 그는 다리를 어깨 넓이로 벌렸다. 그리고 천천히 호흡을 들이마시며 양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 양손은 커다란 원을 그리며 배 앞으로 모였고, 마치 무언가를 밀어 올리듯이 목 부근까지 올라갔다. 그러다가 손등과 손바닥의 위치가 바뀌며 다시 무언가를 밀어 내리듯이 내려왔다.
그것은 수라마공 운기의 기본 준비였다. 단세천은 수라마공을 수동 운기로 하고 있었다.
“후우우…….”
길게 숨을 내뱉은 단세천은 빠르게, 그러나 틀리는 일 없이 수라마공을 운기하기 시작했다. 그의 동작에 맞춰 몸속에 잠들어 있던 뜨거운 기운, 수라기가 전신을 휘돌며 지친 근육에 활력을 제공했다.
그가 삼 일간 객잔에서 수라마공을 수련하며 알게 된 것 중 하나가 운기 후에는 굉장히 상쾌한 기분이 든다는 점이었다.
마치 마사지라도 한 번 받은 듯이 피로가 싹 풀리는 느낌.
단세천은 본능적으로 이 느낌을 단련에서도 써먹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그의 생각은 적중했다. 한계까지 몰아붙여 덜덜 떨리던 팔다리가 서서히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듯 단세천은 수라마공을 비롯한 여러 무공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운기로 인한 피로 회복을 단련에 이용하고 있었다.
한 차례, 두 차례…… 무려 네 차례를 연이어 수라마공을 운기한 단세천은 어느새 단련 전과 같아진 몸 상태를 확인하며 빙긋 웃었다.
‘철타금강법을 통한 육체 단련 후에는 피로가 풀릴 때까지 운기를 하는 게 좋겠군.’
내, 외공의 조화를 이루기에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으리라.
육체 단련 후에 운기를 하는 방법을 사용하면 외공의 단련에 빠져 내공의 수련을 소홀히 하는 일이나, 혹은 반대로 내공의 수련에 빠져 외공의 단련을 소홀히 하는 일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으니 더욱 좋았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해야겠다.’
뉘엿뉘엿 저물어 가는 태양을 바라본 단세천이 목을 가볍게 돌리며 생각했다. 무리한 수련은 되레 독이 될 뿐이다. 그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단련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단련 후의 휴식이다. 가혹한 단련을 했으면 몸에게 그만큼의 휴식을 주어야 한다.
그는 몸을 돌려 동굴로 들어가려 했다.
“음?”
동굴로 들어가려던 단세천의 걸음이 문득 멈췄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붉게 물든 숲의 모습은 별로 특이할 것이 없어 보였다. 기껏해야 그가 수련으로 두들겨 껍질이 다 벗겨진 나무 정도?
별로 신경 쓸 만한 것 없는 주변의 모습. 하지만 찡그려진 그의 표정은 펴질 줄을 몰랐다.
‘분명히 무슨 소리가 났다.’
그는 눈을 감고 귀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숲에서 나는 여러 소리가 더욱 커진 채 그의 귓가로 파고들었다. 짜랑짜랑하게 울려 퍼지는 새 소리,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 풀벌레가 우는 소리…… 그 소리들 사이로 그가 생각했던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
아주 먼 곳에서 들려오는 듯 짧막하고 옅은 소리였다. 단세천은 더욱 귀에 신경을 집중했다. 그러자 단전 부근에서 조용히 잠자고 있던 수라기가 치솟아 올라 귀를 휘감았다.
한순간 크게 확장되는 청각!
“살려…… 요!”
분명히 들렸다. 그것은 도움을 요청하는 여자아이의 목소리였다.
눈을 번쩍 뜬 단세천이 곧장 몸을 날렸다.
‘저쪽!’
사사삭!
단세천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쾌속무비했다.
나뭇가지를 박차 다음에 있는 나뭇가지로 착지해 내는 것은 기본이었다. 가볍게 나무둥치를 박차고 뛰어오르기도 하고, 때로는 몸을 기예 수준으로 낮춰 나뭇가지들을 피해 내기도 했다.
철저하게 육체를 통제하지 않는다면 보여 줄 수 없는 움직임! 단련되지 않은 육체로 이 정도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단세천이 육체를 완전히 자신의 통제하에 놓았음을 뜻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단련되지 않은 몸으로도 이만큼의 속도를 낼 수 있다는 것이 단세천이라는 무인의 경지를 대변하는 것이다.
게다가 가뜩이나 보통의 움직임만으로도 빠른데 거기다가 수라행이라는 일급 경공까지 곁들여졌으니,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를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좋으리라.
그 신기와 같은 움직임 덕분일까?
단세천은 그가 예상했던 시간보다 훨씬 빠르게 소리의 근원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꺄아악!”
크와앙!
소리의 근원지에 도착한 그가 제일 먼저 본 것은 새하얀 여자아이와 그런 여자아이를 향해 뛰어오른 흑랑의 모습이었다.
단세천은 이것저것 잴 것 없이 곧장 흑랑을 향해 달려들었다.
강렬하게 뻗어지는 일권(一拳)!
퍼억!
깨갱!
새하얀 여자아이를 향해 뛰어들던 흑랑이 부지불식간에 단세천의 주먹에 주둥이를 맞고 멀찍이 튕겨져 나갔다.
날아가며 흩날린 피 사이로 언뜻 새하얀 조각 같은 것이 눈에 띄는 걸로 보아, 지금 날아간 흑랑은 당분간 음식을 한쪽으로만 씹어 먹을 수 있을 듯했다. 물론, 단세천의 손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때의 이야기겠지만 말이다.
촤아악!
모래 먼지를 일으키며 여자아이 앞을 가로막은 단세천이 주먹을 쥐고 싸울 자세를 잡았다.
‘다섯 마리인가.’
정확하게는 그에게 맞고 날아간 흑랑까지 여섯 마리지만.
단세천은 긴장했다. 그의 실력이라면 흑랑이 다섯 마리─혹은 여섯 마리─든, 아니면 열 마리든 어렵지 않게 격퇴할 수 있다. 그는 그만한 실력이 있는 무인이니까.
문제는 그의 등 뒤에 어린 여자아이가 있다는 점이다. 여자아이를 지키면서 싸우게 될 경우, 운신의 폭은 극도로 좁아질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실력 발휘를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지금 그는 적수공권이다. 그가 가장 잘 다루는 무기인 검은 가방 속에서 얌전히 잠들어 있는 상태! 꺼내고 싶으나 흑랑들이 그것을 기다려 줄 리 만무하니, 결국 맨손으로 싸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는 긴장했다, 아주 약간이나마.
“상관없겠지. 와라!”
그의 외침을 신호로 삼아 흑랑들이 달려들었다.
단세천은 맨 앞에서 달려들던 흑랑을 향해 발차기를 날렸다. 정확한 타이밍으로 흑랑에게 날아드는 짧게 끊어 차는 하단 차기!
콰득!
제대로 미간을 후려 맞은 흑랑이 뼈가 부서지는 듯한 괴이한 소리를 내며 붕 떠서 날아갔다.
크와앙!
크왕!
최초의 일격으로 한 마리를 처리했지만, 아직 네 마리가 더 남아 있었다. 그중 한 마리가 그의 목을 물어뜯기 위해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단세천은 그 무모하기 그지없는 흑랑을 친절히 바닥에 내려주었다. 팔꿈치로 머리 부분을 강하게 내려찍는 방법으로 말이다.
콰직!
먼젓번의 흑랑처럼 괴이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내리꽂히는 흑랑. 단세천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흑랑을 가볍게 차올렸다. 퍽! 소리와 함께 붕 떠오른 흑랑이 다른 두 마리의 흑랑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사이, 단세천은 다른 한 마리의 흑랑에게 온 체중을 실은 발차기를 날렸다.
퍼어억!
깨개갱!
복부를 걷어차인 흑랑이 깨갱거리며 튕겨져 나갔다. 단세천이 제대로 마음먹고 걷어찬 만큼 그 흑랑이 다시 싸움에 참여하는 일은 없을 터다.
이제 남은 흑랑은 두 마리!
단세천은 방심하지 않고 흑랑들을 향해 마주 섰다. 그러나 늑대에 불과한 흑랑들도 지능이라는 것이 있었던 것일까?
그가 여자아이에게서 약간 떨어진 틈을 타 남은 흑랑 중 한 마리가 여자아이를 노리고 뛰어올랐다.
“이런!”
단세천은 재빨리 여자아이 앞을 가로막으며 흑랑에게 자신의 왼팔을 내밀었다.